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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military. warfare.

원조 맛집의 "치프틴 전차".....포탑의 곡선이 아름다운 전차.

by 리치캣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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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였던가???

치프틴 전차 포탑의 곡선이 너무 이쁘게 보여서...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프라모델을 사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집이 좁다고...다 버리셨지. ㅠㅠ

원조 맛집의 "치프틴 전차" / 중동을 제패한 영국산 전차! [지식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WtB4Ry7b-7c

이 영상은 영국의 전차 개발 역사부터 중동에서 활약한 치프틴 전차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치프틴은 영국의 전쟁국가이자 중동에서 중요한 전차로 사용되었으며 이란과의 거래 문제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후 영국 정부가 챌린저 2로 교체하기로 결정하여 치프틴은 순차적으로 현역에서 퇴역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멋진 실루엣은 여전했습니다.
전차의 발전과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유익한 영상입니다.
 

원조 맛집의 "치프틴 전차" \ 중동을 제패한 영국산 전차! [지식스토리]

1.영국 수전차의 발전사: 커버넌트부터 센추리온까지
   - 영국은 1938년대부터 수전차를 개발하고, 1940년대부터 커버넌트, 크루세이더 전차를 운용하며 전장에서 활약했다.
   - 2차 대전에서 활약한 크로멜 전차가 1944년에 등장하고, 코맷 전차를 거쳐 1946년에 센추리온 전차가 나왔다.
   - 영국 6군은 1945년 이후 체리엇 티어 구축전차와 컨커러 중전차를 운용했고, 소련의 T54, 55 전차로 경쟁했다.
   - 냉전 시대에 소련이 나온 T 54, 55 전차는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전차들을 앞서 나오면서 경쟁을 이끌었다.

2.영국의 FV 420 신형 전차 개발 역사
   - 레이 랜드는 센추리온의 능력을 갖춘 FV 420 프로토타입을 1956년에 출시했다.
   - FV 420 전차는 센추리온의 차체에 20파운드 주포를 장착한 혁신적인 설계였다.
   - FV 4202는 기존 전차보다 우수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췄으며, 다목적 전차로 분류되었다.
   - 그리고 FV 420의 선명한 실루엣은 적에게 포착당할 가능성을 줄이고, 미적으로도 우수했다.
   - 레이랜드는 1959년에 첫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시험을 거쳤는데, 중량과 성능개선을 위해 다양한 변경이 가해졌다.

3.치프 틴: 개발과 특징
   - 영국 육군은 레이랜드의 설계를 검토한 후 1962년 문제 발생. 치프 틴 최대 속도로 주행 중 기업 박스 과열로 인한 문제 발생, 생산 일정 지연.
   - 문제 해결 후 1963년 초 승인 시험 재개, 이후 1965년부터 실전 배치 승인.
   - 치프 틴: 7.5m 길이, 3.5m 폭, 2.9m 높이, 55톤 중량, 승무원 명, 무장은 120mm 강선 및 기관총, 시속 48km 최대 속도, 500km 항속거리.
   - 1965년부터 치프 틴이 센추리 온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4.이스라엘과 영국의 치프틴 전차 공동개발 이야기
   - 치프틴을 기반으로 한 전차 개발 계획의 배경인 이스라엘 탈 장군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스라엘 환경에 적합한 전차를 개발 주장.
   - 이스라엘은 영국의 치프틴 기술을 이용해 개량된 전차를 생산하기 위해 계획 진행.
   - 그러나 영국의 중동 정책 변화로 협력이 어려워지며, 1969년부터 군수 물자 수출을 포함한 협력 전반을 중단하게 된다.

5.이스라엘과 영국의 전차 기술 협력과 이란과의 제품 인도 문제.
   - 이스라엘은 영국과 협력하여 메르카바 전차를 개발하며 전차 기술을 발전시켰다.
   - 치프틴은 이란을 포함한 여러 국가로 수출되었으나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모든 거래가 취소되었다.
   - 이란과 영국 사이에는 제품 인도 문제를 둘러싸고 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이란은 보상 요구했지만 영국은 이를 거부했다.

