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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pmTwiGgyjQ
이 영상은 '귀주 대첩'을 통한 고려와 거란 간의 격렬한 전투 배경과 전략을 심도 있게 조명합니다. 귀주 대첩의 중요성과 고려군이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는지를 분석하며, 당시 전투에서 최강의 적군을 맞아 싸운 고려의 결단과 역량을 잘 설명합니다. 귀주 대첩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고려의 운명을 건 중대한 선택이었다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핵심주제
귀주 대첩은 고려의 국력을 결정짓는 전투였다.
- 귀주 대첩은 20만 보병과 1만 기병이 동원된 대규모 전투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건이었다.
- 이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고려는 확실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 역사학자들은 이 전투가 고려의 병력 총동원을 나타내며, 전투 후 국력이 급속히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결전의 관념과 한반도의 전쟁 철학은 독특하다.
- 한국 전쟁 관념에서는 적을 끝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강한 의식이 존재한다.
- 이러한 사고 방식은 전반전 후 재침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전투에서 확인된다.
- 을지문덕과 이순신 장군의 전투 방식은 이와 같은 전쟁 철학의 대표적인 예로 자리 잡았다.
거란군과 몽골군의 전투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 거란군은 완전 무장된 기병부대로, 특정 조건에서 강력했지만 유연성이 부족했다.
- 반면 몽골군은 멀티플레이어 군대로서 장기 생존력이 뛰어나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 이 두 군대의 대비는 전투력과 전술적 준비에서 체계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귀주 대첩에서의 강감찬의 전략은 주효했다.
- 강감찬은 적의 의도를 예상하고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가져왔다.
- 그의 전략은 적군이 정렬하기 전에 혼란을 초래하며, 전투 수행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 이를 통해 고려군은 귀주 대첩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타임라인
1. 귀주 대첩의 전투와 고려의 국력00:00:00
- 좋은 질문이에요. 원정이 실패하며 적군이 물러가는 상황에서, 그들이 물러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승전이 되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 말에서 '무찌른다'와 '물리친다'는 개념은 상대방이 물러가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 귀주 대첩은 적군이 귀국하려는 길을 가로막고 싸운 선택한 전투입니다.
- 이 전투에는 20만 보병과 1만 이상의 기병이 모였으며, 이는 고려의 국력이 총동원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 이처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려면, 그에 따르는 군량과 보급도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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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좋은 질문이에요. 왜냐하면 소배 아이 이끄는 신만 대구는 일단 원정이 실패했죠. 그 본인들이 '아, 우리 원정이 실패했어'라고 인식을 하고 물러가고 있었어요. 그 물러가게 내버려 두면 자동적으로 승전이죠. 우리나라 말에 '무찌른다', '물리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건 뭐냐면 상대방이 물러가게 만들면 무찌르는 거고 물리치는 거예요. 무찌른다, 물리친다, 어원도 같은 원이고요. 물린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귀주 대첩은 불가피한 전투가 아니라 선택한 전투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차피 원정에 실패한 적군이 우리나라 땅을 벗어나려고 지금 고구마 돌아가고 있는데 그 길을 가로막고 싸운 전투가 귀주 대첩이에요. 그런데 귀주 대첩은 20만 보병과 1만 이상의 기병이 한 번에 몰려 있었잖아요. 고려군 병력이 그건 뭐냐면 거기에 고려의 국력 전부가 다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도 무방해요. 왜냐하면 옛날 전근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만 명이 됐든 10만 명이 됐든 20만 명이 됐든 그 동원된 병력의 연인원, 공 하나를 더해야지 총 동원 인력이 나와요. 예를 들면 20만 명을 동원했다 그러면 연인원은 200만 명이에요. 왜냐하면 20만 명이 빠진 공백을 다른 마을 주민들이 대신 일을 해주고 그 생계를 대신 책임져 주면서 해야 되지, 그 보상해 줘야 되지. 그다음에 또 뭐가 있습니까? 20만 명에게 창을 지어주고 싸움을 시키려면 그 사람들의 군량미를 나르고, 그다음에 그 무기를 보고 공급하고 정비를 하고 그런 것들이 그 인원이 길게 줄지어서 있어야 되고, 그 사람들이 군량을 나르는 사람들도 군량을 먹어야 돼요.
2. 귀주 대첩의 필요성과 고려의 국력00:01:36
- 모든 보급로와 보급 체계를 동원하면 최소한의 인원 숫자가 증가하며, 역사학자들은 이를 고려해 총 200만 명이 동원된 현장이 있었다고 본다.
- 이는 고려의 국력을 전부 다 소모한 상태를 나타내며,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망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 그러나 소배압 10만 대군을 막아서 싸운 것은 결국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택이었다.
- 귀주 대첩을 행한 이유는 후속 전쟁이 이어지면 확실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역사적인 전투를 통해 국력이 급격히 감소했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3차 침공에서의 병력이 오히려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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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모든 보급로, 보급 체계와 그런 것들이 다 동원이 되는 걸 계산하면...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최소 공 하나를 더 붙여요. 병영이 10만 명이다. 그러면 100만 명이 기본인 거예요. 근데 당시 고려의 인구를 고려해 보면, 총 연인원 200만 명이 동원된 현장이 규지 있었다라는 것은 고려의 국력을 전부 다 갈아 넣은 상태예요. 그 상태에서 어떻게 됩니까? 나라가 망하는 거예요.. 나라가 망하는데, 나라가 망할 수도 있고 안 망할 수도 있는 것을 굳이 그 선택을 해서 물러가고 있는 소배압 10만 대군을 막아서서 싸운 거예요. 그러니까 귀주 대첩, 애초에 왜 했어야 했냐, 이것은 굉장히 좋은 질문인 거죠. 그러면 귀주 대첩을 왜 했어야 했냐면, 이때 제가 계산을 해보면, 한두 번의 전쟁이 더 이어진다면 확실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자, 2차 침공에 있어서 통주 전투에 30만 명이 동원됐어요. 30만 명이 동원된 상태에서 그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각 산성과 군사 진지의 나름의 병력들이 다 남아 있는 상태에서 야전에 30만 명을 동원했어요. 그런데 3차 침공에서, 각 성이 산성은 물론이고 개경 아지도 텅 비어 있다시피 한 상황에서 모으고 모은 게 20만 명의 병력이었어요. 그러니까 야전 통주 기조를 비교했을 때는 국력이 2로 꺾인 상태였지만, 전체를 비교했을 때는 제가 봤을 땐 절반 혹은 절반 이하로 국력이 꺾인 상태였어요.
