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계로 가자
세계 구석구석에 퍼진 중국상인
전세계적으로 화교인구는 약 6천만 명 가량 된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동남
아시아에 분포하고 있지만 미국 내에도 적지 않은 중국인이 살고 있다. 그리
고 그들은 전세계 구석구석 오지마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분포도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우선 그들의 끈질긴 생활력이 보인다.
여행을 자주 하는 나는 여행갈 때마다 식사문제로 고충을 겪게 되는데 그때
마다 중국음식점이 날 구제해주곤 했다. 이름난 관광지보다는 그 나라 구석구
석에 숨어 있는 그들의 생활양식이나 그 지역의 숨은 비경을 찾아 다니는 나
의 여행 벽은 때로는 이름도 모르는 오지마을이나 낯선것 등을 만날 때마다
항상 먹는 걱정, 잠자리 걱정으로 적게는 서너 시간, 많게는 온종일 헤매게 되는
데 '설마 이런 곳까지야'하고 포기할라치면 여지없이 내 눈에 들어오는 중국음
식점이 있었다.
그들은 꼭 중국음식이 아니더라도 그 나라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을 운영하기
도 했고 여관, 호텔, 술집 등 거의 대부분 상행위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중국인
들의 그 끈끈한 생활력이 언젠가는 온 지구를 뒤덮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
안감을 왕왕 가져봤다(내 지구도 아닌데...)
중국인이 경제의 70퍼센트 차지
사실 그들이 정착한 나라마다 상당한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데 필리핀 인
구의 4-5퍼센트도 안되는 필리핀 화교가 필리핀 경제의 40-50퍼센트를 차지하
고 있고, 태국은 인구의 약 2-3퍼센트도 안되는 중국인들이 경제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밖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등 대
부분 동남아국가의 경제가 그들 손에 있다 해도 그리 과한 말이 아니다.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 일본의 그 많은 돈보다 더욱 많은
돈을 그들이 갖고 있고, 그 돈들은 결코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세계에 퍼진 중국상인의 기원은, 기원전 1111년 경에 상나라(은나라)가 주나
라에 패함으로써 전답을 모두 빼앗긴 상나라 사람들이 중국 전역으로 퍼져 장
사로 연명을 해나가면서 '상인' 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들이 어떻게 가
는 나라마다 막강한 부를 누릴 수 있었는가? 그 들의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인도네시아의 그 짜증스런 더위와 고국의 그리
움을 뒤로 한 채 열심히, 그리고 조심스레 자신의 아성을 쌓아 가는 죽마고우
김종무 군(그는 얼굴도 상당히 미인인 중국인 부인을 둔 관계로 중국인들의 사
고 방식이나 사업 스타일 등에 대해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과
나름대로 기반이 닦인 중국 화교들을 상대로 그 비결에 접근해보았다.
인도네시아에서 본 중국인
싱가포르에도 인도네시아에도 필리핀에도 태국에도 어디를 가나 그들은 큰 복
주머니 안에 하나 가득 돈을 채우고 우뚝 솟아 있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
우엔 그들이 줄기는 유흥업소는 너무도 값이 비싸고 타인종에 배타적이라 들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중국인들의 저력을 보아왔던 나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크르타에서 뱃길로 두 시간 거리인 어느 그림과도 같은 개인 소유의 섬에
있는 별장(김종무 처의 친구 소유)에서 그들의 거대한 번영의 비결을 알게 되었
다.
그날 저녁 낚시로 잡은 이름 모를 바닷고기로 만든 맛있는 갖가지 요리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물위에 지은 방갈로에서 친구와 나를 캔 맥주를 하나씩 들
고 베란다 나무난간에 걸터앉아 석양이 물들어 가는 저녁바다를 바라보고 있었
다.
멀리 밤고기를 잡는 어선들의 불빛이 하나 둘씩 켜지고 있었다. 따사로운
훈풍 속의 시원한 맥주는 낯선 이국의 밤바다를 더욱더 매혹적이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저런 대화도중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어찌해서 중국인들은 하나
같이 어느 나라든 부유한 생활권을 움켜쥘 수 있었는가? 중국인의 부의
비결
친구는 군대를 제대하고 일년 동안의 독학으로 외대에 입학하여 외대통역협
회 회장을 맡았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국내 무역회사에서 3년동안 근
무하다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 현지회사의 총책임자로 있었다. 그 친구의
대답을 정리해보면 이러했다.
첫째, 중국인은 근검 절약한다.
둘째, 중국인은 매사 걸쳐 조심하고, 일의 매듭이 확실하다.
셋째, 가족 중심적인 사업사고를 갖고 있다. 같은 민족간의 결속이 타민족과
비교해 월등하다.
넷째, 속마음을 남에게 잘 보이지 않으며, 모든 일에 서두름이 없고, 신중하
며, 계산이 밝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라 잃은 중국인들이 남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남다
른 필사의 의지가 필요했을 것이며 그 의지와 비축성은 타민족에게 비난의 대상
이 되기도 했지만 이렇듯 꼼꼼하고 의심 많은, 어찌 보면 구두쇠 같은 중국인
들의 생활습관은 대단히 매력적인 점도 있다는 걸 덧붙엿다. 특히 일 년에
한두 번씩 맞이하는 가족나들이(그들의 가족개념은 사촌을 물론 사돈, 가까운
이웃과 친구들도 모두 포함된 광범위한 것)는 숙박한 호텔의 한 층을 전체로 예
약하거나 어느 유흥업소를 하루종일 독점해서 다른 외부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하고도 사치스러운 휴식을 구사한다는 것이다(그들의 나들이 행
진은 세계각국의 최고급 승용차들을 전시하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우리가 알
고 있던 중국인들에 대한 인상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이다. 중요한 것은 쓸 때는
멋있게 쓰고, 아낄 땐 무섭게 아낄 줄 아는 그들의 생활태도를 우리는 제대로
봐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중국 X팬티 어쩌구.) 그만큼 의심이 많다는 얘기로 하
는 말들이지만 의심이 많다는 것은 매우 조심한다는 얘기와도 같은 말이며 그
러한 행위가 꼭 비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떠한 일이든 꼼꼼하고 조심스럽게 시도해서 손해볼 게 없으며, 그 의심이라
는 단어가 실수라는 단어를 막고 실패라는 단어를 없앤다면 그것 역시 매우 매
력적인 단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순수한족(중국인)들에게 받았던 느낌들
과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특히 가족 중심적 사업운영은 나의 사업모토와도
일맥 상통한 점이라는 사실에 묘한 동질감 마저 느꼈다.
중국,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거대한 나라
내가 중국에 처음 간 것은 지금부터 7년전인 1989년이었다.
'난'이라는 화초에 관심을 갖고 있던 친구와 함께, 그 당시엔 공산국가 방문
이 쉽지 않은 때인지라 식물원직원으로 위장해 반공교육 등의 절차를 거쳐 중국
행 배게 몸을 실었다.
삼국지와 수호지의 무대, 등소평과 모택동, 그것이 내가 아는 중국에 대한 지
식의 전부였다. 배가 위해에 도착해 중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참으로 초라하
고 남루한 중국의 모습은 한겨울 차가운 바람 속에 더더욱 지저분하게만 느껴졌
다.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더 초라한 그 땅을 만나고 보니
목이 몸 속으로 쏘옥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우선 기거할 방을 찾아야 했으므로 반시간 정도 거리를 배회하다
가 한글로 씌어진 안내문을 발견하고는 어느 작은 호텔로 찾아들었다.
그 호텔에는 꽤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고 가라오케, 한식당 등 이미 한국인
을 위한 영업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아! 우리 민족도 대단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정식수교도 되지 않아 여러 가지 투자여건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이렇
게 적잖은 한국인들이 낯설 땅에서 의욕적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나는 묘한
감동을 받았다.
한끼에 컵라면 20개를 후딱
저녁 늦게까지 맥주와 땅콩으로 낯선 밤의 어색함을 달래던 우리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소주, 항주를 거쳐 국립식물원이 있다는 상해 부근으로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기차로 하루종일 달려갔다.
음식걱정 때문에 가방에 컵라면 20개를 넣어갔는데 열차에서 맞이한 점심 한
끼에 몽땅 날려버렸다. 처음엔 컵라면 두 개를 꺼내 객차와 객차 사이에 연결된
석탄난로(모든 기차에 있음)의 온수꼭지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막 식사를 시
작했다.
그때 소리 없이 날아오는 수많은 눈동자들의 공격에 나도 모르게 앞자리의 꼬
마에게 컵라면 하나 꺼내주었고, 또 그 뒷자리의 할머니 또 그 옆의 총각 그러
다 보니 조금 후엔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1백퍼센트 자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무언의 시선으로
줄기차게 공격 해 오던 그들의 끈질김의 승리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나는 그 후로 90년 91년에도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중국이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언젠가는 이 땅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게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중국 진출에 성공하다.
1995년 그 무렵 대청 라이온스 클럽의 봉사활동을 함께 하던 절친한 선배
가 중국 청도에서 친구와 함께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중국길을
같이 나서게 되었고 그것을 기회로 95-96년 동안 줄기차게 중국 진출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때의 청도는 이미 내가 보아 오던 중국이 아니었다. 20-30층
높이의 건물이 갈 때마다 수십 채씩 올라가고 있었다. 비록 남의 나라지만 충
분히 흥분되는 현상이었다.
중국에 세운 음식점과 식품회사
드디어 나는 96년 5월 청도 팡팡식품 유한공사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꾸리고
청도시 청사 부근에 중국식당도 하나 문을 열게 되었다. 그 식당을 준비하던
96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고생을 했다. 덕분에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알
게 되었는데 그러한 경험들은 지금 중국에 진출한지 얼마 안되었거나 중국 진
출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몇 자 적는다.
중국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거대한 나라. 13억 인구의 엄청난 잠재력을 안고
있는 나라. 그러나 결코 쉽지만은 않은 나라, 아니 많이 어려운 나라.
