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놀면서 일하기/intotheKOREA

금나라와 청나라, 우리 역사인가? : 본격적으로 확인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by 리치캣 2026. 1. 8.
반응형

본격적으로 확인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금나라와 청나라, 우리 역사인가?

📌 금나라와 청나라는 우리 역사인가?

강사는 금나라와 청나라가 우리 역사라고 보는 것은 큰 오바라고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 그 주장의 핵심 근거는 무엇인가?

당시 고려는 금나라에 사대하고 청나라는 스스로 고구려와 발해 피지배층이었던 말갈족의 후예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뿌리인 고구려 역사를 지우려 하는 등 민족적 일체감이나 역사 계승 의식이 없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 콘텐츠는 금나라와 청나라 역사가 우리 역사에 포함되는가라는 논쟁적인 질문에 대해, '아니다'라는 명확한 결론과 그 근거를 제시하며 우리의 자주적 역사관을 확립하도록 돕습니다. 단순히 두 왕조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왜 그들이 우리 역사가 아닌지 실증적 사례(예: 김부식, 단재 신채호의 입장)를 통해 분석하며,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는 진정한 역사 인식의 자세가 무엇인지 통찰을 제공합니다. 자신의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을 버리고 자긍심을 가져야 할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는 이 영상은, 역사 왜곡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역사의 주체성을 지키는 실질적인 기준점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입니다.

 

1. 금나라와 청나라는 우리 역사인가? - 결론 및 기본 전제

  1. 강의 목적: 성리학 사관과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의 역사를 비판하며, 우리 역사의 자주성에 대한 논의를 재확인하고 금나라와 청나라 역사가 우리 역사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결론을 제시함.

 

  1. 역사관의 중요성:

    1. 역사를 사랑하는 것은 영토의 크기나 위대함 때문이 아니라, 유구하게 내려온 역사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어야 함.

    2. 자신의 역사를 열등의식 없이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며, 옆집 아저씨가 아버지보다 나을지라도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과 같음.

    3. 최근 사대주의에 빠진 젊은 세대가 많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함.

 

  1. 중국 역사와의 비교를 통한 자주성 강조:

    1. 중국은 자국 역사를 자랑스러워하지만, 실제 자국 역사의 절반 가까운 시간 동안 역사적 단절을 겪었으며, 한족이 이민족 지배를 넘어 나라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음.

    2. 한국은 일제강점기 35년의 단절 외에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나라를 계속 유지해 왔으므로 중국에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음.

 

  1. 강의의 결론 (미리 제시): 금나라와 청나라는 우리 역사가 아니다라고 명확히 결론 내리고 강의를 시작함.

 

  1. 동북공정 대응 자세:

    1.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금나라/청나라 역사를 억지로 우리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는 찻잔 속의 태풍일 뿐임.

    2. 올바른 대응은 중국의 역사 과장과 타 민족 역사 편입 시도에 대해 "너희들은 이 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았느냐?"라고 반박하며, 우리 역사의 유구함에 자부심을 갖고 비판해 나가는 것이 옳음.

    3. 현재 동북공정은 고구려 역사를 넘어 발해와 만주 전체 국가 역사, 나아가 부여와 백제 역사까지 빼앗아가려는 수준으로 심각함.

    4. 역사학자의 의무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틀렸음을 자료를 제시하며 신랄하게 반박하는 것임.

 

2. 만주 지역의 여러 민족 구성 및 금나라 건국 과정

 

2.1. 만주 지역의 다양한 민족 구성

  1. 중국 동북방 만주 지역의 민족들: 동호, 선비족, 거란족, 몽골족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만주족이라고 칭해지는 민족들이 존재함.

  2. 우리와 연관된 계통의 민족들: 예맥족, 옥저, 신라, 물길, 그리고 말갈족이 있음.

  3. 말갈족의 정체성: 말갈족은 고구려와 발해의 피지배층이었으며, 이후 고려 시대에는 여진, 조선 시대에는 만주족이라고 불림.

  4. 예맥족의 정체성: 예맥족은 우리(고조선, 부여, 고구려)와 같은 계통이며, 고조선 멸망 후 예맥족이 한반도로 많이 이주하면서 만주 북쪽에는 말갈족, 여진족, 만주족 등이 살게 됨.

 

2.2. 금나라의 건국과 고려와의 관계

  1. 금나라 건국: 여진족에 의해 금나라가 건국됨.

