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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richcat.tistory.com/20005 [리치캣의 현재 그리고 미래: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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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전열보병이 기마부대를 격파한 역사적 사실. 팔기군. 프랑스 기병. 줄루족.
헝가리 까지 점령했던 몽골의 기마전술 개념이 갑자기 전장에서 쇠퇴한 이유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시간상으로는 격차가 있지만...전술차원에서...
대충 말하는 듯한데.... 꽤 정확하게 핵심을 설명해주는....ㅎㅎㅎ 재밌는 채널...^^
"걍 걸어가다 죽어라?" 왜 이렇게 싸웠을까? 총알이 날아오는데도 천천히 걸어가는 광기의 군인, 전열보병
📌 "걍 걸어가다 죽어라?" 총알이 날아오는데도 천천히 걸어가는 전열보병이 왜 그렇게 싸웠을까?
전열보병은 당시 총의 낮은 명중률과 느린 장전 속도, 그리고 기병대 방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화력 집중과 심리적 압박을 극대화하는 전술이었으며, 이는 냉병기 위주의 구시대 군대를 압도하는 혁신적인 방법이었습니다.
💡 전열보병 전술이 효과적이었던 구체적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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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 집중: 다수가 동시에 사격하여 낮은 명중률을 보완하고 살상력과 대인 저지력을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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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대 방어: 총검이 장착된 머스킷과 사각 방진 전술로 기병대의 돌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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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전: 적의 눈앞에서 묵묵히 전진하며 화력을 쏟아붓는 배짱 싸움으로 적의 대열을 무너뜨렸습니다.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광기의 군인, 전열보병의 역설적인 전술을 파헤치는 콘텐츠입니다. 이들은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마저 무력화시킨 총의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명중률이 낮고 장전이 느린 화승총의 단점을 '화력 몰빵'이라는 기적의 방식으로 극복했습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들의 전술이 어떻게 당대 최강의 기병대를 압도했는지, 전쟁의 밸런스 패치 역사를 통해 그 실용적 원리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근대 유럽 전열보병의 역설적인 전술과 그 배경
1.1. 전열보병의 기이한 모습과 그 파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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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열보병의 모습: 총알과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 한복판에서, 산개하지 않고 알록달록한 군복을 입은 채 일렬로 서서 음악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는 광경을 연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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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관점의 의문: 이러한 모습은 총력전과 수성전을 선호하는 현대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유럽의 광기로 비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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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과: 그러나 이 전열보병은 십자군, 몽골군을 썰어버린 맘루크 기병대와 동아시아 최강 기병대라 불리던 만주 팔기군을 압도적인 교환비로 격파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파멸적인 위력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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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산물: 그 이유는 전열보병이 단순히 총 쏘는 부대가 아니라, 이전 시대 군대와는 차원이 다른 전술 신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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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본질: 전쟁은 더 강하게 때리고 더 확실하게 막기 위한 무기 패치와 전술 업그레이드의 연속이었다 .
1.2. 중세의 최강자, 판금 갑옷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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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패치의 역사: 창을 막기 위해 방패를 들고, 방패 보병을 뚫기 위해 기병이 등장하며, 기병을 막기 위해 장창을 든 파이크병이 세워지는 등 효율적인 무기와 전술 업그레이드가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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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의 최종 진화: 이러한 무한 패치질이 만들어낸 최후의 방호구 형태는 인간 탱크라 불리는 판금 갑옷(풀플레이트 하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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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 갑옷의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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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 갑옷은 운동 능력을 크게 저하시키지 않았으며 방어력은 탱크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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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공격해도 충격은 받지만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으며, 화살도 튕겨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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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처치 방법: 일반 병사가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를 처치하는 유일한 방법은 철퇴나 둔기로 머리를 세 번 내려 스턴 상태로 만들거나, 넘어뜨린 후 집단 린치하는 것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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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공격력: 이들은 최소 10년 이상 칼질 훈련을 받은 살인 병기였기에, 농사만 짓던 일반 병사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력을 가졌다 .
1.3. 총의 등장과 전장 패러다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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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위협: 이 인간 탱크들을 한 방에 무력화시키는 절대적인 무기인 조총(화승총)이 등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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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의 발명: 총의 발명은 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으며, 이는 대포를 작게 만들어 휴대하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파멸적인 신무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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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화승총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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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화약이 젖어 발사가 불가능한 날씨의 제약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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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이 까다로워 분당 두세 발이 고작이었으며, 장전 순서는 화약 투입, 총알 투입, 막대기로 쑤셔 넣기, 저화약 투입 후 불 붙은 끈으로 점화하는 방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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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한계로 명중률이 낮아 유효 사거리가 고작 100m 남짓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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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패러다임을 바꾼 이유: 총은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손가락 당길 힘만 있으면 40년 경력의 판금 갑옷 기사를 납탄 한 방으로 저 세상으로 보낼 수 있는 극한의 가성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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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의 중요성: 비록 초기에는 총병과 기사 간의 교환비가 압도적이지 않았으나, 며칠만 훈련하면 실전 투입 가능한 총병은 고급 인력인 기사를 잃은 적국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상대적 손실이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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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부대의 변화: 웬만한 냉병기를 무력화시킨 판금 갑옷 기사나 중무장 보병/기병도 경농민이 든 총 한 방에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각국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총병을 주력으로 채택하였다 .
