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천재가 된 홍 대리
하우석 지음
다산북스/2004년 6월/280쪽/12,000원
▣ 저 자 하우석
하우석은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광고 대행사 ‘(주)애트케이’에 입사하여, AE로 근무하며 발군의 기획력을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 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플래너로서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쌓았으며, 1997년 ‘(주)핀포인트 마케팅’이라는 IMC(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 기업을 창업, 현재 이사로 재직중이며, 최근 ‘하스 플래닝 연구원’을 설립하여 실무적 경험과 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다양한 플래닝 연구와 컨설팅, 집필, 강연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100억짜리 기획력』『걷는 인간 죽어도 안 걷는 인간』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요즈음 모든 기업과 조직은 새로운 인재상을 염두에 두고 직원들을 채용하고 있다. 다름 아닌 ‘기획 인간’이다.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기획 인간들만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최근 5-6년 사이에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을 나누어 주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꿈을 가져라’하는 식의 일방적 주문에 그치지는 않는다. 소설 형식의 실감나게 펼쳐지는 다양한 상황과 사건 속에서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면서 잠들어 있던 본인의 의지와 희망을 끄집어내게끔 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홍 대리는 필자의 모습이자 바로 우리의 모습이 부분적으로 투영된 모습이기도 하고, 지난 세월 동안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기획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기획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기획을 자기 삶의 중요한 일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 차 례
제1부 홍 대리의 기획 천재 이야기
홍 대리, 기획팀에 발령받다
홍 대리, 기획 인간에 도전장을 던지다
홍 대리, 드디어 기획으로 승부를 걸다
제2부 기획 천재 홍 대리의 비밀 노트
1장 기획 천재의 마인드 엿보기
2장 기획 천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배워라
3장 기획 천재와 실전 기획 코드를 맞춰라
기획 천재가 된 홍 대리
하우석 지음
다산북스/2004년 6월/280쪽/12,000원
제1부 홍 대리의 기획 천재 이야기
홍 대리, 기획팀에 발령받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거 귀국한 딸을 보자마자 어머니는 숨을 거두고 아버지마저 쓰러져 최선영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K패션의 경영권을 이어받아 사장이 된다. 사장으로 취임한 뒤 경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보고를 지시했고, 그에 따른 보고서를 꼼꼼히 검토하던 최 사장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보고서를 살펴보니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진 것만이 회사 부진의 이유는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당연히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수의 불황은 수출로 극복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문제였다. 수출을 늘리다가 국내 경제 여건이 좋아지면 다시 내수를 높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수 시장에서 이미 K패션이 많은 시장을 잃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례로 K패션이 운영하는 패션 전문점들은 이미 대형 할인점에 밀려나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패션 전문점보다는 손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대형 할인점을 선호하는 추세였다. 뿐만 아니라 이 손바닥만한 시장조차 경쟁업체에게 뒤지고 있었다. 30년 동안 패션 시장을 양분해왔던 L패션이 지금은 K패션을 앞질러 더 많은 시장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최 사장이 가장 절실하게 느낀 K패션의 문제는 기획력 부재였다. 최근 5년 동안 새로 개발한 브랜드도 시장에서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과거의 브랜드를 고집하게 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기획력을 지니는 것이다. 트렌드를 읽어내고, 그에 맞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획력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최 사장은 외부에서 마케팅 팀장을 영입하기로 하고, CEO 토론회에서 알게 된 강사 김차원을 영입했다. 김차원은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국내 제일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 뒤 국내 유수 기업들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국내 대기업 마케팅 팀장을 역임하였으며 또한 마케팅 기획 관련 저서도 여러 권 집필한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의 제1인자였다. 최 사장이 김 팀장을 영입한 며칠 뒤 인사이동 발표가 있었는데, 최 사장과 커피 자판기 앞에서 우연히 마주쳐 회사의 제품 전략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회사 내에서 괴짜라 통하는, 영업팀의 홍 대리와 그리고 같은 팀이었던 박 대리도 마케팅 기획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홍 대리, 기획 인간에 도전장을 던지다
최 사장은 취임 후 K패션의 도약을 위해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사장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현장 순례 프로그램으로 말 그대로 시장의 분위기와 대리점의 매출 현황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분석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집중식 학습 프로그램으로 신입 사원 연수보다 강도가 더 높았다.
