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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해 온 학교...

by 리치캣 2026.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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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해 온 학교...
​1935년 12월 4일, 일왕의 차남 탄생을 기념하는 봉축식과 함께 평양 신사 참배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폐교를 막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숭실중학교는 일단 참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평양 신사는 가파른 돌계단 위에 있었다. 평양 내 모든 학생이 일렬로 서서 계단을 올랐고, 숭실중 학생들은 대열의 가장 마지막에 섰다. 침통한 침묵 속에 계단을 오르던 중, 정상 부근에서 날카로운 구령이 터져 나왔다.
​"제자리에 섯! 뒤로 돌아!"
​당시 학생회장이자 YMCA 회장이었던 임인식의 목소리였다. 구령이 떨어지자마자 숭실중 전교생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즉시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이 순간을 "승리의 행진이자 전율 그 자체였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으로 임인식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36년 1월 20일, 파면된 맥큔 교장이 강제 출국을 위해 학교를 떠나던 날, 일제 경찰은 강당을 겹겹이 포위했다.
*맥큔 교장은 학생들을 향해 주먹을 높이 치켜들고 "Do! Do! Do! (행하라!)"라고 일곱 번 외쳤다.
학생들은 울먹이며 숭실 학교 만세를 외치고 교가를 불렀다.
​이 대열 속에는 당시 숭실중 학생이었던 윤동주와 문익환도 있었다. 이들은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제 교육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1936년 3월 자퇴를 결행했다.
*숭실중학교는 이후로도 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다가 1938년 스스로 폐교하는 길을 택했다.
 

숭실중학교의 신사참배 거부와 자진 폐교 사건은 일제강점기 교육계의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1. 시대적 배경: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1930년대 중반, 일제는 전시 체제를 강화하며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학교와 종교 단체에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기독교계 학교가 밀집했던 평양은 일제의 집중 타겟이 되었습니다.

2. 1935년 12월 4일: 평양 신사 참배 거부 사건

평양 신사는 대동강 변의 가파른 돌계단 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일제는 일왕의 차남 탄생 봉축식을 명분으로 평양 시내 모든 학생에게 참배를 명령했습니다.

  • 사건의 발단: 폐교 압박 속에서 숭실중학교는 고심 끝에 참배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학생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계단을 올랐고, 숭실중은 대열의 가장 끝에 배치되었습니다.
  • 임인식의 구령: 정상 부근에서 참배가 시작되려던 찰나, 당시 학생회장이자 YMCA 회장이었던 임인식이 **"제자리에 섯! 뒤로 돌아!"**라고 외쳤습니다.
  • 승리의 퇴각: 이 구령에 맞춰 숭실중 전교생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 내려왔습니다. 이는 일제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상징적 사건이었으며, 당시 학생들에게는 굴욕적인 참배를 거부한 '승리의 행진'으로 기억되었습니다.

3. 맥큔 교장의 추방과 "Do! Do! Do!"

숭실학교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지 S. 맥큔(George S. McCune, 한국명 윤산온) 교장은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 파면과 강제 출국: 일제는 1936년 1월 20일,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맥큔 교장을 파면하고 강제 출국 조치를 내렸습니다.
  • 일곱 번의 외침: 학교를 떠나던 날, 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맥큔 교장은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Do! Do! Do! (행하라!)"**라고 일곱 번 외쳤습니다. 이는 신념을 굽히지 말고 정의를 실천하라는 마지막 당부였습니다.

4. 윤동주와 문익환의 자퇴 결행

이 역사적인 현장에는 훗날 민족 시인이 된 윤동주와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 된 문익환이 재학생으로 있었습니다.

  • 순응 거부: 두 사람은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교육 체제 아래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1936년 3월 자퇴: 그들은 맥큔 교장이 떠난 직후인 1936년 3월, 일제의 강압 교육에 반대하며 나란히 자퇴서를 던지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5. 숭실의 자진 폐교 (1938년)

일제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졌으나 숭실중학교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 "신사 앞에 무릎 꿇느니 문을 닫겠다": 숭실학당은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와 일제의 황국신민화 교육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자진 폐교: 결국 1938년 3월,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기 전 스스로 폐교하는 길을 택하며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이후 1954년 서울에서 재건되었습니다.)

역사적 의의: > 이 사건은 단순한 학교의 폐교가 아니라, 총칼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기독교적 신념민족적 절개가 결합된 저항 운동이었습니다. 임인식의 구령과 맥큔 교장의 외침은 훗날 윤동주의 시와 문익환의 행동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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