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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기대했지만 결국 전세를 바꾸지 못한 무기 - 89식 중척탄통

by 리치캣 2025.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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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richcat.tistory.com/20005 [리치캣의 현재 그리고 미래: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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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화력의 우세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애매하긴 하지만...

나름 유용하게 사용했을듯...

한국군 보병에겐.... 6연발 유탄발사기가 보급되면 좋을 듯...

일본군이 기대했지만 결국 전세를 바꾸지 못한 무기 - 89식 중척탄통

 

https://www.youtube.com/watch?v=eFNI-tlxwxg

 

📌 89식 중척탄통이 '무릎 박격포'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89식 중척탄통의 주판 부분이 곡선형으로 되어 있어 병사의 허벅지나 무릎에 대고 발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 에 '무릎 박격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 89식 중척탄통의 주요 특징과 한계점은 무엇인가요?

  • 장점: 분대 수준에서 빠른 연사 속도로 즉각적인 화력 지원이 가능했고, 휴대성과 기동성이 뛰어나며, 수류탄과 유탄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운용 유연성이 있었습니다

  • 한계점: 구경이 50mm로 작아 폭발 위력이 떨어졌고, 일본군의 보급 부족과 열악한 통신 및 사격 통제 체계로 인해 전세를 뒤집는 역할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콘텐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운용했던 89식 중척탄통이라는 독특한 보병 화기 개발 배경과 실전 운용 사례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러일 전쟁부터 1차 세계대전을 거쳐 수류탄이 발전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일본군이 보병 화력강화를 위해 어떤 고민을 했고, 그 결과물이 어떻게 전술적 한계를 가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미군에게 '무릎 박격포'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한때 위협적이었던 이 무기가 결국 전세를 바꾸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며, 무기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보급, 통신, 사격 통제등 전쟁의 복합적인 요소가 승패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무기 역사를 넘어, 제한된 자원과 기술 속에서 한 국가가 어떻게 전술적 돌파구를 찾으려 했는지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1. 89식 중척탄통의 개요 및 개발 배경

  1. 89식 중척탄통의 정체

    1. 1942년 5월 중국 절강성 강소성 지역에서 일본군병사가 운용하는 모습이 포착된 무기이다.

    2. 작은 박격포나 대형 소총 부속품처럼 보이는 이 무기는 일본군이 20년 이상 운용한 89식 중척탄통이다.

    3. '중 척탄통'은 '소형보다 크고 강력한(重)' '던지는(擲)' ' 탄약/포탄(彈)'을 담는 '원통형 용기/관(筒)'을 의미하며, 보병용 유탄발사기를 뜻한다.

 

  1. 개발 시작

    1. 89식 중척탄통은 일본군이 1920년대 초반 보병 화력강화를 목표로 개발을 시작한 무기이다.

 

2. 일본군 수류탄 발전 과정 및 10년식 척탄통의 등장

  1. 러일 전쟁과 수류탄의 재등장

    1. 1904년 러일 전쟁은 여순 공방전과 같은 대규모 참호전, 요새전이 많아 근거리에서 적군이나 참호를 제압할 무기가 필요했다.

    2. 당시 일본군과 러시아군은 빈 통조림 캔이나 대나무통에 화약과 못, 파편 등을 채우고 심지를 달아 불을 붙여 던지는 방식으로 수류탄을 사용했다.

    3. 러일 전쟁은 근대적 수류탄이 전장에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4. 영국은 러일 전쟁이전 수류탄을 위험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거의 퇴출시켰으나, 러일 전쟁을 참관한 후 일본 수류탄샘플을 바탕으로 1908년 넘버원 수류탄을 개발하여 1차 대전 초반에 사용했다.

 

  1. 1차 세계대전과 수류탄의 발전

    1. 참호전 양상이 격화된 1차 세계대전은 수류탄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대량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영국군은 1915년부터 밀즈밤(Mills Bomb) 등을 개발하여 전장에서 사용했으며, 이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대량 생산 표준 수류탄으로 이후 대부분 국가의 수류탄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다.

    3.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의 수류탄사용을 유심히 관찰하며, 수류탄이 보병 지원 전투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1. 10년식 척탄통의 개발 및 운용

    1. 개발 시도와 방향 전환

      1. 일본 육군 기술 본부는 러일 전쟁이후부터 사용된 38식 보병총에서 10년식 수류탄을 발사할 수 있는 장치 개발을 시도했으나, 기술적 문제로 실패하고 방향을 전환했다.

      2. 그 결과로 개발된 것이 바로 척탄통이었다.

    2. 10년식 척탄통의 특징

      1. 1921년에 개발된 10년식 척탄통은 89식 척탄통의 전신이다.

      2. 보병이 단독으로 들고 다니며 사용하기 적합했으며, 최대 사거리는 175m였다.

    3. 운용 및 평가

      1. 10년식 척탄통은 1925년에 제식 채용되어 1937년까지 약 7,000개가 생산되었다.

      2. 이후 1931년부터 생산된 91식 수류탄을 발사하는 데도 사용되었으나, 사거리 조절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명중 오차가 커서 실전에서는 쓸모없다는 악평을 받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식 척탄통은 태평양 전쟁말까지 현역에서 사용되었으며, 89식 중척탄통이 나온 이후에도 신호탄이나 조명탄 발사용으로 쓰였다.

 

3. 89식 중척탄통의 개발, 제원 및 운용

  1. 89식 중척탄통의 개발 및 제식 채용

    1. 일본군은 10년식 척탄통의 결함을 인지하고 1922년부터 후속 척탄통개발을 시작했다.