3. 고려의 삼차 침공과 귀주 대첩의 중요성00:03:00
- 고려가 반복된 침공에 맞서 싸울 때마다 국력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이는 더 큰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 귀주 대첩에 패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전쟁의 가능성을 이겨낼 도박으로 볼 수 있었다.
-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를 상대로 일곱 번 싸워 이겼지만, 전투 때마다 국력이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 고려는 거대한 제국과의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번 3차 침공에서 반드시 적군을 소멸시켜야 한다고 결심했다.
- 당시 군사적으로는 최강의 국가인 요나라를 상대로 결전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모든 것을 걸어 싸운 것이 귀주 대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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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 번의 침공을 그 고려가 몸빵으로 막을 때마다 막아낼 때마다 국력이 정말 계단식으로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이 상태에서 물리쳐 봐야 그다음 전쟁, 그 다다음 전쟁 이어지면 확실하게 멸망한다는 거죠. 버틸 수 없이 뭐냐, 이것은 확실한 장기적 자살이다. 그래서 어 비록 귀주 대첩에 만약에 패하면 빠른 멸망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길 ... 가능성이 있기도 한 도박이 되는 반면에, 물러나는 소백합의 10만 대군을 그냥 두고 보는 것은 어 나라가 멸망하기를 작정한 결과다 볼 수가 있고요. 그리고 이미 고구려의 예가 있죠. 고구려 같은 경우는 수나라, 당나라를 상대로 일곱 번 싸워서 일곱 번을 이겼어요. 여덟 번째 한 번 지고 멸망했어도 정말 잘 싸웠고, 수나라와 당나라군을 전면전에서 일곱 번이나 맞서 싸워서 물리쳤지만, 한 번 싸울 때마다 고구려의 국력은 중국의 국력이 깎이는 것에 비례해서 그보다 훨씬 더 뚝뚝 떨어지듯이 깎였다걸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체급 자체가 다르고 회복력이 다르기 때문에, 거한 제국의 요나라 제국의 회복력과 고려의 회복력은 다르기 때문에 전쟁이 반복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고려로서는 주금을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상황이에요. 그러느니 이번 3차 침공에 있어서 확실하게 저 거한의 정해 병사 10만 명을 고려 땅 안에서 소멸시켜 다시는 전쟁의 가능성을 고려 땅 안에서 소멸시켜 거한이 다시는 전쟁을 할 수 있는 의지와 전쟁 수행 능력을 꺾어 놓지 않고서는 고려라는 나라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라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위험한 도박을 한 거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시면 돼요. 당시에 경제적으로 세계 주원은 송나라에 있어요. 당시 송나라는 그때 북송이 있었고, 북송은 학자들마다 추산하는 게 다르지만 전 세계 GDP의 40%, 60%로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대충 절반이 그러면, 군사적인 차원에서 G1 누구였느냐, 거란이 있어요. 세계 최강의 국가였죠. 이 세계 최강의 국가가 걸어오는 국가 총력전을 우리가 여러 번 받아낼 수 없으니 한 번 싸움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하는 게 귀주 대첩이자 사수 대첩인데, 이미 수나라가 물러가고 있었어요.
4. ️전투에서 적을 끝까지 쫓아 몰살시키는 한국의 전쟁 관념00:05:05
- 을지 무관 장군은 수나라가 물러가는 상황에서 위험한 작전을 펼쳐 성공적으로 적을 몰살시켰다.
- 노량 해전에서는 일본군이 이미 패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이 적의 전력을 최대한 파괴하기 위해 미련을 두었다.
-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았거나 적이 여전히 가까이에 있을 경우, 적을 끝까지 처치해야 한다는 관념이 존재한다.
- 이순신 장군은 노량 해전에서 가능한 많은 적의 선박을 침몰시키며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을 꺾으려 했다.
- 이러한 사고 방식은 한반도 주민만의 독특한 전쟁 관념으로, 적이 재침공할 가능성을 고려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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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가 물러가고 있었는데 을지 무관 장군이 굳이 살수에서 기다렸다가 그들을 위험한 작전을 펼쳐서, 물론 작전이 잘 성공했지만, 위험한 작전을 펼쳐 가지고 그들을 몰살시킨 거거든요. 만약에 실패했으면 고구려가 거꾸로 털리는 거예요. 노량 회전도 이미 일본군은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본국으로 철수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미 끝난 전쟁인데 굳이 그걸 쫓아가서 일본 측 사료에 의하면 병력의 절반, 그다음에 물자의 절반, 그 물자와 일본군 전함, 선박이 그 절반 이상을 이순신 장군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특히 본인이 전사하여 돌아가시면서 그들을 몰살시킨 거거든요. 이건 뭐냐면, 한반도에는 그런 관념이 있어요.. 어떤 관념이 있냐면, 우리나라는 주변국에 비해서 촉박하고 인구가 적고 생산력이 적고, 그렇기 때문에 인구와 물자의 회복력도 더디기 때문에 생산력과 회복력과 물량, 그리고 인구가 모두 우월한 적이 쳐들어와서 물러갈 때, 물러간 적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어요. 우리의 체력은 이렇게 뚝뚝 꺾여서 전쟁 수익 능력이 떨어지는데, 적이 계속 왔다 갔다, 쳐들었다가 나갔다가 반복하면 우리는 고구려처럼 아무리 잘 싸워도 소멸한다는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어떤 전쟁 관념이 있는지 아냐면, 한국만의 관념으로 어떤 전쟁 관념이 있냐면,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 때, 아니면 이들이 아직 우리의 사정거리에 있을 때, 죽일 수 있을 때 최대한 죽여놓고 전쟁을 끝낸다고 하는 관념이 한반도 주민만의 관념이 있어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노량 예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이순신 장군은 노량 예전 때 최대한 많은 적의 선박을 한 척이라도 더 침몰시키며 명령을 하면서 노량해전을 지휘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뭐냐면 일본은 배를 만드는데 엄청나게 많은 국력을 소모해서, 그 상태에서 많은 선단을 가지고 조선을 침공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을 꺾어 놓겠다는 거예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적은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귀주 대첩과 살수 대첩, 노량 회전과 같은 굳이 물러가는 적을 끝까지 따라가서 몰살시키는 것은 한반도 주민만이 가지는 굉장히 특징적인 사고 방식이에요.
