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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일하기/intotheKOREA

전라북도 추천 여행지

by 리치캣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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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추천 여행지

번호 관광지명 주소 전화번호 내용  
1 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 063-840-3241 이병기 선생 생가는 사랑채의 건물이 고풍인 선비의 가옥으로, 국문학자이며 시조작가로서 우리 고전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이병기선생의 가족이 누대를 살아온 목조초가집이다. 건물은 조선말기의 형식으로 안채와 행랑채, 헛간, 모정과 연못 등이 있다. 지방기념물(地方記念物) 제 6호로 지정되어 있는 가람 이병기 생가는 금마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논산 쪽으로 가다보면 여산면 소재지 못 미쳐 신리교차로에서 집입하며 대형버스도 생가앞까지 갈수있다. 이 집은 수우제(守愚齊)라고 하는데 그 곳에는 ㄱ자형인 고패형으로 된 안채와 1자형인 사랑채, 고방채와 승운정(勝雲亭)이라는 모정 등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잡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세워진 안채는 안방마루를 사이에 두고 건너방과 안방을 좌우로 두고, 부엌은 안방의 일부와 이어 달려 있다. 안방 석축에는 칸을 막아서 찬방을 차리었으며 건너방의 측면과 전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수우제(守愚齊) 진수당(鎭壽堂) 등의 현판이 걸려 있는 4칸의 사랑채는 서로부터 2칸이 사랑방, 한 칸의 부엌, 그리고 한 칸의 서재로 구성되었으며, 정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3칸의 고방채는 광, 헛간, 안 변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채의 뒤에는 장독대가 있다. 지붕은 원래 초가였었는데 새마을 운동 때에 기와로 개량하였다가 다시 초가로 환원하였다. 모정인 승운정 앞쪽으로는 자그마한 연못을 파 놓았다. 연못은 안쪽을 자연석을 이용하여 가지런히 석축을 쌓아 올렸다. 연못을 둘러싼 묵은 산수유와 배롱나무가 더욱 선비의 운치를 자아낸다. 건물 자체에는 이렇다 할 특징은 없으나 조촐한 선비의 가옥으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 크지는 않으나 옹색하지도 않은 집채, 여름철이면 몇 그루의 파초가 늘어서는 동구 밖, 정자와 함께 산수유와 배롱나무로 둘러싸인 연못, 마당 한편에 놓인 맷돌과 절구통, 안채 뒤의 장독대, 집 뒤의 대밭에 이르기까지 선비 집의 은근하고 담백한 생활의 멋을 한껏 느끼게 한다. 스스로 술복, 제자복, 화초복의 세 복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처했던 가람의 집답게 넓지 않은 집안임에도 사철 돌아가며 꽃과 잎을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잘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누구나 여기에 들리면 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집들에서 느끼는 썰렁한 분위기가 아니라 마루에 걸터 앉아 한가롭고 따스한 햇볕을 쪼이면서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고, 모정에 마주 앉아 동동주라도 마시고 싶은 친밀감을 주는 집이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1891년 이 집에서 태어나 1968년 77세를 일기로 역시 이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가람의 관향(貫鄕)은 연안(延安)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공신(功臣)인 이귀(李貴)의 11대 후손이다. 7대조인 이사한(李思漢) 때 공주(公州)에서 연산(連山)으로 옮겨와 살다가 고조(高祖)인 이도술(李度術) 때 여산 원수리의 참수골(守愚齊 윗동네)이라는 마을로 이사했다. 증조(曾祖)는 이선인데 문필로 천명(擅名)되었다. 조부(祖父) 이조흥(李祖興)은 호를 동우(東愚)라 하였는데 진사동(守愚齊가 있는 마을)으로 이사하여 수우제를 일으키고, 청렴한 생활을 하고 효행으로 도천(道薦)된 분이었다. 청렴하면서도 풍류로운 동우선생의 행덕은 손자 가람에게 지대한 연향을 미쳤다. 선생은 시조 중흥의 기틀을 다지고 시조의 현대적 혁신을 위한 새로운 운동을 펼쳤으며 스스로도 수 많은 시조를 창작한 시조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역대+H12시조선』『가람문선』『국문학전사』등의 저서를 남겼다. 1898년부터 고향의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나 중국 사상가 양계초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읽고 신학문의 필요성을 깨달아, 열 아홉 살에 전주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 6개월 만에 마쳤다. 1913년 관립 한성사립학교를 졸업한 후 남양, 여산 등 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국어국문학 및 국사에 관한 고서적을 수집하고 시조를 연구하고 짓기 시작했다. 1925년 무렵부터는 봉천행, 한강을 지나며 등 시조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후로 여러 편의 시조론을 발표하여 시조혁신을 선도하고, 그 이론을 직접 실천하여 1939년『가람시조집』을 내놓았다. 또한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192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다.
2 강천사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996 063-652-5420 강천산(剛泉寺)군립공원 입구에서 1.8km 지점에 위치한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 후 번창하여 고려 충숙왕 3년(1316년) 덕현선사가 사찰을 중창하고 5층 석탑을 세웠고, 한 때 12개 암자와 1천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석탑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선조 37년(1604년)에 소요대사가 재건했으나 다시 6.25동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959년 원상태로 복원하였다. 충신리와 남계리, 석장승, 순창객사, 순화리 3층 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주변 관광지로 금성산성, 용소폭포, 강천호, 담양호, 추월산, 회문산, 내장산 국립공원 등이 있다.