최 사장을 비롯해 K패션의 중견 간부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 또 다른 회의실에서는 홍 대리를 비롯한 마케팅 기획팀의 회의가 열리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김 팀장은 팀원들에게 ‘우리 모두 기획 인간이 되자.’고 역설하였다. 김 팀장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줄기차게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찾아내고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학습’이라는 낱말은 단지 일회성 학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진행형인 학습을 의미한다. 영어로 말하자면 ‘러닝 어빌리티’를 말하며, 어떤 분야, 어떤 직종에서 일을 하든지 간에 이 'Learning Ability'를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경쟁에서 앞서서 나갈 수 없다. 그리고 ‘러닝 어빌리티’를 키워 나가는 방법도 남과 같을 수 없고, 또 같아서도 안 된다. 분명히, 나에게 맞는 방법을 나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마케팅 원론서는 물론 기타 관련 서적들을 여러 번 정독해야 하고, 새로운 마케팅 기법과 트렌드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또 분석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인문, 사회 과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 다변화된 사회현상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유연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이다. 여러분도 단지 한 분야의 전문가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지식과 인식, 철학적 사고 습관, 문학적 감성, 예술적 감각 등을 두루 갖춘 다양한 문화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 두 가지의 목표를 어떤 방법을 통해서 달성할 것인가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방법과 적합한 교육기관을 통해 교육을 받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러닝 어빌리티를 키우고자 하는 여러분에게 권해드리는 방법이고 또한 이것이 기획 인간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한편 조 상무를 비롯한 일부 간부진의 반발이 있기는 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기에 현장 순례 프로그램은 실행되었다. 하지만 조 상무를 비롯해 몇몇 간부는 바쁜 업무 일정을 핑계로 현장 순례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마케팅 기획팀은 김 팀장의 지도 아래 현장 순례를 다녀왔고, 그 결과를 모아 김 팀장이 최 사장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이번 순례를 통해 마케팅 기획팀원들은 많은 걸 보고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지금 우리 회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소문으로만 듣던 부도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우리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지요. 경쟁 회사인 L패션이 불황을 극복하여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데 비해 우리 회사의 대리점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본 팀원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프로그램은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지만 몇 가지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좋다 해도 휴일을 이용해서 진행하는 것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업팀에서 근무했던 팀원들은 대리점 사장들과 잘 알고 있으니 별 무리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팀원들은 의사소통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조력해줄 사람들을 섭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리점 사장들이나 영업팀 직원들 중에서 현장 사정에 밝은 사람을 가이드로 내세우면 훨씬 효과가 클 것입니다.”
최 사장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문제라면 즉시 보완해서 실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장 순례 프로그램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지만, 또한 최 사장과 조 상무(김 팀장이 마케팅 기획팀의 박영식 대리가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순례 프로그램에 불참했는데, 이 프로그램에 불만을 가진 조백상 상무를 의식해서 그런 것 같다고 보고함)로 대표되는 회사 내 갈등이 밖으로 불거져 나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김 팀장이 K패션의 마케팅 기획팀장을 맡은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나 새로운 전략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때마침 경쟁사인 L패션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서 패션쇼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략을 수립하기 전에 경쟁사가 어떤 식으로 시장을 공략하는가를 알아두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L패션의 패션쇼장을 찾아 관람하기로 했다.
쇼가 시작되자 국내 톱 모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저가 정책을 펼친다면서 이토록 화려한 패션쇼를 여는 것 자체가 홍 대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가 제품의 구매자들은 결코 이런 패션쇼에 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L패션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심정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도 모른다. 홍 대리의 예상대로 패션쇼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쇼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지루해했고,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는 모델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어울리지 않았다. 쇼는 끝났다. 홍 대리의 눈에 이번 패션쇼는 실패작이었다. 새 제품은 전혀 새로울 게 없었으며, 공연 내용은 패션쇼의 구색을 갖추는 데 급급해서 충실하지 못했다.
