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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격포. 떵떵 소리가 나면서 포탄이 나간다고 해서...똥포라고도 하고,,, 잘 안맞아서 똥포라고도 하고,,, 들고 다니기 힘들다고 똥포라고도 하고...ㅎㅎㅎ
아뭏든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통상 박격포를 똥포라고 군대에선 자주 불렀다.
그런데...난 문무대에서 훈련할때도,,,보병학교에서 훈련할때도...
박격포가 좋았다.
이 만큼 신속하고 근접해서 보병에게 강력한 화력지원을 해주는 무기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고속유탄발사기도 있지만...라떼엔 보급이 박격포만큼 많지는 않았다.
물론 K-4 고속유탄발사기 분해결합도 보병학교에서 해보기는 했다.
어쨌든...박격포의 고각사격 능력과 단순하고 신속한 대응력은 소부대 전술에 필수적인 화력체계임이 분명하다.
허리분쇄기 "81mm 박격포" / 보병대대의 화력을 책임진다! [지식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77DEwiiyEGs
이 영상은 보병 화력의 핵심인 81mm 박격포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15세기부터 발전해온 박격포의 기원, 스토크스 박격포의 등장, 그리고 한국군에 도입된 다양한 박격포 모델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박격포가 보병과 포병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과 변화에 대해 잘 보여줍니다. 또한, 최근 신형 박격포의 개발 소식도 포함되어 있어 군사 역사와 기술 발전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이 영상을 통해 보병 화력의 중요성과 군사 장비의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핵심주제
81mm 박격포는 보병 전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 81mm 박격포는 보병과 함께 작전하며, 고폭탄을 적에게 쏘는 싸고 가벼운 무기 시스템이다.
- 이 박격포는 전투의 효과성을 높이며, 보병대대의 화력을 책임지는 주요 화력 지원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81mm 박격포의 역사적 발전은 군사 기술의 진화를 반영한다.
- 스스로의 역사 속에서 81mm 박격포는 여러 차례의 개량과 기술 발전을 겪어왔다.
- 국내에서는 M29의 국산화와 더불어 다양한 모델이 도입되었으며, 이는 무기체계의 국산화를 대표하기도 한다.
81mm 박격포의 중량은 보병들에게 큰 부담을 준다.
- 중량이 약 43kg에 달하는 박격포는 작전 시 여러 명의 지원이 필요하며, 허리에 부담을 주어 '허리 분쇄기'라는 부정적인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 전투에서의 피로는 여전히 문제이며, 이는 장병들의 전투 효율성에 영향을 끼친다.
신형 81mm 박격포는 자동화와 경량화를 통해 현대화되고 있다.
- 2019년에 개발된 신형 박격포는 기존 모델보다 약 8.5kg 가벼운 34kg 중량으로, 정확성과 사거리를 증가시켰다.
- 자동화 사격 체계의 도입으로 비숙련자도 3분 이내에 사격할 수 있어, 전투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타임라인
완벽노트(GPT-4o) 적용됨1. 💣 81mm 박격포의 역사와 발전00:00:00
- 스토크스 박격포는 현대적인 보병용 박격포의 원조로, 1915년 영국 군수부대에서 개발되었다.
- 스토크스 박격포는 참호 공격용으로 효과적이었으나, 포탄이 공기역학적이지 않아서 사거리와 정밀도가 다소 떨어졌다.
- 에드가 프랑은 1917년, 스토크스 박격포에 맞는 박격포탄 설계를 요청받고, 1918년에 81mm 구경 박격포탄을 선보였다.
- 프랑의 81mm 박격포탄은 눈물 방울형 몸체의 안정판 덕에 사거리와 정밀도가 대폭 개선되었다.