5. 전쟁 관념의 차이: 한반도 vs 중원00:07:07
- 고려와 거란 전쟁에서는 전투 수행 능력을 최대한 꺾어 놓지 않고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한 의식이 있었다.
- 입장할 때는 예쁜 마음을 가지고, 나갈 때는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전쟁 관념이 존재한다.
- 이러한 사고 방식은 유럽 전쟁에서는 드물고, 특히 중국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 이순신과 질린 장군 간의 대립은 서로 다른 전쟁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반도 주민과 중원 주민 간의 태생적 갈등이었다.
- 거란군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세계 최강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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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사고 방식이 고려와 거란 전쟁 때 한 번 더 있었죠. 2차 침공에서 거란군이 물러갈 때, 양규의 흥화진 부관이었던 정성이 뭘 했습니까? 거란군 40만 명의 본대가 압록강을 반쯤 넘어갔을 때, 아직 압록강을 넘지 못한 거란군의 배를 쳐 가지고 그들을 몰살시켜 버렸잖아요. 이것은 기회가 있을 때 적의 전투와 전쟁 수행 능력, 국력을 최대한 꺾어 놓지 않고는 우리가 생존할 수 없다라고 하는 그런 절박한 한반도 주민만이 가지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전쟁 의식이 있는 거예요.. 들어올 때는 마음을 예쁘게 하지만 나갈 때는 일한다. 맞습니다. 들어올 때는 마음을 예쁘게 하지만, 나갈 때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나갈 때는 죽이던가 아니면 최소한 불구가 된 채로 내보내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라는 그 특유의 전쟁 관념이 있습니다. 이게 왜 특이한 거냐면, 이런 사례는 유럽 전쟁 사이에서도 굉장히 드물고, 특히 중국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해요. 그래서 이순신과. 질린 장군이 노량 해전을 앞두고 질린 둘이 싸웠잖아요. 질린 장군이 이순신 장군을 그렇게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질린 장군은 이미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가는데, 전쟁이 지금 끝났습니다. 왜 없는 전투를 만들어서 해야 됩니까? 이 중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중국인으로서 중국을 침략한 오랑캐가 만리장성을 넘으면 끝나잖아요. 하지만 이순신한테는 아니거든요. 그들은 또 올 건데, 또 오기 전에 작살해야 한다고 하는 게 한반도인의 전쟁 관념입니다. 그래서 이순신과 진린의 노량 회전을 앞두고 있었던 두 사람 사이에 전쟁은 두 사람이 마음이 안 맞았다기보다는, 한반도 주민과 중원의 주민으로서 서로 합치되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간의 태생적인, 어쩔 수 없는 싸움이었다는 거죠. 거란군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세계 최강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거란군이 어떻게 세계 최강인지 잘 몰라요.
6. 거란 정기 기병의 전투와 보급 시스템00:08:47
- 한국인의 탄생을 다룬 책에서, 거란 정기 기병은 기본적으로 세 마리 이상의 전투 말을 갖고 다닌다고 설명합니다.
- 이유는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 생명에 지대한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며, 두 마리 이상의 말이 필요합니다.
- 특히, 낙타는 짐을 옮기는 데 유리하여 군사 보급품을 운반하는 역할을 합니다.
- 따라서 거란의 정기 기병은 두 명의 부하를 데리고 다니며, 이 중 한 명은 보급을 위한 취사병이자 약탈병 역할을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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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를 제가 말씀드릴게요. 한국인의 탄생, 제가 책에 썼지만 여기서 말씀드리면, 책보다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거한 정기 전기라고 하는 것은 정의 기병을 전기라고 하는데, 거한 정기 기병은 기본적으로 세 마리 이상의 전투마를 갖고 다녀요. 왜 세 마리냐 하면, 어 정의기병이기 때문에 세 마리입니다. 두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는 유목 세계에서 기본이에요. 왜냐하면 유목 세계에서는 말 한 마리만 타고 가는 것은 인구 밀도가 지극히 낮은 그 드넓은 초원에 말이 달리고 있다 보면 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말이 다치거나 낙마했다면, 잃어버리면 그냥 죽는 거예요. 혼자 걸어다니니까.. 말없이 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초원 한복판에서 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사막에서 낙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거죠. 잃어버리는 거랑 똑같아요. 사막에서는 뭐 그냥 쪄 죽겠죠. 그렇게 되면 초원에서는 늑대가 나타나서 그 사람을 세상에서 존재를 지워버립니다. 그럼 말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한 마리의 말로는 위험하기 때문에 두 마리 이상의 말을 갖고 다니면서 그걸 갈아타고 다니는 게 기본인데, 당연히 정에는 그 투플러스 1이 돼서 세 마리의 전투 말을 갖고 다니고요. 한 마리 이상의 낙타가 배속이 돼요. 왜 한 마리 이상의 낙타가 배속이 되냐면, 낙타는 이제 짐을 옮기는 동물로서 말보다 뛰어나죠. 거란의 전기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어요. 이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 군사 보급품, 화살 같은 걸 계속해서 보급해 줘야 돼요. 뭘로 보급을 하냐, 낙타가 계속해서 보급하고 있는 거예요. 이 사람한테 낙타가 그 전열에서 계속해서 거란 전기는 싸움만 해요. 정의 기명은 계속해서 보급을 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게 낙타입니다. 근데 낙타가 무슨 AI 아니고, 사람처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죽인데, 낙타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거란의 정의 기병에게는 두 명의 부하가 딸려 있습니다. 왜 두 명의 부하가 딸려 있냐면, 한 명은 타초 기라고 하는 인원이 타초 고기는 뭐냐면, 보급을 위한 약탈병이자 취사병이에요.