L패션의 신상품 발표회가 끝난 뒤 김 팀장은 팀원들을 소집하여 모두에게 한 가지 숙제를 내줬다. L패션의 이번 신상품이 어떤 방식을 통해 기획되었는지 피드백을 하라는 것이었다. 팀장이 의도하는 건 단순히 경쟁사의 기획 마인드를 파악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획력이 지니고 있는 장단점까지 분석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결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기획팀원들은 한 달에 걸쳐 L패션의 직원처럼 생각하고 일했다. 그리고 그렇게 분석하고 정리한 보고서를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의외로 발표 자리는 열띤 토론의 자리가 되었다.
발표 자리가 이렇게 뜨거운 토론의 장으로 바뀌자 팀원들은 너도나도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김 팀장은 우선 이것만으로도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여겼다. 맨 처음 마케팅 기획팀의 회의 자리는 무척이나 엉성하고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몇몇 사람만 이야기할 뿐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듣고 있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함께 한 가지 문제를 두고 고민하면서 자연스레 의견을 교환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발표 자리가 열띤 토론의 자리로 바뀌게도 된 것이라 여겨졌다. 토론이 끝나자 마케팅 기획팀원들은 포장마차로 달려가 한 달 동안의 피로를 씻어내기라도 하듯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토론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김 팀장이 마케팅 기획팀을 이끌기 시작한 뒤로 팀 전체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뭔가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모습들이 역력해 보였다. 마케팅 기획팀만 달라진 건 아니었다. 현장 순례 프로그램과 집중식 프로그램이 실행되면서 조금씩 그 성과가 나타났다. 우선 K패션의 사원들은 자신들의 회사가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위기의식을 모두가 공유하게 되었고, 회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식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자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지만 모든 사원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었다. 조 상무를 비롯한 몇몇 간부진과 박 대리와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한편 홍 대리는 김 팀장으로부터 한 가지 숙제를 받았다. ‘기획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홍 대리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하지만 쉽사리 답이 떠올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의 놀이를 보면서, 기획자는 손에 쥐어진 재료를 가지고 머릿속에 목표를 그린 다음,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란 것을, 그리고 그 새로운 것은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이들을 즐겁게, 편하게, 그리고 기쁘게 하는 것이란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최 사장은 마케팅 기획팀을 소집하여 다음과 같은 지시를 했다. “내년에도 새로운 브랜드 하나를 시장에 내놓고자 합니다. 그래서 마케팅 기획팀에 전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맡기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현장 순례 프로그램과 집중식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 우리 회사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깊이 체득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느끼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번에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막상 최 사장의 요구 사항이 전달되자 마케팅 기획팀은 초상이라도 치르는 듯한 분위기가 되었다. 과거 시장에서 히트 쳤던 브랜드를 모방하거나 경쟁사를 벤치마킹하는 수준에서 끝날 수 있다면 지레 겁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 기획팀원들은 자신들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듯 무언가를 ‘창조’해야 한다는 사실에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김 팀장은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팀원들의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가슴과 머릿속에 잠들어 있는 아이디어를 깨우십시오. 그 아이디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팀장으로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순간 팀원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사실 그들의 두려움의 원천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김 팀장의 지시에 따라 마케팅기획팀은 시장 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홍 대리에게 부여된 조사 내용은 전체 패션 시장의 분류 및 시장 규모, K패션의 주요 경쟁사인 L사, A사를 비롯한 10여 개 경쟁사의 브랜드 매출 현황, 소비자 패션 트렌드 분석, 향후 패션 시장 전망, K패션 각 브랜드의 문제점 및 기회 요인 등이었다. 이러한 조사 내용은 궁긍적으로 어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하는가에 있어서 기본적인 분석 자료로 사용될 것들이었다. 마침내 각자 준비한 내용들을 가지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맨 마지막이 홍 대리 차례였다.