3 강천산 군립공원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일원 063-650-1533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의 경우 그 유명세로 인해 잘 알려져 있지만 군립공원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순창군 강천산은 1981년 1월 7일 전국에서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여러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산이다. 순창에서 정읍 쪽으로 약 8㎞쯤 가게 되면 이 곳 강천산 입구에 이른다. 진입로 좌측에는 넓고 아름다운 맑은 강천호가 있다.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이 비단결같이 잔잔한 호수 위로 비춰질 때면 찾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 기암괴석, 그리고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절경 등의 볼거리를 갖춘 풍부한 관광자원이 있어 자연공원으로 지정을 받게 되었다. 산세가 웅장하거나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계곡이 깊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사람들은 광덕산은 몰라도 강천산은 잘 알고 있는데, 강천산이라는 이름은 원래 강천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강천산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996번지 일대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해발 583.7m의 산으로, 해발 565m의 광덕산을 비롯하여 해발 603m의 산성산과 연대봉, 선녀봉, 장군봉, 왕자봉, 형제봉, 신선봉, 옥호봉, 수령봉, 깃대봉, 천지봉으로 이루어진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랑스런 산이다. 예전에는 용천산이라 불리었는데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노령산맥에서 용천산을 이어 광덕산을 이루고 강천의 진산으로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산성산에서 남록과 북록으로 나누어 두 용이 나란히 수십리를 동으로 달린다. 그야말로 천봉 만학 기암괴석이 천태만상이고 거기서 우거진 천연수림은 태고를 자랑하듯이 파도처럼 물결을 이루고 있다. 두 산록 가운데는 수십리 깊은 계곡이 있다. 이름있는 계곡만 말하여도 저분제골(선녀계곡), 원등골, 분통골, 지적골, 소목골, 황우제골, 기우제골, 세낭골, 물통골, 우작골, 동막골, 탑상골(금강계곡), 승방골, 변두골 등이다. 골골마다 발원하여 흐르는 맑은 물이 중천으로 합류하여 돌과 돌, 바위와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는 계곡을 울리며 강천호로 흘러간다. 푸른 숲 맑은 물, 아름답고 시원한 계곡, 계절마다 산의 경관이 변하고 그 경관이 한결같이 수려하여 호남의 금강 강천산이라 부른다. 시냇가에 봄이 오면 버들강아지 피어오르고 개나리, 진달래꽃 만발할 때 쯤이면 산봉우리마다 산벚꽃이 한창이다. 시오리가 넘는 계곡길을 따라 자갈과 자갈 사이를 맑고 깨끗한 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린다. 너무도 차가워서인지 맑아서인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강천수로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 본다. 유달리 잡목과 단풍나무가 많은 강천산, 일곱 가지나 되는 단풍 속에서 아기단풍과 아기다람쥐가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단풍철의 정취를 더한다. 산세가 가파르거나 위험하지 않는 여러 갈래의 소로길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즐겨 찾는 강천산이다. 또한 산을 사랑하는 등산객의 산행에는 안성맞춤이다. 백설이 내리는 겨울이면 한 폭의 설화를 화폭에 담으려는 화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강천산의 사계절이 제각기 모습을 달리 하기에 찾는 이의 마음을 새롭게 한다.
4 격포해넘이해수욕장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일대 063-582-7808 격포 채석강에서 돌아 나가면 절벽의 경치가 거의 끝날 무렵 흰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곳이 격포 해넘이 해수욕장이다. 채석강과 적벽강의 명승지를 끼고 있는 좋은 입지조건과 관광객의 땀을 식히는 해수욕장이 되면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특히 1999년 천년의 마지막 해를 보내는 새천년 맞이 해넘이 축제가 국가행사로 개최되었던 곳으로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매년 12월 31일에 해넘이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주변에는 후박나무군락, 수성당, 적벽강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5 경기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 063-281-2790 1991년 1월 9일 사적 제 339호로 지정된 경기전은, 풍남문에서 동쪽으로 150m쯤 가면 나타나는 고색 창연한 건물이다. 사적 제 339호로 지정된 경내에는 유형문화재 제 2호로 지정된 경기전과 유형문화재 제 16호로 지정된 조경묘가 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태종 10년(1410년)에 창건하였다.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왕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서, 태조의 어용을 봉안하였으며, 태종 14년(1414년)에 건립되었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은 창건 당시에는 어용전이라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는 태조진전이라 하였다가, 세종 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하였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네 곳에 있었던 태조 어용전은 전부 소실되었다.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되었다. 경기전은 옛 전주부성 내 동남쪽에 광대한 면적을 점유하고 있었으나, 일제 때에 그 서쪽을 분할하여 일본인 전용인 수상 소학교를 세움으로써 경기전 절반 이상의 땅을 상실하였으며, 부속된 건물은 이때 거의 철거되었다. 현존 건물인 전각은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서, 전면에 하마비,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 등이 있다. 경기전에 봉안된 어용은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한 것이었는데, 세종 24년(1442년) 7월에 집경전의 어용과 함께 개화하여 동년 10월에 봉안했다. 현재 경기전 어진은 고종 9년(1872년) 9월에 개화한 것이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내장산에 피난하였다가 정읍, 태인, 익산, 용안, 임천, 은산, 정산, 온양, 아산을 거친 다음 강화도, 안주를 경유하여 묘향산, 보현사 별전에 봉안되었다. 그 후 어용은 여러 번의 수난을 겪었는데, 즉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에 피난했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으며, 영조 43년(1767년) 이른바 정해대재 때는 전주향교 명륜당에 긴급 피난한 일이 있었으며, 고종 31년(1894년)에는 동학군의 전주입성으로 한 때 위봉산성에 피난하기도 했다. 경기전에 인접한 북쪽에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가 있다. 조경묘는 영조 47년에 창건하여 영조가 친히 위패를 썼으며 동학혁명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할 때 태조의 영정과 함께 위봉사의 행궁에 옮겼다가 7월에 다시 전주로 옮겨 놓았다.
6 경천저수지 전북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 성북리, 운제리 063-263-4874 전주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대둔산 방면으로 가다보면 낚시터이자 휴식처로 인기가 많은 경천저수지가 있다. 화산면 화평리, 성북리, 운제리에 걸쳐 위치해 있는 경천저수지는 저수지 형태가 인삼을 거꾸로 세워 놓은듯이 상류가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으며, 저수지의 폭이 1㎞, 길이가 직선거리로 3∼4㎞이며 수면적이 319ha에 이른다. 저수량이 약2,535만여톤이어서 고산, 봉동, 경천 일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붕어를 비롯한 담수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서 낚시꾼의 요람이기도 하다. 저수지 제방아래 피는 벚꽃은 그 경관을 한결 아름답게 수놓는다. 먹거리는 참붕어찜이 일품이다.