7. ️🐜거란의 정예병과 군대 개미의 유사성00:10:36
- 거란의 정예병은 전투만 담당하며, 전투 시 자신의 밑에 있는 잡병들과 함께 행동한다.
- 이들은 전투에만 집중하는 군대 개미와 유사하며, 자기 몸을 돌보는 일을 전적으로 맡은 노예 개미가 필요하다.
- 거란의 기병은 원거리 및 근거리 전투를 모두 수행하고, 다양한 전투 양상에서 스스로 책임진다.
- 이들은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보급품과 치료 등을 부하들이 도와주며, 인류 역사상 기병 중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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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먹을 걸 담당해요. 약탈하고, 남의 것을 뺏고, 그다음에 이제 그 외국에 쳐 들어갔을 때 정복지의 주민들의 먹을 것을 뺏어서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면서 거란의 정예병, 자신의 상사, 주인을 섬기는 거예요. 그리고 말과 낙타가 먹을 건초와 같은 그런 가축을 위한 것도 이 사람들이 담당해요. 이 사람들은 이것만 해요. 거란의 정예병은 싸움만 해요. 간단하게 모든 잡무를 다하는 비서다. 이렇게 잡병이라고도 하는 정식으로는 수영 포 과정이라고 하는 인원이 있어요. 수영 포가는 모든 일을 하는 비서입니다. 그래서 거한 정예병은 타초 고기와 소형 포 과정 두 명을 자기의 운명 공동체처럼 끌고 다녀요. 데리고 다녀요.. 그러면 거한 정예병은 뭐라고 하냐면, 거한 정예병은 개미 중에 군대 개미라고 있습니다. 오직 전투만을 하는 개미예요. 이 개미는 전투만 해요. 군대 개미는 혼자 있으면 자기 몸을 청소하지 못해요. 그래서 노예 개미가 없으면 몸이 썩어서 죽어요. 자기 몸을 청소하는 법도 이 군대 개미는 까먹은 상태에서, 오직 싸움만 하는 전사 개미가 군대 개미예요. 그러면 자기를 돌보는 노예 개미를 다른 개미굴을 털어 가지고 다 싹 죽이고, 그 알과 애벌레를 탈출시켜서 노예 개미로 키우는 거예요. 이런 군대 개미가 아르헨티나 군대 개미 같은 식으로 여러 종이 있거든요. 이런 군대 개미처럼 거란의 정예 기병은 전투만 해요. 모든 전투 양상을 혼자 책임져요. 원거리 사격, 근거리 사격, 그리고 궁병이 따로 없어요. 그 다음에 창병, 그 다음에 돌격병, 뭐 이런 게 따로 없이 근거리 사격, 원거리 사격, 근접 점, 돌격, 추격, 결투, 세계 역사상 기병이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합니다. 도마토 하고 자기는 전투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전투할 때 옷 갈아입혀 주고, 보급품 챙겨주고, 먹을 거 갖다 주고, 부상 치료해 주고 하는 것은 이 두 명의 부하가 전담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한 정예 기병의 1인 단체 정투 6은 인류 기병 역사상 최강이에요.
8. 몽골 기병의 전투력과 전술적 준비00:12:24
- 몽골은 역사상 최고의 기마 제국이지만, 기병의 전투력은 보병보다 5배에서 30배 강력하다.
- 따라서 기병 10만 명의 전투력은 150만 명의 보병에 해당하며, 귀주 대첩에서의 승리는 어마어마한 스코어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 전투에서 사용되는 화살은 최소 300발로, 종류가 다양하게 준비되었으며, 시간을 맞춰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 각 군사는 두 명의 지원을 받아 무장을 완성했으며, 갑옷은 최대 9세트까지 갖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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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몽골이 역사상 최고의 기마 제국이면 집단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건... 몽골군이 최강이었다. 상향 평준화된 건 하지만 특별히 선발된 엘리트들이 개개인이 가장 강했던 거는 역사상 거란군이 가장 강했어요. 그러니까 이런 괴물들이 10만 명이 온 거예요. 고려 당에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생각하냐면, 20만 대 10만 명이니까 우리가 유리했던 게임 아니냐 이렇게 착각한 사람이 있어요. 이 숫자는 소금이 안 돼요. 기병의 전투력은 보병 한 명의 보병에 대해 5배에서 15배 사이로 치고, 거한 럼 최고급 기병 같은 경우는 20배, 30배 쳐요. 전투력이 그러니까 기병이 10만 명이 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150만 명이라는 뜻이에요.. 보병으로 환산한다면, 20만의 보병과 1만 명 이상의 기병으로 귀주 대첩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스코어예측입니다. 짧은 창, 최소 세 종류의 활과 화살 300발이 화살도 종류가 다 다릅니다. 호르라기 소리를 내면서 신호를 내면서 날아가는 군사적 신호죠. 효시부터 시작해서 그다음에 적경 화살, 그다음에 갑옷을 뚫는 화살, 멀리 가는 화살, 그다음에 철퇴처럼 둔탁하게 충격을 주는 화살. 이런 시기가 적절하게 때에 맞게 종류별로 화살이 300발 있었고요. 그다음에 최대는 4종류의 활과 500발 화살을 이제 갖고 있었어요. 그걸 어떻게 한 사람 몸에 다 무장을 하냐. 한 사람 몸에 무장하는 게 아니라 두 명의 수영 포화점 타초 고기가 그걸 보조하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거예요. 그다음에 갑옷은 아마 현실적으로는 다섯 벌, 여섯 벌이었다. 최대 현재로는 최대 아홉 세트의 갑옷을 갖고 있었어요.
