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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richcat.tistory.com/20005 [리치캣의 현재 그리고 미래: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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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간 사람들이 많다.
폴란드 기병대가...당시 그 동네에서 최강이었는데...
왜 독일 기갑부대에 돌격했는지...
그게 왜 살신성인의 행동이었는지 설명해주는 영상이다.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전차에 꼬라박은 슬픈 이유! (2차 세계 대전)
📌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전차에 돌격했다고 알려진 비극적인 오해의 진실은?
실제로는 아군 후퇴를 돕기 위한 용맹한 희생이었으며, 전차를 향한 돌격은 아니었고, 독일군의 선전으로 인해 무모함으로 왜곡된 것입니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전차에 돌격했다는 오해의 진실을 파헤치는 흥미진진한 역사 콘텐츠입니다. 단순히 '용맹했다'는 일화가 아닌, 경제성과 관습으로 인해 기병대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아군 후퇴를 위한 희생적 전술이었음을 심층 분석합니다. 이 콘텐츠를 통해 당신은 전쟁터 속 기병대의 실제 역할과 무장 수준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역사가 어떻게 승자의 논리로 왜곡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기관총과 탱크 시대의 기병대: 오해와 진실
1.1. 전쟁터의 변화와 기병대의 등장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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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쟁터의 모습: 기관총과 포탄이 난무하며, 양측에 끝없는 참호가 늘어서 있고 그 사이에 무인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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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기 등장: 이러한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 탱크라는 신무기가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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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제기: 이러한 위험천만한 전장을 말 한 마리와 칼 한 자루만 가지고 돌격했던 용맹한 전사들(폴란드 기병대)이 있었는데, 이들이 왜 이런 무모한 전술을 펼쳤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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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목표: 독일군 탱크에 창을 들고 돌격했다는 오해를 받는 폴란드 기병대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이 왜 그런 전술을 펼쳤는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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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시작: 1,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근현대 기병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1.2. 고대부터 근세까지 기병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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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역할: 고대부터 근세까지 기병은 인류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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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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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말들은 전차를 끌어 전장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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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는 유목민들의 다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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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에는 전열보병 사이를 오가며 돌격하는 용맹한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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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기병 몰락의 과도기: 1, 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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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의 무용지물화: 화약무기(기관총, 탱크)의 발전으로 인해 기병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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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과도기: 모든 무기와 병종이 그렇듯, 기병들도 단번에 몰락하지 않고 서서히 몰락하는 과도기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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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대상 시기: 이 과도기가 바로 1,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병들이다.
2. 1, 2차 세계대전에서 기병대가 사용된 두 가지 이유
2.1. 첫 번째 이유: 관습적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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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이유: 1, 2차 세계대전에서 기병이 사용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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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 이유: 기병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 역사 내내 전쟁터를 누벼온 전사들이었기 때문에, 근대에 들어서도 과거의 습관대로, 즉 관습적으로 1, 2차 세계 대전까지 기병들을 적극적으로 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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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의 판명: 물론 이 두 전쟁에서 기병이 기관총, 탱크, 참호전, 폭격 앞에서 무용지물임이 드러나면서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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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 제기: 1차 세계 대전에서 완전히 은퇴했어야 할 기병들이, 무기와 탱크가 훨씬 발전한 2차 세계 대전 때까지 활발히 쓰인 이유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2.2. 두 번째 이유: 경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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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의 역할: 기병대가 2차 세계대전까지 운영된 두 번째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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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비용 문제: 전 병력을 기계화하여 탱크와 장갑차로 돌파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탱크의 생산비와 유지비가 너무 비싸서 감당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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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의 중요성: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전차는 중요했으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드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음에도) 여전히 탱크가 전장의 지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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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부담: 탱크는 매우 비쌌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기병의 무용성과 탱크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기병대를 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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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 양성 비용과의 비교: 기병 양성 비용도 비쌌지만, 탱크와 자동차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다.