1.4. 활 vs 총: 명중률과 살상력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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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오해: 현대 소총수 관점에서는 분당 두세 발의 느린 장전 속도와 낮은 명중률 때문에 활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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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명중률: 당시 원거리 주력 무기인 활과 비교했을 때, 총이 오히려 평균 명중률이 더 뛰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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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의 현실: 활은 민첩성보다 엄청난 근력을 요구하며, 명중을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했고 연사력도 생각보다 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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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의 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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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연습된 총병은 50m 거리 표적을 유의미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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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의 살상력과 대인 저지력은 타 원거리 무기와 차원이 달랐으며, 한 발만 맞아도 전투 수행 불가 또는 사망에 이르렀기에 맞추기만 하면 장땡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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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머스킷과 총검의 결합: 만능 병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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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포지션: 초기 총병들은 기존의 활, 투석, 투창을 대신하여 원거리 무기 포지션을 차지했고, 약한 근접전은 파이크병이 커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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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킷과 총검의 등장: 이후 불 붙은 심지 없이 사용 가능하고 유효 사거리와 화력이 개선된 머스킷이 등장하자, 파이크병 양성이 어렵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머스킷에 소켓형 총검을 장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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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괴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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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창이 된 머스킷은 기병이나 중무장 보병이 접근해도 충분한 저지력을 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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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무게가 약 5kg 정도로, 한 번 휘두르면 사람 한 명을 보낼 수 있는 둔기 역할까지 수행하여 총, 창, 둔기를 모두 다루는 역대급 괴수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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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중률 개선: 숙련자는 70~80m 거리를 명중시켰고, 샤프슈터 같은 고급 인력은 130~150m, 드물게 200m까지도 명중시켰다 .
1.6. 훈련 부족과 기술적 한계가 낳은 '전열'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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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의 어려움: 당시 화약값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영국군이나 프로이센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실탄 사격 훈련을 거의 할 수 없었고, 대충 1일 1하머(총 쏜다) 이론만 빠삭한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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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장전 속도 문제: 빠른 재장전을 위해 총알을 총구보다 살짝 작게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발사 시 폭발 가스가 새고 총알이 총열 안에서 핑퐁치며 미세한 회전이 걸려 명중률이 사실상 가차 뽑기 수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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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의 어려움: 머스킷 발사 시 눈앞에서 섬광이 터져 자동으로 눈이 감겼고, 뻑뻑한 방아쇠와 반동 때문에 정확한 사격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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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열보병 메타의 등장: 이처럼 훈련 부족, 작은 총알로 인한 문제, 머스킷의 기술적 한계가 맞물려 명중률이 극도로 낮아지자, 이를 커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전열보병 메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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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 몰빵의 해결책: 상대가 다가오고 명중률이 개판일 때, 다수가 한꺼번에 쏘면 된다는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기적의 해결책이 전열보병 메타였으며, 이는 실제로 기적적인 방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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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의 위력: 1열에 최소 1천 명이 있다면 2명이 동시에 사격 시 50%만 맞아도 발사 한 번에 적 1천 명을 쓸어버릴 수 있었으며, 이는 오늘날 산탄총과 비슷한 원리이다 .
2. 전열보병 전술의 심리적, 물리적 원리
2.1. 전열보병의 교전 방식과 기병 격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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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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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 사격 후 장전하는 동안 2열이 사격하고, 이후 3열, 4열이 순차적으로 사격하는 방식이 반복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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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검이 장착된 머스킷은 긴 창이 되어 전열만 잘 갖추면 일제 사격 한 번에 대부분의 기병을 쓸어버릴 수 있는 기병대의 악몽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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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의 무력화: 사각 방진 전술까지 등장하자 기병이 보병에게 돌진했다가 오히려 격퇴당하는 시대가 되었으며, 워털루 전투에서는 사각 방진에 도달하기도 전에 기병 상당수가 전투 불능에 빠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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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례: 맘루크와 팔기군은 연느적 상대하듯 돌진했으나 사각 방진의 늪에 빠져 기동성을 잃고 전열보병의 화약에 휩쓸려 나갔다 .