9. ️⚔️거란군과 몽골군의 전투력 비교00:14:00
- 거란군은 중갑 기병부대와 같은 중세 서양 기사처럼 완전 무장했으며, 다양한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는 몽골군과는 대비된다.
- 몽골군은 모든 남자가 목동이자 전사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멀티플레이어 군대로, 장기 생존력이 뛰어나며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
- 거란군은 특정한 조건에서 강력한 군대였으나, 이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한계가 있었다.
- 거란군의 편제는 고도로 조직되어 있으며, 우피 군이 가장 정예의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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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경기병, 중갑 기병부대에서 중세 서양 기사 같은 탱크와 같이 온몸을 완전 말까지 무장한 그. 중갑 기병의 갑옷을 다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부하들은 무기를 교환하고, 갑옷을 환복할 시간을 바꿔 주고 하면서 모든 종류의 싸움을 끝없이 하는 것이 거란의 정의입니다. 기병의 우수함은 기준에 따라 달라요. 그러니까 몽골군은 모든 걸 다 할 줄 알았어요. 몽골군은 모든 몽골 남자가 당시에 목동이자 전사였고, 각자 스스로를 위한 취사병, 보급병이었습니다. 전사이자 목동이라는 거니까, 멀티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라요. 그러니까 생존력 자체가 달라요. 원정군이었을 때 장기적으로 생존하고, 그다음 유연성이 다르죠. 그다음에 자기는 목동이면서 전사이기도 하고, 궁병이기도 하고, 창병이기도 하고, 돌격병이기도 하고, 수험병이기도 하고... 하다 보니까 수많은 기병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의무와 역할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다 할 수 있는 군대는 몽골군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사막에서는 초원에서, 산지에서는 농경 문명을 습격해서 농경 문명을 약탈할 때나, 베트남 전글에 갔을 때나 일정한 능력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는 군대가 세계를 정복할 만한 군대인 거고요. 거란군 같은 경우는 특정한 조건에서 가장 강했던 군대인데, 그 특정한 조건을 세팅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한계가 있었던 게 거란군이었던 거죠. 이렇게 생각하면... [음악] 우피 구 뿐만 아니라, 이때 3차 침공에 있어서의 거란군의 편제를 알아야 해요. 거란군이 어떠한 부대들이 맞냐 하면, 단시 거한 제국의 최고 정예는 우피 1군이었고, 원래 피실은 다섯 종류가 있어요. 우피실, 북쪽 피실, Quest 좌 피실, Quest... 뭐. 이렇게 있었고, 중앙 피실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동서남북 가운데 이렇게 있었는데, 나머지는 유명한 묘실이 되었고, 왜 우피 이군이 가장 유명했냐면, 우피 이군은 서쪽 피실 군이에요. 어, 우피, 우 오른쪽이면 동쪽 아닌가요? 생각하는데, 유목민들은 지도를 거꾸로 봅니다.
10. ️🗺️거란 황실과 군사 구조 살펴보기00:16:07
- 지도에서 북쪽이 아래에 있고 서쪽이 오른쪽인 이유는 거란군이 풍요로운 농경 문명 지역을 약탈하기 위해 진출하는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 피실 군은 황제의 직속 군대이며, 황후와의 연관성을 통해 서로 연결된 관계가 존재한다.
- 거란의 황실은 야율 씨족의 전투력과 순류 씨족의 재력이 결합되어 탄생하였고, 이로 인해 황후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 순류 씨족은 원래 위구르 족의 한 지파였으며, 이민 후 거란 황실 내에서 제일 부유한 족으로 자리매김하였다.
- 황우와 황제의 연결 및 속상의 개인 재산으로 구성된 특별 전사들은 거란의 군사적 힘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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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이 밑으로 내려와 있는 지도를 봐요. 그러니까 서쪽이 오른쪽이에요.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네들이 약탈해 뜯어먹을 풍요로운 농경 문명 지역을 위로 보고 이렇게 진출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위로 보는 지도를 갖고 있어요. 이 지도에 따르면 피실 군은 서쪽 피실 군이에요. 왜 서쪽이냐면, 거란군은 당시에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실크로드의 치한을 담당하고, 그다음에 서쪽으로 계속 정복을 해 나가는 정복군이자 실크로드의 지배자 이것이 우피 군이에요. 그러니까 세계 최종의 부대였습니다. 피실 군은 황제의 직속 군대였습니다. 황제의 소유물이 있었고, 그 속상은 황후의 소유물이었어요. 이 부부가 부부 사이인 황제와 황후가 우피 속상도 부부 사이예요. 거란의 황실 성은 야율씨예요. 황후지 성은 순류씨예요. 그 황후 순류씨에서만 나왔어요. 성경에 보면 유대 12지파 뭐 이렇게 나오는데, 유목 민족은 원래 각 지파가 합쳐져서 한 종족을 이루기 때문에, 거한 족도 지파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순류씨는 원래 위구르 족의 한 지파인데, 거한 족으로 이민을 왔어요. 그런데 위구르인들이 워낙 상업도 발달하고 제국도 한번 경영해 본 적이 있고, 거란 족보다 부유했어요. 그래서 순류씨가 위구르 족에서 거한 족으로 이민을 왔을 때, 거란의 모든 부족보다 순류씨가 제일 부유했어요. 거란 황실은 야율 시족의 전투력과 순률 시족의 재력이 만나 거란 황실이 탄생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황우도 황제에 대해서 일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고, 목소리가 높았어요. 이 속상 그는 황우가 전임 황우가 후임 황우에게 물려주는 개인 소유물이 있는데, 속상 그는 점령지 주민과 포로 중에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자만 선택을 해, 누구는 무술을 잘할 수 있고, 누구는 성벽을 잘 올라탈 수가 있고, 누구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마법은 아니고 마술이지만 그런 재주가 있고, 누구는 힘이 엄청 세서 스트롱맨 대회에 나갈 만한 사람이에요. 이런 특별한 전사들만이 노예 부대, 이전 황우의 개인 재산이었던 말이에요. 이 노예 부대가 속상 그인데, 속상 그과 황제 직속의 우피 이군을 합쳐서 어장 친군이라고 해요.