2.3. 경제성으로 인한 기병의 역할 유지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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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보급 현황: 당시 말은 집집마다 보급된 자동차와 달리, 많은 도시와 시골에서 농기구이자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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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징발: 전쟁이 나면 각 지역에서 말을 징발하여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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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의 가성비: 이러한 경제적 배경으로 인해 기병들이 활약할 만한 요소(가성비)가 여전히 많았으며, 전차와 자동차를 대신하여 여러 역할을 수행했다.
3. 1, 2차 세계대전 기병대의 실제 임무와 무장 수준
3.1. 통신 및 수송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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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역할: 가장 기본적으로 나팔수, 우체부, 통신 연락병의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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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기병은 자동차에 비해 소음이 적고 좁고 거친 비포장도로도 지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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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속도: 많은 경우 말이 자동차보다 빨랐기에 상황이 긴박할 때 기마병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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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 역할: 같은 이유로 수송의 역할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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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한계: 자동차는 진창길, 눈밭, 비포장도로, 언덕길 등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연료나 부품이 없으면 운용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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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 역할: 1, 2차 세계대전에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곳들을 말이 수레를 끌어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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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 자동차가 막 보급되던 시기이므로, 어딜 가든 말과 자동차가 함께 쓰이는 것이 당연했다. (예: 2차 세계대전 폴란드군은 곰까지 탄약병으로 썼던 점을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3.2. 정찰 및 후방 급습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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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 임무: 기병들은 정찰 임무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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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단점: 당시 자동차는 소음이 매우 컸고 도로 상황이 열악하여, 지상 정찰 임무에서는 기병이 월등히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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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 급습: 네 번째 역할은 후방 급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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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 적용: 빠른 기동력으로 적의 후방을 공격하는 전술은 1, 2차 세계대전 때도 똑같이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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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제한: 참호전이나 요새와 진지처럼 기병 돌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 곳에서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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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격 대상: 기병들은 그런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적이 이동 중이거나 야영 중일 때, 혹은 후퇴할 때 적을 급습하였다.
3.3. 무장 수준: 칼과 창 돌격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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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병기 사용: 이 시대는 이미 냉병기가 거의 사라지고 소총이 대다수였음에도, 많은 기병들이 칼과 창으로 돌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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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 사용 여부: 기병들도 소총과 권총을 사용했지만, 보병에 비해 압도적인 차이로 칼과 창을 더 많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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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창 사용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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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 이유: 과거부터 칼과 창이 기병들의 주무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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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적 이유: 달리는 말 위에서는 총을 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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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임무와 무장: 당시 기병들은 주요 전투병이 아닌 후방 급습, 매복 기습, 폐잔병 추격 같은 임무를 맡았으므로 굳이 총을 안 써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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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의 진실: 영화나 게임에서 창칼로 무장한 기병들이 돌격하는 장면은 거짓이 아니며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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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투 방식: 하지만 저런 (정면 돌격) 경우보다는 말에서 내려 보병처럼 싸운 경우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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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후 전투: 말을 타고 빠르게 적의 측후방으로 이동한 뒤, 말에서 내려 자리를 잡고 총으로 적을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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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 무기 사용: 이때 대전차 무기도 많이 사용했으며, 심지어 말의 견인포를 날아쏘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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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사실상 이 시기 기병대는 말 타고 다니는 보병들에 더 가까웠다.