“이번에 런칭하는 브랜드는 우리 회사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최소한 1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비전하에 기획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만든 브랜드들의 문제는 모두 다 트렌드 지향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긴 트렌드라 해도 3년 정도면 그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신규 브랜드를 런칭할 때마다 과도한 런칭 비용이 수반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트렌드를 추구하는 패션 경향도 분명 존재하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탠더드풍의 옷도 즐겨 입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싸더라도 유명 브랜드를 찾게 된다는 사실도 파악했습니다. 이에 새로 런칭할 브랜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브랜드 명 : 휴HEW
제품 컨셉 : 전통적인 미국 아이비리그 스타일의 고급 스탠더드 캐주얼
타깃 : 20대 중반~30대 초반
가격 정책 : 고가 정책(경쟁 브랜드 P와 B)
유통 : 1단계 - 수도권 백화점 10곳, 명동, 강남 단독 매장
2단계 - 전국 백화점 30곳, 주요 광역시 단독 매장
광고 : 외국 로케이션, 외국인 모델 위주로 서구 라이프스타일 보여줌
홍 대리의 발표가 끝나자 팀원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마케팅 기획팀은 홍 대리가 제시한 전략안을 세부적인 실행방안 측면에서 몇 가지 수정하고 보완해 기획팀의 전략안으로 정했다. 그러는 동안 두 달이 지나 드디어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 날이 되었다. 홍 대리는 그동안 수 차례의 리허설을 마친 덕분이었는지 별 실수 없이 브리핑을 끝마칠 수 있었다.
홍 대리의 발표가 끝나자 최 사장은 임원들을 바라보며 의견들을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조 상무가 입을 열었다. “지금 있는 브랜드를 잘 키워 나갈 생각을 해야지 왜들 걸핏하면 ‘신규 브랜드 합시다.’ 이러는지 모르겠어. 신규 브랜드 전개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기나 하나? 여러분은 아마 재미나게 기획안을 썼을지 모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그게 다 돈이야, 돈!” 대다수의 임원이 조 상무의 의견에 수긍하는 표정들이었다. 홍 대리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조상무가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듯 말하자 말문을 잃고 말았다.
“자네가 기획팀의 홍영호 대리라고 했나? 자네말고 박영식 대리라고 있지? 그 친구는 좀 다른 견해를 보였다던데, 오히려 그 친구의 기획안이 궁금하군.” 곧이어 박 대리가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대리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이미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갖춰 놓고 있었다. 박 대리는 준비해온 자료를 이용해 기존의 브랜드를 어떤 방식으로 되살릴 것인지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마케팅 기획팀에서 논의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미 박 대리의 견해는 다른 팀원들에 의해서도 반박되었으며, 별다른 신빙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박 대리의 발표가 끝나자 조 상무가 호탕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이런, 역시 진흙 속에 진주가 있었군.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믿을 건 못 된다는 걸 오늘 똑똑히 보여주는군. 박 대리, 자네 발표는 인상적이었네. 내 생각에는 자네 기획안대로 실행했으며 좋겠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임원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 상무님,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쉽게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들은 내부적으로 이미 박 대리의 기획안에 대해서도 토론을 했고, 기존의 브랜드를 살리는 것보다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지금 우리 회사에는 절실한 일이라는 데 모두 공감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 홍 대리가 기획팀을 대표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좀 더 논의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판단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조 상무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최 사장도 씁쓸한 표정만 지을 뿐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홍 대리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나 연습을 했건만 막상 조 상무처럼 막무가내식으로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홍 대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프리젠테이션이 있은 후 김 팀장은 사표를 제출했다. 최 사장은 다급한 마음에 김 팀장에게 전화를 하려다 그만 두었다. 김 팀장에게 다른 문제는 신경쓰지 말고 새 프로젝트에만 신경쓰라고 호언장담했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했으니 김 팀장을 붙잡을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조 상무가 이렇게까지 물밑작업을 통해 다른 임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되돌려놓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최 사장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셈이었다.
김 팀장이 사표를 제출한 지 일주일 뒤 K패션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했으나 안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노동조합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박 대리만을 제외하고 마케팅 기획팀 전원이 사표를 제출한 것이다. 기획팀원이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최 사장에게 전해졌고, 최 사장은 부랴부랴 임원 회의를 소집했다. 기획팀원들은 임원 프레젠테이션을 다시 열지 않으면 뜻을 굽히지 않겠노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조 상무는 마지못해 이에 동의했고 기획팀은 환호성을 울렸다.