우리는 중국을 이렇게 얘기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을
크게 놓고 하는 얘기들이다. 이제 내가 들여다본, 그리고 온몸으로 느껴본 먹는
장사로서의 중국을 살펴보기로 하자.
투자금액이 8천5백만 원 이상만 허가
96년 6월까지 요식업은 투자제한이 없었다. 예를 들어 1천만 원을 갖고 시
작하든 2천만 원을 갖고 시작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96년 7월부터 10만
달러 한국 돈으로 8천 5백만 원 이상 투자금액이 되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라고 무역공사에서 얘기했다. 그러나 이것이 청도시에 국한된 얘기인지
다른 성에도 마찬가지인 지는 잘 모른다.
그것이 무슨 얘기인가 하면 중국은 국가정책이 다르고 성마다 시행정책이 틀
리며, 그 정책마저도 몇몇 인사 손에선 변경이 가능하기도 하다는 얘기이다. 그
만큼 가변적이고 상황적이며 정석이 없다는 얘기이다.
어느 사람, 어느 부서, 어느 회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성사 여부가 결정
된다. 참으로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당연한 현상이
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나라정책뿐만 아니라 개인간, 회사간, 일반 거래에서
도 나타난다.
중국진출의 장애요인
우리가 중국 진출을 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요인을 몇 가지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사회기반시설, 국가 및 도시경제상황은 숨가쁘게 변해가고 있
지만 중국인 즉 국민의 대다수는 문화수준이나 경제행위에 대한 관념, 상식,
또는 도덕적 이해력이 사회의 변화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다. 이것은 선진국형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우리로서는 상당히 곤란하고 힘들
며 모든 일을 능률적으로 처리하는 데 가장 걸림돌로 작용한다.
둘째, 정보부재현상과 유통구조의 비효율성이다. 한국인이 중국 땅에 무엇이
어디에서 생산되고 어디에서 판매되며, 어디에 가면 무엇을 구할 수 있고, 무엇
은 어디가 싸다라는 것에 어둡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사람 자신도 그러한 정보가 충분치 않다는데 있고, 그러
한 정보를 어렵게 파악했다 해도 효과적인 운송 합리적인 가격 등에서 또 제
동이 걸린다.
셋째 경제적인 기반이 취약한 중국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의식구조가 큰 문
제이다. 워낙 가진게 없는 국민들이 많은지라 어떠한 사회적인 책임이나 도덕
적인 문제에서도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회피하거나 외면하고 또 거짓말도 서
슴지 않는다. 또한 외국인은 돈이 많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그러니까 좀 더
써도 된다는 이상논리를 내세우는 자도 적지 않다.
위의 여러 가지 난제로 말미암아 낭패를 보는 기업에서 이익을 편취한 자들의
숫자 또한 적지 않으며 그렇게 맛을 들인 이들은 계속적으로 그러한 시도를 거
듭한다.
예를 들어 96년 6,7월만 보더라도 한국인의 강도 피해가 여러 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내가 잘아는 사람도 두명이나 끼어 있어 나도 상당히 불안했음을 고
백한다.
강도 피해 사건 중에 한국인이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보유출에 있다
고 생각하며 피해 후 대처가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에는 유일하게 조선 족이라는 계층이 있고 중국말에 취약한 우리 국민
은 이들에게 통역및 정보 등을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로 말미암아 정보가
새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조선 족이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조선족 중에는 한국인 기업가가 유일
한 부의 축적 통로라고 서슴지 않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강도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데는 우리가 사건 후에 대처하는 방법이 소극적이라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중국 내의 강도 상해피해를 국내의 신문 방송
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고, 중국 내에서조차 가해자 검거 및 강도예방
대책 등에 정부가 적극 나서지를 않는 것 같다. 이것은 또 다른 범죄를 부르
는 지름길이다.
중국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발전과 나라의 부강을 위해 수많은 기업
인들이 피땀 어린투쟁을 하고 있다. 이들이 애국자이며 개척자이고 진정한 사
업가들이다. 이들을 위해 이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는 무얼 하고 있는가. 정말
심각하고도 분통 터질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개척자들은 미래가 보이는 번
영이 보이는 중국 땅에서 가슴에 내일의 꿈을 안고 울분을 참고 있다. 나는 그
들이 그 각고의 세월을 보내고 나면 엄청난 성공과 보람의 꽃다발을 안고 환히
웃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루 빨리 그날의 기쁨이 그들의
몫이 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중국진출을 앞두고 알아야 할 것들
이번 이야기는 먹는 장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 진출의 꿈을 갖고
있는 분들은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아 짤막하게 써 본다.
전자에 밝힌 클럽 선배의 친구분은 중국 청도시 첨단과 학단지 안의 요지에
종합위락타운을 세우고 회원권을 판매했었다. 회사 내부사정으로 인해 미리 선
전해했던 부분중 카지노, 나이트클럽, 사우나 등의 시설을 위한 제일 중요한 요
소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던 시점에서 영업사원들을 미리 교육하고 있었고, 본격
적인 영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화로 120만원 정도 하는 회원권이 무려 5백
장 가까이 판매되고 있었다. 물론 영업사원들이 본인에게 돌아올 인센티브를
염두에 두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적극 권장, 홍보한 결과겠지만 중국 내 물가나
돈의 가치를 생각해볼 때 엄청난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현상을 보면서 청도시의 다른 업체들의 현황을 보니 유독 회원권만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회원권만을 판매한 채 미리 약속했던 사업을 진
행하지 않고 도주한 업체(대만업체)도 있었고, 다소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지
만 나는 이러한 현상 속에서 중국인이 갖고 있는 묘한 특성을 발견하게 되었
다.
"우리는 중국인의 돈은 빼앗아 먹을 수가 없다. 단, 도박으로는 가능하다"라
는 말은 종종 듣는다. 나는 이러한 말들에서도 그 특성과의 동일성을 생각하
게 되는데 그네들의 금전에 대한 그 집요한 집착이 이러한 도박의 형태로 드러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고, 회원권 역시 그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구입이
라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중국의 발전속도로 보아 예측할 수 있는 회원권 가격의
폭 등을 기대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후에 생각해보니 그러한 점은 80년 중반 우리 나라에서 열병처럼 퍼져나갔
던 부동산 투기와 별로 다른 게 없었다.
놀이용품, 아동복 등이 장래 유망사업으로 꼽혀
지금도 많은 중국인들은 호시탐탐 재산 증식의 기회를 노리고 있기에 나는 요
즈음 우리 나라에서 대기업들도 막 참여하기 시작한 다단계 판매방식이 중국시
장에 도입될 경우 엄청난 효과를 몰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다단계 판매를 접속한 상품의 질 가격 용도 등과 시행단계에서의 전략 등이
그들이 현재 갖고 있는 구조와 잘 부합돼야 한다는 전제조건하에 말이다.
또한 중국에는 몇몇 소수민족 외에는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우려해 한 가족 한
자녀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대부분의 가정이 한 자녀밖에 없다. 그러한 까닭에
한 끼에 1-2백 원의 식사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자신들의 자녀는 몇 만원씩 하는
옷을 입히고 비싼 장난감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글을 보며 경제능력이 없는 중
국인이 어떻게 그런 소비를 할 수 있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중국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중국 13억 인구 중에 1억 정도의 인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재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지간한 중국통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
전 일찍 실내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나오는 길에 KFC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점심은 일류호텔 뷔페에서 처리하는 미시족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놀이용품, 아동복, 영어학습 등의 아동대상 사업을 중
국에서 또 하나의 유력사업으로 꼽는다.
어느 유학생의 한 맺힌 이야기
친구의 조카이며 중국의 중앙미술학원에 유학중인 김남오 군이 전해준 얘기를
옮긴다.
작년 12월의 일이었다.
북경중의대학에 다니는 두 명의 젊은이가 모 가라오케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룸메이트로 둘 중에서 나이가 많은 친구가 사정이
생겨 학교 옆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평소 술도 잘먹지도 않던 그들은 오랫동
안 같은 방에서 생활해오면서 생긴 애틋한 정을 달래며 이별주를 마시고 있었
다.
첫잔을 막 마치려는데 웬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인상이나 말투로 보아
선량한 일반사람들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그
들은 그 업소를 보호해주는 조선족 깡패들이었는데 그 가라오케의 주인이 세금
을 내지 않아 돈을 받으러 왔다고 한다.
종업원에게 몇 마디 험악한 말을 던지더니 느닷없이 그 두 학생들에게 여권
을 보여 달라고 시비를 걸어왔고 한국 여권이 뒷골목에서 비싼 값으로 거래된
다는 정보를 들어오던 두 학생은 정중히 거절했으나 그들은 막무가내로 시비를
걸어왔으며 급기야는 폭력을 휘둘렀다.
적지 않은 매를 맞은 두 학생은 그들이 나가자 그나마 그 정도로 일이 끝난
게 다행이라 여기며 잠시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간 줄 알았던 그들이 다시
들이닥치면서 또다시 폭행을 했고 급한 두사람은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왔으나
길에서 다시 붙잡혀 집단폭행을 당했다. 그 중 나이 많은 친구는 그들이 내려치
는 시멘트블록에 그만 사망하고 말았으며, 나머지 한 친구도 그때의 충격으로
거의 실성한 상태가 되었다.
차분히 얘기를 해주더니 김남오 군은 얼굴이 붉어지며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
작했다. "내가 제일 기가막힌건 우리 대사관측의 사후처리이다." 사망한 학생의
분양소를 중의대학에 설치했는데 일이 터진 후 얼굴 한 번 안보이던 대사관측의
무성의와 중국당국의 냉대에 분노한 중의대학생들이 집단행동의 기미를 보이
자 그때서야 나타난 대사관 직원의 말은 "우리가 이 나라에 와 있는 한 중국
공안당국의 처리에 따라야 하며, 그들은 당신들의 집단행동을 원치 않는다"라
는 내용이었다. 더욱 울화가 치미는 건 사건 며칠후 국내 신문의 보도내용이었
다.
"중국에서 유학중인 두 남학생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조선 족들과 싸움
이 붙어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중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한마디 대꾸조차
못하고 무차별 폭력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이런 식으로 매도할 수 있느냐
며 김남오군은 말을 이어갔다.
