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놀면서 일하기/intotheKOREA

제암리 학살 사건, 수원, Korea, 1919. 4. 15

by 리치캣 2026. 3. 20.
반응형

 

 

제암리 학살 사건, 수원, Korea, 1919. 4. 15
조지 글리슨 선교사가 1919년 존 모트 국제YMCA 사무총장에게 보낸 보고서에 실린 사진.
미 YMCA 총무였던 글리슨 선교사는 당시 만주에서 서울을 경유해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학살 현장을 찾아 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일경으로부터 고문당해 팔이 파랗게 변했다는 권서(왼쪽)와 주민들이 1919년 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의 불탄 경다리교회 앞에 서 있다. 오른쪽에 선교사의 모습도 보인다.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소재 제암리 감리교회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 기독교계에서는 제암리감리교회 사건으로 부르며, 줄여서 제암리 사건이라고도 부른다.
29명이 사망하고 마을 가옥 42호 중에서 38호 가 불에 탔다.

 

제암리 학살 사건은 1919년 3·1 운동 당시 일본군이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반인륜적인 사건입니다. 일제의 무력 탄압 중 가장 잔혹한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1. 사건의 배경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화성(당시 수원) 지역에서도 격렬한 만세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발안 장날의 시위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일본인 순사 등을 처단하는 등 저항이 거세지자, 일본군 제20사단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이끄는 검거반이 '보복'을 목적으로 제암리에 진입했습니다.

2. 사건의 전개 (1919년 4월 15일)

  • 주민 소집: 일본군은 "선무 공작(민심을 달래는 작업)을 하러 왔다"고 속여 마을의 성인 남성들을 제암리 교회로 모이게 했습니다.
  • 집단 학살: 주민들이 교회에 모이자 일본군은 출입문을 밖에서 못박아 폐쇄하고, 창문을 통해 집중 사격을 가했습니다.
  • 증거 인멸: 사격 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에 불을 질렀으며, 불길을 피하려 탈출하는 사람들을 다시 총으로 쏘거나 칼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근 고주리 주민들까지 학살당했으며, 마을 전체가 불타버렸습니다.

3. 세상에 알려진 계기

일제는 이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려 했으나,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 박사가 현장을 방문해 참상을 사진으로 찍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국제사회에 폭로했습니다. 이 덕분에 일제의 잔학 행위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4. 역사적 의의

"제암리 사건은 단순한 보복을 넘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꺾으려 했던 일제의 가장 비겁하고 잔인한 탄압의 상징입니다."

현재 제암리에는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이 세워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역사의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
아이디어링 : First Mover. 퍼스트무버의 시대. 원격근무시대. 아이디어 회의 방법론 1편 
https://kmong.com/gig/317273

 

원격근무시대. 아이디어 회의 방법론 1 드립니다. - 크몽

스몰미 전문가의 전자책 서비스를 만나보세요. ※서비스 설명언제까지 회의실에서 머리를 쥐어짜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인가?1)...

kmong.com

 


ILOVEBUSINESS. 아이러브비즈니스.  You can find KOREA company, factory, business...and possibilities
http://ilovebusiness.co.kr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