- 1927년에는 스토크스 박격포를 개량한 브랑 멜 27이 등장하며 박격포의 성능이 더욱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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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하나, 가장 가깝고 빠르게 보병을 지원하는 81mm 박격포에 대해 [음악]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지식 스토리입니다. 이번에는 보병 화력의 꽃, 81mm 박격포에 대해 알아볼 텐데요. 박격포의 조상인 구포는 15세기부터 등장했지만, 현대적인 보병용 박격포는 스토크스 박격포가 원조입니다. 영국 남자인 스토크스의 직업은 토목 공학자로, 다리 2개와 댐 건설에 참여했다가 철도 장비 및 크레인 제조업체를 거쳐 1915년부터 영국 군수부대에서 일했습니다. 스토크스는 영국 군수부대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박격포를 개발했고, 1915년 서부 전선에서 첫 실전을 치렀는데요. 하지만 스토크스 박격포는 포탄이 공기역학적이지 않아서 사거리와 정밀도 모두 떨어졌지만, 참호를 때리기에 이거만한 게 없어서 1916년부터 양산에 들어갔죠. 한편, 프랑스 남자인 에드가 프랑은 1917년 9월 프랑스 국무부 차관이 발명가들에게 보낸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 내용은 스토크스 박격포에 맞는 박격포탄을 설계해 달라는 거였고, 이에 프랑은 1918년에 81mm 구경 박격포탄을 선보였습니다. 눈물 방울형 몸체의 안정판이 달린 박격포탄 덕에 스토크스 박격포의 사거리와 정밀도가 대폭 개선되는데요. 1925년 1월, 프랑은 여러 박격포탄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고, 1927년에는 스토크스 박격포를 개량한 브랑 멜 27을 선보였죠.
2. ️📜브랑 벨 31의 역사와 한국군의 무기 도입00:01:43
- 브랑 멜 27은 계량을 거쳐 1931년에 브랑 벨 31로 시판되었으며, 미국은 1935년부터 원 박격포를 면허 생산하기 시작했다.
- 광복 이후, 한국은 국군 창설 직후 원을 교육 훈련용으로 공여받았고, 1949년까지 208문의 애원을 공여받았다.
- 6.25 전쟁 발발 시 2문의 애원을 추가로 공여받았고, 전쟁이 끝났을 당시 8.22문의 애원이 남아 있었다.
- 이후, 1952년부터 미군이 도입한 M29 박격포로 교체되었는데, M29는 알루미늄 주조 합금 덕분에 30% 가벼워지고 사거리가 1.5배 늘어났다.
- 1966년부터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과 함께 신형 장비인 M2 19를 보급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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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 멜 27은 바로 시판되지 않고 몇 가지 계량을 거쳐 브랑 벨 31로, 1931년부터 시판됐습니다. B 31을 본 미국은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5년부터 원 박격포란 제식 명령으로 면허 생산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극적으로 끝나고 광복을 맞이한. 한국은 국군 창설 직후 원을 교육 훈련용으로 공여받았죠. 그렇게 1949년에 주한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208 내문의 애원을 공여받았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2문의 애원을 공여받았으며, 6.25 전쟁이 끝나자 8.22문의 애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애원은 이 군 지역 화기 중대가 쓰다가 1952년부터 미군이 도입한 M29 박격포로 교체됐습니다. M29는 중량을 줄이고자 리와 폭파는 알루미늄 주조 합금으로 만든 덕에 원보다 30% 정도 가벼워졌고, 사거리는 1.5배 정도 늘어났는데요.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면서 1966년부터 한국군 파병부대의 신형 장비 지원이 결정됐고, 당시 신형 장비인 M2 19를 보급받기 시작했죠..
3. 국산화된 M29 박격포와 그 발전 과정00:02:47
- 1970년대 무기체계 국산화가 추진되면서,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국산화 모델 KM29A1이 1975년부터 야전에 배치되었고, M1N 현역 부대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 M29의 전장은 115mm, 전체 중량은 43kg이며, 조작 인원은 두 명에서 다섯 명으로, 발사 속도는 분당 8발에서 30발이고, 사거리는 72m에서 4,737m까지다.
-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미 해병대가 영국군의 1.16A2 박격포를 주목하고, 이에 따라 M29를 대체할 신형 모델로 1986년에 MEE 박격포를 도입했다.