분양소에서 울분을 삼키며 오열하던 한 여학생이 "이 일은 우리가 약소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생긴 설움이다."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사건이라고 얘기
했다.
언젠가는 북경의 어원학원(어학연수)을 다니는 각국의 학생들이 70-80명 불법
거주 단속을 나온 공안당국에 연행된 일이 있었다. 그들이 잡혀간지 5분이 지
나자 일본대사가 찾아와 일본학생(10여명)들이 풀려났고, 30분후 에는 캐나다
대사가 와서 캐나다 학생들(4명)을 데려갔다. 체포 2시간 후에는 한국학생들
만30-40명 가량이 남게됐다. 그 학생들은 공안국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아무도
그들을 도우러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오후 경에 한국영
사관 직원이 한명 나타나 공안국과 타협을 했으나 여의치않아 하룻밤을 더 지내
고 그 다음날 석방됐다 한다.
얘기를 끝마치면서 김남오군은 한국 당국의 자국민 대한 무성의와 중국과의
미약한 외교전선으로 수많은 한국인이 타국만리 중국 땅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
과 무시를 당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원망했다. 충분히 원망스러운
일이다.
글로벌시대
오늘은 겨울날씨답지 않은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에 가득찼다. 커튼을 젖히고
가볍게 기지개를 켜본다. 지난밤 잠자리의 여운이 아직도 몸에 붙어 놔주질 않
는다. 조금씩 잠이 물러가고, 나는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본다.
아내의 화장대 위에 놓은 가족사진 액자 밑으로 버섯모양의 자기장식이 있고
그 옆엔 얼마 전에 다녀온 미국여행때 기내에서 나눠준 필리핀 항공의 선물인
휴대용 베개가 놓여 있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걸 보니 아마도 지나나 저녁 감찬
이 녀석이 목욕을 하면서 갖고 논 모양이다. 그것을 보니 산타바버라의 중고 시
장을 한시간이나 뒤져 25달러에 건져온 골덴코트를 입고 외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점심약속이 있어 시내로 나갔다. 이곳저곳에 세계의브랜드숍이 속속
들어앉았다. LA를 가도, 영국을 가도 볼 수 있는 똑같은 브랜드들이다. 이제는
영국사람이 입고 다니던 옷을 우리가 먹는 음식을 미국인도 먹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외국이 외국이 아니다. 집에 앉아서도 지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약을 전화
한통화로 사먹을 수 있으며, 우리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아프리카, 알래스카에도
판매할 수 있다. 이젠 정말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들린다. 더구나 나같이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의 경우 그 느낌은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온다.
여행에서 느낀 외국의 먹는 장사
여행을 하면서도 그 직업적 본능은 어찌할 수 없이 따라 다니는 까닭에 여행
증 틈틈이 그 나라의 식당, 먹거리 등을 찾아보곤 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느낀
것을 그대로 전해보고자 한다.
물론 가끔 정말 특이한 음식을 만나곤 하지만 본래 음식이 대부분 정해진, 그
리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재료들로 구성됐으므로 큰 발견이나 놀라움은 없
었다. 단지 그 조리방법이나 재료의 사용방법, 혹은 완성단계에서의 모양, 색채
등이 각기 조금씩 다를 뿐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음식이란 거의 정해져 있게 마
련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 음식에 대한 변화, 혹은 성장을 외면했다.
그 사이에 일본은 김치를 외국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 수출을 했고, 미국은 햄
버거를, 중국은 각 나라로 진출해 거대한 중국음식의 성을 쌓았다. 전세계 어느
곳이든 맥도널드 햄버거와 중국음식점이 분포되어 있으며, 그 숫자는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 있는 천개의 한국식당
특별한 자원이 없고, 미래를 대비한 각종 개발연구에 투자할 돈도 없고, 수
출경쟁력에 걸맞는 제품생산이 원활한 것도 아닌 우리 나라가 맞이할 미래는 참
으로 암담한 그림뿐이다.
이때 우리는 큰 자본도 필요치 않고 경쟁력도 갖추어져있으며, 안정성도 구
비된 먹는 장사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먹는 장사란 외
국에 진출하는 음식점을 말하는 것인데 그 동안 본인이 직접 겪으며, 또한 많이
찾아보고 먹어본 바에 의하면 그것은 충분히 매력 있는 사업영역이었다.
현재 중국에는 대강 줄잡아 약 1천여 개의 한국음식점이 있다. 물론 정확한
수치는 통계가 나와 있지 않지만 북경에 4백여 군데, 상해에 2백여 군데, 광주,
심천, 청도, 대련, 위해 등지에 산재해 있는 숫자가 대강 그 정도 되는 걸로 알
고 있다. 중국의 한국식당은 거의 80퍼센트 이상 우리의 체류국민들이나 여행자
들을 주고객으로 삼고 있어 세계화 추세에 걸맞지 않은 우리끼리의 거래라는
점이 조금 섭섭하지만, 그나마 그곳에 식당을 열지 않았다면 우리 국민의 외식
비는 중국인의 주머니로 또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에 다소 위안을 받곤 했다.
중국에 있는 한국 식당의 숫자는 향후 더욱더 늘어날 전망이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업종이 호황
중국에 있는 음식점은 아직은 저렴한 재료비에 낮은 인건비 등으로 인해 투
자한 금액에 비해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들이).
물론 손님이 많고 적음에 따라 그 수입의 고자가 심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식당 개업은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는데 그것은 앞에서도 밝혔듯
이 종업원들의 문화수준, 각종 정보의 부재, 언어로 인한 답답함 등이 주원인이
며, 또한 식당 개업전의 준비단계도 상당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진출은 이미 경험을 많이 쌓은 개인이나 단체 등의 도움
을 받는 것이 좋으며 본인이 사업전 수차례 방문해 그 나라의 여러 가지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몇 해전 한국의 롯데리아도 북경에 진출해서 한해 동안 고전을 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지금은 성장궤도에 진입한 것 같다는 측근의 얘기를 들었고, 북경, 상해,
청도 등 큰 도시에서는 피자 집이나 레스토랑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한 업종도 크
게 호황을 누리고 있다.
96초반 본인이 청도에 중국음식점을 개설했을 때 청도 시내에는 KFC가 세
군데에서 성업 중이었고 한국의 투다리(꼬치전문점), 대만기업의 피자집 등도 막
진출을 해 적지 않은 호응을 얻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미국에 있는 한국 식당
중국에 비해 미국의 시장은 어려움이 많지 않다. 물론 LA는 대한민국 나성구
라는 호칭이 얘기하듯이 거주 한국인의 숫자가 상당히 많고 한국음식점의 숫자
또한 무수히 많다. 한국에 있는 모든 음식이 빠짐없이 진열돼있다. 맛의 수준도
중국의 한식당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눈에는 아직
도 시도해 볼만한 음식업종이 충분히 남아있으며 저렴한 임대비, 충분한 인력,
낮은 재료비, 미국이라는 국가가 갖고 있는 성숙한 문화수준등은 충분히 매력적
이다. 투자도 용이하고 발전 가능성도 크다. 또한 경기마저 상승세에 있다.
몇 번의 방문에서 투자로 이어지는(본인은 미국에 컨설팅 지사를 97년 상반기
에 설립예정)기간 동안 이내 서운했던 두 가지 감정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차이나타운이나 저패니즈 타운보다 그 규모나 숫자 등에서 훨씬 앞선 코리안
타운이 코리안 타운답게 모양새(외양)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고(한눈에
봐도 아! 한국권이구나 하는 상징적 외양), 또하나는 외국인을 흡수할만한 음식
점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음식은 마늘, 고춧가루, 생각 등의 자극적인 양념의 사용, 혹은 오랜
시간 발효를 하는 젓갈, 된장, 고추장 등의 특수한 맛으로 인해 외국인들이 접
하기가 매우 어려운, 개성이 강한 음식이 주종을 이룬다.
그 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개조해야
하지만 우리 입맛에 맞고 초과학적이며 몸에 좋고 개성 있는 음식이라 해서
우리만의 방식을 고집한 다면 우리 음식의 세계화는 항상 요원한 상태로 머물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의 KFC는 미국의 본토의 것과 맛이 많이 다르고 한국의
KFC또한 타국가의 것과 맛이 다르다. 그것은 KFC 회사에서 그 나라에 진출하
기 전에 그 나라 국민의 길들여진 입맛을 파악해서 자회사의 고유기술에 적절
히 첨가를 시킴으로 해서 그 나라 국민들의 입맛에 맞춘다는 얘기다. 그것은 코
카콜라도 마찬가지이고 똑같은 맥락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사람이 접하는 음식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그 정해진 재
료로 그 재료의 첨가비율, 조리의 방법, 완성된 요리의 색채나 모양 등을 분석,
연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세계다.
"음식에 관한 한 중국이 최고다"라는 말이 있다. 본인이 중국 본토에서 중국음
식을 취급하며 느낀 것은(아마 한국인이 중국 본토 음식점을 낸 것은 최초가
아닌가 싶다. 처음엔 한국 음식점을 생각했으나 왠지 친구 주머니 터는 기분이
들어서...) 중국인이 요리에 천부적인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 그들은 음식에 대
한 호기심과 연구심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 종류를 개발하게 됐고,
때문에 그러한 명성이 따른 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그렇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다. 잘살기 운동이다 해서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밤잠 못 자며 이룩해 놓은 한강의 기적이 이제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누구
를 원망하고 한탄한들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죽어라 만들어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고 외국의 대기업들은 달러를 흔들며
물밀 듯이 밀려와 우리의 주머니를 들쑤시고 있고, 미리 준비해놓은 전략이 있
어 몇 년 후의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는 지금, 우리는 벼랑으로 절벽으로 밀리고
있다.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을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세계다. 좁은 땅에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야기되
는 지독한 경쟁, 준비해놓은 것도 충분한 자본도 없는 우리가 덤벼볼 만한 사업,
그것이 먹는 장사의 외국 진출이다. 뉴욕 한 모퉁이에서 아침 수프를 팔든, 인도
네시아 발리섬 해변에서 수박화채를 팔든, 한번 부딪 볼일이다.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얼마든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도 외국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본인이 그렇게 하고 있으며, 내 주위의 몇몇들도 그렇게 사업을 진행
하고 있다. 작은 모래알이 모여 큰 섬을 이루고 돼지저금통의 동전이 훗날 내
집을 만들 듯이 우리 모두 처연한 의지로 각 개인의 성공을 도모할 때, 그 옛
날 우리 선배들이 흘린 땀의 결심을, 우리의 어버이들이 이룬 한강의 기적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단 외국에서의 투자는 그 자본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 사업 규모의 크고 작
음을 떠나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행착오가
두려운 자는 아예 길을 나서지 말아야 할 일이다. 조그마한 아픔에도 주저
않을 사람이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것이 본인을 위해, 주위를 위해 나은
길이리라.