11. ️📜거란의 최강 전사들, 우피군의 중요성과 구조00:18:11
- 우피 1군은 거란인의 최고의 전사를 황제가 직접 소유하는 부대이며,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전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 거란군 내에서도 우피 1군이 가장 강력하지만, 천원군이 요나라 정규군 중 최강의 기병으로 존재한다.
- 각 부족은 최고의 전사를 우피군에 바치고, 남은 전사들로 각 부족의 군대를 조직한다.
- 이 과정에서 요런 시족과 같은 귀족 시족이 등장하며, 향병은 정복한 부족 중 뛰어난 전사들로 구성된 군대이다.
- 결국 우피군, 천원군, 발해군 등은 최강의 군대가 모인 것으로, 이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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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 1군은 노예 부대가 아니라 거란인의 각 시족에서 최고의 전사만 뽑아서 황제가 직접 소유하는 게 우피군이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속상 그이 대단하다고 해도, 속상 그은 그냥 이색적인 부대 정도고 어장 친군 중에서 속상 그이 우피군의 개길 순 없어요. 그리고 거란군 전체 중에서도 우피 1군이 가장 세요. 그런데 우피 1군이 황제의 개인 소유하면 천원군, 요나라 정규군 중에 최강의 기병이 천운군이에요. 그런데 거란군의 부족들 간에도 문제가 있어요. 왜냐하면 거란의 각 부족은 최고의 전사를 우피군의 일원으로써 황제에 바치고, 또 천운군에도 군복을 모으러 가는 애들이 있겠죠. 그런데 남은 전사들이 남은 전사들로 그 부족 자체 군대를 꾸려요. 그중에서 거한의 요령이라 성씨가 있는데, 요런 씨를 가진 요런 시족 야율 씨와 순율 씨의 뒤를 이어서 그 제... 3의 시족이었어요. 제3위 시족이었어.. 그러니까 귀족들 중에서는 최고의 귀족 시족이 바로 요런 시족이었고, 그런 시족의 군대가 부족분 중에서는 가장 최강의 군대였습니다. 요연 장군도 3차 침공의 편제에 포함돼서 옵니다. 그다음에 향병. 향병은 거란 제국이 정복한 부족이나 정복한 나라에서 그렇게 피정복민 중에서 뛰어난 자만을 선발해서 또 군대를 조직해 그래서 그 군대를 향병이라 그래요. 이 향병 중에서 최강의 군대는 발해군이었어요. 고고의 후손들이죠. 그래서 3차 침공에 포함된 부대는 우피군, 천원군, 이런 장군들이었고, 발해군은 각각 어장 친군 중에서 최강 정규군 중에서 최강 부족분 중에서 최강, 향병 중에서 최강만이 모인 거한 국력의 정수가 왔어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온 거예요. 그러니까 상상을 초월한 사람들이 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 드라마에서는 아마 이거 제작비의 한계 때문에 구현할 수 없지만, 그냥 상상을 초월하는 말도 안 되는 용병들이 전 세계 최강의 4개의 부대가 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12. ️⚔️3차 침공과 흥화진 전투의 전략00:20:02
- 3차 침공의 목표는 속전속결로 고려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최정예 기병을 모았다.
- 거란군은 속도전을 목표로 보병을 제외하고, 흥화진의 중요성을 인지해서 경로를 변경해야 했다.
- 강감찬은 교촌을 건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상하여, 상륙로를 차단하고 기습적으로 적을 공격했다.
- 이 과정에서 흥화진을 반복적으로 겨냥한 국지전이 여러 차례 있었으며, 모든 전투에서 대패하였던 과거도 있었다.