김 팀장이 다시 회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팀원들은 다시 힘을 모아 임원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시작했다. “자자, 이제 우리에겐 더 이상의 기회도 없을뿐더러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지난번 브리핑했던 내용들을 다시 검토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보완합시다.” 김 팀장은 팀원들을 돌아보며 감격에 젖어 있었다. 비록 이들과 함께 지낸 시간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힘든 상황에서 다 함께 고생했기 때문인지 누구보다도 정이 깊게 들어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김 팀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에도 팀원들의 도움으로 다시 회사에 돌아오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팀원들은 벌써부터 자료를 찾는다. 보고서를 검토한다.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홍 대리는 왠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팀원들이 똘똘 뭉쳐 모두가 저마다 기획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홍 대리는 ‘지금까지 기획 인간이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고, 또 기획이 뭔지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새로운 기획을 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만다’고 김 팀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 팀장은 다음과 같이 자문을 해 주었다. “난 자네의 선생님 두 분을 알고 있네. 아마 평생 자네를 가르쳐줄 분들이지. 그 두 분한테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말게. 그런데 지금 소개받을 준비가 되어 있나?”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김 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 번째 선생님은 바로 ‘미디어’네. 자네가 원하는 자료의 상당 부분을 미디어가 알려주고 있네. 인터넷, 신문, 잡지, 협회보 등 전문지, 통계 연감, 기타 서적들, 이것이 다 뭔가? 미디어라구. 그러니까 미디어를 자네의 훌륭한 선생님으로 모시란 것이네.”
“두 번째 선생님은 누굽니까?” “그건 자네가 미디어를 통해 얻은 것 가운데 하나네.” “우리 회사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선호도, 연상 이미지는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 “두 번째 선생님은 소비자군요!” “맞아. 두 번째 선생님은 바로 소비자야. 우리가 알고 싶은 바를 소비자는 다 알려줄 수 있다구. 소비자에 대해 알고 싶으면 소비자를 직접 만나면 되는 거야.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지. 내 경험상 10명의 기획자 중 소비자를 충분히 만나는 기획자는 두세 명에 불과해.”
홍 대리는 자신이 지난번 임원 프레젠테이션에서 왜 말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당시 홍 대리는 첫 번째 스승인 미디어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며, 그래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스승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했기에 확고한 신념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없었기 때문에 조 상무의 비아냥 섞인 비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드디어 두 번째 임원 프레젠테이션 날이 되었다. 홍 대리는 예전보다 여유를 갖고 발표를 시작했다. 내용은 예전과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조 상무가 고수하던 브랜드는 과감히 시장에서 발을 빼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홍 대리의 발표가 끝나자 조 상무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나였다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조 상무와 의견을 같이하는 다른 임원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우리 경쟁사인 L패션을 벤치마킹합시다. 이 불황을 그나마 견뎌가는 건 L패션 아닙니까? 벤치마킹하는 게 우리가 살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임원들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홍 대리는 예전처럼 얼굴을 붉히거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지는 않았다.
김 팀장은 이제 때가 됐다는 표정으로 홍 대리에게 눈빛으로 사인을 보냈다. 마침내 홍 대리가 입을 열었다. “조 상무님, 저희가 제시한 새 브랜드가 미심쩍다고 하셨지요? 이제 이 브랜드가 왜 시장을 석권할 브랜드인지 믿음을 심어드리겠습니다. 저희 마케팅 기획팀 전원은 이분들을 믿습니다! 자, 나와 주세요!” 그러자 불이 꺼지면서 단상 스크린에 화면이 비쳐졌다. 20대 소비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 자신의 패션에 대한 생각 그리고 K패션의 브랜드에 대한 생각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해주었다. 20여명의 인터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인위적인 편집은 없었고, 그들이 쓰는 유행어나 심지어 비속어까지도 그대로 동영상으로 플레이되었다.
한 20대 중반의 여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K패션 브랜드들이오? 알기야 알죠. 촌스런 브랜드죠. 한 마디로 좀 깨요.” 서울의 모 여대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여학생은,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회사에 패션 디자이너들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어요. 신상품 나올 때 가보면 완전 재고품 같다니까요.” 20여 분에 걸친 인터뷰 동영상이었다. 그 20여 분 동안 회의실은 조용하다 못해 숙연하기까지 했다. 소비자들은 K패션이 어떻게 해서 자신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히 말해 주었다. 이런 생생한 언어에 상당수의 임원이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어떤 전문가보다 정확하게 K패션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를 제시해주었다.