아마추어라 부르기 어려운 여행가 김성기 씨는 여행책자에서 이런 글을 인용
했다. "겁쟁이들은 출발하지 못했고, 약한 자는 길에서 죽었다. 권하노니 과감히
도전하라."
LA의 곰탕배달
두 번째 LA 방문 때였다. 전날 샌디에이고와 애니멀 파크라는 동물원을 지도
를 보며 찾아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살길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
해 그 길로 접어들었다. 그림 같은 집들과 드넓은 마당, 늘씬하게 서있는 이름
모를 나무에 홀려 자꾸자꾸 길을 따라가다 보니 길을 잃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하는 마음으로 예쁜 풍경이 있는 산기슭에서 담배도
한 대 피우고 노래도 한 곡 뽑으며 오후 한나절을 보내고 저녁놀이 물들기 시작
할 때 다시 길을 찾아 LA로 돌아
온 시각이 새벽 2시 30분 경이다.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우니 몸이 너무 피곤
했는지 잠이 오질않았다. LA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이리저리 보고 있는데 무심
결에 곰탕배달이라는 글자가 언뜻 눈에 띄었다.
차 뒤편에 온수탱크를 만들어 따끈한 곰탕을 배달
곰탕이라는 음식이 본래 따끈한 국물 맛에 먹는 법인데, 이 넓은 LA(LA는
건물과 건물, 그리고 구획과 구획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에서 어떻게 배
달을 한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그 다음날 미주 웨스턴 관광택시의 사장님을 만나 그 내용을 물어보게 됐는데
그분 대답이 이러했다. "그 사장을 내가 잘 아는데, 그 장사 아주 잘 되요. 차 뒤
편에 온수탱크를 만들어 곰탕국물을 가득 채우고 무선으로 가게와 연락을 취하
거나 본인의 휴대폰으로 직접 고객을 찾아가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 참 대
단히 적극적이고 기발한 장사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LA에는 중국음식 TOGO
(식당 안에서 판매하지 않고 손님에게 싸주는) 점이 몇 개 생겼는데 장사가 잘
되고 있다고 귀띔을 한다.
이왕 궁금증이 생긴 터에 그분의 안내로 중국음식 TOGO점을 한 군데 들렀
다. 인천에서 2년 전에 전 가족이 이민을 와 한국교포의 홈패션점에서 일년 여
를 근무하다가 지금의 작은 점포(4평남짓)를 싸게 임대 받아 운영한지 4개월
됐는데 전에 있던 직장 급료의 약3배에 달하는 수입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 분은 이제 오십이 다되어서 안정이 돼가고 있다고 기뻐하셨다.
중국은 배달문화가 없다.
그분들을 만나고 다니며 나는 갑자기 작년말 중국 진출 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부분은 바보 배달이었다.
중국에는 지금도 배달업이 없다. 그래서 나는 청도 시내 한복판에 가게를 내
고 시내에 수많은 점포를 대상으로 중국국수 및 간단한 식사를 배달해주는 점포
를 열어 차후 체인형태를 갖추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중국엘 갔으나 욕심 나는
장소가 나오질 않아 지금의 중국식당부터 열게 됐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사업이다.
나는 외국에서 비록 자신의 경제적 안정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고생하고 있다
고는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국민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희망에
젖어들곤 한다. 오늘도 이 동네 저 동네 분주히 이동하며 영업에 열중하는
LA의 곰탕배달 사장님, 그리고 TOGO점 사장님에게 건강과 성공을 기원한다.
세계를 가슴에 품다.
이제 세계 어느 나라든 우리가 진출하지 못할 시장은 없다. 그러나 우리 국
내 시장이 한없는 불경기고 경쟁의 벽도 엄청나다고 해서 그저 마구잡이로 밀
려나갈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정확한 정보나 기술 없이 나간다면 나가는 그날부
터 '울며 헤어진 부산항'이리라. 지금 현재도 유럽의 각 나라, 동남아의 각 나
라, 심지어 남미나 북유럽에도 우리의 음식점 들이 진출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 한국인 체류자 및 관광객만을 상대로 우리 고유의 음식을 팔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분야의 도전이 가져다주는 불안감과 어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로 해
석되고 적어도 한국사람만은 확실히 잡을 수 있다는 안전위주의 생각에서 그렇
게들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적당량의 수입은 있을 수 있지만,
큰 발전을 기대하지는 못한다.
점점 비슷해지는 사람들의 입맛
본인은 앞으로의 세계 음식은 각국의 특성이 희석되어 언젠가는 거의 대동
소이해진다고 보고 있다. 물론 그 민족이 갖고 있는 입맛 중 몇 가지는 결코 짧
은 시간에 없어질 수 없지만 그 비율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햄버거를, 피자를 , 핫도그를, 야채샐러드를, 스파게티를 먹
었던가,.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도 더더욱 새로운 이름의 외국음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유독 우리 나라만 유별 나느냐 하면 그건 그렇지 않다. 지금
일본에 가면 국적불명의 음식이 이곳저곳에서 팔리고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
지만 그런 현상은 전세계적 추세인 것이다.
기어가는 한국음식
그런데 동양에서의 서양음식은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퍼져가고 있는데, 서양
에서의 동양음식은 그 속도가 상대적으로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또한 중
식과 일식은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확장일로에 있지만 우리 나라 음식은 전혀
한 발자국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단지 일본, 중국 북경일부, 인도
네시아의 자카르타 일부에서만이 불고기와 숯불갈비 집이 영업중이며 몇몇 가
게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면 내가 만나본 외국인들 중 대부분은 한국인
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다. 어떤 분야든 일 대 일로 부딪쳐서 한국인을 이겨낼
수 있는 민족은 거의 없다. 그 점은 내가 만난 외국인 대부분이 인정하고 있으
며, 그러한 인정이 본인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미국의 유태인들은 머리 좋기로 유명하고 그 집념 또한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있지만, 그 유태인들이 형성한 상권에 한국인 상점이 한두 개만 생겨도 그들
대부분이 서서히 철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확인한 사실은 아니지만, 그
얘기를 전달한 사람들의 지위나 성격 등을 미루어 볼 때 전혀 근거 없는 얘기
는 아닌 것 같다. 이렇듯 우수한 우리 민족이 어찌해서 그 큰 시장의 개척을
미루고만 있는가?
지금이라도 시장개척 가능성을 방송매체나 정부기관에서 집중관찰, 연구해서
대 국민 홍보에 나서야 하며, 그들 나라에 우리 국민이 큰 어려움 없이 진출할
수 있도록 각 종 투자채널을 확보하고 국민의 투자나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앞
장서야 할 것이다.
물론 내 집옆에 가게 하나 차리는 것도 고생스러운데, 이국만리 머나먼 외국
땅에서 영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의지
를 갖고 그들의 땅을 두드린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크게 어려움 없이 사업을 진
행할 수 있으리라 본다.
세계 곳곳에 한국식당을 심자
본인이 수차례 외국을 넘나들며 느낀 것은 우리의 음식도 연구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외국에서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국민이, 국가가 외
국 땅에 우리 음식을 가지고 진출을 시도할 때에 이 땅에 수도 없이 진출해온
그들의 음식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나는 오늘도 이러한 우리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본인 스스로 우리의 진출에
조그마한 힘이 되고자 불철주야 고심하고 있다.
젊은이들이여, 우리 음식의 외국 진출은 요원한 꿈이 아니다. 그대들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며 권리이다. 이미 여러 가닥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년,
혹은 노년의 가장들보다는 그대들이 확실히 우위에 있는 것이다.
나는 젊은 그대가 자금도, 방법도 모르지만 끓는 피와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물어온다면 새벽 2시 달콤한 꿈나라에 들었을지라도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대에게 달려가겠다.
그대들이 꿈과 용기로 세계를 가슴에 품는 날, 그날이 이 나라가 우뚝 솟아오
르는 바로 그날이 아니런가!
4. 먹는 장사 참고서
여성시대
불과 몇 해전만 해도 한 달 월급이 1백만 원이면 다소 빡빡하지만 그런 대로
한 가정이 생활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남편 월급 1백만 원으로는 턱없이 생활비가 부족해졌
다. 그러자 우리의 부인들은 위기감을 느꼈고, 적지 않은 부인들이 부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이것은 현대사회에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리라. 전세계를 통틀어
집에서 살림만 하는 주부들이 많은 나라 중에 하나가 우리 나라이다. 물론 미
개국 몇 나라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제 여성들의 사회참여는 필연적이며,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나는 이러
한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보다 더 기능화, 정밀화, 디자인
화돼가는 종래 추세에 잘 들어맞는 대목이다. 비단 거창하게 국제화가 아니더
라도 이사회에서 요구하는 미적 감각이나 정밀을 요하는 부분의 작업, 또는 친
절함이 필수인 업종에서 여성의 참여는 필수적인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남성
에 비해 사회 참여 기회가 적었으므로 일의 관성이나 타성에도 길들여지지 않
았다. 그것은 더 큰 매력으로 부각될 수 있다. 오히려 경험이 적으니 그만큼 비
능률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가 더욱 많은 것
같다. 나는 남성과 여성의 사회참여가 동등해질 2천년 대에는 성공한 여성을 심
심지 않게 만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얼굴이 이뻐야 얻는 게 많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얼굴이 잘생긴 여자(때로는 남자)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
다. 반면에 그 사람이 아무 해도 주지 않았는데도 얼굴이 험악하거나 추하게 생
긴 사람을 보면 괜히 몸이 움츠러든다.