7 고산자연휴양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 산 43-1 063-263-8680 구역면적이 692ha(시설면적 50ha)에 이르고, 수용인원 최대 5,000명/일(최적 1,600명/일)을 수용하는 고산 자연휴양림은 1998년 7월에 개장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낙엽송, 잣나무, 리기다 등 조림지와 활엽수, 기암절벽 등이 어우러져 봄에는 철쭉, 산벚, 각종 야생화, 여름에는 울창한 숲과 계곡, 가을철은 감, 밤 등의 열매와 단풍, 겨울엔 설경 등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사계절 휴양지로 최적이며 교통이 편리한 지역으로 접근하기 쉽고 대둔산, 대아저수지, 대아수목원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 휴양이 가능하다. 완주군 8품인 곶감, 대추, 생강, 표고, 수박, 배, 포도, 딸기 등 품질 좋은 지역특산품이 있다. 주변관광지로는 휴양림에서 24㎞(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근방의 대둔산 도립공원이 있는데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해발 878m 대둔산이 기암 절벽과 수목이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 외에도 모악산 도립공원, 위봉폭포, 송광사, 대아저수지, 동상 운장산 계곡, 경천저수지, 죽림온천 등을 아우르는 완주팔경이 유명하다. 편의 시설로는 산막(숲 속의 집-7평형 - 40,000원, 10평형 - 60,000원, 14평 이상 - 80,000원), 사계절 썰매장(어린이 - 3,000원, 어른 - 5,000원), 텐트(15,000원), 캠프 화이어장(20,000원) 등이 마련되어 있다.
8 고인돌군 전북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 죽림리, 매산리, 송암리 일대 063-560-2577 고창읍에서 4km 쯤 떨어진 도산리 지동마을 김영인씨댁 뒤 장독대 옆에 깔끔하게 정돈된 북방식(납작한 돌을 양쪽에 높이 세우고 그 위에 복석을 덮은 것) 고인돌 1기가 있고, 3km 정도 선운사 쪽으로 가면, 아산면 상갑리, 고창읍 죽림리, 매산리, 송암리 2Km의 지역에 펼쳐진 고인돌군이 나온다. 여기에는 길이5m, 폭4.5m, 높이4m의 150톤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을 위시로, 447기의 고인돌군이 각각 고유번호로 흰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다. 이 고인돌군은 청동기시대에 이미 취락을 이루고 생활하여왔음을 엿보게한다. 2000년 11월 29일, 강화, 화순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고, 그 전후로 상갑리, 죽림리 일대의 유적지가 잘 정돈되었다.
9 고창읍성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 9 063-560-2227 고창읍성(高敞邑城)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倭侵)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성은 나주 진관(鎭管)의 입암산성(笠岩山城)과 연계되어 호남대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극복을 위한 국방관련 문화재(사적 제145호, 1965년 4월 1일 지정)로 보존되고 있다. 이 성은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50,172평으로 동. 서. 북 문과 옹성(甕城) 3개소, 치성(稚城) 6개소, 성밖의 해자(垓子) 등 전략적 요충 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東軒), 객사(客舍) 등 22동의 관아(官衙)건물, 2지(池), 4천(泉)이 있었으나 전화(戰火)로 대부분의 건물이 손괴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 오고 있다. 자연경관 또한 참으로 아름다워 하늘을 뒤덮는 노송과 빽빽하게 들어선 맹종죽(孟宗竹)은 운치를 더하여 준다. 지금까지 22동 중 14동(동헌(東軒), 객사(客舍), 풍화루, 공북루(拱北樓), 진서루(鎭西樓), 등양루, 성황사, 관청, 작청(作廳), 내아(內衙), 향청(鄕廳), 서청, 장청, 옥이 복원되었고 앞으로 8동의 관아(官衙) 건물도 복원할 계획이다. 또한 성밖의 외곽도로를 말끔히 정비하고 철쭉과 백일홍 등 꽃나무를 심어 꽃 길로 가꾸어 놓았다.
10 곰소젓갈단지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만 일대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만 일대의 젓갈 특산단지는 변산반도 국립공원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전국적인 젓갈의 명소로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해 젓갈을 구입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로부터 온 주부들과 관광객들, 식도락가들로 연중 대성황을 이룬다. 이처럼 곰소젓갈이 유명한 것은 맑고 푸른 서해 칠산 앞바다 청정 해역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수산물을 1년이상 저장하여 간수를 제거한 깨끗한 곰소 천일염에 버무려 변산반도 골바람과 서해낙조를 받으며 장기간 자연숙성 시키는 전통 재래식 염장법으로 정성껏 만들어서 맛과 품질이 뛰어나며 값이 싸고 종류가 다양하므로 실속있고 풍성한 식탁을 원하는 많은 소비자들에게 만족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곰소에서 각종 젓갈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는 20여개 업체로 이들이 만들어내는 젓갈의 종류는 40여종에 이른다. 젓갈 주문은 전화로도 가능하며 직접 배달이 되지 않는 지역은 택배로 신속하게 원하는 곳까지 보내준다.
11 광한루 전북 남원시 천거동 77-1 063-620-6831 보물 제 281호(1963년 1월 21일 지정)인 광한루는 조선 세종 때 명정승인 황희(黃喜)가 처음 세워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은 것으로, 원래 이름은 광통루(廣通樓)였다. 후에 정인지(鄭麟趾)가 그 수려한 경치에 감탄해 전설상의 달나라 궁궐(月宮)<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닮았다고하여 광한루라 고쳐불렀다. 건물 북쪽 중앙에 층계가 붙어있는데 이것은 점점 기우는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건물 앞 동서에 연못을 만들고 반월형 교각을 가진 오작교(烏鵲橋)를 놓아 양 연못을 다리 밑으로 연결하였다. 연못을 노니는 오색 잉어는 건물을 에워싼 아름드리 나무와 더불어 찾는 이들에게 풍성한 볼거리와 기쁨을 더해준다.
