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북공정, 그 얼마나 허황된 역사관인가?
평주사람 아골타. 김함보. 신라 왕실 사람.
지배층이 신라사람인데....
금나라가 중국역사인가???
그럼 스파르타인은 10% 밖에 안되고, 주변국 전쟁노예들이 90% 였던
스파르타는 노예들의 국가였던가? 그럼 국가명이 스파르타가 아닌 헤일롯 또는 헬로타이(Helot, 그리스어: Helōtai) 였던가?
그럼...아랍에미리트 국민은 10% 밖에 안되고, 대부분 파키스탄, 인도 등의 노동자와 유럽외국인들로 구성된 UAE는 인도파키스탄연맹국인가?
금나라의 초대 황제 '아골타', 사실은 신라인의 후예다 | KBS 20090905 방송
The Northeast Project: What a preposterous view of history is it?
Agolta from Pyeongju. Kim Hambo. A member of the Silla royal family.
Since the ruling class were Silla people... is the Jin Dynasty part of Chinese history???
Then, was Sparta a nation of slaves when only 10% were Spartans and 90% were war slaves from neighboring countries? Was the country's name not Sparta, but Helot or Helōtai (Greek: Helōtai)?
Then... is the UAE a federation of Indo-Pakistan, where only 10% are citizens and the majority are workers from Pakistan and India, as well as European foreigners?
The first emperor of the Jin Dynasty, 'Agolta,' was actually a descendant of the Silla people | KBS Broadcast on September 5, 2009
东北计划:这简直是对历史的荒谬解读!
平州人阿哥尔塔。金汉甫。新罗皇室成员。
既然统治阶级是新罗人……那么晋朝也算是中国历史的一部分吗?
那么,斯巴达难道是一个奴隶国家吗?因为只有10%是斯巴达人,90%是来自邻国的战奴。这个国家的名字难道不是斯巴达,而是希洛特人或希洛泰人(希腊语:Helōtai)吗?
那么……阿联酋难道是一个印巴联邦吗?因为只有10%是公民,大部分是来自巴基斯坦、印度以及欧洲的劳工?
晋朝第一位皇帝“阿哥尔塔”实际上是新罗人的后裔 | 2009年9月5日韩国广播公司(KBS)播出
금나라의 초대 황제 '아골타', 사실은 신라인의 후예다 | KBS 20090905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3hFy69IwJnw
📌 금나라 초대 황제 '아골타'가 신라인의 후예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와 송막기문(松漠紀聞) 등 여러 중국 고서에 금나라 황실의 시조가 한반도에서 건너온 신라인(김한보)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금나라 황실의 시조가 신라인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관이 금나라를 중국 내부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근본부터 흔들기 때문입니다.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신라의 후예라는 놀라운 역사적 사실을 파헤칩니다.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금나라 황실의 뿌리와 그들이 사용했던 '김'이라는 성씨의 비밀을 통해 만주와 한반도의 깊은 역사적 연결고리를 밝혀내며, 현재 진행 중인 동북공정의 허점을 파고드는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금나라 건국과 아골타의 등장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만주족의 역사를 통해 한반도와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영상
1.1. 금나라 건국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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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 1980년 즉위했으나 중국 혁명 후 친일 전범자로 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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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황실의 성씨: 아이신주아로프, 아이신주아경 등 '아이신주아러'는 청 황실의 성씨이며, 이는 한반도, 만주, 중국 동부를 꿰뚫는 역사의 비밀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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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타와 누루하치: 아골타는 여진족으로 금나라를 세운 금태조이며, 누루하치는 후금(청나라)을 세운 청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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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만주족)을 통한 역사 해석: 북방 오랑캐로 여겨졌던 여진족(만주족)을 통해 우리 역사 속 비밀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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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수도 카이펑: 1100년대 인구 50만의 국제도시였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 장택단의 '청명상하도'에 화려한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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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펑의 치욕적인 역사: 1100년대 북방 민족인 거란이 세운 요나라와 대립했으며, 만주는 거란의 지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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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의 분화: 거란족에 직접 지배받던 여진족은 숙여진, 거란에 간접 지배받던 여진족은 생여진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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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 여진족의 성장: 송화강 유역에서 유목과 농경을 하던 완안 여진족은 거란의 간접 지배 속에서도 힘을 결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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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라점 전투: 1114년, 만 여진족이 요나라 10만 대군을 대파하며 만주의 질서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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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타의 금나라 건국: 추라점 전투의 주역인 아골타는 1115년 금나라를 건국하고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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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송나라 침략: 1125년 요나라 멸망 후, 금나라 군대는 송나라 수도 카이펑을 점령하고 중원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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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의 변: 송 황제 휘종과 흠종 부자가 여진족에게 포로로 잡힌 치욕적인 사건이다.
