1998 창업아이템 : 이런저런 창업이야기
이런저런 창업이야기
믿을건 `증` 밖에 / 최대현
주변을 둘러보면 열관리기능사, 감정평가사, 세무사, 관세사,
주택관리사, 보석감정사, 변리사, X선 촬영사 등 수많은 자격증들이
있고 실제로 그런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자격증이건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자격증이건 아니면
민간기관의 그것이건 간에 자격증을 따는 일은 많은 돈과 시간과
정신력이 소비되는 일이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들은 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나름대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격증 자체가 돈을 거저 벌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자격증인 변호사, 의사, 약사자격증을 취득한 소위 허가받은
‘사(士)’들도 그 자격증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를 제대로 꾸려가지
못해 전전긍긍하거나 굶는 사람이 많다. 자격증 자체보다는 그 자격증을
살려나가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자격증을 따내는 과정도
어렵지만 그 자격증을 따놓고 나서도 제대로 살려 자신만의 독특한
돈벌이로 연결시키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자격증이 담고 있는 지식을
처음부터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세계에는 기득권자들과 경쟁자들이 많기 때문에 자격증만 믿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밥을 벌어먹을 수 없다. 모처럼 딴 자격증을
써먹지도 못하고 사장시킨다면 본전생각도 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동안
학원비 만큼 생활비를 줄인 가족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자격증은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두게 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하면 자격증을 돈벌이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격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업으로는 뭐가 좋을지 면밀히 검토해서
자격증을 유효 적절하게 써먹어야 한다.
그 자격증과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을 맺고 있는 분야의 직업들을
탐구하고 개척해 나가야 한다. 우선 자격증이 나타내는 직접적인
직업보다 그 자격증을 응용할 수 있는 관련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 사무직에서 기술지도사로
3월의 훈풍을 타고 뒷 창문을 통해 사무실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김 사장은 분주하게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인천
남동공단 소재 K산업이 신용보증기금에 제출할 대출심사 서류라고
하면서 부탁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였다.
공장에 들어가는 컨트롤 박스 등 주로 전기제어기 분야의 제품을 만들어
크고 작은 기업체에 납품해 왔던 K산업이 일본 등 선진국에서 발달한
태양열을 이용한 소형 발전설비를 개발하는데 들어가는 부족자금을
외부에서 끌어들이기로 방침을 정하고 김 사장에게 의뢰한 일이었다.
K산업의 경우도 그렇지만 밀링이나 공작기계 등 설비를 갖춰놓고
운영하는 공장의 경우, 설사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여러 겹으로
꼬여있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밤을 세워가며 극복하고 목적한 제품을
개발하는데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그들이지만 대출심사 관련 서류의
작성이라고 하면 하늘아래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되고만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은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융자 신청서상 첨부되어야 할 서류로 명시되어 있는 서류를 꾸미자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하고 또 어떻게 작성해야만 심사기관에서 만족하는
서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앞이 캄캄하기만 한 그들이다.
김 사장의 경우 기술 계통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상경계를 전공한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H전력 인천지사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그가
배치받은 부서는 하필 가장 생색이 나지 않는 기획실이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거나, 자사로 설비나 부품을 납품하려고 하는
업체나 공사관련업체가 협력업체 등록을 위해 서류를 갖춰오면 그
서류를 심사하고 정리하여 상부에 올리다보면 하루가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어느덧
과장이 되어있었다.
우연히 오래간만에 만난 공인회계사 친구놈 하나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약간 흥분한 투로 말을 꺼냈다.
“야, 요새 말이야. 별 이상한 자격증도 다 있더군.”
“뭔데 그래.”
“음, 다른게 아니구. 너도 알다시피 우리 공인회계사들이 하는 일이
뭐냐.”
“그야 약간 구린 구석이 있는 회사들 일년에 한번씩 적당히
화장시켜주는 일 아니냐.”
“그건 그렇지. 그렇지만 경영 컨설팅하면 바로 우리의 주업무 아니냔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요새 무슨 경영지도사라는 자격증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더라구.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수당도 조금 더 준다지, 아마.”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는 간단했지만 김 사장의 귀가 번뜩 틔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자격증을
가진 직원에게 자격증 수당을 조금 더 붙여주고 있었고, 자신의
현업과도 영 무관할 것 같지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는 길로 전화를 통해 그런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곳을 여기 저기 알아보았다. 한군데 그런 곳이 있었다. 사단법인체였다.
이미 경영지도사를 10기나 배출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자격증
취득자들의 진로는 우선 경영지도사 자격으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개중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개인컨설팅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대답이었다.
수강기간은 일주일에 3번으로 6개월이며 수강료는 교재료에다 응시료를
포함하여 100만원에서 조금 모자라는 고가였다. 수강기간이 긴 것도
문제였지만 수강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되풀이되기만 하는 업무에 매몰되어 나이를 먹어 가느니 더
늦기 전에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놓자는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아내와
상의했다.
“한번 해보세요.”
김 사장은 아내의 대답이 고마웠다. 경영지도사와 기술지도사의 두 가지
코스 중 후자를 택했다. 회사의 업무가 이론 쪽에 치우쳐 있었으므로
현장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술지도사 쪽을 택했던 것이다. 그 후
6개월 후 졸업식이 있었고 시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직장 동료들로부터 축하주도 받아먹었고 스스로 한턱
내기도 했다.