그와 마찬가지로 가게도 외면이 단아하고 예뻐야 좋다. 실내장식도 중요하지
만 외부에서 보고 느껴지는 그 식당의 수준은 장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
리는 미리 정해지지 않은 식당을 가려 할 때, 실내에 사람이 많이 들었나 궁금
하고, 내부가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막연한 느낌으로 이 집보다 저 집이, 저 집
보다 이 집이 하면서 약간의 갈등을 하게 된다. 그러한 현상은 누구나 마찬가
지로 기왕이면 같은 돈 내고 깨끗하고 맛있는 집에서 식사하길 원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한 번 들어가면 그 주인의 기대에 찬 눈도 있고 본인의 체면도 있고
다시 되돌아 나오려면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용기를 내어 되돌아 나온
다 해도 실내에서 출입문까지의 거리는 들어갈 때보다 열 배는 멀게 마련이다.
뒤통수도 근질거리고 괜히 욕이나 하지 않나 겁도 나고 그럴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들어가기 전 약간의 갈등은 당연지사이고... 자 그러면 당신은 무엇으
로 식당의 수준을 가늠하는가?
대부분 외관이 깔끔하고 미적 수준이 있으면 정갈한 음식이 연상되고 왠지 모
르게 전문성이 보이면 그 집은 음식이 아주 맛이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을 가질
것이다. 물론 1백퍼센트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러한 선택
상황이 확실하다면 외관을 꾸미는 데 무심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쁜 얼굴도 치
장을 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예쁘게만, 아름답게만 꾸미는
게 능사는 아니다. 품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것이고, 여건에 따라 전문성
을 환함보다 우위에 놓고 꾸밀 수도 있고, 혹은 그 식당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노하우를 돋보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식당은 모름지기 청
결하고 부지런해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정한 경영지침은 끝까지 밀고 나가라
업주가 경영지침을 정하면 그것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 꼭 이행해야 하는 불
가침의 성역이어야 한다. 어떠한 이유이든 어떤 상황이든 그것들은 꼭 전제되어
야 한다. 그래야 만이 그 식당을 흔들림 없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
다. 그러나 그것을 선정, 유지하기 위해서는 업주가 지켜야 할 점이 몇 가지 있
다.
첫째로 지침이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둘째로 종업원과 똑같이 본인도 지
켜야 하며, 셋째로 종업원이 능동적으로 지키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 한
다.
일례로 타식당과 동일하거나 더 적은 급료에 어떤 성과금이나 혜택도 없이 타
식당보다 더 많은 행동과 마음가짐을 요구한다면 그 지침을 이행하려고 노력하
는 사람은 사장과 그의 가족뿐일 것이다.
끊임없이 연구하라
우여곡절 끝에 간판을 걸고 개업을 했다고 일이 다 끝난 건 아니다. 아니 오
히려 그 시점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않은가. 주인은 종업원보다 더한 노력을 해
야 하며 항상 연구, 분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식당관련정
보, 세금관련책자 및 본인이 진행하는 음식과 동일, 또는 유사한 업종의 새로운
정보입수 및 동향을 파악하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음식점이 쉬는 날은
타지방, 필요에 따라 외국까지라도 가서 본인의 감각과 최신 흐름을 익히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부진을 보이는 일은 그 또한 원인을 밝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일이
다. 그렇게 끊임없는 의욕과 정열만이 당신의 노고의 세월을 한층 줄여줄 것이
다.
동업을 할 경우에 주의할 사항
자신에게 좋은 생각이 있고 그 생각대로 진행하려 하나 본인이 지니고 있는
자금으로 진행이 어렵다거나, 좋은 생각대로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
하다고 할 때에 희망보다는 우려나 걱정이 앞서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속을 모르기 때문이고, 그 속을 주위의 평가나 본인의 분
석으로 대강 짐작할 수는 있다해도 앞으로 전개될 여러 가지 상황에서 그가 어
떠한 반응을 보일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도 꼭 적어두어 분쟁의 소지를 줄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일 때 가장 바람직한 접근은 업장운영의 방식을 회사처럼
진행하는 것이다.
즉 원칙에 근거한 정확한 구분을 설정하고 각자 맡은 부분에 대한 업무 외의
어떠한 것도 간섭하지 아니하며, 모든 하찮은 일도 장부화, 문서화해서 그 증거
및 자료를 갖추어야 각종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비가 철저해도 혼자서 진행하는 것보다
편하지 않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좋은 사이로 만나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보며 본인 또한 그러한 경험이 있다. 동업형태의 점포가 10개라면 그 중 7-8개
는 어려움이 따르는 게 일반적인 흐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영업실적이
저조할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업은 피해
야만 하는 나쁜 것이냐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동업은 둘보다는 여럿이 하는 게 유리
다만 일반 점포의 성격상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은 사
실이다. 굳이 동업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두 명보다는 더 많은 숫자가
유리하며, 그 진행에 있어 하찮은 일이라도 명문화해둘 필요가 있다. 비록 못 보
면 죽고 못사는 절친한 사이라도 말이다.
동업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화합하고 단결해서 이
루어내는 결과야말로 정말 위대한 아름다움이지 않은가.
남발하는 체인, 체인
요즘엔 체인사업이 아닌 것이 드물 정도로 엄청난 양의 체인점이 쏟아지고
있다. 치킨점, 호프점, 패스트푸드, 삼계당, 커피숍 심지어는 매운탕, 해물탕, 국밥
등등 이루헤아릴수 없는 분야에서 체인업이 성행하고 있다.
1천에서 3, 4천만 원 정도의 소규모로 대부분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업종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경험이 없고, 큰돈이 없는 장사초보생들의 관심을 끌고 있
다.
개중에는 특별한 사업수완을 가지고 튼튼하게 내실을 다지고 있는 회사도 없
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체인본부의 광고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한심
한 업체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장사에는 문외한인 사람들이 그들의 감언이설에
마음이 동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고 속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꽤된다.
외국의 프랜차이즈와 달리 우리 나라에는 가맹점에 대한 법적 관리가 소홀하
고, 그 해석 또한 애매모호하기에 손해를 보고도 달리 방도가 없는 형편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 체인형태가 번성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경
험이 없는 개인이 적은 자본을 가지고 개인의 독자적인 점포를 운영한다는 것은
다소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수
가진 게 부족하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면 좀더 여건이 성숙해지기를 기다리거
나 개인 사업의 꿈을 미루어야 할 일이다. 뚜렷한 계산 없이 그들의 말만 믿고
적당히 시작하려는 어리석은 자가 더 이상 나타나선 안될 일이다.
어느 체인본부에 관심이 있다면, 그 체인본부가 얼마나 건실한 기업인지, 또
그들이 진행하는 사업이 과연 얼마만큼의 이익을 발생시키는지 그 업체의 총책
임자의경력은 어떠한지 등을 파악하는 일이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최대한 접근
해서 정확히 분석해야 만이 실패를 피해갈수 있다.
이러한 프랜차이즈 사업은 앞으로도 많은 성장 가능성이 보이며 결국 좋은 사
업의 안내자로 나설 날이 오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성숙되지 않은 단계이며 그
것을 선택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일이다.
참여자가 많으므로 문제발생률이 높다.
나는 체인음식점 사업을 진행하는 이들에 대하여 할 말이 많다. 사업의 성격
상 여러 사람이 함께 동참해야 하는 이 사업은 이윤의 창출 외에 더 큰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업자의 희생정신과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이다.
자기 자본만을 투자해 조그만 점포운영을 한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이 사업
의 성패는 얼마만큼의 참여자가 생기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문제 발생의 소
지를 많이 안고 있다. 요즘에 체인점 모집광고를 보노라면 참으로 기가 막히는
점을 많이 발견하는데 그들이 내거는 음식의 성격이나 계획을 보면 도저히 체인
점 운영이 불가능한 품목도 적지 않게 등장할뿐더러 어느 경우에는 여러 체인
점의 운영계획안이 일률적으로 똑같다는 것이다.
나는 과연 이러한 체인본부가 계속 진행될 수 있을 지에 대한 궁금증을 왕
왕 가져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미 발을 들여놓고 이러 지도 저러지도 못하
는 이들이 수없이 많은걸? 제대로 된 체인점의 요건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탄탄
한 체인망을 구축한 업체들을 보면 간단명료하게 답이 나온다.
체인음식점의 요건은?
무엇보다 중요한 체인 음식점의 요건은 우선 재료이동이 가능하고 이동한 재
료로 조리를 해도 그 맛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 또한, 몇 해 동안 수익보다도 더
많은 광고비를 지출해서(본부입장) 그 점포으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내실 있는 기업의 이미지로 가입점포 종사자들의 소속감을 부여해야 하며 그
소속감을 토대로 그들에게서 그 점포의 서비스 이미지를 구사해야 한다.
시대에 걸맞는 메뉴개발과 시간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그 회사 분위기를 고
수해야 한다.
자신의 사업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감언이설로 점포 늘리기에만 급급한 사업
가는 본인의 사업실패는 물론이거니와 남의 돈 훔치듯 모은 재산도 결코 긴 시
간을 지키지 못한다. 더구나 더한 불행은 본인의 손실은 또 다른 방법으로 복
구 할수 있다 해도 그 사업에 함께 동참했던 여러사람의 좌절, 그리고 그러한
결과로 야기되는 사회에 대한 악영향은 그 무엇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점
이다. 물론 체인 사업이라는 형태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시점을 볼 때, 이러한
우려할 만한 상황들은 성숙한 시장형성을 위한 진통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그 사업의 성격상 적은 자봉, 그리고 미경험자들이 그 희생양이 되는
확률이 높기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글들이 건시로하고 실력있는 몇몇 사업가들에게 행여 누가 될
까 자못 조심스럽다. 사심만 그득하고 책임감도 전혀 없는 그러한 이들이 다시
는 우리의 이웃에게 아픔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컨설턴트 회사
그동안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던 컨설팅 전문회사가 하나 둘 생기더니 이제는
심심찮게 등장하게 됐다. 물론 그 사업의 특수성을 말미암아 아직도 그리 흔한
성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해전 불모지였던 걸 기억하면 많은 업체가 생겨났다.