- 미군의 신형 모델 도입에 따라, 국방과학연구소는 M29의 전체 중량을 500g 줄이고, 최대 사거리를 1.4배 연장했으며, 지속 발사 속도를 25% 증가시켰고, 살상 반경도 약 1.360으로 향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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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0년대에 무기체계 국산화가 추진되면서 국방과학 연구소에 의해 개발된 국산화 모델 KM29A1이 1975년부터 야전에 배치됐고, M1N 현역 부대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현역인 M29가 어떤지 재원을 살펴보겠습니다. M29는 전장 115mm, 전체 중량은 43kg이며, 조작 인원은 두 명에서 다섯 명으로, 발사 속도는 분당 8발에서 30발이고, 사거리는 72에서 4,737m, 살상 반경은 17m입니다. 한편 미 해병대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군이 쓴 1.16A2 박격포에 주목했는데요. 이에 1952년부터 사용 중인 M29를 대체할 신형 모델로 1986년에 MEE 박격포를 도입했고, 1987년에는 미 6군도 도입했죠. 이처럼 미군이 신형 모델을 도입하자 화력에 진심인 포방부는 질 수 없었고, 국방과학 연구소에 신형 모델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쳤습니다. 연구소는 M29 보 전체 중량을 500g 줄이고, 마수를 부려 최대 사거리를 1.4배 연장하고, 지속 발사 속도를 25% 늘렸으며, 살상 반경도 1.360 정도 키웠는데요.
4. 박격포의 역사와 역할에 대한 설명00:03:58
- 포열 폭파 의 연결부를 관리하기 쉽게 단순하게 만드는 것을 잊지 않았고, 1996년부터 KM187이라는 제식명을 도입했다.
- 박격포는 보병과 함께 적에게 고폭탄을 선사하며, 매우 싸고 가벼운 무기 체계로 21세기까지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 박격포는 이름에 '포'가 들어가지만, 포병이 아닌 존재로 보병들에게는 무덤으로 불린다.
- 60mm 박격포 세 문은 일반 소총 중대 포반이 운용하지만, 주특기 1111로 시작하는 보병으로 구성되며, 81mm 박격포는 화기소대 및 화기 중대가 운용한다.
- 박격포 지원을 위한 신병이 거의 없어 인원을 충당하기 위해 주특기 번호를 변경하고 있으며, 81mm 박격포는 중량이 10kg 이상이며, 가장 묵직한 포열은 15.5k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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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포열 폭파 의 연결부를 단순하게 만들어 관리하기 쉽게 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고, 1996년부터 KM187이란 제식명 도입했죠. 총유탄이나 유탄 발사기가 있기 전부터 박격포는 보병과 함께하며 적에게 고폭탄을 선사해 주는 든든한 존재였는데, 견인포나 자주포보다 훨씬 싸고 가벼운 박격포는 21세기까지 살아남아 현역의 자리를 지키는 든든한 국밥 같은 무기 체계입니다. 하지만 박격포는 분명 이름의 '포'가 들어가지만, 포병이 듯 포병이 아닌 존재라 보병들의 무덤이라 불립니다. 다 일반 소총 중대 포반 60mm 박격포 세 문을 운용하지만, 주특기 1111로 시작하는 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기소대, 화기 중대는 81mm 박격포 12문을 운용해 주특기 번호도 다른 박격 포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박격 포병이 힘든 건 미필도 알 정도라, 박격 포병을 지원하는 신병은 거의 없어서 인원을 할당하기 위해 주특기 번호를 바꿔서라도 인원을 충당하고 있는데요. 장간조립교 155mm 견인포와 더불어 육군에서 고생을 새빠지게 하는 헬보직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4.2인치 박격포부는 람보가 와도 들 수 없어서 차량으로 옮기지만, 81mm 박격포는 그냥 무덤입니다. 81mm 박격포는 폭판, 포다리, 포열로 나뉘는데, 각각 중량이 10kg 거뜬이 넘고, 가장 묵직한 포열이 15.5kg입니다..
5. ️⚙️81mm 박격포의 무게와 작전 환경의 어려움00:05:13
- 81mm 박격포는 중량이 무거워서 몇 사람이 함께 들어야 하며, 이로 인해 허리에 부담을 주는 문제가 발생한다.
- 이 박격포는 보병부대에 배치되어 포병과 보병의 고통을 동시에 겪는다.