- 강감찬의 전투 계획은 거란군 본대가 진열을 갖추기 전에 혼란을 초래하며 승리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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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올스타 수준이 아니라 메이저 리그 올스타가 온 거예요. 그런데 메이저 리그 선수가 다 온 것은 2차 침공 때 40만 명이 왔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많이 오니까 오히려 덩치가 커지고 느려지고 보급선이 끊기고 여기저기 게릴라전에 고생하고 하니까 이번에는 최정예 모아 가지고, 그 최정예 기병의 속도를 유지한 채, 진짜 속전속결로 개경을 딱 따먹어 가지고 고려를 속전속결로 무너뜨리겠다고 하는 게 3차 침공의 목표였던 거죠. 거란은 속도전을 목표로 보병을 아예 빼고 정의 김병만 데리고 왔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었죠. 왜냐면 처음부터 스피드가 목표였으니, 현종과 강감찬은 이걸 간파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가장 빠른 길은 흥화진 옆을 지나는 거예요. 거란군 입장에서, 왜냐면 거란은 흥화진 한이 미혔어요. 2차 침공에서 양교가 지키는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해서 흥화진 내버려두고 남아 있다가 그때부터 이제 모든 계획이 꼬였어요.. 양교가 지키는 흥화진을 함락하지 못했던 게 통 안에 한이 돼 가지고 그때 양규가 그렇게 당하고, 그다음에 압록강을 건너가다가 뒤치기를 당해 가지고 그 제국의 대소 신료들이 다 몰살을 당해 가지고 그때 어떻게 됐습니까? 행정이 마비될 정도로 대소 신료들이 다 몰살 당했거든요. 그 전투는 정성이 지휘한 전투인데, 정성이 흥화진에서 복무했고 양규의 부하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흥화진을 악의 소구이, 거란 사람들이 보기에 거란 놈들이 보기에 악의 소구이. 그렇기 때문에 2차 침공과 3차 침공 사이에 99년의 시간 동안 그 전면전은 안 했지만, 국지전이 여러 번 벌어졌는데, 마음 잡고 흥화진 한 번 함락시켜 보려고 기습적으로 침공한 것만 두 번이에요. 두 번 다 대패를 당해요. 그러니까 흥화진 악의 소구에. 스피드가 생명인 개경이 개경을 목표로 무조건 말을 달려서 개경에서 승부를 보는 이 전쟁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3차 침공에 있어서 거란군이 흥화진 또 발목이 묶일 순 없잖아요. 현종과 강감찬은 이걸 간파했다는 거예요. 거란군이 흥화진을 피해서 흥화진을 우회해서 올라가려면 진을 치기 위해서 도할 수밖에 없는 개천이 하나 있었어요. 강물이 있었다고. 그게 뭐냐면 삼교 3이에요. 흥화진 또 발이 묶일 수 없으니까. 교촌은 건널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교촌은 건널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감찬이 미리 예상하고, 교촌의 상륙로를 쇠가죽으로 틀어막고 있다가 건널 때 한 번에 쇠가죽을 끊어 가지고 물을 이제 쏴 쓸려 보내 가지고 혼란의 적을 혼란에 빠뜨린 다음에 갑자기 게릴라 부대가 튀어나와 가지고 얘네들을 막 죽여. 그리고 나서 거란군 본대가 정신을 차리고 진열을 갖췄을 때는 다시 사라지는 거죠.
13. ️⚔️소배압의 개경 진격과 고려의 방어 전략00:22:30
- 거란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기습과 매복 작전을 지속적으로 펼쳤고, 귀주 대첩 전까지 이러한 전략을 계속했다.
- 소배압은 개경을 정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무조건 직진하여 개경까지 갔다.
- 그 속도에 강감찬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고려군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급히 기병을 내려보냈다.
- 그러나 개경의 방어는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주민들의 식량과 자원을 모두 제거하여 적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
- 또한 나성을 쌓아 개경의 방어력을 높인 결과, 소배압은 개경을 함락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철수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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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계속해서 개경까지 갈 때 찔끔찔끔 계속해서 기습과 매복으로 거란군의 전력을 약화시킵니다. 귀주 대첩에서 귀주에서 만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약화를 시키는 거예요. 한 번은 크게 성공한 적도 있어요. 한 번은 순간적으로 거란군 본대를 기습해 가지고 1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초래한 적도 있어요, 거란군의.. 그런데 소배압은 대단한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배압은 '개경을 내가 따면 된다'라고 해서 개경까지, 그러니까 전열이 정비될 때마다 이제 고려군을 쫓아가는 게 아니에요. 복수하려고 그게 아니라 피해는 피해 대책을 감수하고 무조건 직진으로 개경까지 그냥 가는 거예요. 이 소배압의 근성과 뛰어남, 그다음에 전술적인 안목도 대단한 거죠. 이게 맞는 거거든요. 소배압이 얼마나 훌륭하게 빨리 개경까지 왔냐면, 그 개경에 다달았을 때 강감찬도 현종이 고려의 장수들이 거란의 정예 기병, 정예 대군이 모아서 움직일 때 이 정도의 속도가 나올 거라는 건 상상을 못 할 정도로 위대한 속도였다 그래요. 그 속도에 화들짝 놀라 가지고, 그 강감찬은 귀주 대첩에 참전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있었던 정의 고려군은 개경을 구원하기 위해서 급하게 기병을 내려보내기까지 해요. 그렇지만 이제 개경의 블러핑이란 무엇이었냐면, 개경을 딱 포기하려고 둘러싸다 보니까 일단 첫 번째, 고려에 너무나 완벽한 구도가 지독한 청해, 정말 썩은 돌도 없었고 지푸라기 하나 없었다 그래요. 개경 1대 주변과 수도권, 요즘으로 치면 수도권이 개경 때 아무것도 없었던 거예요. 정말 지독하게 청해한 거예요. 적에게 아무것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 정말 개경에 나가서 갈 수 있는 식량 이런 건 다 빼고, 그 맥시멈으로 개경을 채우겠다고 했어요. 개경에 남겨갈 수 있는 것은 그 나머지는 싹 없앤 거예요, 완전히. 그러니까 한번 이런 수도권의 경제력을 스스로 박살낸 거거든요. 이거는 전쟁에서 승전을 하고 나도, 이건 몇 년 동안 회복되기 어려운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 이런 도박을 한 거예요. 그리고 개경에 나성이 눌러져 있었던 거예요. 2차 친공 때는 없었던 나성이란 건 무엇이냐면, 어떤 수도 도성 주변에 한 단계 더 쌓는 커다란 둘러치는 성을 나성이 그래요. 그래서 별 나성이 별게 아니라, 우리 그 대학로 쪽에 성각 마을 있죠? 그 성광이 나성이란 거예요.. 우요, 그 성도 있었고 눈에 보이지 않던 성도 있고, 그러니까 개경의 방비는 너무나 해 보였고, 어, 나성 진짜 거의 축조가 다 된 상태고, 그다음에 완전히 이 정도로 지독하게 청해를 한 거면 개경은 목숨을 걸고 우리가 싸우겠다. 그래서 소배압이 계산을 하니까 개경을 도저히 함락할 수 없는 것처럼 소배압의 눈에 보였어요. 그래서 소배압은 철수를 결정합니다. 속은 거예요. 제가 블러핑이란 그랬잖아요. 개경 안에 병력은. 100명이 전부였어요. 왜냐하면 수도권 인구 주민들을 꽉꽉 채워야 되는 게 첫 번째예요. 그리고 그러니까 병력을 치울 틈이 없어요. 개경 도성이 아는 좁습니다.