6.️2019년 영국 승소 후 이란 항소로 마무리
   - 2019년 영국 판결로 이란 항소, 2021년 결국 합의에 이르나, 영국은 이란에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 1990년대 초부터 최종 형인 치프틴 전차 업그레이드를 멈추지 않았으며, 이라크 전쟁에서 사용된 지프티 1은 엔진 문제와 속도 저하 문제를 겪었다.
   - 나스르 전투에서 사용된 지프티 1은 스틸 부루 장갑과 전자 광학 장비를 탑재하여 양쪽이 투입되었고, 엔진 문제로 기동이 어려웠다.
   - 고질적인 문제인 엔진 문제와 중량 대비 출력이 낮은 점으로 험지에서 고장과 속도 문제가 발생했다.

7.치프틴 전차: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전투
   - 치프틴 1 전차가 치팅 1 적 대상이 될 수도 있었고, 나스르 전투에서 양쪽이 875회 이상의 전차를 투입하였으나 살아남은 전차는 200대 미만이었다.
   - 이라크는 치프틴 전차를 업그레이드하여 운용 중이며, 1990년 쿠웨이트 침공 시 쿠웨이트는 약 143대 치프틴을 보유했고, 37대가 쿠웨이트 교 전투에 투입되었다.
   - 사막의 방패 작전에서 쿠웨이트는 치프틴 전차를 퇴역하고 m84로 대체했다.
   - 전쟁 중 쿠웨이트 제 35 알파타임 여단은 전혀 전차를 잃지 않았으나, 이라크군은 치프틴 1 전차를 모두 격파하였다.

8.미군의 주력 '치프틴' 전차, 챌린저 2로 대체되다
   - 1965년부터 냉전 종결까지 영국군의 핵심 전차로 활용되던 '치프틴'은 1991년 현대화를 위해 챌린저 1과 함께 유지되었으나 1998년부터 챌린저 2로 체계적으로 교체되었다.
   - 소수의 치프틴은 1995년까지 운용되지만, 1998년 이후 챌린저 2가 도입되면서 단계적으로 대체되었으며, 미스터 빈의 한 에피소드에서 유쾌한 사고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 '나토와츠 록'의 선도로 개발된 치프틴은 아이러니한 끼를 보여주며 활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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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richcat.tistory.com/entry/중국이-앞으로-100년간-이런-영화만-만들기를-희망한다-Chinese-sniper-vs-American-sniper-during-the-Korean-War-1952 [리치캣의 현재 그리고 미래:티스토리]

원조 맛집의 "치프틴 전차" \ 중동을 제패한 영국산 전차! [지식스토리]

영국에서 시작되어 이란까지 간 치프틴 전차를,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지식 스토리입니다. 이번에는 원조국 다 중동에서 더 활약한 치프틴 전차에 대해 알아볼 텐데요. 영국은 1938년대부터 수전차를 개발해 실전 배치했으며 커버넌트 전차를 1940년부터, 크루세이더 전차를 1941년부터 운용했습니다. 특히 2차 대전에서 크게 활약한 크로멜 전차는 1944년부터 전장에서 활약하기 시작했고, 1944년부터 등장한 코맷 전차로 계보가 이어지더니 1946년 센추리온 전차가 계승합니다. 영국 6구는 수전차와 별개로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체리엇 티어 구축전차와 컨커러 중전차를 1953년부터 실전 배치하기도 했는데요. 한편, 냉전이 시작되면서 자유진영의 경쟁자가 된 소련이 T 54, 55 개월에 전차를 내놓아, 전차 원조 국인 영국도 질 수 없었죠.