12 구천동계곡 전북 무주군 설천면 063-322-3174 덕유산국립공원(1,614m) 북쪽 70리에 걸쳐 흐르는 계곡으로 입구인 나제통문을 비롯하여 은구암, 와룡담, 학소대, 수심대, 구천폭포, 연화폭포 등 구천동 33경의 명소들이 계곡을 따라 위치해 있다. 여름철의 무성한 수풀과 맑은 물은 삼복더위를 잊게 해주며,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철의 단풍과 겨울철 설경 등 사시 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13 군산내항 전북 군산시 장미동 063-450-4554 군산항은 금강의 하구, 충남의 장항과 마주 보면서 금강이 서해로 그 길목을 넓혀가는 곳에서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상업항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이제는 행정선과 대학 실습선 그리고 연안 여객선 터미널 정도로 활용되고 있으나 1899년 개항 이래로 군산시민과 함께 숱한 애환을 같이 해 온 역사의 증인으로서 아직도 제 몫을 담당하고 있는데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한 입구의 백년광장과 연계하여 친수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군산 시민들에게 군산항의 추억은 아주 뿌리가 깊고 군산을 떠나서도 잊지 못하는 생활과 밀착된 공간으로서의 그것이다. 여름날 모기를 피하여 항구주변 뿐 아니라 조금 먼 곳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여름밤의 더위를 피함은 물론 젊은 청년들은 부잔교(뜬다리)를 이어주는 높다란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올라가 모여있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이빙을 하는 낭만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가을에는 망둥어 낚시를 즐기기도 했던 곳이다. 이제 선유도와 어청도로 가는 여객선과 군산과 장항 간을 오가는 도선이 한가롭게 보이는 가운데 내항에서 화물을 하역하고 상선들이 부산하게 오가는 모습을 보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뜬다리는 그대로 있고 그때 그 갈매기가 아직도 날고 있다.
14 귀금속판매센타 전북 익산시 영등동 682 063-835-8007 익산귀금속판매센터  
15 금강시민공원 전북 군산시 성산면 063-450-4421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높이 떠서 바라보면 충청남도와 전라북도를 경계로 구불구불 힘차게 흐르는 모습의 금강을 보게 되고 이윽고 군산에 이르면 그 물이 누렇게 황토로 변하여 백릉 채만식 선생의 소설 탁류의 의미가 가슴에 진하게 와닿는다. 그 물이 서해로 빠져 나가기 전에 한 굽이 크게 휘돌아 나가던 곳에 8년의 대역사 끝에 지난 1990년 완공된 길이 1,841미터, 갑문 20개의 금강하구둑이 자리잡고 있다. 금강 연안의 홍수조절과 4천만 평이 넘는 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곳 둑 위에 만들어진 4차선 도로는 전북과 충남이 하나 되는 화합의 길이 되었다. 바닷물과 민물을 오가며 사는 어류를 위해 만든 어도(魚道)에서는 어른 팔뚝만한 숭어들이 뜀을 뛰고 넓고 길게 펼쳐진 금강호 1,095만평에는 겨울이면 고니와 각종 희귀 철새들이 수만 마리씩 날아와 오르내리는 장관을 이루어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고 1만 8천여 평의 금강공원이 하구둑 입구에 조성되어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지금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조류공원 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군산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는 진포대첩 기념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금강호 관광단지에 해양 레포츠 시설과 숙박시설 등 부대시설을 갖추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각광받는 종합관광지로 탈바꿈 될 것이다.
16 금강하구둑 전북 군산시 성산면 063-450-9966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수많은 지천이 모여 광활한 비단폭을 만들었다 하여 일컫는 금강(錦江)... 금강은 전북 장수군 팔공산에 그 원류를 두고, 충북 영동과 대전, 공주, 부여 일대를 활모양으로 돌아 군산으로 흘러나온다. 숱한 역사의 애환이 아로새겨진 장장 400여 km의 강물을 하구둑으로 막아 새로운 관광의 명소로 부상하였다. 몇 년 전에는 군산에서 장항으로 가려면 뱃길로 왕래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구둑이 생기면서 군산과 장항 사이를 단숨에 차량으로 왕래하는 교통로가 뚫리고 주변 경관이 상전벽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달라져 관광객이 밀려와 시원한 바닷 바람을 즐기는 유원지가 되었다. 금강유원지는 하구둑이 있는 군산시 내흥동과 익산시 성산면 일대로 내수면 관광지로 강을 타고 상류로 올라가면 강변에 이어진 갈대 숲과 그 배후에 돌산(해발100m)과 오성산(230m)의 높지 않은 구릉지가 펼쳐있어 자연의 경관이 수려하다. 이 주변에는 주로 생선 횟집을 비롯 음식점과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고 진포기념관, 채만식 문학관, 놀이동산시설 등을 갖춰 우수한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특히 갈대밭이 넓게 펼쳐져 11월이면 어김없이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있다가 다음 해 3월 시베리아를 향할 때까지 우리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겨울철새야말로 금강호가 제공하는 백미인 듯하다. 금강호는 고니와 청둥오리, 검은머리 물떼새, 검은머리 갈매기 등 희귀 철새들의 도래지로 겨울방학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지로 제격이다.
17 금당사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41 063-432-1944 마이산 남부 주차장에서 탑사쪽으로 약 300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금당사는 현재 조계종단 소속인데 고구려 보장왕 때의 열반종의 종조 보덕화상의 제자인 무상화상과 김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 중기의 지리서에는 금당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확실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마이산에는 상원사, 혈암사, 쇄암사만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바 이 중 어느 것이 금당사의 전신인지 또 언제 현재의 자리에 건립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알 수 가 없다. 아무튼 금당사는 매우 퇴락하여 1978년에 지장전을 중건하였고 뒤 이어 대웅전과 삼성각을 중건하였다.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이고 팔작 기와지붕이며, 지장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이고 맞배기와지붕이며, 삼성각은 전면 3칸, 측면 2칸이고 맞배지붕으로 건립되었다. 금당사에는 ¨괘불탱화¨ ¨목불좌상¨ ¨삼층석탑¨ 등 문화재 3점이 소장되어 있다.