스크린의 화면이 사라지고 다시 회의실에 불이 커졌다. 충격에 젖어 있던 임원들이 한숨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아무 말이 없던 홍 대리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저희 마케팅 기획팀은 이렇게 소비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보여드린 영상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저희는 500명에 달하는 20대 소비자들과 직접 인터뷰를 했으며,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직접 인터뷰가 아닌 전화 설문에 응해주신 약 1000여 명의 소비자도 저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소비자는 바로 우리의 선생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조 상무는 다소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최 사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프레젠테이션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회사의 입장에서 많은 고민을 해주신 것 같아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기획안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을 하겠습니다. 한번 멋진 작품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마케팅 기획팀은 임원 프레젠테이션을 통과한 신규 브랜드 'HEW'를 런칭시키기 위해서 1년 동안 꼬박 고생했다. ‘HEW'는 예상대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회사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되었다. 그 뒤 마케팅 기획팀은 이보다 더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으며, 3년 뒤 K패션은 L패션을 누르고 패션 산업의 1인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홍 대리는 여러 브랜드를 새롭게 런칭했고, 그가 런칭한 브랜드는 성공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는 능력과 실적이 인정되어 과장, 차장으로 거듭 승진하였고, 마침내 팀장이 되었다. 홍 대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기획 인간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김 팀장은 이사가 되어 홍 팀장과 굵직한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상대로 여전히 팀웍을 이루고 있다.
한편 이들이 꾸준히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김 팀장과 홍 대리는 신규 브랜드 ‘HEW'의 런칭을 준비하는 1년 동안, 신입 사원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기존 사원들의 친목을 다지고 기획 인간의 노하우를 보존, 발전시켜 나갈 모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해서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끝없이 기획 인간을 지향하기 위한 동아리를 만들었다. 물론 동아리의 이름은 ‘기획인간’이었다. 동아리 ‘기획 인간’은 회사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간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또 단순한 친목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며, 자체 교육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마치 기획 인간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기획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같은 궤를 지닌다고 할 수 있었다.
제2부 기획 천재 홍 대리의 비밀 노트
홍 대리가 기획에 대한 개념을 하나 둘 깨우쳐 나가던 대리 시절부터 팀장이 된 지금까지 스스로 기획과 기획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내용을 정리한 노트이다. 물론 이 노트에 담긴 것들 가운데는 홍 대리 스스로 터득한 내용들도 있지만, 회사 내에서 ‘기획 인간’동아리 회원들과 다양한 세미나를 통해서 도출된 내용들도 있다. 이 노트는 기획의 초보적인 마인드부터 기획 인간이 되기 위한 표준 활동 그리고 기획 프로세스에서 기획 스킬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구성되어 있다.
기획 천재의 마인드 엿보기
진정한 기획 천재란 암기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호기심을 지니고 무언가를 창조하려 애쓰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늘 전략과 비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기획 천재는 이야기꾼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감성적인 인간이어야 한다. 이런 인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숱한 성공담의 이면에는 성공을 이루기 위한 남모르는 노력이 숨겨져 있으며, 숱한 실패담의 이면에는 나태와 안락이 감춰져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기획 천재는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낯선 사람이 아니다. 내 동료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지금 내게 호기심이 부족하다면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모든 사물과 사건들에 호기심을 지니면 된다. 지금 내게 창조성이 부족하다면 기성의 것들에 만족하지 말고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지니면 된다. 지금 내게 전략과 비전이 부족하다면 지금 당장 전략과 비전을 세우면 된다. 이야기꾼이 되는 것도 감성적인 인간이 되는 것도 지금 당장 마음만 고쳐먹으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기획 천재로 가는 문의 문턱에 한 발을 올려놓고 있다. 기획 천재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사람은 아무리 기획 천재와 가깝더라도 결코 기획 천재가 될 수 없다. 한 번만 더 움직이면 기획 천재가 될 수 있으나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기획 천재가 된다는 건 전혀 새로운 기획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감춰져 있는 기획 인간을 끄집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획 천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배워라