  2. 금나라 건국 시점: 정확히는 여진족이 1104년(고려 의종 때) 별관을 만들고, 1107년에 예정인(아골타)이 별모반을 이끌고 검북구 성을 축조하며 만주 지역으로 영토가 넓어졌음.

  3. 동북구 성 반환: 여진족의 침략과 조공 요구 때문에 검북구 성 축조 1년 만에 여진족에게 돌려주게 됨.

  4. 금나라 건국: 이어진 1115년(예종 치세)에 금나라가 건국되었고, 이 금나라는 중국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게 됨.

  5. 남송의 형성: 당시 중국 대륙의 남쪽은 금나라에게 밀려나 남송이 됨.

  6. 고려의 대처: 금나라에 대해 당시 고려의 권력자 김부식은 사대를 했으나, 묘청은 금나라 정벌을 주장함.

 

3. 금나라가 신라 후손이라는 주장의 근거와 반박

 

3.1. 금나라 시조가 신라인이라는 주장과 해석

  1. 주장의 근거 자료: 청나라 시대의 거란족 역사서 《요사》, 여진족 역사서 《금사》, 한족 역사서 《원사》가 편찬됨.

  2. 《금사》의 기록: 금나라 시조 아구타(아무타)의 시조는 완안함보이며, 이 완안함보의 시조는 신라 사람이라는 기록이 나옴.

  3. 성씨 관련 해석:

    1. 완안함보의 성씨는 완안(完顔)인데, 이를 우리식 한자로 해석하면 김씨가 됨.

    2. 금나라 시조가 신라 사람이라는 기록이 상당수 나옴.

    3. 금나라를 뜻하는 '금(金)'이 김씨를 뜻한다고 보기도 함.

    4. 완안함보가 진씨였는지 왕씨였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함.

  4. 신라 말 고려 초의 결혼 관계:

    1. 결과적으로 신라 왕족이었던 경주 김씨고려 왕족이었던 왕씨가 신라 멸망 후 고려 통일 시기에 많이 결혼함.

    2. 예시로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김씨)이 왕건에게 항복하며 경주의 사신이 되었고, 왕건이 자신의 딸을 경순왕에게 주기도 했음.

  5. 성씨 추정: 이러한 결혼 관계 때문에 금나라 시조 완안함보의 아버지가 왕씨이거나 어머니가 김씨, 혹은 아버지가 진씨이거나 어머니가 왕씨였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옴.

  6. 긍정적 해석: 결과적으로 금나라 시조가 한민족이었다는 것은 민족이 어디 가서도 리더가 된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울 수 있음.

 

3.2. 금나라 시조가 한민족이었다고 우리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박

  1. 역사적 선례 비교 (고려): 우리 고려 역사 기록에도 고려 왕들이 당나라 서쪽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명확히 있음에도 고려 역사를 중국 당나라 역사라고 보지 않음.

  2. 역사적 선례 비교 (신라): 신라의 석탈해가 흉노나 스키타이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음에도 신라 역사가 흉노 역사가 될 수는 없음.

  3. 비유를 통한 설명: 케냐 사람이었던 오바마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미국이 케냐와 같은 나라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금나라를 우리 역사라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임.

 

3.3. 김부식과 신채호의 입장을 통한 반박

  1. 김부식의 태도:

    1. 만약 여진족과 민족적 일체감이 있었다면, 금나라가 창건되었을 때 김부식이 동북구 성을 쌓고 여진을 공격했던 행위를 설명하기 어려움.

    2.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경주 김씨, 신라 6부 품의 후예)은 완전히 친 신라 인물이었고 김유신에게 3골을 할애할 정도로 팬이었지만, 삼국사기 기록 어디에서도 금나라가 신라의 후손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음.

  2. 단재 신채호의 태도:

    1. 신채호는 백제가 무너질 때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백제를 친 죄를 김유신과 김춘추에게 물을 정도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였음.

    2. 신채호조차도 금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던 고려를 옹호했으며, 금나라에게 사대하려 했던 김부식을 친중파, 대중국주의자, 보수주의자로 매도했음.

    3. 신채호가 금나라를 우리 역사로 인식했다면, 여요(청)가 금나라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임.

    4. 신라, 고려, 백제는 우리 역사로 인식했기에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친 행위(형제가 형제를 침)를 비판했던 것이며, 금나라는 달리 보았음.