18 김동수가옥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814 063-530-7615 이 가옥은 김동수씨의 육대조(六代祖)인 김명관(金命寬)이 178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창하산(蒼霞山)을 배경(背景)으로 앞에는 동진강(東津江)의 상류(上流)인 맑은 하천(河川)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전에 세운 주택용(住宅用) 건물(建物)이다. 바깥행랑채의 소슬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사랑채가 보인다. 다시 사랑채의 안 대문을 들어서면 집의 구조가 대청(大廳)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左右 對稱)을 이루며, 좌우전면의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한 특이(特異)한 평면(平面)의 안채가 있다. 안채의 서남쪽으로는 안사랑채가 있는데 입향조(入鄕祖)인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그 자신과 목수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 한다. 또 안채의 동북쪽에는 작은 사당(祠堂)이 있다. 이 건물은 비교적 섬약(纖弱)한 부재(部材)를 사용했는데 이는 조선후기(朝鮮後期)에 지은 중류이상(中流以上)의 주택건물에 보이는 일반적 특징이다. 이 가옥은 소박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건립자(建立者)의 독창성(獨創性)을 엿보게 한다. 후세(後世)에 보수(補修)하거나 개조(改造)되지 않고 거의 원형(原形)대로 보존 되어 있으며 주택과 주위 환경이 잘 정돈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집의 주위에는 여덟 채의 호지(護持: 노비의 집) 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 채만 남아 있다. 이 집은 누대(累代)를 살아 오면서 재산을 누리고 살아온 이름 있는 터(基)로, 점을 쳐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아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주목이 되는 풍수설(風水說)의 터이기도 하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니 좋은 집터라 하여 이익이 생겨지는(生利) 집이라 하여 집을 보고 길흉(吉凶)을 점쳐보는 곳이기도 하다. 산을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둔 터전에 동서(東西)로 65m, 남북(南北)이 73m의 장방형 담으로 둘려 있고 주 건물(主 建物)은 동서면(東西面)을 향하여 세워져 있다. 개울을 건너가면 대문(大門) 앞에 큰 못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말라 버렸다. 문간채(門間棟)는 길게 설치되어 있으나, 쓰임에는 두 가지로(兩分)되어 있다. 대문(大門)을 들어서면 우측에 마구간(馬廐間)이 있고 좌측에 방, 마루, 또 방이 있고 거기에서 꺾이면서 북쪽에 있는 칸에 방과 부엌을 한 칸씩 두고, 이어 약간 간 격을 둔 뒤에 바깥 남자들이 쓰는 변소(外厠)를 세웠다. 이 하나의 담으로 둘러쳐 막은 곳(一廓)에 한 곳을 사잇벽(間墻)을 쌓고 동편에 일각문(一角門)을 세워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는데 동쪽 정원에 사랑채가 남쪽으로 향하여 있고, 그 앞에 대문간채(大門間棟)에서 이어진 고간(庫間)이 일곱 칸이 계속 되다가 ㄱ자로 꺾이고 북쪽으로 가면서 부엌과 방 두 칸이 더 있다. 사랑채에는 정면으로 다섯 칸, 옆면으로 세 칸의 一자형(字形) 평면인데 높은 기둥에 세워 안에 들이고 그 앞뒤로 퇴간을 두었다. 방은 두 칸과 뒷방 한칸이며 부엌과 안창고(內庫)가 있는 외에는 전부가 마루로 된 시원한 량청(凉廳)이 되어 있다. 이 사랑채에선 전퇴(前退) 서단간(西端間)에 횃대처럼 한 가닥만 기둥 사이에 건너질러 난간처럼 꾸민 구조가 주목되고 있다. 난간의 발달과정 등에 유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언급하는 학문적인 자료가 거기에 있다. 중문간채(中門間棟)가 사랑채 뒷편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변소(厠間), 허간(虛間), 고간(庫間), 내외벽이 있는 두 칸의 중문(中門), 이어 헛간과 고간이 계속되다가 아홉간(間)채에서 꺾이어 북쪽으로 부엌과 방이 두 칸 이어진다. 중문(中門)을 들어서면 안 마당에 ㄷ자형의 안채가 있다. 몸채의 가운데 여섯 칸이 대청(大廳)이며 세 칸이 두불작이이다. 그 좌우에 방이 각각 있고 이어 꺾인 날개부분에 부엌이 만들어져 있다. 안채의 서쪽에 별당(別堂)이 한 채 있어 역시 남향이다. 一자형인데 정면 다섯 칸, 옆면 칸반이 되는 규모이다. 역시 가운데에 대청(大廳)이 있고 좌우에 방이 있으며 서쪽 끝에 부엌 한칸이 만들어져 있다. 별채의 남쪽에 부속건물이 하나 더 있고 안채의 동북쪽에 따로 이룬 가묘(家廟)가 있다. 특히 사랑채에는 팔각 지붕에 네모난 기둥인 방주(方柱)를 사용했으며 주위로는 잘 다듬은 화강암의 길게 다듬어 만든 돌인 장대석(長帶石)을 둘러 놓았다. 이 건물은 균형미가 넘쳐 있으며 처마 흐름이나 기둥의 배열 등이 이루는 건축미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나타내 주고 있어 조선조(朝鮮朝) 사랑채 건물로서는 전국에서도 빼어난 건물이라 하겠다.
19 나제통문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높이 3 m. 길이 10 m. 암벽을 뚫은 통문으로, 옛 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境界關門)이었다고 전해진다. 통문 동쪽 은 본래 무풍현(茂豊縣), 서쪽은 주계현(朱溪縣)의 땅이었는데, 조선시대에 합쳐서 무주현(茂 朱縣)이라 하였다. 무풍현은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으로 경덕왕 때 무풍현으로 고쳐 개령군 (경북 김천)에 소속시켰고, 주계현은 백제의 적천현(赤川縣)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단천현(丹 川縣)이라 하다가 고려시대에 주계현으로 고쳤다. 그와 같이 통문을 경계로 한 동·서 두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판도와 문물이 다른 지역이었던 만큼, 600년 이 지난 지금도 통문을 경계로 언어·풍습 등에 차이가 있으며, 사투리만으로도 두 지방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 나제통문은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입구의 경승지이기도 하다. 현재 덕유산(德裕山)국립공원 경역(境域)에 들어 있다.
20 내소사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063-582-7808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 아래에 위치한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惠丘) 두타가 이 곳에 절을 세워 큰 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소소래사만 남았는데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이 절의 대웅보전은 조선 인조 때 청민선사가 중건하였는데 빼어난 단청솜씨와 보살화를 연꽃문양으로 조각한 문격자의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또 경내에는 고려동종, 법화경절본사본, 설선당과 요사, 3층석탑, 괘불 탱화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으며, 입구의 전나무 숲이 한껏 풍치를 더하는 유서 깊은 절이다.