2. 금나라 황실의 '김'씨 성씨와 신라 후예설
금나라 황실의 성씨가 '김'씨라는 사실과 그들이 신라의 후예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2.1. 금나라 황족의 '김'씨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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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타의 정식 이름: 금태조 아골타의 정식 이름은 완안 아골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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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 올출과 김올출: 아골타의 넷째 아들 완안 올출은 '진우주', 즉 우리말로 '김올출'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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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숙성 여진족 마을: 중국 감숙성 경한현에 사는 여진족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금태조 아골타의 증손자인 완안 올출(김올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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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숙성 여진족의 생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반농반목하며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으며, 희원대식 집과 토굴 생활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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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숙성 여진족의 이주: 1140년대 김올출(완안올출)의 아들이 금 황실 내부 정쟁에 휘말려 살해되자 이곳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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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씨 사당: 완안시 사당에는 역대 황제와 선조인 완안 올출의 비가 있으며, 완안 올출의 비에도 '김올출'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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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성씨의 비밀: 금 황족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조 성을 완씨가 아닌 김씨로 부르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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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의 왕조 역사: 고구려 멸망 후 발해 건국, 거란의 발해 멸망, 금나라 건국, 송나라 침략 등 중국과 만주의 역사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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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타 선조의 흥미로운 점: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 아골타의 선조들이 흥미로운 인물임을 시사한다.
2.2. 금나라 황실과 신라의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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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각과 위인: 민족 운동가 이립 선생이 설립한 개천각에는 환웅천황, 치우천왕, 단군왕검 등 24분의 우리나라 위인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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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각의 아골타: 뜻밖에도 이곳에는 금태조 아골타가 우리나라 위인들과 나란히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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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의 '몽배 금태조': 역사학자 박은식 선생은 금태조 아골타를 꿈에서 만났다는 글에서 대금국 태조 황제가 우리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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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시 여진족 거주지: 중국 하얼빈 근교 아청시는 금나라 수도 상경 회령부가 있던 곳으로, 여진족 후예인 만주족 집단 거주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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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전통 가옥: 집을 섞어 쌓은 흑벽과 가루지은 석갈래 등 우리나라 시골집과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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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의 씨름: 여가 시간에 전통 방식의 겨루기인 씨름을 즐기는데, 이는 우리 씨름과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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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정사 기록: 베이징 수도 도서관의 고문헌실에서 금 황실의 계보를 기록한 '속막기문'을 통해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에 자신들의 황실 뿌리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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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시조의 한반도 기원: '금사'에 따르면 금의 시조와 동생 보활할리가 여진으로 왔으며, 금 시조의 팔대손이 태조 아골타이다.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한보였고, 신라와 고려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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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만주로의 이주: 신라 말 고려 초 격동하는 정세 속에 한 무리의 세력이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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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만주원유고의 기록: 1600년대 초반 청나라 공식 역사서인 '금정만주원유고'는 금의 국호가 신라 김씨에서 유래했으며, 그 외 주장은 근거 없다고 단호하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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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에 기록된 사실: 금나라의 국호가 신라 김씨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900년 전 정사에 나와 있으며, 한반도에서 넘어갔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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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타의 팔대조: 아골타의 팔대조는 고려 초 한반도에서 넘어간 사람이었다.