영국은 신형 전차가 한 가지에 특화되고, 단 적절한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을 갖춘 다목적이며, 컨커러 화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센추리온의 능력을 겸비한 전차를 개발하는 쪽으로 신형 전차 개발 방향을 잡아 나갔습니다. 이에 센추리온 개발에 참여했던 레이 랜드는 1956년에 신형 전차의 프로토타입을 출고했는데, 레이랜드 출고한 프로토타입은 FV 40이라 불렀으며, 뒤로 젖혀진 조종수 좌석과 포방패 없이 주포를 배치하는 설계를 도입했죠. 그 결과, FV 420은 계량된 센추리온 차체에 20파운드 주포를 얹은 신개념 포탑을 도입한 전차가 됐습니다. FV 420, 이을 본 영국 전쟁국가이 전차의 급을 어떤 식으로 정할지 고민했는데, 센추리온 중량과 기동력이 비슷한 FV 4202 공격력과 방어력이 기존 전차보다 우수했으며, 엔진은 경유와 일반유 모두 쓸 수 있었습니다. 기동력도 우수하고 험지 돌파력이 좋은 편이었고, 조금만 손을 대면 도화 작전까지 가능했는데요. 특히 전쟁 국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부분은 바로 fv 42 02의 실루엣이 있죠. 기존 전차에 비해 미적으로 나쁘지 않으면서도 낮고 납작한 전방 실루었의 높은 가운데 적에게 포착 당할 가능성이 작았습니다. 영국 전쟁국가 신형 전차를 주력 전차로 분류했으며, 신형 전차의 요구 사항을 작성했고 요구 사항에는 1953년까지 센츄리온 qu 컨커러 625 전차에서 얻은 경험을 우려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신형 전차의 요구 사항은 장거리의 방어 진지에서 적과 싸울 수 있고, 적의 폭격에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으며, 컨커러 다 큰 포신가공 열 발에 분당 여섯 발을 지속 사격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 사항에 포함했습니다. 레이랜드는 1959년에 첫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영국 육군의 시험 평가용 납품했는데, 엔진 진동과 냉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차체 후면을 새롭게 설계한 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설계 변경으로 중량이 50톤에 이르는 탓에 자체 중량을 견딜 수 있도록 현가 장치가 교체됐고, 도로 파손을 막기 위한 트랙 패드도 추가됐으며, 전고가 살짝 높아졌습니다..

영국 육군은 레이랜드가 제출한 설계를 검토한 후 시험 평가에 들어갔는데요.  1962년 평가에서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죠. 치프 틴이 최대 속도로 주행하다 기업 박스가 과열하여 문제가 발생했고, 과열 원인이 파악되지 않아서 생산 일정이 반년 이상 뒤로 밀리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개선된 후 치프 틴의 승인 시험은 1963년 초부터. 다시 시작됐고, 문제가 없다면 1965년 초부터 실전 배치하기로 일정을 재조정했다. 아스럽게, 이번 시험은 성공적이었고, 영국 국방부는 치프 틴의 실전 배치를 승인해 1965년부터 센추리 온을 교체했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치프 틴이 어떤지 재원을 살펴보겠습니다. 치프 틴은 전장 7.5m, 전폭 3.5m, 전고 2.9m이며 중량은 55톤. 승무원은 명이고, 무장은 120mm lcb A5 강선 4에 7.6 62mm 기관총 두 문 9경 기관총 한 문이며 최대 속도는 시속 48km, 항속거리는 500km 있니다.