4. 폴란드 기병대의 운용과 크로얀티 전투의 진실
4.1. 폴란드 기병대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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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 운용 국가: 놀랍게도 1, 2차 세계대전에서 거의 모든 서구 열강들이 기병대를 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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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기병대의 유명세: 당시 가장 유명한 기병대는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국명 자체가 평평한 땅이라는 뜻답게 기병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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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드 후사르의 계보: 비엔나 공방전에서 활약한 윙드 후사르(등 뒤에 날개 장식을 달고 랜스로 돌격한 기병)의 개보를 이은 것은 울란이라 불리는 경기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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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의 활약: 울란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치러진 폴란드-소련 전쟁에서 코사크 기병대를 상대로 큰 전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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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역사: 울란의 활약은 폴란드가 소련과 독일에 의해 나라가 양분되면서 슬픈 역사로 끝이 났다. (과거에는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에 의해 3분할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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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화 부족: 폴란드는 군을 재정비하고 기계화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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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 비율: 이로 인해 폴란드는 기병 비율이 러시아(6%)나 독일(2%)에 비해 무려 10%로 매우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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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 비율의 원인: 폴란드가 기병이 유명해서 많았던 것도 맞지만, 기계화를 끝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기병이 많았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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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폴란드 기병대에 대한 두려움과 독일의 날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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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의 두려움: 당시 소련과 독일군은 폴란드 기병대를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폴란드가 기계화를 못 해서 기병대가 많다고 당나라 군대라 생각할 수 있지만, 독일군 병사들은 폴란드 기병대의 용맹이 자자하여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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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진작을 위한 꾀: 이를 본 독일군은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폴란드 기병대의 명성을 꺾어 버릴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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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이 계획은 1939년 크로얀티 전투에서 시작되었다.
4.3. 크로얀티 전투의 전개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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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상황: 독일군은 그단스크로 향하던 중 크로안티 마을 근처에서 폴란드군을 마주쳤고, 폴란드군은 독일군의 진격을 막고자 만반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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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상황: 수많은 독일 전차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폴란드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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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의 어려움: 맹추격하는 독일 전차의 집중 포화를 뚫고 후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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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기병대의 결단: 이를 본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군 탱크를 향해 맹렬히 돌격하는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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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목적: 이는 아군(보병)의 후퇴를 돕기 위해 독일군의 총구를 자신들에게로 돌리는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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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이 작전 덕분에 폴란드군은 성공적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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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대의 피해: 예상대로 폴란드 기병대는 독일군의 포화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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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보도: 다음 날 전장을 방문한 독일 및 이탈리아 종군 기자들은 이들의 용맹함을 본국에 알리는 기사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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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날조: 독일군은 병사들의 두려움 때문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크로안티의 기병 돌격을 날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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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 내용: 폴란드군이 너무 멍청해서 전차가 뭔지도 모르고 랜스를 들고 무모하게 돌격했다가 처참하게 몰살당했다고 왜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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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급력: 이 자극적인 날조는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수백 년 이어져 온 폴란드 기병대의 명성은 멍청함과 무모함으로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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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폴란드 기병대에 대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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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폴란드 기병대는 결코 멍청하거나 무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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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의 이유: 자살 돌격을 감행한 이유는 아군의 후퇴를 위한 용맹한 희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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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 대상: 전차를 향해 돌격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결코 전차를 상대로 한 돌격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군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전차의 표적이 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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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주무기: 칼과 창을 들고 있던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주무기는 결코 창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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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주무기: 진짜 주무기는 소총과 대전차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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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창의 역할: 칼은 부무장이었고, 창은 대부분 깃발을 단 기창이거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식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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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 능력: 폴란드 기병대는 전차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 아니며, 기계화가 끝나지 않았을 뿐 소총과 대전차 무기로 무장했다. 다만 그 수가 적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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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실제로 이날 폴란드 기병대는 WG35 대전차 소총을 사용했고, 이로 인해 많은 독일 전차들이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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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오해: 독일군의 선동이 매우 자극적이었던 탓에, 폴란드 기병대의 무모한 전차 돌격에 대한 오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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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왜곡: 이 일은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 6년 뒤 독일도 같은 수모를 겪었다.)
5. 다음 탐구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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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요약: 오늘 탱크에 창을 들고 돌격했다고 오해받는 비운의 영웅들인 폴란드 기병대(울란)와 그들의 몰락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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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제: 근현대에는 거의 모든 서구 열강이 기병대를 운용했으므로, 다음 시간에는 몽골의 후예들이자 자유 유랑민이며, 푸틴이 혐오하지만 동시에 부활시키고 싶어 하는 모순을 지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코사크 기병대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l4Q16ntV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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