3. 금나라 황실의 기원과 한반도와의 관계
금나라 황실의 기원이 한반도에 있으며, 신라와 고려와의 깊은 관계를 추적한다.
3.1. 금나라 시조 김한보와 신라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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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사의 기록: '속막기문', '금사', '흠류원유고' 등 다수의 기록에 금나라 선조가 한반도에서 왔다는 사실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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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최초로 중국 대륙 장악: 이민족 최초로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한족 황제를 포로로 잡았던 여진족의 선조는 한반도로부터 왔고, 그들의 성씨는 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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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보의 정체: 금태조 아골타의 선조인 의문의 사나이 김한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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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릉의 위치: 신라 수도 경주가 아닌 경기도 연천에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무덤이 있는 이유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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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태자의 저항: 신라 천년 사직을 고려에 넘기는 것에 결사 반대했던 마이태자의 행적과 관련된 유적들이 강원도 인제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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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각과 마이태자 위패: 인제군 상남면 김부리에 있는 수백 년 된 대왕각에는 마이태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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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의 저항 운동: 마이태자 유적은 나라가 망한 후에도 신라인들이 고려에 저항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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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보와 반고려 세력의 관계: 고려에 항전하던 일단의 반고려 세력과 금나라 황실 시조가 된 김한보의 관계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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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과 김한보: 고려사에 나오는 승려 김준 또는 김영의 아들 극수가 금의 선조라는 기록과 함께, 김세렴의 '해사록'에는 아골타가 경순왕의 외손자이자 안동 권씨 시조 권행의 후손이라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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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과 김행의 관계: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기여한 권행과 김선평, 장장필 세 사람 중 김행에게 권씨가 하사되었고, 권행은 본래 경주 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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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대한 충성심: 태사 직위를 받은 권행과 후손들이 100년 넘게 고려 조정에 나가지 않은 것은 신라에 대한 충성심 때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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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보의 추정: 김한보는 명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김씨 출신의 신라 광복군으로 추정되며 금나라 태조 아골타의 선조임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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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 김한보의 만주 이주: 신라 왕조 김씨인 김한보를 중심으로 한 반고려 세력들이 동향을 거쳐 만주로 이주한 것으로 추론된다.
3.2. 김한보 후손의 여진족 지도력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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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역사의 재해석: 만주의 역사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신라 후예와 발해 유민이 세운 금나라의 역사로 이어지며, 이는 중국 역사와 상충되고 우리 역사와 맥락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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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보의 여진족 통합: 김한보가 우마원상법(성문법)을 제정하고 부족 간 합의를 이끌어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여진족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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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확대와 고려와의 충돌: 김한보의 7세손에 이르러 영토가 간도까지 확대되었고, 1112년 고려에 사신을 보냈으나 아골타가 지도자가 되기 직전 고려와 충돌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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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의 여진 정벌: 1097년 12월 윤관 장군이 지휘하는 고려군 17만 명이 여진 정벌에 나섰고, 김한보의 후손들이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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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9성 확보: 윤관 장군은 이 전쟁에서 동북 9성을 확보하고 국경비를 세웠으며, 공엄진은 한경북도 종성 북쪽 부만강 너머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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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의 동북 9성 반환 요구: 타급해진 여진족은 고려에 동북 9성을 돌려달라는 서신을 보냈고, 당시 여진족 주장은 아골타의 형 오아속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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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진족은 고려를 선조들이 나온 '부모의 나라'로 삼는다고 하며 땅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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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타의 입장: 금 황제가 된 아골타 역시 여진과 고려는 형제지간이며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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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여진의 관계: 금나라에게 고려는 선조들이 나온 부모의 나라였으며, 이는 고려와 여진 간 전쟁이 적었던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4. 발해 유민과 금나라의 연합 정권
금나라는 발해 유민과의 연합을 통해 대제국을 운영했으며, 이는 신라 후예와 발해 유민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국가였다.