지난 가을, 풀리지 않는 궁금함이 있어 전화로 서울의 컨설턴트 회사를 이곳저
곳 찾아보았는데,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어 몇가지 적어보려 한다.
물론 내가 그 분야에 관심이 많고, 또 오래 전부터 꿈꿔 왔던 분야이기에 그
아쉬움이 더한지도 모르겠다.
컨설턴트 회사에 대한 아쉬움
지난 가을, 한시간이 넘는 전화통화를 통해 나에게 남은 것은 궁금증의 해소
가 아닌 허탈감뿐이었다.
물론 컨설턴트란것이 상의하고 참고한다는 말이기에 어떤 정확한 결론과 해석
을 내리기엔 다소무리가 따르겠지마, 그래도 그러한 간판을 내 걸고 사업을 진
행한다면 고객이 질의할 내용들을 미리 예견하고 자료를 준비해놓아서 적어도
어떠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갖추어야 할 일이다. 물
론 우리 사회의 여건상 자료구성이나 각종 사례분석 및 미래예측이 쉬운 일만은
아니겠으나, 보다 폭넓은 영업자세로 고객의 만족도에 기여할 일이다.
우리의 컨설턴트 회사들은 기존 체인의 연구, 분석, 체인회사들 간의 연계성
및 이미 영업으로 구체화된 업종들의 분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업형태로의 연
구와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고객의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고객의 실정에 맞는
영업형태의 연구와 시도, 그 고객의 주문업종에 대한 창의력 및 감성을 개발해
주는 각종 프로그램 및 연구데이터를 가지고 단순일과성이 아닌 꾸준한 사업지
원 및 연구지원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의 평생자문기구가 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업자로서의 자질향상과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사회
적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컨설턴트 회사란 봉사와 희
생하는 자세를 잊지 않고, 그 사업이 갖고 있는 특수성(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을 감안해 신용있는 사업내용과 꾸준한 자기 희생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이 끝나갈 무렵이면 당신은 솟아나는 희망보다 오히려 그 많은 요건들
에 질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음식업이 과연 두렵고 어려운 장사냐 하면 꼭
그렇다고 할수는 없다.
먹는 장사에 대한 아이템은 끝이 없다.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그럴수도 있겠지만, 몇몇 경험이 풍부하고 감
성이 잘 발달된 사람들에겐 그리 어려운 성역만은 아니다. 그러기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인정하는 감각을 지닌 누군가가 음식업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또 그 사업을 꼭 실천해보겠다
는 굳건한 의지를 갖춘 서너 명의 추종자가 있고, 그 사업이 강조하는 부분을
잘 표현 할 수 있는 시설업자가 있다고 한다면 당신의 성공은 90퍼센트 이상이
다.
예를 들어 나에게 꼭 성공하기 위해 처음부터 참여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할 3, 4명의 인원이 생긴다면, 이미 많은 돈이 보장된거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음식업에 관한한, 무한한 아이템과 인테리어 아이템을 나는
많이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음식업에 승부를 걸겠다는 몇몇의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그
날 즉시로 본인의 투자로 사업을 시작할 용의가 있다. 결과가 보이는 승부에 망
설임이 있을 이유가 없다. 추상적인 이론 제시나 분석보다는 손으로 만지며 진
행하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입보다는 머리로 먹는 세상
내가 한창 어릴 적엔 쌀밥먹던 집이 그리 흔치 않다. 너도나도 어렵던 시기였
고, 또 그 이전에는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보리밥도 부족해 보리밥 찌던 솥
에 큰 고구마를 이곳저곳 쑤셔넣고 밥을 지었던 그 시절엔 맛이나 본인의 취향
보다는 그저 양많고 싸면 제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살림이 나아지면서 자
기 기호와 입맛에 맛는 음식을 찾게 되었고, 그러한 욕구에 맞추어 다양한 음식
이 나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더 나은 분위기, 더 편한 장소등 새로운 형태를 워
하게 되느느데 그것은 바로 맛이 있다 해도 몸에 해로운 음식은 피하게 되고
몸에 좋은 음식, 혹은 자기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함유한 음식을 섭취하고자 하
는 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한 양상은 무공해식품의 급성장과 몸에 해로
운 조미료를 배제한 상태에서 맛을 유도하는 식품에 대한 높은 선호도로 가시화
된다.
그렇다. 이전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음식을 갈망했다면, 요즘엔 입맛이 원
하는 음식으로, 그리고 머리로 생각하고 음식을 선택하는 수준에 까지 이른 것
이다. 앞으로의 음식은 입맛보다는 머리로 선택할 것이다.
미래의 먹는 장사
이책을 보는 당신은 어던 사람입니까? 퇴직을 앞둔 중년신사인가요, 아니면
직장을 다니는 샐러리맨? 그것도 아니면 혹 부업을 꿈꾸는 알뜰주부이신가요?
혹시 지금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아닐까요? 식당업에 대한 정보축적을 위
해 이 책을 보고 계신다구요? 그렇다면 정말 잘 된 일이네요. 난 사실 그런 분
들에게 할 얘기가 많았거든요. 이렇게 우리가 책으로나마 만나게 됐으니 우리
이제 먹는 장사의 흐름과 변화에 대해, 그리고 이상적인 미래의 식당에 대한 컴
토를 해봅시다.
미래를 지향하고 현실에서 주목받는 식당의 요건 미래의 먹는 장사의 기본
요건을 우선 아래와 같이 구분 할 수 있다.
1. 새로운 이름의 차림표
기존의 음식명칭(설렁탕, 갈비탕, 낼면, 비빔밥, 혹은 돈가스, 비프가스, 오므
라이스 등)을 탈피한다. 기존의 이름을 쓰지 않으려면 기존 음식의 구성재료 및
비율을 없애거나, 늘이거나, 새로운 것을 첨가해야 한다. 새로운 명칭은 그 음
식의 특성을 잘 나타내야 하고 종전의 것과 확실히 다른 점을 명칭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재료구성이 전과 다른 품목
예를 들어 분식의 경우 라면에 수제비를 띄워라제비라는 이름을 만든다든가
양식의 경우 닭고기를 갈아 둥글게 튀겨 소스를 얹고 치킨 볼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3.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인테리어
기존 인테리어에 쓰이던, 빨간 벽돌, 염색한 원목, 통유리, 아스타일이나 디럭
스타일 같은 바닥재 등 획일화된 자재를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어떤 정해진 모
양으로 쓰던 자재를 변형해 쓴다든지, 인테리어에 전혀 쓰이지 않던 자재를 도
입(주위를 찾아보면 꽤 많다)한다.
4. 기존 음식값을 넘지 않는 가격
사실 현재의 음식값이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다소 싼값으로 형성
된다 해도 손님이 많이 들면 수입 또한 증대되므로 영업이 잘될 수 있다는 자신
만 있으면 음식값은 타식당에 비싸게 책정할 이유가 없다.
한 통에 2백원 밖에 하지 않는 껌을 선전하려고 몇억을 투자한다. 적은 금액
이라도 판매가 많이 이루어지면 그 금액 또한 굉장한 금액이 된다. 우리는 그
러한 현상을 대형 할인 점에서도 볼 수 있다.
가격을 형성하는 데는 그 점포의 입지나 음식재료의 구성에 따른 영향이 크
다. 일반적으로 음식값은 전체 점포 안의 좌석 수와 영업시간을 산출, 예상되는
고객출입수를 계산해서 정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식당이 타식당보다 적게 책정할
수 있다. 다만 손님이 많은 든다는 계산 하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상 4가지가 어느 정도 충족됐다면 그 식당을 미래지향적인 식당임에 틀림
없다.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은 위의 조건들이 충족됐다 해도 종업원의 서비스 교
육이나 청결도에서 우월하지 못하다
면 그리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나 사업방식
이라도 고객을 맞이하는 종업원의 불친절이나 불결함을 이겨낼 수는 없다. 또
한 주방 담당자가 바뀐다 해도 초기의 음식 제조 공정을 세세하게 기록, 보관해
서 후임자가 그래도 그 맛을 유지할 수 잇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말은 기존 식당들이 분류하던 방식, 즉 한식, 일식,
양식, 분식 등의 구분을 탈피해서 한식의 경우, 어떤 특정 음식만을 새로운 방
식으로 구성해서 새로운 상호로 새롭게 진행해본다. 양식은 기존의 메뉴에서 식
상한 사람들을 위해 서양가정식 요리나, 새로운 이름의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본
다든지 하는 끊임없는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어떠한 영
감이 떠오르거나 아이템이 떠오른다면, 과감하게 실천해볼 일이다. 모든 승리자
나 개척자가 그랬듯이 그들은 남들이 걷던 길, 남들이 알고 있는 길은 외면한다.
다소 힘들고 두렵지만 꿋꿋하게 자기의 의지를 실현시킬 때 성공은 그 자리에
함께 하게 마련이다.
먹는 장사로 성공할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성공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닐게다. 그들은 성공을 미리 약속 받은 자
들이 아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우린 일종의 공통점들을 만나게
되는데, 성공한 사람은 신용이 있는 사람이다. 신용이 있는 사람은 성공을 한
다. 그 신용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그렇게 별나거나 힘든 것도
아니다. 신용은 그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인데, 신뢰하고 믿는 다는 건 짧
은 시간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 약속에 철저하고 금전약속에 분명하며, 입에서 나온 말은 꼭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신용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행하는
연 속의 행위 속에서 탄생한다. 신용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성공하는 사람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예의가 바르다. 예의가 바른 사람은 성공을 한다. 더군다나
요즈음같이 사람다움이 그리운 세상에는 더더욱 그렇다 예의는 기본적인 인간
의 질서다. 예의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며, 겸손함에서 발달한다. 그것이
온몸에 배어 언제 만나더라도 어떠한 상황이라도 먼저 상대방을 생각하고 어려
운 입장을 본인의 몫으로 알며, 항상 정중하고 반듯하게 행동한다. 그것이 예의
바른 사람이며, 그 사람이 성공할 사람이다.
