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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지형지물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교훈과...적군도 멍청이가 아니라는 교훈과...개인소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패전사이다.

by 리치캣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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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지형지물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교훈과...

적군도 멍청이가 아니라는 교훈과...

개인소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패전사이다. 

패전사 이야기 68편 : 웨이갈 계곡의 혈투! : 와낫 전투

 

https://www.youtube.com/watch?v=LaAMJRza_QQ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와낫 전투는 미군의 높은 사상자 비율로 인해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영상은 2008년 와낫 계곡에서 벌어진 이 전투의 배경,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미군의 전초기지건설, 탈레반의 공격, 그리고 미군의 대응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전투의 치열함과 함께 전투의 교훈을 강조합니다. 특히, 지리적 불리함, 정보 부족, 그리고 장비 결함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미군의 피해를 키웠음을 지적합니다. 이 전투는 전략적 판단의 중요성과 함께, 실전에서의 장비 문제점을 드러낸 사례로, 군사 교육에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핵심 용어
  • 와낫 전투: 2008년 아프가니스탄와낫 계곡에서 미군탈레반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미군에게 큰 피해를 안겨주었고, 여러 문제점을 드러낸...

1. ⚔️ 웨이갈 계곡의 와낫 전투

 
  • 2008년 아프가니스탄의 와낫 전투에서 미군의 사상자 비율이 75%에 달했으며, 이는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큰 피해를 입힌 전투 중 하나로 평가된다.

  • 미군기지 주변은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고, 적절한 방어망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탈레반의 공격 징후가 나타났으나 미군은 이를 간과하고 안일하게 대응하였다.

  • 기지는 불완전한 방어 시스템과 지역 주민과 아프간 경찰의 지원을 받는 탈레반병력의 패거리들에게 노출되어 있었고, 이들은 전투 전부터 벌어진 미군의 오인 사격사건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1.1. ️ 와낫 전투 개요
  • 200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와낫 전투는 미군의 사상자 비율이 75%에 이르렀으며, 이는 베트남전 이후 처음 발생한 수치이다.

  • 기지에 주둔하던 48명의 미군중 9명이 전사하고 27명이 부상을 입어, 피해가 극심한 전투였다.

  • 이 전투는 2009년에 벌어진 캄데시 전투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겪은 가장 격렬한 전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1.2. ️ 웨이갈 계곡의 전초기지 구축
  • 2008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근처 누리스탄지역에 탈레반으로의 보급품을 차단하기 위해 전초기지를 세웠다.

  • 이 지역은 웨이갈 계곡을 포함한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둘러싸여 있다.

  • 7월 8일, 미군은 주기지인 캠프 블레싱근처에 순찰 기지인 컬러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별도의 관측소인 탑사이드도 세웠다.

  • 이 기지에는 미 173 공수여단 503 보병연대 소속 병력이 약 48명과 아프가니스탄군 24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 또한, 기지에는 59경 기관총과 마크 19 자동 유탄 발사기, 토우 미사일 분대 등 다양한 무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1.3. ️ 기지의 지리적 취약성
  • 기지의 지리적 위치가 좋지 않아,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에서 기지의 건설 공사가 쉽게 노출되었다.

  • 기지 내에서는 여러 명의 성인 남성들이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는 병사들에게 불안감을 유발했다.

  • 2009년 캄데시 전투에서 낮은 지대에 위치한 기적인 관계로 미군이 큰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

  • 캄데시 전투에서 미군 8명이 전사한 것은 기지의 위치와 상황이 매우 위험했음을 나타낸다.

  • 기지가 공사 중이었던 관계로 완벽한 방어망을 갖추지 못했고, 방벽을 세우는 장비도 고장 나서 불안한 상태였다.

1.4. ️ 미군 방어의 위협 요소
  • 미군은 기지 내부의 병력과 무장만으로 방어가 가능하다고 예상했지만, 추가 장비 도착에는 시간이 걸린다.

  • 탈레반병력은 소수로 알려졌으나, 다른 지역의 병력이 은밀히 합세하고 있었고, 이는 미군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 기지 공격을 감행한 탈레반은 지역 아프간 경찰과 주민들에게서 무기와 탄약 지원을 받았다.

  • 전투 전에 발생한 오인 사격 사건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고, 이는 미군의 방어에 악영향을 미쳤다.

  • 여러 방면에서의 공격 징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상황을 경시하여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된다.

 

2. ⚔️ 탈레반의 기습 공격

 
  • 7월 13일 오전 4시경, 탈레반이 기관총RPG 로켓, 박격포 등을 이용해 기지와 관측소에 기습 공격을 시작했다.

  • 기지 주변의 건물들에서 끊임없는 총알과 로켓이 날아왔으며, 탈레반은 공격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여 미리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 200여 명의 탈레반은 기지에 배치된 120mm 박격포토우 미사일 발사대, 59 경기관총 등 강력한 무기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 전투 시작 20여 분 만에 미군4명이 전사하고 대부분의 병력이 부상을 당해, 특히 외곽의 탑사이드 관측소에 대한 공격이 치명적이었다.

  • 기지 내의 미군들은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일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고, 캠프 블레싱에서는 155mm 포로 지원 사격을 했다.

 

3. ⚔️ 웨이갈 계곡 전투의 전개

 
  • 관측소의 방어망이 뚫리고, 순찰 기지 칼럼의 일부 장벽도 탈레반에게 돌파당하며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 기지 내로 침투한 탈레반들과 수류탄 등을 던지며 근접 전투가 벌어졌다.

  • 이 전투 중 관측소의 탄약 재보급을 하던 조나단 프로스트럼 중위와 제이슨 호바트 상병이 전사하였다.

  • 관측소의 병사들이 전사하거나 대부분 주기지로 후퇴한 가운데, 심각한 부상을 입은 피치 화사만 남아 끝까지 싸웠다.

  • 전투 시작 1시간 뒤, 두 대의 아파치 공격 헬기와 프레데터 무인기가 기지 상공에 도착하며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4. ⚔️ 웨이갈 계곡의 혈투와 전투 결과

 
  • 미군의 항공 전력인 B1 랜서 폭격기, F-15, A10 등이 지원하며 전세가 역전되었다.

  • 이 치열한 전투는 약 2시간 뒤에 종료되었다.

  • 관측소 근처 전투에서만 9명의 미군이 전사하였고, 전체적으로 27명의 병사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 탈레반측 또한 50명 이상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5. ⚔️ 전투 결과와 그 여파

 
  • 이 전투의 결과는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전투 이후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비극적인 결과에 분노하며 정부에 항의하였다.

  • 조사가 진행되었으나, 현장 지휘관들은 적절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지 않았다.

  • 전투에서 미군의 주력 소총인 M4A1의 문제가 드러났고, 실제 전투에서 고장이 잦았다.

  • 와낫 전투는 이후 미 육군의 군사 교육에서 자주 언급되며, 미국 내 여론이 좋지 않게 변하였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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