14. ️📖소배압의 전투와 전략적 결정00:25:26
- 소배압은 개경에 병력이 100명밖에 남지 않아 가용 인력이 모두 귀주로 이동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 그로 인해 고려 전역의 상선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으며, 소배압은 강감찬과 전국의 빈 상선에서 병력을 조달하였다.
- 전투 중 소배압은 손실이 컸으나, 최소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 북상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 그러나 소배압은 개경 내부에 병력이 없을 가능성을 의심하며, 특수부대 300명을 개경에 잠입시켜 상황을 확인하려 했다.
- 이 300명의 전사는 아군을 불러들이고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며, 고려의 마지막 기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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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번째는 가용한 인력은 모두 귀주로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개경에 100명밖에 안 남았을 정도면 가용 병력이 전국에 있는 모든 상성이 텅텅 빈 무방비 상태였다는 걸 알 수가 있어요. 소배압은 강감찬과 고려 전국의 텅 빈 상선에서 갔던 거예요. 소배, 엄청난 블러핑, 소빙, 엄청나게 블러핑과 도박적인 속임수에 성공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제 소배압은 돌아갑니다. 돌아가는데 아이반 원정은 했구나, 한 1만 명, 2만 명 정도의 정의 병사를 잃었지만 한 반도라고 하는 늪에 빠져서 더 병사를 잃을 수도 없고 개경은 힘들어 보이니,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빨리 피해를 최소화하고 압록강을 건너야겠다 하고 다시 북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압록강을 향해서 그렇죠. 이 다 더 체요, 모든 게 현존과 감감찬에 더 체요. 자, 그러고 나서 소배압이 가면서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 거예요. 혹시 개경 안에 병력이 없고, 혹시 블러핑일 수도 있잖아요. 소배가 생각해 보니까 그래서 특수부대 300명을 금교역이라고 하는 고려의 역참에 남겨 놓고 이제 북상을 합니다. 금교역, 말하자면 이제 개경이 서울이면 금교역은 어느 정도일까요? 한 수원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여기에 이제 그러면 너네가 개경에 잠입을 해라. 야음을 틈타, 잠입을 해라. 잠입을 해서 이 300명의 역할은 뭐냐면, 그 개경 안에 잠입 판에서 성공하면 이제 신호를 보내면서 '개경이 아무도 없습니다.. 개경의 좌표 성공했습니다.' 하면서 안에서 개경 성문을. 열어버리면 개경은 다시 한번 거한 2차 침공에 의해서 거란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현종은 포로가 되고 고려는 멸망하는 거죠. 그런데 이 300명이 뭐냐면, 당시 거란군은 '원탐 남자'라고 하는 적 후방 교란, 스파이, 특수 임무, 암살 같은 것을 하는 원탐 남자라고 하는 특수 부대를 운영을 했어요. 그러니까 거란군이 진짜 전사들의 제국에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로 치면 UDT 707 특임대, 최강 부대에 나오는, 그 뭐야, 정말 싸움 잘하는 그 형들, 누나, 형들 있잖아요. 그런 부대를 실제 운용을 했는데, 이 300명의 원탐 남자가 아마 이 300명의 병력은 원탑 남자였을 거예요. 개경에 진입해서 후방을 교란하고 아군을 불러들이는 그 특수 인물을 맡은 부대가 이걸 또 개경에서 알게 됐어요. 그런데 개경은 병력이 100명밖에 없고, 얘네 300명이, 얘네 중에 한 명이라도 개경의 실체를 알고 살아 돌아가면 위로 올라가던 소배압, 개경이, 개경에 100명밖에 없다고 하고 말머리를 돌려 다시 와서 개경을 따먹으면 그만이에요. 그래서 이 고려의 개경 안에 있던 100명의 전사는 300명을 몰살시켜야 해요.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성공해야 되는 거예요. 이거를 해봅니다.
15. ️🛡️고려군과 소의 대치 상황00:27:56
- 아마도 자고 있거나 정비 중이었을 때, 300명이 침투 준비를 하면서 서로 변장을 했을 수 있다.
- 한밤중에 100명의 결사대가 개경의 병력인 300명을 덮쳐서,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죽였다.
- 이후 소배압은 대경의 진실을 모르고 압록강을 향해 올라가다가, 고려군에게 막히게 된다.
- 귀주 벌판을 사이에 두고, 강감찬이 이끄는 20만 고려군과 소배압의 10만 기병이 맞대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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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제 자고 있었을 자고 있거나 정비하고 있었을 때 같은데, 300명이 혹은 침투를 준비하면서 서로 변장을 하거나 이랬을 수도 있죠. 이때 한 밤중에 100명의 결사대가 이 100명이 개경 병력 전부였어요. 100명의 결사대가 300명을 덮쳐요. 덮쳐서 어찌어찌 300명을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죽입니다. 그래서 소배압은 대경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로 위로, 위로 압록강을 향해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 이제 압록강 건너야지. 그 300명은 왜 안 오지? 기다려야 되나 하면서 압록강을 건너려고 가는데, 고려군이 자기를 막아서고 있는 거죠. 그렇게 조우하게 됩니다. 귀주 벌판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소이 강감찬이 이끄는 20만 고려군과 소비의 입구는 10만, 세계 최강의 정해 10만 기병이 마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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