- 실제로 두세 명이 각각 42.5kg에서 43kg에 이르는 박격포를 나눠서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겨냥대를 드는 일도 생긴다.
- 박격포는 적 공격에 취약해 개활지 대신 산속으로 숨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중량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 미 199의 후속작인 KM 187은 전투 피로를 줄여주지만, 여전히 폭파 과정은 허리 분쇄기의 역할을 하고 있어 신형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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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중량이 사람이 못 들 정도가 아니다 보니, 무반동총처럼 완전 군장에 얹어 버리는 허리 박살 나는 일도 발생합니다. 벌어집니다. 81mm 박격포가 이렇게 새빠지게 고생하는 이유는 보병이 포병이기 때문인데요. 81mm 박격포는 이름에 포가 들어가는 만큼 포병으로 교육받지만, 정작 배치된 곳은 보병 부대여서 포병과 보병의 고통을 다 겪을 수 있죠. 심지어 두세 명이 42.5kg, 43kg 나가는 81mm 박격포를 나눠서 들어야 하다 보니, 한 명이 겨냥대를 들고 행군하는 앙증맞은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런 박격포는 겨냥대, 겨냥틀을 활용해 사격하지, 겨냥대 그냥 쇠막대로 기관총으로 치면 총열 여러 개를 짊어지는 아찔한 중량을 자랑하는데요. 박격포는 견인 포만큼 적의 공격에 취약해서 개활지 대신 산속으로 들어가 숨는 게 생존에 도움이 돼서, 그 무거운 걸 짊어지고 산을 타야 합니다. 그래도 미 199의 후속작인 KM 187인 포열과 포다리 중량과 무게 중심이 적절해서 전투 피로를 상당히 덜어줬지만, 폭파는 어림없는데요. 폭파는 어떻게 들든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서 허리를 강제로 꺾이게 만드는 허리 분쇄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방부 M 29와 KM 187이 노후화된 걸 모를 순 없어서 신형 모델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6. 신형 81mm 박격포의 자동화 사격 체계00:06:27
- 신형 모델은 경량화를 통해 전투 필요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무거운 수동식 기재 대신 가벼운 자동화 사격 체계를 적용했다.
- 디지털 가늠자를 활용해 더 신속하고 정확한 사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2014년 12월 개발 착수 후 4년간 연구를 거쳐 2019년 8월 29일 개발에 성공했다.
- 2024년에는 본격적인 실전 배치가 예정되어 있으며, 신형 박격포는 8.5kg 가벼워진 34kg 중량과 함께 최대 사거리와 살상 반경이 증가했다.
- 자동화 사격 체계 덕분에 비숙련자도 3분 이내에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며, 차량 운반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 하지만 여전히 장병들이 34kg의 중량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현실이 있으며, 겨냥할 때는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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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모델은 무거운 수동식 사격 기재 대신 가벼운 자동화 사격 체계를 적용하고 경량화를 통해 전투 필요를 줄이는 걸 목표로 했는데요. 특히 무거운 겨냥대, 겨냥틀 대신 각종 센서를 활용하는 디지털 가늠자를 통해 더 신속하고 정확한 사격 임무 수행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2014년 12월 개발에 착수하고 4년간의 연구 개발 끝에 2019년 8월 29일 신형 81mm 박격포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2024년에 본격적인 실전 배치가 이루어질 예정인데요. KM11 4는 KM187에 비해 8.5kg 가벼워진 34kg 중량을 자랑하고, 최대 사거리와 살상 반경이 늘어났죠. 그 이유는 신형 81mm 성형 파편탄이 120mm 박격포탄과 비슷한 살상 범위를 자랑하며, 이는 155mm 포탄의 65에서 85% 수준입니다. 게다가 자동화 사격 체계와 디지털 가음 자덕 덕분에 비숙련자도 3분 이내로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며, 차량 운반을 전제로 설계됐습니다. 하지만 43kg짜리 덩치를 짊어지는 마당에, 34kg 아리 쇠똥이 짊어지지 않을 리 없었고, 여전히 장병들이 발에 땀나게 짊어지고 다니는데요. 그래도 겨냥할 때는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 있죠. 보병 화력의 꽃, 81mm 박격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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