주먹구구
장사를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도 대충 생각하고 대강 계산
해서 장사를 시작하려 한다면 큰 화를 자초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언급하는 부분이 먹는 장사이니
그 부분의 분석, 예측방법에 접근해보도록 하자. 우선 자기 자본금의 비례, 먹
는 장사중 어느 한 부분(즉 한식, 일식, 분식, 중식, 특별식)을 선택한 다음, 그
분야에 이미 종사하거나 준비중인 사람, 혹은 식당을 찾아가 그 운영자의 계획
및 영업상태를 파악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만약 시도하고자 하는 부분이
남이 전혀 하지 않고 있는 분야라면 전문 컨설팅이나 주위의 친분을 통해 식당
업에 오랜 경험과 성공사례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서 집중, 토론하는 자세
가 필요하다.
요즈음 각종, 방송, 신문 등을 통해 여러 외식업에 진출한 기업이나 개인들의
정보를 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으므로 자신이 진행코자 하는 품목과 유사성
을 띄고 있는 업체에 상담 논의하는 것이 좋다. 물론 오늘날의 외식업은 어느
날 갑자기 "먹는 장사나 한 번 해보자" 라는 식으로 시작해서 될 일이 아니므로
마음을 먹은 날부터 적지 않은 시일동안 매스컴을 이용한 각종 정보 및 관련
서적, 혹은 유사업체의 세미나, 업체 방문, 타도시의 성공적인 점포탐방 등 끊
임없는 관심과 연구가 진행된 후에 체계적인 개업 준비에 임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먹는 장사는 주먹구구식의 급조된 계산과 감각으
로는 성공을 꿈꿀 수 없다. 모든 업종도 마찬가지지만, 먹는 장사에 항상 연구,
분석과 비교, 검토하는 성실한 자세가 요구된다.
* 창업 예비단계
1. 매스컴(신문, TV방송)을 예의 주시하라.
2. 주변에 식당 업으로 연승하고 있는 사람을 방문하라.
3.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음식업 현황을 파악하라.
4. 기존 식당의 결함과 장점을 파악하라.
5. 내가 개업을 한다면 어떤 점에서 고객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지 연상
하라.
6. 필요한 자료를 위해 관련업체 및 유사기관의 자료를 구해보라.
부담 없는 사교장
95년 후반 중국 진출을 모색할 때 사업을 어느 곳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
지 많이 망설였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는 많았으나 언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몇 달을 궁리하던 중에 결국 먹는 장사로 결
정이 나게 되었는데 그러한 결혼을 내리게 된데는 우선 시작하는 자금이 많
지 않고 안정성을 보장하는 먹는 장사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 것이라
는 생각도 생각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동안 국내에서의 음식업을 진행하면서
느끼게 된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식당은 부담 없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유일한 장
소라는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젊은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음식업을 하다보니
지금도 꽤 많은 수의 젊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 대학시절 우리 식당을 드나들
던 친구들은 지금은 경찰계통, 관공서, 교사 등으로 사회에 많이 진출해 있고,
간혹 연예인, 종교가 등 특수분야로 나선 이들도 있다.
이러한 친구들이 각기 자기분야에서 갖게 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그 옛날 그
시절의 반가운 몸짓으로 간혹 일상에 도움을 주고 혹은 연인 사이였던 단골끼리
그네들을 쏙 빼 닮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날 때는 마치 내 식구처럼 반갑고 즐겁
다. 의도적으로 그들과 가까이 하려고 노력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후에 이어지는
각종 사업에서도 이들과의 인연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중국의 첫발을 식품회사와 식당으로 결정했고, 나는 그 식당을 그
지역 사람들과의 사교 장소로 백분 활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그때의 결정이 옳
았다는 것을 요즘에 와서야 확인하게 된다. 이렇듯 식당이라는 장소는 아무런
부담 없이 서로를 알 수 있고, 그 알게 되며 또 다른 사회적 성장과 사업적 기
반이 도는 참으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실속 있는 사업이라는 이야기이다.
큰애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차로 5분을 가면 둔산 신시가지를 만난다. 그곳에 얼마
전에 "까르푸'라는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섰다. 아내를 따라 몇 번 가보았는데 적
지 않은 주민들로 항상 붐빈다.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카운터를 관장하는 아가씨들 외에는 별반 종업원이 눈에 띄지 않았으며 무전
기를 든 몇몇 남자직원들이 출입구와 계산대에서 보일 뿐이었다. 아내의 말이
기존 백화점의 상품보다 값이 매우 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수레에 담긴 물
건 부피가 상당했다.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대형매장이 갈수록
크기를 더해갈 것이며, 그 숫자도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논
평이 생각났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옳은 지적이다. 이제는 애국심이나 애향심을 부추겨서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건 무리인 것 같다. 우선 품질이 좋고 가격이 싸면 그것으
로 사고자 하는 소비자의 요구는 충족되는 것이다.
그 같은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업과 국가만이 성장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지
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눈만 뜨면 새로운 형태, 새로운 종류의 상품과 장소가 등장한다. 더군다나
그러한 것들은 세계 유명회사, 다국적 기업 등의 등에 업혀 들어오다 보니 자
본력이나 조직력에서 뒤떨어지는 무리의 도태는 불 보듯 뻔하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거대한 자본에 대항할무기는 자신만의 노하우뿐
키도 작고 힘도 약한 조그만 애가 덤벼들었다가는 십중팔구 크게 혼쭐이 날
판이다. 큰애가 가지고 노는 놀이기구가 작은아이들에게는 흉기가 될 수도 있
다. 우리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업종에 큰 자본이 투입되고 거대
한 조직력을 앞세운 기업들에 의해 차후 큰 변동을 예고 할 수 있다고 쉽게 가
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가정 하에 그들과 대적해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노하우나 비법이 없다면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이다.
앞으로 소자본가들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큰 기업이 운영하든 개인이 운영
하든 별반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개인이 운영함으로써 더욱더 효과적일 수
있는 그런 업종을 선택하고 지향해야 할 일이다.
그러한 면에서 음식점은 (자본이 적은 사람들에겐)상당히 유혹적이며 안전한
사업임에 틀림없다. 물론 음식점에도 기업화, 대형화의 바람이 불고 있으나 음식
이 갖고 있는 특성(지역, 식당 고유의 개성, 고유의 테크닉)상 크게 영향을 받지
는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기업이 식당을 운영한다해서 그 식당에서 제조, 판매
해야하는 특성을 배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오히려 종류에 따라 어느 부분은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훨씬 유리하다
다만 기업이 양적으로 확대해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있지만,
그것에 따른 자본과 수입의 비례를 본다면, 많은 금액은 당연하나 꼭 높은 수익
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규형의 <일본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
나는 이규형을 참 좋아한다. 그는 얼굴도 예쁘장하지만 마음도 예쁜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그가 매우 감성적이고 낭만적이며 진취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고, 그에 대
해 아는 것이라곤<철수와 미미의 청춘 스케치>를 만든 영화감독이고 나보다 한
살 많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전에 간혼 그가 TV에 나와 한두 마디 던지는 것
보면서 '아, 톡톡 튀는 남자, 생각하는 남자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얼
마전 구해 본 <일본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라는 책을 일고 나서는 역시 내가
본 대로구나 하는 확인을 하게되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 기분이 참 좋다. 그래서 난 그 책을 세 번이나 읽었다.(물론
부분적으로는 전에 신문의 연재란에서 본적이 있지만).
책에 숨겨진 참신한 아이템을 잡아라
그리고 그의 사물에 대한 연구력과 상황을 읽는 센스, 그리고 참신한 창의력
에 감탄을 한다. 물론 그가 제시한 모든 아이템이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모두
잘 소화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적지 않은 아이템이 실현 가
능성이 있고, 또 발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 중에는 나도 뛰어들어보고 싶
었던 사업도 있었으나, 사업 진행상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아 유보중이
다.
그의 책은 앞날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필독서이다. 꼭 사업을 진행할 사람이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현대 사회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서라도 꼭 볼만한 책이다. 그 책에 나온 그대로의 답습이 아니더라도 그 책을
읽으며 또 오르는 아이디어나 영감을 살린다면 감히 예측하기 어려운 큰 성
공을 상상해봄직도 하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 센스, 연구력, 창의심보다 더
욱더 크게 보이는 것은 그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기상이다. 그것은 정말 귀하
고 멋진 것이 분명하다.
책서두에 이젠 유명인사가 된 전유성 씨가 쓴 글처럼 "진짜 지켜볼 것은 일
본이 아니라 인간 이규형이다"라는 말에 적극 동감하는 바이다.
여가선용
사람마다 그 취미가 제각각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즐기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그것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나이별로 몇 가지씩 구분되는데 아주 어릴 쩍 코
흘리개 일 때는 거의 하루종일이 여가시간이라서 놀이의 종류 또한 무궁무진하
게 많게 마련인데 머슴애들의 경우 말타기, 비석 치기, 땅따먹기, 자치기, 구슬치
기, 딱지치기, 제기차기 등이 있고, 여자 애들의 경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소꿉
장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놀이가 있었다. 워낙 없던 시절이라
서 놀이의 대부분이 몸이나 흙, 기껏해야 막대기나 돌을 이용한 놀이가 대부분
이었고 정해진 놀이가 아니더라도 서너 명만 모이면 대강 정한 놀이방법으로 충
분히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지나 중고등학생이되면 그때부터 각자의 취미가 달라지는 데 우리
학창시절엔 우표수집, 음악감상, 영화감상, 운동, 독서 등으로 구분된다. 별반 큰
취미가 없더라도 그 당시 학교에서 나눠주는 적성검사지나 신상명세 등의 용지
에는 그 취미란이 꼭 있기 때문에 아무거나 대충 하나 골라서 자기 취미로 삼
아버리는 애들도 적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게 되면 취미는 대체로 직업이나 여가 정동 따
라 결정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업에 쓰여지는 시간외에는 취미활동보다는
휴식의 개념으로 거의 남은 시간을 다 보내게 되는 것이다.