우리가 깊은 산속에 은둔해 도를 닦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에 둘러싸여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하고 유기적인 현대에 있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늘 마시고 숨쉬는 공기의 중요성을 망각하며 지내듯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망각하며 지내곤 한다. 그런 점에서 기획 인간이란 공기처럼 흔하디흔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제부터 커뮤니케이션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중요하다면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상하좌우 모든 방향으로 의사소통을 잘하는 것이 직장 생활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 베이직에는 다소의 원칙과 스킬이 필요하다. 기획 인간은 타이밍을 중요시하고 컨텐츠의 정확성과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중시한다. 이상은 일반적인 의미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기획 인간들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의 광의의 커뮤니케이션을 기획 인간은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기획 인간들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모델인 'S-M-C-R-E(S)'모델을 알고 활용한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고전적인 모델로 Sender(송신자)-Message(메시지)-Channel(매체)-Receiver(수신자)-Effect(효과)의 이니셜을 따서 부르기 쉽게 만든 모델명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획 인간은 커뮤니케이터의 속성에 대해 남다른 고민과 깊은 생각을 한다. ‘커뮤니케이터’란 ‘Sender(송신자)’와 거의 같은 의미로, 남들이 모두 메시지에만 매달려 생각하고 있을 때 기획 인간은 그 메시지가 어떤 사람, 어떤 기관, 어떤 브랜드, 어떤 회사, 어떤 나라, 어떤 언론에서 나왔는가, 혹은 어떤 곳, 어떤 사람으로부터 나와야 더 좋겠는가, 또 그 커뮤니케이터가 어떤 모습, 어떤 이미지, 어떤 경력, 어떤 조직, 어떤 배경, 어떤 설정을 갖고 있어야 좋은가 등에 대해서 매우 다양한 폭으로 고민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자기 스스로 누군가에게 어필을 해야 할 때, 어떤 옷차림과 표정이 유리할 것인가, 말의 톤과 매너는 일상적인 게 좋은가 아니면 사무적인 게 적합할까, 내 자신만 이야기할까 아니면 내 회사와 주요 맨 파워를 이야기할까 등 여러 차원의 생각을 미리 하게 된다.
둘째, 기획 인간은 메시지를 생성시킬 때나 해석할 때 남들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직장 내에서 오고 가는 비즈니스적인 대화들 중에는 다소 불명확하고 변동 가능한 미완의 아이디어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획 인간들은 자신에게 전달된 메시지에서 주요한 요소를 캐치해내고, 그에 따라 추가적인 정보를 찾아내서 그저 단편적인 아이디어였던 것을 하나의 근사한 프로젝트로 발전시켜놓곤 한다. 그리고 기획 인간들은 이런 능력을 갖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이란 다름 아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기획 인간은 다종 다양한 미디어를 자신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잘 취사 선택, 운용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에게 미디어는 단순한 의사 전달 매체가 아니라 그들을 도와 커뮤니케이션을 행해주는 훌륭한 도우미가 된다. 넷째, 커뮤니케이션형 인간은 자신 이전에 수용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인간들이 앞서 나가는 기획, 성공하는 기획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획 천재와 실전 기획 코드를 맞춰라
기획 인간이 실제 기획을 하는 데 있어 어떤 문제점에 부딪히며, 그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전 기획’코드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다. 다양한 기획 분야에 있어 공통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기획의 요체, 혹은 핵심 컨셉 등이 바로 실전 기획 코드로 선정되었다.
‘실전 기획 코드 1’은 상황 파악이다. 기획자들 중에는 고수와 하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하수와 고수를 구분 짓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상황 파악 능력’이다. 기획자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할 상황에는 세 가지 - 시장 분석, 경쟁사 분석, 소비자 분석 - 가 있다.
‘실전 기획 코드 2’는 소비자 조사이다. 기획자를 가장 기획자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가장 잘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의 생각과 태도, 행동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만 있다면, 그 기획자는 날개를 단 셈이나 마찬가지로 아주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 인간들이 즐겨 사용하는 소비자 조사 방법에는 설문지를 통한 소비자 조사, F.G.I.(Focus Group Interview)를 통한 조사, 관찰 조사 등이 있다.