21 내장산 국립공원 전북 정읍시 내장동 59-10 063-538-7875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내장산(內藏山)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 단풍으로 지천을 물들이는 내장산은 찾는 이의 가슴에 진한 추억을 남기는 호남의 금강이다. 불 타는 단풍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가 이루어내는 황홀경은 단풍비경의 대명사로 손색이 없다. 해마다 단풍천지를 이루는 가을뿐만 아니라 봄에는 철쭉과 벚꽃, 여름에는 짙고 무성한 녹음으로, 겨울에는 바위절벽의 멋진 비경과 아름다운 설경, 그리고 사계절 내내 갖가지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만개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내장산 국립공원은 호남의 5대 명산인 내장산을 비롯하여 남쪽으로 이어진 백암산, 그리고 내장사, 백양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함께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쳐간 입암산성 까지를 포괄하는데 봄 백양, 가을 내장이란 말처럼 비경의 연속이다. 내장산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래, 아담하게 자리잡은 내장사(內藏山), 대웅전과 극락전 등 조선중기의 건물들이 다수 남아있는 웅장하고도 고풍스런 면모를 갖추고 있는 백양사(白羊寺), 동지섣달 엄동설한에도 여전히 그 잎새들을 반짝거리는 굴거리 나무와 비자나무 노목들이 천 년을 넘나드는 불심으로 아름다운 숲을 이뤄 역사의 심오한 향기를 더해준다. 또한 내장사를 가운데 두고 신선봉(763m)을 주봉으로 하여 장군봉(696m), 서래봉(624m), 불출봉(619m), 연자봉(675m ),까치봉(717m) 등이 말발굽처럼 둘려진 특이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760종의 자생식물과 숲, 그리고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다양한 야생동물이 숨쉬고 있는 내장산은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 그리고 전남 장성군에 걸쳐있으며, 소백산맥에서 갈라진 노령산맥이 호남평야의 한 가운데 이르러서 다시 한 번 빚어낸 우리나라 최고의 가을산이다. 총면적이 76.032㎢ 에 달하며 1971년 11월 17일 백양사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22 대둔산도립공원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063-263-9949 노령산맥 줄기가 김제의 만경평야를 향하다 독립된 산군을 이루며 절경을 이룬 곳이 대둔산이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이 산은 정상인 마천대(878m)를 비롯하여 사방으로 뻗은 여러 산줄기가 어우러져 칠성봉, 장군봉 등 멋진 암봉을 이루고, 삼선바위, 용문굴, 금강문 등 사방으로 기암괴석과 수목이 한데 어우러져 산세가 수려하다. 마천대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낙조대에 이르는 구간은 특히 장관으로 이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출, 일몰 광경이 일품이다. 1977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위해 케이블카, 금강구름다리 등이 설치되어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5분 정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서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 금강구름다리인데 이는 임금바위와 입석대 사이를 가로질러 놓은 것으로 높이 81m, 길이 50m이다. 이곳에는 또한 진산의 태고사, 운주의 안심사, 별곡의 신소운사 등의 유서 깊은 절도 남아 있다.
23 대아수목원 전북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산1-2 063-243-1951 연중 이용 가능한 대아수목원은 하루 수용인원이 800명에 이른다. 전주시 근교의 대아수목원은 노령산맥이 그림 같은 운암산과 맑고 잔잔한 대아호반과 어우러져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출한다. 중수골과 왕재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과 은천골의 물이 합류하여 대아저수지에 유입되고, 왕재에서 장재와 중수골을 연결하는 6.3㎞ 등산로는 수림경관과 산림욕을 누구나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으며, 중수골의 정상에 이르면 남쪽 아래에 대아저수지를 내려다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휴양 시설 - 편의시설 : 관리사무실, 안내실, 주차장, 잔디밭, 대피소, 등산로 등 - 교육시설 : 숲속의 교실, 산림문화전시관(2층), 유리온실 등 - 체육시설 : 체력단련시설, 어린이놀이터, 다목적운동장 등 - 위생시설 : 화장실, 음수대 등 주변관광지 대둔산도립공원(전주에서 40㎞) 위봉사 및 위봉산성 (전주에서 송광사를 지나 15㎞에 위치)
24 덕유산 전북 무주군, 장수군, 경남 거창군, 함양군 063-322-3174 소백산맥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덕유산국립공원(1,614m)은 전북, 경남의 2개도 4개 군에 걸쳐 있으며, 1975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무주군의 설천면 나제통문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30 km의 계곡 일대에 13개의 대와 10여 개의 못, 여러 개의 폭포가 이루는 무주구천동의 33경을 비롯하여, 용추폭포에서 칠연폭포에 이르는 안성계곡 11경 등 수많은 절경이 있다. 적상산성(사적146호), 안국사의 괘불(보물 1267호) 등 수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희귀한 주목나무가 무리를 이루는 등 경치도 아름답다. 이 곳에는 600여종의 동물과 250여종의 식물군이 다양하게 분포하여 일대 장관을 이루는데 특히 봄이면 철쭉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구천동 골짜기의 시원한 계곡은 한여름 피서지로 더할 나위 없이 적격이다. 또한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은 가히 자연의 오묘함을 연출한다. 나제통문, 적상산성, 호국사지 등 유서 깊은 유적지가 있으며, 안국사, 백련사, 원통사, 송계사, 인월암 등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대단위 자연 학습선원과 등산인, 사회단체의 수련장으로 마련된 덕유 대야영장은 국립공원 덕유산의 자랑이다.