전차 개발에 관심을 보인 이스라엘은 영국과 접촉해 치프틴을 바탕으로 한 공동개발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이는 독립 전쟁부터 참전해 온 베테랑인 이스라엘 탈 장군의 계획으로, 그는 2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 환경에 맞춰진 전차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치프틴 qu의 기술을 구매해 이스라엘 환경에 맞춰 설계를 개선하고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를 위해 두 대의 치프틴을 도입하고 4년간 시험 평가를 하였으나, 양국의 전차 개발 논의가 진행되던 중 1960년대 말부터 영국의 중동 정책 방향이 바뀌었고, 영국이 친 아랍 정책을 취하면서 주요 중동 국가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했죠. 이 때문에 영국은 이스라엘과 협력하기 껄끄러워지고 1969년을 기준으로 전차 공동개발은 물론 모든 군수 물자 수출까지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스라엘은 영국과 공동개발을 하면서 이스라엘 환경에서도 무리없이 운용할 수 있는 전차 기술의 토대를 마련해 미련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간 영국으로부터 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자체 전차 개발에 들어가 그 유명한 메르카바 전차를 만들었는데요. 메르카바는 직계 조상이나 다름없는 지프티 n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공격을 대비했던 라인강 수비군의 우선 배치 됐죠. 치프틴 1 팔레비 왕조 시절일 때 요르단, 오만, 쿠웨이트, 이라크 등 중동에 수출됐다. 나토 가맹국이 영연방 국가에서 도입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치프틴이 가장 많이 팔린 국가는 이란으로 700대 이상의 수출이 성사됐지만,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모든 거래는 취소됐습니다. 하지만 이란은 이미 대금을 치른 상태였기 때문에, 이 대금에 따른 제품 인도 문제는 오랫동안 양국 사이의 문제로 남았는데요. 이란은 영국의 계약금 반환과 이자를 포함한 2천만 파운드의 보상을 요구했지만, 영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해서 이란의 요청을 거부했죠..

관련 재판은 2019년에 영국이 승소하자, 2020년에 이란이 항소했고 결국 2021년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게 됐지만, 영국이 반미 국가인 이란에 배상금을 낼 리 없습니다.  양국 간의 문제로 남은 지프티 첫 배치부터 1990년대 초에 챌린저 전차로 교체되기 전까지 업그레이드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치프틴 최종 형은 영국군이 1995년까지 운용했고, 최종 형에는 스틸 대령과 존 브루어 대령의 이름을 딴 스틸 부루 장갑과 고급 전자 광학 장비가 탑재되는데, 이런 지프티 1이란 이라크 전쟁 때 양쪽 모두 투입했으며 최대 규모의 전차전이 있었던 나스르 전투에서 격돌 했죠. 당시 시프티는 고질적인 엔진 문제와 낮은 출력 대비 중량비 때문에 험지에서 기동하다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았고, 속도가 처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치프틴 1 적 전차의 목표가 되기 일수 있었고, 나스르 전투 초기에는 양쪽이 875회 넘는 전차를 투입했지만 살아남은 전차는 200대 미만이었습니다. 이라은 현재까지 치프틴 전차를 자체 업그레이드에서 운용하고 있으며, 이 형상에는 모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에서 쿠웨이트는 약 143대 치프 틴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 교 전투에 3 7대가 투입됐습니다. 당시 쿠웨이트의 제 35 알파타임 여단은 이라크의 제 1 함무라비 기갑 사단과 제 2 메디나 사단과 격돌했습니다. 수정 열세의 사우디로 퇴각했습니다. 당시 쿠웨이트 제 35 알파타임 여단은 단 한 대의 전차도 잃지 않았기 때문에, 1991년 사막의 방패 작전이 시작되자 합동 동부 사령부에 소속되어 쿠웨이트로 귀환했는데, 하지만 제 30 15 알파타임 여단이 보유한 치프틴 제외한 치프틴 1 모두 이라크군이 격파했고, 걸프전이 끝나자 쿠웨이트는 치프틴 전부 퇴역시키고 유고슬라비아가 t 72를 바탕으로 개량한 m84도입했습니다.

지프티 1 1965년에 실전 배치된 이후 냉전 말까지 영국군의 주력 전차로서 위상을 지켰고, 영국 정부는 1991년에 두 개 현대부지 틴을 재정비하고 했습니다. 이들 연대에 소속된 약 130대의 치프 틴을 챌린저 1과 함께 유지하다가, 챌린저 2로 교체 하기로 정했는데요. 따라서 소수의 치프틴 1995년까지 계속 현역 상태를 유지했지만, 1998년부터 챌린저 2가 도입되면서 순차적으로 교체됐고, 여담으로 미스터 빈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미스터 빈이 주차해 놓은 미니를 치프틴이 그대로 밟고 지나가면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어째 전차 원조 국가 만들어진 전차인 나토나츠 록을 잘 써먹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원조 국 다중동에서 더 활약한 치프틴 전차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영상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식. [음악] 스토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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