4.1. 발해 유민의 금나라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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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성 비석 발견: 금나라 5대 도시였던 요양에서 발견된 비석은 1990년에 제작되었음에도 주인공이 발해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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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과 발해의 연대: 여진족과 발해는 원래 한 집안이었으며, 아골타는 거란에 맞서 봉기할 때 여진과 발해가 고구려와 발해의 후예임을 주장하며 발해 유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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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건설과 발해 유민: 금나라가 수도로 삼은 베이징 건설의 총책임자는 장호로, 뛰어난 능력으로 4대에 걸쳐 황제의 신임을 받은 발해 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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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유민의 금나라 고위 관료층 형성: 장호 외에도 수많은 발해인들이 금나라의 고위 관료층을 형성했으며, 이는 대제국을 운영해 본 경험 때문이었다.
4.2. 발해 여인과 금나라 황실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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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황실의 발해 여인: 금나라 건국 후 많은 발해 여인들이 금 황실로 시집갔으며, 이로써 발해인들은 금나라의 고위 관료층과 왕비족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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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연합 정권 성격: 금나라는 발해인과 여진족 연합 정권의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신라 후예인 왕족과 발해 후예인 왕비족이 합쳐져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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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와의 깊은 관계: 금 황실의 삼조가 신라 출신이었고, 국가의 지배층은 발해 유민이었으며, 고려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우리 역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5. 동북공정과 역사 왜곡
금나라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의 허구성과 역사 왜곡을 비판한다.
5.1. 만주 역사의 중국 편입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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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역사의 중국 역사와의 충돌: 만주의 역사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금나라의 역사로 이어지는 반면, 중국 역사는 이를 내부 갈등으로 편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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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건국과 청나라 등장: 만주족이 세운 금나라와 원나라의 지배를 받은 한족이 명나라를 건국했으나, 이후 여진족이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를 무너뜨려 청나라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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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황실 후손의 '김'씨 성: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과 관련된 사람 중 청 권용 황제의 7대손이라 소개하는 그녀는 자신의 성이 김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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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주아러의 의미: 청 황실의 성씨인 '아이신주아러'는 만주어로 '금'을 뜻하며, 이는 금 부족들, 김씨들 또는 김씨 집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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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김씨와 금 황실의 연결: 신라 왕성인 경주 김씨와 신라인의 후예인 금 황실, 그리고 금나라의 후신인 청 황실은 모두 금을 뜻하는 김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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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만흥한 구호: 1911년 신해혁명 당시 중국인들은 '멸만흥한'을 외치며 만주족의 나라를 타도하고 한족의 나라를 건설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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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통일 국가론: 최근 중국은 수천 년의 한족 중심 사관을 버리고 다양한 민족이 중국이라는 통일 국가를 이루는 과정이라는 '다민족 통일 국가론'을 내세우며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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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의 허황됨: 여진족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민족적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북공정이 얼마나 허황된 역사관인가를 말하고자 함이다.
5.2. 민족 영웅 악비의 격하와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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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비 장군과 남송: 금나라의 공격으로부터 남송을 지켜낸 악비 장군은 한족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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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 부부 동상: 악비를 독살한 것으로 알려진 진회 부부의 동상 앞에 무릎 꿇린 채 침을 뱉는 행위는 악비의 한을 달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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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고 전설: 악비를 독살한 진회 부부를 형상화한 유자고 음식에도 악비의 원을 달래는 전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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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비의 격하: 2002년 중국 당국은 동북공정을 시작하며 악비가 더 이상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는 역사관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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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심 역사관의 딜레마: 중국 중심 역사관에서 악비는 민족 영웅이지만, 금나라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에서는 중국 통일의 장애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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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역사의 중국 편입 시도: 중원을 빼앗기고 황제가 포로가 되는 치욕을 안겨준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 후손이라는 사실은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관을 근본부터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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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의 부활: 잃어버린 역사, 버려진 역사인 만주가 이제 치열한 역사 전쟁으로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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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의 망각: 명확하게 역사에 나와 있는 사실을 우리가 몰랐던 것은 소중화 사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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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해석의 위험성: 지나친 아전인수격의 역사 해석은 민족 간 갈등 요인이 되며, 역사에 대한 무관심은 현재와 미래를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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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을 지켜볼 수 없는 이유: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냥 지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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