25 덕진공원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1314-4 063-281-2436 덕진공원은 고려시대부터 조성된 연못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전주의 대표적인 도시공원이다. (1938. 5. 최초 공원지정). 4만 5천 평의 경내에는 남쪽으로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연못과 북쪽의 보트장을 동서로 가로지른 현수교가 그 사이를 양분하고 있다. 전주의 볼거리로 강한 인상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덕진공원 연못에 피어있는 연꽃이라 할 정도로 덕진연못은 전주팔경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여름이면 활짝 핀 연꽃이 호수 수면의 절반 가량을 덮어 장관을 이룬다. (연꽃 자생지 : 13,000평). 연못중앙의 아치형 현수교를 거닐면서 한없는 시정에 젖어볼 수도 있고, 근래에는 취향정 옆에 500여 석을 갖춘 야외공연장을 마련하여 공연이 수시로 열려 입장객들에게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 덕진공원 안에는 신석정시비, 김해강시비, 전봉준 장군상 등 9개의 석조기념물이 조성되어, 연꽃 향기와 공연장에서 베풀어지는 판소리등의 각종 공연으로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전주의 정취를 안겨주는 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음악분수> - 1일 4회 운영 - 봄, 가을(4~5월, 9~10월) : 오후2시, 오후5시, 오후8시, 오후9시 - 여름(6~8월) : 오후2시, 오후5시, 오후9시, 오후10시 단, 토요일은 야외영화 상영으로 3회는 20분 전에 운영, 4회는 미운영 <조성된 역사>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도성방위를 위하여 늪을 만든 이래 자연현상에 의하여 현재에 이른 덕진지(德津池)와 1927년 박기순(朴基順)에 의하여 만들어진 취향정(醉香亭)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 전주부 산천조에 『 덕진지재(德津池在) 북십리부지세(北十里府之勢) 건유공결(乾維空缺) 기맥천언고서자(氣脈淺焉故西自) 가련산(可連山). 동속(東屬) 건지산(乾止山) 축대제이지(築大提以止) 지명덕진(之名德津) 주구천칠십삼척(周九千七十三尺)』이라 쓰여 있어 덕진연못은 원래 덕진지(德津池)라 불렸음을 알 수 있는데 덕진연못은 관개용이 아닌 풍수지리설에 연유해서 축조된 것이다. 전주부성(全州府城)은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으나 북방만이 공허하여 지기(地氣)가 얕다는 이유로 가련산과 건지산 사이를 제방으로 저수함으로써 지맥이 흐르지 않도록 했으며 당시 유지 朴基順이 사설공원을 설치할 목적으로 1917년 7월경부터 30년간 임대 허가를 받은 국유임야 25,443㎡ (7,710평)에 취향정(醉香亭)을 비롯하여 상당한 시설을 유치하고 1929년 전주 - 이리간 철도가 이전하면서 전주역과 덕진역이 세워지게 되면서 전주시에서 덕진역사(德津驛舍) 주변으로 공원계획을 수립하고 야구장, 육상경기장 등 체육시설을 설치하는 공원계획을 추진 하였으며 또한 朴基順은 이 사설공원을 관리해오다가 취향정 유지관리를 위한 사유지와 함께 1929년 전주시에 기부체납하고 전주시는 헌납받은 사유지와 독지가 연출금 오천원에 면비 육백원을 합쳐 {덕진공원}이란 이름으로 공립공원을 개장하였다. <덕진 연못의 단오(端午) 그리고 연꽃> 덕진연못의 물맞이를 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새벽부터 아낙네들이 모여 들어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덕진호반에 있는 창포에 아낙네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연못 물에 칭칭 늘어진 머리채를 감거나 목욕하면 선약 (仙藥)의 효험을 얻어 1년 내내 건강하게 지낸다하여 용왕님께 축원을 올리며 또한 여름(7∼8월)이면 연꽃의 향기가 진동하는 덕진연당에는 연꽃(德津採蓮)을 구경하고자하는 관광객과 전통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개최 되어 예전부터 많은 시민들이 애용하는 향토 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26 도립미술관 전북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1068-7 063-222-0097 도립미술관은 기획, 상설전시, 미술작품의 수집과 보존, 국내 작가발굴과 국제교류전을 통하여 전북의 많은 작가들과 도민들의 생활속에 폭넓은 미술문화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전북의 많은 예술문화공간과 연계하여 전북예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공공미술관으로서 대중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열린공간으로 자리 매김 할 것입니다. % 규모<BRr>* 부지면적 : 20,982.60㎡(6,350평) * 건물면적 : 3,917.58㎡(1,185평) * 연 면 적 : 6,904.81㎡(2,088평) % 주요시설 전시실5, 수장고, 강의실, 어린이 실습실, 강당, 아트샵, 카페테리아, 자료열람실, 야외공연장등
27 동진수리민속박물관 전북 김제시 신풍동 491-1 063-540-1126 시대의 변천과 문명의 이기에 밀려 차츰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는 수리, 농경, 생활, 민속자료 등을 모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 민속박물관으로 농경의 발전 과정을 한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전시실 405.92㎡(122,79평)에 545종 1,711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후손들에게 농경문화의 산실로서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규모> * 전시실 : 본관 1층 405.92㎡(123평) * 전시품 : 1,711점 (전시실:600점, 수장고:1,111점) * 소장품 내역 : 수리 39점, 농경 548점, 기계 210점, 민속 166점, 생활748점 <주요시설> 주차장, 식당 <소장품> 1,711점(전시실(600점), 수장고(1,111점)
28 동편제판소리전시관     동편제 판소리 관련 자료와 명인 명창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어현동 관광단지내 옛 공공시설 관리소를 개조해 마련한 전시관에는 송흥록 선생과 박초월, 강도근 명창 등 남원 출신 명인 명창들의 유품과 악기, 국악 관련 책자 및 CD가 진열되어 있으며, 또한 전시실 옆에는 국악을 감상할 수 있는 미니 국악감상실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즉석에서 관심있는 국악을 감상할수 있다.