  3. 역사가들의 결론: 김부식과 신채호 모두 금나라를 우리 역사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

 

3.4. 금나라 사신에 대한 예우 해석에 대한 반박

  1. 일부 주장의 근거: 금나라 사신이 송나라에 올 때마다 신라 사신에 대한 예우를 했으므로 금나라가 신라를 계승한 국가라는 주장이 있음.

  2. 반박: 이는 답답한 해석임.

    1. 신라는 당나라에 멸망했음.

    2. 금나라는 신라보다 크고 강성했던 나라였고, 금나라와 대립했던 나라(남송) 입장에서 금나라를 대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신라 사신에 대한 예우는 금나라가 신라보다 한 칸 내려왔다는 이야기일 뿐임.

  3. 결론: 금나라는 우리 역사가 아니라고 합시다.

 

4. 금나라의 계승 의지와 고려의 고구려 계승

  1. 금나라의 입장: 금나라는 항상 고구려 계승 의지를 밝혔고, 스스로 고구려 후예임을 자처했음.

  2. 고려와 고구려: 당시 대립하던 고려 역시 고구려의 후예였음.

  3. 고구려/고려 명칭:

    1. 많은 학자들은 원래 나라 이름이 고구리였으며,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며 고구려로 바꾼 것으로 봄.

    2. 따라서 왕건의 고려는 고구려의 '고려'를 그대로 계승한 것임.

  4. 고려의 고구려 계승 증거:

    1. 고구려의 흔적이 국호뿐 아니라,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였던 평양을 중시함.

    2. 평양(서경)에 왕이 1년에 100일 이상 머물도록 명령했고, 서경에 학교를 만들고 행정 기능을 분산시키는 군사 제도를 실시함.

    3. 영토를 청천강에서 압록강까지 확장시켰으며, 발해 멸망 시 발해 유민 대광현을 우대하는 것을 보았을 때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이 분명함.

  5. 금나라의 계승 의식: 금나라도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도 고구려를 계승했으니 전하(고려 왕)는 우리에게 사대만 하니 공격하지 말고 살려달라"는 식의 인식을 가졌을 수 있음. (척중경 무력에 공포를 느껴 공격하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음.)

  6. 결론: 중국 대륙 절반을 차지했던 금나라는 실제로 고려를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음.

 

5. 후금(청나라) 건국과 신라 후손 주장에 대한 반박

 

5.1. 후금(청나라) 건국 배경과 '아이신 겔로' 성씨의 의미

  1. 몽골의 지배: 금나라가 몽골에게 무너진 후, 여진족은 만주 본거지로 돌아가 후금이라는 나라를 만듦.

  2. 몽골의 동진국 지배: 몽골이 동진국과 함께 압록강 유역의 거란족을 공격할 때 거란족이 도망쳐 내려왔고, 이때 고려의 강감찬 장군이 올라가면서 몽골과 고려가 처음 만났으며, 이 동진국 역시 나중에 몽골에게 지배당함.

  3. 청나라의 건국: 원나라 멸망 후 부족 단위로 생활하던 여진족을 누르하치가 통합하고 후금을 건국했으며, 그 후계자인 홍타이지가 황제로 즉위하며 나라 이름을 청나라로 처음 바꿈.

  4. 청나라를 우리 역사로 보는 근거와 반박:

    1. 청나라를 우리 역사로 보는 사람들은 누르하치의 성씨가 아이신 겔로(Aisin Gioro)인 것을 근거로 듦.

    2. 이들은 '아이신'이 '금(金)'을 뜻하며, '겔로'가 '성'을 뜻하고,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며 신라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성씨라고 해석함.

    3. 이는 명백히 잘못된 해석('응 차')이며, 아이신 겔로를 위해 한자를 억지로 빌려온 것임.

    4. '아이신'은 '황금', '겔로'는 '부족'을 뜻하는 황금족이라는 의미임.

    5. 이는 프랑스를 '불란서'라고 할 때 '란'이 난초와 상관없는 것과 같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응 차'일 뿐이므로 신라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음.

 

  1. 만주 사서 기록: 만주사학의 대표 서적인 《만주원류고》에는 금나라가 신라의 후손이라는 편이 분명히 존재함.

 

5.2. 금나라 시조의 신라 후손설과 여진족의 정통성 문제

  1. 금나라 시조의 신라 후손설: 일설에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만주로 건너가 완안함보의 시조가 되었다거나, 아골타의 손주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야사 수준임.