‘실전 기획 코드 3’은 핵심 문제이다. 실전 현장에서 기획자들의 발목을 잡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종합 분석에서 무엇을 말해줄 것인가’이다. 기획서상에 이러한 종합 분석의 형식으로 애용되는 것이 ‘SWOT 분석’이다. 그리고 종합분석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문제를 많이 들춰내는 것 보다는 기획자로서 포커스를 어디에 맞출 것인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 둘째, 핵심 문제를 부각시키고, 핵심 문제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핵심 과제라는 말을 사용하라. 넷째, 핵심 문제, 핵심 과제는 곧 목표와 직결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전 기획 코드 4’는 세그멘테이션이다. 목표가 명확하게 설정된 이후에는 당연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제시되어야 한다. 머릿속에서 전략적인 그림을 그려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략 툴을 미리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많은 도구들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활용 범위가 큰 전략 툴을 소개하면, 시장 세분화라고 부르기도 하는 세그멘테이션이다.
세그멘테이션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이가 같은 욕구를 갖고 있지 않고, 자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그멘테이션이 필요한 이유가 이처럼 중대하고 명확한데도 실무 현장에서는 너무나 쉽게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세그멘테이션의 예로는 지리적 세그멘테이션, 인구 통계적 세그멘테이션, 심리 묘사적 세그멘테이션, 행동적 세그멘테이션 등이 있으니 참조해서 응용해보기 바란다. 이 밖에도 기획자의 의도와 판단에 따라서 무수한 세그멘테이션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그멘테이션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전략 수립을 위한 한 도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전 기획 코드 5’는 포지셔닝이다. 포지셔닝이란 소비자의 머릿속에 우리 제품 혹은 우리 브랜드를 경쟁 브랜드와 비교해서 어떤 점에 포커스를 맞춰 좌표를 찍어줄 것인가 하는 전략적 의사 결정을 말한다. 포지셔닝 전략 툴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첫째, 포지셔닝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항상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임을 알아야한다. 둘째, 항상 경쟁자를 의식한 포지셔닝이어야 한다. 셋째, 포지셔닝은 현재의 지점에서 목표 지점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실전 기획 코드 6’은 마케팅 믹스이다. 마케팅 믹스 -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판촉(Promotion) - 란 여러 가지 마케팅 수단을 ‘믹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제품 정책을 세울 때는 어떤 기능 혹은 특장점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기울여야 한다. 가격 정책을 수립할 때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저가 정책으로 갈 것인가, 고가 정책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유통 정책은 ‘소비자와 어떤 경로를 통해 만날 것인가’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편의를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판촉에는 광고, PR, 세일즈 프로모션 등이 포함되어 있다. 기획자는 기본적으로 판매 촉진을 위한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모션 툴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이렇듯 네 가지의 마케팅 툴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또 조화롭게 조합하는 것이 바로 마케팅 믹스의 묘미이자 기획자의 아주 중요한 임무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 강조해야 할 점은 제품에서건, 가격 정책, 유통 정책에서건 그리고 광고, PR등의 여러 판촉 활동에 있어서건 경쟁사, 경쟁 브랜드와 차별되는 요소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별화되는 요소는 단순히 튀는 차원이 아닌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차원에서의 차별화 요소여야 한다.
‘실전 기획 코드 7’은 피드백 및 평가이다. 기획은 실행 이후에 제품 소비자, 메시지 수용자들로부터의 피드백을 받은 다음, 스스로 객관적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끝을 맺어야만 한다. 기획자들에게 있어 피드백이란 ‘기획안의 내용대로 실행을 한 후 애초에 세운 목표대로 결과가 나왔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과학적인 수단을 동원해 파악해내는 소비자 또는 수용자들의 반응’을 말한다. 이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애초에 세운 목표대로 결과가 나왔는가를 알아내야 한다. 둘째,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 셋째, 과학적인 수단을 동원해 파악해야 한다. 넷째, 소비자, 수용자들의 반응 그 자체가 바로 피드백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피드백 데이터들을 수집한 이후에는 기획 단계에서 수립한 목표와 대비 분석해 냉정하게 평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평가는 차후에 세우게 될 다음 단계의 기획안 혹은 유사한 성격의 기획안에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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