세상 일이라고 하는 것이 우습다면 우스웠다. 기술지도사 자격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산업연구원이니 특허청이니 관리공단이니 하는 곳에
나가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모두 김 과장에게 맡겨졌다. 어떤 때는
고위층을 상대로 한 브리핑도 김 과장 몫으로 던져졌다. 다같은
기획이라도 업무의 질이 달라졌다. 납품업체의 생산 공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배우는 것도 많았고, 그들 공장단위가 고쳐야 할 점도 많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에 제출하는 보고서에도 이런 점들이 하나씩 반영되어
나갔고, 외근을 나가는 기관이나 공장에도 조금씩 조언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또 다른 지방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기획업무로 한세월
보내느니 기술지도사로 살아가는 것이 더 보람될 것 같았다. 그만큼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것이 많았던 그였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공단
근처에 조그만 연구소를 내고 공단이나 각 기관에 컨설턴트로 등록도
하고 선전도 했다.
의뢰가 들어오는 대부분의 일감이 간단한 시장조사건이나 사업계획서
작성이나 대출을 보다 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아 봐달라는
것들이었지만, 중소규모의 공장의 사장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거들어 주었다. 물론 어려움은 컸다. 일례로
사업계획서에 들어가야만 하는 특정 아이템의 시장성 문제만 하더라도
치밀한 조사를 통해서 구체적인 현황과 전망을 기술해야 하는 것이 기본
정석이지만 수입대체품목과 같은 신규 개발품의 경우 국내 자료가
빈약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그 자료라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곳이 거의
없는 형편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강연부탁도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고, 경영진단 등 현장지도도 끊이지 않게 들어오고
있다.
공인중개사 경험으로 점포창업 안목 길러
부인과 함께 중곡동의 대단위 주택가를 끼고 제과점을 운영하는 전
사장은 오늘도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집 근처의 부동산 중개사무실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IMF 한파 탓인지는 몰라도 버스는 그런대로
한산한 차로를 뚫고 순조롭게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각종 전용 공작기계를 만들어 주로 대기업의 현지 생산공장에 납품하던
회사인 S 기계산업의 관리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전 사장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91년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중개사 시험에 응시하게 된 것도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 몸담고 있는 직장이 당장 불안하다거나
회사를 그만두어야만 하는 일신상의 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친구들과 나누는 술자리에서 ‘누구누구는 회사를 정년 퇴직하고 할
일이 없어 하루종일 기원에만 틀어박혀 있다더라’, ‘누구누구는
교감으로 퇴직한 후 무슨 어린이 교재를 들고 학교에 들어갔다가 젊은
선생한테 무안만 당했다더라’ 등등의 어려운 사정이 귀에 들려올 때
무엇인가를 만들어놔야 한다는 긴박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신문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는데 필요하다고 하는
수험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회원이 되면 수험에 필요한 교재 한 질과
6개월 동안 매달 예상문제지를 보내주고 모의고사도 두 번 볼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해서 준비하게 된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위해 전
사장은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 책에만 매달렸다. 거의
이십여년만에 처음 만져보는 수험서인 탓에 제대로 머리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어나갔다. 안사람도 늙은 낭군께서 공부를
하는 것이 대견스러웠는지 맛있는 밤참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형설지공(?)을 들인 끝에 손에 쥐게된 자격증이었다. 합격의 기쁨
때문인지는 몰라도 회사에서의 업무처리도 여유를 갖고 임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 직장이 아니더라도 극단적인 경우 최소한 뭐라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사실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후 4년의 세월이 흐르자 다른 회사에 근무하고 있던 친구들이
부장에서 더 이상 승진을 못한다거나 아니면 사장 2세가 들어서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밀려나거나 이사에서 더 이상 보직을 받지
못했다거나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하나둘씩 그만두기 시작하면서 드디어는 전 사장에게도 회사를 그만둘
차례가 다가오고 말았다. 회사 자체가 경영상의 어려움을 들어 사직을
권고한 것이다.
거의 1억 2천만원에 가까운 퇴직금을 쥐고 회사를 나온 전 사장은
집에서 멀지 않은 아파트 단지에 6천만원을 들여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오픈했다. 간판에 공인중개사임을 밝히는 문구를 넣었고 사무실 안에도
자격증을 액자에 넣어 걸었다. 아파트 단지를 끼고 오픈한 만큼 많은
벌이는 아니었지만 성실한 전 사장을 믿고 중개를 부탁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나이든 중개업소 사람들이 의례 하기 마련인 화투나 바둑 같은
것은 일절 없앴다. 화투와 바둑판을 일절 멀리하니 사무실도 늘
청결했고 찾아오는 고객들에게도 신뢰감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고객이 세를 놓아달라고 부탁한 물건 중 기막히게 자리가
좋고 값이 싼 가게 터를 접하게 되었다. 집에서 서너 정거장 떨어진
곳으로 단독 주택을 끼고 있어 제법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제과점이 없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안사람과
딸을 부추겨 제과점을 내기로 결정하고는 부족한 자금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충당했다. 인테리어도 최소비용으로 버텼다. 예상대로 퇴근 후
집으로 들어가는 직장인들이 제법 들렀다. 단독 주택가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어디나 비슷한지 생일케익이 톡톡한 효자 노릇을 했다. 점포를
얻을 때 빌렸던 은행돈도 불과 1년여만에 깨끗하게 청산할 수 있었다.
부동산 자격증 취득과 부동산업소의 실제 운영으로 이어지는 그간의
경험이 전 사장의 안목을 길러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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