  2. 오류 지점: 많은 사람들이 금나라가 신라 후손이므로 그 뒤를 이은 청나라 역시 신라의 후손을 자처한다고 오해함.

  3. 여진족 내부의 분파와 정통성:

    1. 당시 여진족은 건주 여진, 해서 여진, 야인 여진으로 나뉘어 있었음.

    2. 누르하치는 어렵게 건주 여진을 통합함.

    3. 실질적으로 가장 힘이 있었던 것은 해서 여진이었으며, 해서 여진의 우두머리 부족은 예허부(Yehe)였고, 예허가 바로 옛날 완안부였음.

    4. '와난(완안)'이라는 발음은 그들의 발음이고, 자식을 낳으면 예허부가 됨.

    5. 예허부금나라의 적통을 이어받은 정통 부족으로 자부했음.

    6. 예허부는 누르하치가 죽을 때까지 대립했으며, 명나라와 편먹고 공격했던 것이 바로 사루 전투임.

    7. 예허부를 무너뜨린 후에야 비로소 여진족을 통합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음.

  4. 금나라의 정체성:

    1. 예허부가 세운 금나라가 신라 후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나라는 스스로를 거란, 요나라의 후예라고 칭했었음.

    2. 예허부까지 포용해야 했기 때문에 수금(後金)이라는 나라를 만들기도 했음.

 

5.3. 청나라 역사서의 문제점과 우리의 태도

  1. 청나라 역사서의 편향성: 만주 지역에서 세워진 모든 국가에 대해 다루고 한반도 국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나, 만주의 최초 중앙집권 국가이자 만주의 천하를 형성했던 고구려에 대한 역사는 단 한마디도 없음.

  2. 청나라 역사서의 의도: 이 역사서는 청나라식 동북공정을 위한 역사서로 보아야 함.

  3. 청나라가 고구려 역사를 지운 이유:

    1. 청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옛날 말갈족이라고 주장하는데, 말갈족은 고구려의 지배층이 아니었음.

    2. 고구려와 발해를 계승한 것이 한반도의 고려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조선(고려/신라 계승국)을 지배하는 선조들의 지배를 받았다는 논리가 싫었기 때문에 고구려의 뿌리를 아예 없애려고 했던 것이 청나라 사람들임.

  4.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각:

    1. 우리는 그 청나라를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려고 하거나, 청나라가 우리 역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코미디가 됨.

    2. 청나라 사람들이 입었던 치파오, 인조가 굴욕을 당했던 삼전도 비문, 만주어, 변발 등이 우리 전통인지 질문하며, 금나라, 청나라 역사를 우리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오바)임.

 

6.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는 올바른 역사 인식 자세

  1.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한 대안적 논리: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차라리 금나라, 청나라 역사라도 우리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 이는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라고 재차 강조함.

 

  1. 올바른 역사 대응: 중국이 역사를 과장하고 타 민족 역사를 편입하려는 것은 역사적 열등의식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는 "실제로 너희들이 그 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았느냐?"라고 큰소리 칠 수 있어야 함.

 

  1. 자부심 기반의 비판: 우리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다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차곡차곡 비판해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함.

 

  1. 동북공정의 심각성: 최근 동북공정은 고구려 역사뿐만 아니라 발해와 만주 전체 국가의 역사를 빼앗아가고, 부여 역사까지 빼앗아가려는 단계에 이르렀음. 백제의 뿌리도 부여에 두고 있는데 백제 역사까지 빼앗아가려는 상황임.

 

  1. 역사학자의 의무: 중국 학자들에게 '양심을 지켜라'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역사학자의 의무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틀렸다는 것을 신랄하게 반박하는 자료를 준비하여 알려주는 것이라고 밝힘.

 

  1. 개인적 소신 표명: 본 강의는 대본 없이 주저리주저리 생각을 떠든 것이지만,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황현필로서 소신을 밝힌 것이며, 이는 역사 사랑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임.

 

https://www.youtube.com/watch?v=uSD-oWG0rnI

★★★★★★★
아이디어링 : First Mover. 퍼스트무버의 시대. 원격근무시대. 아이디어 회의 방법론 1편 
https://kmong.com/gig/317273

 

원격근무시대. 아이디어 회의 방법론 1 드립니다. - 크몽

스몰미 전문가의 전자책 서비스를 만나보세요. <p>※서비스 설명</p><p><br></p><p><strong><u>언제까지 회의실에서 ...

kmong.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