포커에 푹 빠져서
그것은 그만큼 우리의 생업이 요구하는 시간이 절대적이었다는 말과도 같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취미활동에 대한 기억의 거의
없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시간을 만들려면 만들지 못할 분명한 이유가 있던 것
도 아닌 듯한데 무얼 하고 지내왔는지 뚜렷이 내세울 게 없다는 얘기다.
나는 서른하고도 몇 살을 더 먹은 후에야 지나온 나의 여가시간을 아까운 줄
모르고 흥청망청 다써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즈음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포커를 만지다
가 거의 새벽이 다되어 집에 들어섰다.
만성이 된 아내는 문을 따주고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하루 이틀도 아니
고 이삼 일이 멀다하고 하루는 포커로, 또 하루는 술로, 외박은 아니라도 거의
반외박을 업으로 삼은 남편에게 이젠 지쳤는지 안색에 변화가 없다. 처음에는
잔소리가 지겹구 짜증나더니 이젠 또 아무말을 안하니까 서운하다. 자는 애가
조심스러워 까치발로 화장실로 향했다. 불을 켜고 손을 씻으려 하니 여느 때처
럼 손톱 사이에 끼인 새까만 때가 눈에 찬다.
거울 속에 비친 새까맣게 찌든 얼굴
얼굴을 들어 거울을 보니 그 속엔 잠을 못 자 눈이 쏙 들어가고 계속된 줄담
배로 얼굴이 새까맣게 찌들어 마치 탄광이 무너져 한 열흘 후에 구조된 사람 같
았다.
그 1960년대 말 16일간인가를 무너진 탄광속에 갇혀 있다 구출되었던 광부
양창선씨가 구출될 때 당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수를 마치고 바닥에 구르는
수건을 집어들고 근질거리던 코를 힘차게 풀었다. 아, 이건 또 웬조화냐! 수건에
묻어 있는 내 콧물의 색이 마치 물감처럼 진노란색이 아닌가, 세상에 얼마나 담
배를 빨아댔으면 콧물이 이지경인가. 그제서야 곰곰이 생각을 되돌려보니 하루
반갑이 정량이던 내가 그날 피운 담배의 양이 무려 세갑 정도는 되는 것 같았
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갑자기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연기로 사라진 담배가 다시 나오진 않을텐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
니 가뜩이나 마른 내가 요즈음 부쩍 더 살이 빠진 것도 같았다.
그날 저녁 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오늘 아무리 결심에 말뚝을 박아놔도 내
일이면 이 시간대에 또 하나의 말뚝을 박을게 뻔하다는 것은 굳이 내 아내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틀림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점점 안 좋아지는 건강과 무질
서로 인한 퇴보 적인 생활을 끝도 없이 계속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참 답답
했다. 의지가 약한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포커를 물리친 여행의 재미
그런 밤을 한참 더 맞은 뒤에야 나는 비로소 그 끝을 맞이하게 되는 게 그것
은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그 기회란 이제는 나의 유일한 취미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 해외여행이었다. 물론 그 전부터 간간이 외국여행을 다니긴 했
지만 그때만 해도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쉰다는 의미 외에는 별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90년, 우연히 혼자 떠난 태국여행을 계기로 나는 여행에 홀딱
빠지게 되었다.
비행기가 김포를 막뜨는 순간에는 왠지 모르는 두려움에 누구든 같이 갈 걸
하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낯선 외국의 후끈한 밤의 열기
와 만나는 순간부터 말끔히 사라진다.
책을 보며 물어 물어 간 코산로드의 그 자유로움을 시작으로 코피피의 옥색
바다와 웃통을 벗어 던지고 싶은 산 속과 바닷가로 난 길을 썩은 오토바이로
신나게 달렸던 푸케트섬, 이것저것 입에 모두 착 달라붙는 값싼 과일들, 떠듬떠
듬 단어 읽느라 정신없는 나에게 오히려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하라며 활짝 웃어
주던 태국소년등은 혼자 나선 여행길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의 태국 여행은 그것을 시작으로 내 주변 사람들과 몇 번을 더 가게 되
었고 지금도 그 코스의 여행을 한 번 더 조르는 분들이 몇분있다.
아무튼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여지것 밤잠 미루며 포커를 해본 적이 없고 아
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술도 삼가고 있다.
그 이유는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쓰는 돈이면 여행을 한 번 더 갈것이라는 지
극히 당연한 논리였는데 그것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한동안을 머리도 개운하고
몸도 많이 좋아지는 걸 느끼게 된 후에는 더욱더 철저히 지키게 됐다.
여행을 시작한 후로 훨씬 성실하게 생활하다.
그 후로 일년에 두 차례씩은 매년 해외 나들이를 하게 됐으며 시간이 날 때
는 여행 정보책자 등을 들쳐보고 각종 신문 등에 나오는 여행정보를 스크랩하
기도 하며 다음 행선지에 대한 준비를 하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몇 년 전 독
일에서 만난 마산에 사신다는 노부부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부지런히 돌아다
녀야지 일을 핑계로 하루 이틀 미루다보면 나이 먹고 많은 것을 얻는다해도 모
두 소용없는 일이라며 젊지만은 않은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이 여행을, 특히 해외여행을(국내는 나이 먹고도 가능하니까)죽는 날까
지 유일한 취미로 가질 예정이다. 항간에는 이 해외여행을 두고 외화낭비니
사치니 하는 말로 치부하기고 하지만 그 여행의 방법에 따라서는 지극히 건전
하고 건설적인 면이 많으며 얻고 느끼는 바도 적지 않다.
여행을 시작한 후로 전보다 훨씬 성실한 생활태도를 갖게 된 까닭인지 가끔 예
정에도 없이 불쑥 나서는 여행길에 아내는 단 한 번도 불만스러운 모습을 보이
지 않았다.
건전한 여가는 성공으로 향하는 지름길
나는 가끔 주위에서 여가선용의 정도를 넘어서 급기야는 생업의 존폐위기를
맞이하는 이들을 본다. 물론 우리사회의 성인놀이가 선택의 폭도 무척 좁거니와
그 방법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은 까닭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구조상 올바른 여가 선용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
지 않음을 생각하게 됐고 그런 의미에서 나의 경우를 옮겨보았다.
건전한 스포츠, 예술적 창조 활동등 건전한 취미생활은 일의 활력과 절도 있
는 일상생활을 만들고, 나아가 사업의 성공에도 크게 일조할 것이 분명하다.
여덟 장의 약속어음을 드립니다
성공적인 먹는 장사
여러분들은 위의 제목을 보고 웬 어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의아해했을
것이다. 본시 약속어음이란 얼마 동안의 기일을 기입하고 그 기일이 도래하
면 어음용지에 기입된 금액의 지불을 약속하는 일종의 증서이다. 자가 그 동안
남몰래 간직해온 혼자만의 아이템을 공개하는데 있어 '여덟 장의 약속어음'이라
는 이 제목은 가히 필수적이었다. 즉 이 아이템들은 일정 기간의 노력이 투입된
후에는 정말로 돈이 되어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아이템들을 오랫동안 남몰래 가슴에 담아왔다. 언젠가는 하나씩 하나
씩 가슴에서 꺼내어 멋지게 한 번 실현해보리라는 야심을 품고 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좋은 아이템들을 모두 과연 세상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기에는 이미 내가 적지 않은 나이를 먹게 되었
고 앞으로 몇 개나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슴에 묻어두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미 다른 회사에게 진행권을 양도한 한 두개의 아이템을 제외한
여러 개의 아이템 중에서 가장 성공률이 높다고 생각되는 여덟 개의 아이템을
선정,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비록 몇몇의 생각에는 그리 탐탁스럽지 않은 아이템도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
도 본인에게는 마치 애비가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아직 보내보지는 못했지만)
으로 이 글을 옮긴다. 부디 이 여덟 장의 약속어음 중에서 당신의 어음을 찾게
되기를...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몇 번씩은 용기가 필요한 때를 만나게 된다. 그러
나 그때마다 적적한 용기를 구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만큼 용기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일 게다.
지나고 나면 후회스럽고 돌이켜보면 그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도 아닐진대 왜
그냥 지나쳤나 하는 아쉬움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리라.
나는 몇 해 전부터 이러한 용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럴듯한 핑계로, 혹은 정
말 부득이한 경우도 없지는 않았으나, 결국 그렇게 또 시간을 보내고 나니 늘
그렇듯이 괜히 찌뿌둥하고 개운치 않은 기분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만은,
그러니까 다음달엔 하다가 이제서야 오늘에 이르게 됐다.
보충되어야 할 경험이나 지식이 아직도 많고 많음이 분명한데, 지금이 아니
면 이 글이 지하실 내 책상서랍 속에서 핑계와 게으름의 소산물이 될 것 같은
생각에 두눈 질끈 감고 마무리 작업을 진행했다.
그 동안 생각나는 대로 써 놓은 글과 메모지 들을 모아 이렇게 책으로 만들기
를 마음속으로 결심한 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선"으랏차차"하는 기합소리가 터
져나왔다.
본래 이 기합소리는 무거워 보이는 물체나 힘에 겨운 상대와의 승부, 혹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대상과 대적할 때 흔히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기를 모으고 온몸의 힘을 모으는 자기암시의 소리이자 어려운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쐐기를 박는 소리가 분명하다.
그것은 이 책을 쓰게 된 목적과도 잘 부합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의 용기와 만나고 싶었다. 아울러 음식업의 놀라운 매력을 소
개하고 싶었고 희망찬 미래를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함께 아랫배에 힘을 주고 소리쳐보자) 으랏차차 어디
한 번 부딪쳐보자
으랏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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