    2. 1929년에 수정 시제품을 완성한 후 1932년에 제식 채용한 것이 89식 중척탄통이다.

 

  1. 89식 중척탄통의 제원

    1. 길이는 전신인 10년식 척탄통보다 약 9cm늘어난 61cm이다.

    2. 무게는 2.6kg에서 4.7kg으로 증가했다.

    3. 89식 중척탄통전용으로 89식 유탄이 개발되었으며, 이를 사용할 경우 유효 사거리는 120m, 최대 사거리는 670m였다.

    4. 91식 수류탄도 89식 중척탄통에서 발사할 수 있었으나, 이 경우 최대 사거리는 200m에 불과했다.

    5. 구경은 10년식 척탄통과 동일하게 50mm였다.

 

  1. 운용 방법 및 생산 규모

    1. 운용 방법

      1. 척탄통을 땅에 고정한 뒤 약 45도각도로 기울여 세운다.

      2. 일본군은 이 부분을 ' 주판'이라고 불렀는데, 한국군 박격포 용어로는 ' 포판'에 해당한다.

      3. 89식 중척탄통은 박격포와 달리 자동 격침 방식이 아니며, 유탄을 포구에 장전한 뒤 방아쇠를 당겨 발사한다.

      4. 엎드린 자세나 무릎을 꿇은 자세로도 운용이 가능했다.

    2. 생산 및 배치

      1. 1932년부터 태평양 전쟁말까지 약 12만 문이 생산되었다.

      2. 생산량에 걸맞게 일본 육군에 광범위하게 채용되어 전쟁 시에도 사용되었다.

      3. 중국 천선 및 중일 전쟁 당시 일본군이 89식 중척탄통을 운용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4. 일본군 편제 및 태평양 전쟁 초기 운용

  1. 일본 육군 편제

    1. 일본 육군은 일반적으로 1개 소대에 4개 분대가 있었으며, 각 분대는 다음과 같이 나뉘었다.

      1. 경기관총 1정을 가진 기관총 분대

      2. 척탄통3문을 가진 척탄통분대

      3. 2개의 소총 분대

    2. 89식 척탄통은 한 명이 운용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보통 3인 1조로 구성되어 한 명이 18발의 유탄을 휴대했다.

    3. 이러한 척탄통조가 3개에 분대장 1명을 포함하여 총 10명으로 편성되었으나, 실제 전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척탄통이 1문이나 2문만 배치된 소대도 있었다.

 

  1. 태평양 전쟁 초기 운용

    1. 일본군은 10년식 척탄통에서 개량 발전된 89식 중척탄통을 일선 부대에 집중적으로 배치했으며, 태평양 전쟁초기부터 일선에서 사용되었다.

    2.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시작 직후 말레이시아 해변에 상륙한 일본군오사단 병사들이 89식 중척탄통발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확인된다.

    3. 1942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가전에서도 89식 중척탄통을 가진 일본군병사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4. 많은 수량이 배치된 89식 중척탄통은 전쟁이 진행될수록 미군의 눈에 띄는 것이 시간 문제였다.

 

5. 미군의 '무릎 박격포' 오해와 실전 평가

  1. 아투섬 전투에서의 발견

    1. 1943년 5월,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북태평양 아투섬에 미군 7사단이 상륙하여 처절한 전투 끝에 섬을 점령했다.

    2. 이 전투는 태평양 전쟁에서 방한복을 입을 정도로 추운 환경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싸운 유일한 전투이다.

    3. 아투섬 전투에서 미군 병사들은 일본군이 끊임없이 박격포 공격을 해온다고 보고했으며, 그 정체는 바로 89식 중척탄통이었다.

    4. 아투섬 전투에서 미군에 노획된 89식 중척탄통과 유탄이 존재한다.

 

  1. 과달카날 전투에서의 인지 및 성능

    1. 미군이 89식 중척탄통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투섬 전투가 아니라, 1942년 8월 과달카날 전투시작부터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2. 89식 중척탄통은 숙련된 3명의 병사가 운용할 경우 1분에 25발까지 사격이 가능했다.

 

  1. '무릎 박격포' 별명과 오해

    1. 미 해병대의 전설적 지휘관인 체스티 풀러는 미군도 89식 중척탄통같은 무기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 무기의 운용 방법이 미군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 척탄통의 주판( 포판) 부분이 곡선형으로 되어 있어 마치 병사의 허벅지나 무릎에 대고 발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3. 이로 인해 '무릎(Knee)'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써서 ' 니모타(Knee Mortar)', 즉 '무릎 박격포'라는 별명을 얻었다.

    4. 실제로 이런 자세로 운용하다 반동으로 허벅지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5. 1943년 미 해병대 훈련 캠프에서 해병대 교관이 노획한 89식 중척탄통운용 시범을 보이며 오해를 해소했다.

    6. 89식 중척탄통의 운용법이 제대로 알려지고 나서 사고는 멈췄다.

 

  1. 장점과 한계

    1. 장점

      1. 분대 수준에서 빠른 연사 속도로 즉각적인 화력 지원이 가능했다.

      2. 휴대성과 기동성이 뛰어났다.

      3. 수류탄과 유탄을 같이 쓸 수 있어 운용 유연성이 뛰어났다.

    2. 한계

      1. 구경이 50mm로 작아 폭발 위력이 떨어졌다.

      2. 89식 중척탄통은 미군에게 귀찮은 무기일 수는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군과의 보병 화력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 일본군은 심각한 무기 보급 부족과 전반적인 통신 및 사격 통제체계의 열악함으로 인해, 12만 문이나 보급된 89식 중척탄통이 결국 전세를 뒤집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연합군을 잠시 성가시게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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