2.2. 흩어져서 쏘지 않은 이유: 훈련, 통신, 장전의 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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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서 쏘는 전술의 불가능성: 지휘관이 총알을 피하기 위해 흩어져서 쏘게 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으나, 당시 머스킷으로 훈련도 제대로 안 된 병사 한 명 한 명이 기병을 상대로 정확히 한 방컷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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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분산의 위험: 병력이 흩어진 채 기병을 상대하는 것은 사실상 스스로 무너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샤프슈터나 게릴라전 부대는 예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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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문제: 무전기가 없던 시대였기에 명령 전달이 늦거나 사람이 직접 포탄이 터지는 전장을 뛰어다녀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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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의 제약: 당시 머스킷은 서서 앞으로 총알을 장전해야 했으므로, 엄폐를 위해 엎드리거나 누운 채로는 사실상 장전이 불가능했고 일어나서 장전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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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확보 불가: 흑색화약 사용으로 두세 번만 사격해도 짙은 연무가 퍼져 적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을 노리는 조준 사격 대신 대강 적 대열에 한 명은 맞겠지 하는 지향 사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
2.3. 전열보병의 핵심: 배짱과 멘탈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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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열보병의 본질: 전열보병 밀집 대치는 누가 먼저 쏘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끝까지 안 쫄고 버티는 배짱 싸움이자 멘탈 싸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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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샷건 원리: 전열보병은 인간 샷건과 같아서, 멀리서 쏘면 명중률이 떨어지고 화력이 증발하여 장전할 때 허덕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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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순간: 옆 전우들이 쓰러져 나가는데도 쫄지 않고 묵묵히 걸어오는 적들이 명중률 극대화 거리까지 다가와 화력을 몰빵한 뒤 돌격해 오면, 공포에 질려 대열이 무너지고 기병에게 썰리게 된다 .
2.4. 포병과 기병의 상호 견제: 가위바위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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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의 위협: 당시 대포는 쇠공 특성상 지면에 튕겨(도탄) 볼링처럼 날아가 전열보병에게 담당 일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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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의 한계: 하지만 지형에 따라 도탄이 안 되거나 비 오면 땅에 박히기도 했고, 기동성 높은 기병이 달려오면 크고 무거워 뚝배기가 터지기 일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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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가위바위보: 당시 전장은 다음과 같은 상호 견제 구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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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은 총/창병을 들이박으면 갈려버리니, 멀리서 대포가 이기면 꼼짝 못 한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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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창병은 대포 아래서 볼링 되니, 쇠못(정) 하나 박아 대포를 못 쓰게 하는 기병이 처치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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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은 달려오는 기병을 잡기 어려우니, 대기병(기병)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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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전술: 결국 당시 전투는 무서워서 튀는 척하며 보병과 기병을 끌고 온 뒤 뒤에서 대기 중이던 아군과 합세하여 적을 쓸어버리는 등 유연한 전술이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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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결과: 이 전술로 그들을 비웃던 정근대 군대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
2.5. 전열보병의 역사적 승리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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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의 승리: 조선과 명을 멸망시킨 팔기군 12,000명은 영포연합군에게 혹독하게 당하며 기병 1만이 전사했고, 영포연합군의 사망자는 단 1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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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배: 18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전열보병은 어지간한 비유럽 국가들을 박살 내며 위력을 증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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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럽 국가의 패배: 냉병기 위주의 비유럽 국가들은 유럽 국가와의 전투에서 전열보병에게 손도 못 쓰고 갈리거나, 정예병이 갈려나간 뒤 오합지졸 징집병만 남아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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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교훈: 현대인이 전열보병을 우습게 여기며 상상하는 전술로 싸웠던 군대들은 실제 역사에서 압도적인 교환비로 갈려버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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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원정 사례: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 당시, 맘루크 기병대가 프랑스 전열보병 앞으로 돌격했으나, 맘루크는 3배 많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무려 18,000명이 전사했고 프랑스군은 사망자가 30여 명에 불과했다 .
3. 결론 및 다음 주제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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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열보병의 전략 요약: 머스킷의 모든 단점을 무식한 화력 몰빵으로 정면 돌파한 전략이 전열보병 메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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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제 예고: 이 화력 집중 전략은 전열보병만의 메타는 아니었으며, 유럽 동방 끝자락에도 화력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국가가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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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방부 이야기: 다음 시간에는 5,000문의 코(포)를 들고도 화력이 부족하다며 K9 자주포 1,000대 이상을 뽑아내고 퇴물 예정 포를 굴릴 때까지 굴리려는 대한민국의 광기 어린 화력 덕후, 국방부 포방부 이야기로 찾아뵐 예정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OXv1oHNkJ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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