29 동학혁명기념관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8 063-536-2310 백산(白山) 3월 봉기(蜂起), 전주집강소(全州執綱所), 삼례(參禮) 9월 봉기, 우금치전투(牛金峙戰鬪)외 유품자료가 40평 규모이며 전봉준이 사용하던 유일한 유품(遺品)으로 벼루, 붓, 패랭이, 갓, 신 등이 보존되고 있으며, 사료(史料)로 갑오실기(甲午實記), 전봉준 공초(全琫準供草), 용담유사(龍潭遺詞), 동경대전(東經大全), 갑오군공록(甲午軍功錄) 등 당시를 조감(鳥瞰)할 수 있는 사료를 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때의 사진, 병기, 도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유물은 186종(種)에 총 290점(点)이 보관되어 있으며 기념관에 사발통문(沙鉢通文) 등 11종 159점이 있고 전봉준 고택(全琫準故宅)에 장롱 등 75종 131점이 있다. 건물은 콘크리트 둥근 기둥에 연와 벽동, 벽체, 토기와(土瓦)와 박공지붕이고 전면 5칸, 측면 3간이다. 황토현전적지(黃土峴戰蹟址) 황토현전적지는 1894년(高宗 31년) 고부군수 조병갑(古阜郡守 趙秉甲)의 학정(虐政)에 대항하여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외치던 당시 전봉준 장군의 휘하 농민군이 5월 11일 관군과의 접전 첫 번째로 전라 감영군(監營軍)을 크게 물리쳐 대승(大勝)한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30 마이산도립공원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일원 063-433-3313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또한,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리우는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 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이르기를 우리가 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납시다 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는 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 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것을 듣고 등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 이 꼴이 되었구나 하고 여신으로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 버리고는 그 자리에서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다 한다.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기는 하지만 마이산을 진안쪽 북에 보면 아닌 게 아니라, 동편 아빠봉에 새끼봉이 둘 붙어 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러워서인지 수치심에서인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라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31 마이산석탑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8 063-432-0652 마이산 탑사는 태고종단에 소속된 사찰로 마이산 속에 쌓여진 신비한 돌 탑무리에 자리잡아 세워진 사찰이다. 이 사찰은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마이산 석탑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 탑들은 이갑룡(1860~1967) 처사에 의하여 쌓여졌다고 알려져 왔으나 그간 여러 가지 전문(傳聞)과 정황 등으로 미루어 천지탑은 이갑룡처사 이전에 쌓여졌다는 강력한 주장이 제기되었고, 1998년 말 현재 이 문제는 진안군과 탑사측 사이에 소송쟁점이 되어 있다. 1928년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까지도 이처사는 불교를 표방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후기에 와서 마이산을 찾는 치성인들의 수가 불어나자 이처사의 기도처이자 치성처인 토막은 어느 때인가 함석지붕으로 새로 지어지고 자연스럽게 삼신상과 불상이 안치되어 사찰화 되어갔다. 1980년 이전까지는 법당에 부처를 모시고 생활관을 겸하는 인법당(因法棠) 처지를 면하지 못하다가 1980년 태고종단으로 등록하고 1986년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인 대웅전을 완공하고 뒤이어 나한전과 동양 최대의 ¨법고¨라는 북을 소장한 종각과 관리사를 건립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32 망해사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004 063-542-8146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004번지에 자리한 망해사는 만경강 하류 진봉산의 북쪽 기슭에 바다를 향하여 서 있다.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에 속해 있는 이 절은 백제 의자왕 2년(642년) 부설거사가 처음 일으켰으며, 그 후 여섯 번에 걸쳐 거듭 고쳐 온 것으로 되어 있다. 망해사 경내에는 보광명전, 낙서전, 칠성각, 공양 집 그리고 네 개의 부도가 있다. 이 가운데 보광명전과 칠성각 및 공양 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낙서전과 부도에 관하여 간단히 설명한다. 약서전(樂西殿): 이 건물은 선조 22년(1589년) 진묵대사가 처음으로 세웠고, 그 후 1933년과 1977년에 고쳐 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의 바깥 형태는 팔작지붕의 ㄱ자형으로서 앞으로 한 칸 나온 부분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종(鍾)이 걸려 있다. 건물의 오른쪽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서 원래 이 낙서전이 법당 겸 공양집(寮舍)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부도군(浮屠群): 절 입구에 크기는 각각 다르나 형태가 비슷한 4기의 부도가 일렬(東∼西)로 놓여 있다. 이들 부도는 모두 자연석 기단 위에 종모양의 부도 몸통과 모자형의 덮개 돌을 차례로 올려놓은 것으로 부도의 몸통에는 각각 그 주인공의 당호(堂號)가 새겨져 있는데, 서쪽의 부도부터 만화탑, 심월당, 호심당, 덕유당이라고 되어 있다.
33 모악산 도립공원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완주군 구이면 063-540-3539 「모악(母岳)」그 이름 노령산맥(蘆嶺山脈)의 중봉(中峰)「모악산(母岳出)」은 해발 793m로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명산으로 만경강(萬頃江)과 동진강(東津江) 사이에 펼쳐진 금만평야(金萬平野)의 동쪽에 우뚝 솟아 평야와 산지를 가르는 분수령으로 호남평야의 전망대라 불리고 있다. 금산사지 (金山寺誌)」를 살펴보면「엄뫼」라는 말이나「큰뫼」라는 말은 모두 아주 높은 산을 의미한 것인데, 한자가 들어오면서「엄뫼」는 어머니 산이라는 뜻으로 의역(意譯)해서「모악」이라 했고, 「큰뫼」는 「큼」을 음역(音譯)하고「뫼」는 의역해서「금산(金山)」이라 적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모악산 꼭대기에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 한다. 「모악산」은 어머니산인 것이다. 어머니는 무엇을 뜻하는가? 어머니는 새 생명을 잉태하여 태어나게 하고 또 정성을 다해서 기르는 것(養育)을 뜻한다. 모악산이 어머니 산임을 산 위에 올라서면 금방 알 수 있다. 모악산 위에 오르면 한국의 곡창인 「징개 맹경 외야미들」, 즉 김제 만경평야가 발 아래에 아스므레하게 펼쳐지는데, 이 곳을 기름지고 풍요롭게 만드는 생명의 물이 바로 이 곳 모악산 꼭대기를 기점으로 흘러 나가고 있는 것과, 대가람 금산사를 비롯하여 많은 암자와 신흥종교 단체를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듯이 품에 안고 있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사시사철 새로운 얼굴로 삶에 지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과 휴식 그리고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악산은 어머니처럼 생명의 젖을 내려 김제 만경평야를 풍요롭게 키우고, 항상 아늑하며 친숙한 우리의 산이다.
34 무주리조트 전북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만선동 계곡) 063-322-9000 덕유산 북쪽에 위치한 무주리조트는 무주구천동 대자연 속에 대단위 레저, 스포츠, 오락, 보양시설이 총망라 된 4계절 종합휴양지이다. 97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지로써 동양최대의 스키시설과 워터파크, 최고급 가족호텔을 비롯한 최첨단시설의 국제회의장과 공연장, 광천풀장, 놀이공원, 동물원 등이 완벽하게 시설된 레포츠타운으로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멋진 낭만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
35 미당시문학관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231번지 063-564-1321 고창이 낳은 한국 시단의 거목인 미당 서정주 선생의 작품과 생애를 엿볼 수 있는 미당시문학관은 전북 고창 선운리에 있는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전시관 초입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깔끔한 건물이 돋보인다. 전시관은 미당의 육필원고, 미당의 작품집 그리고 미당의 소장품등 미당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있고 그 외에 영상실, 세미나실, 휴게실 등으로 구성되있다.
36 미륵사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104-1 063-836-7804 이 미륵사지는 1966년 6월 22일자로 사적 150호로 지정되었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 기록은 미륵사 인근 오금산 (현재 익산토성, 쌍릉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 마를 캐며 홀어머니와 살던 마동이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하는 서동설화와 미륵사 창건설화로 되어 있다. 선화공주와 결혼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30대왕, 600-641)이 왕비와 용화산(현재의 미륵산)에 있는 사자사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는데 미륵 삼존을 위하여 전(금당), 탑, 낭무(화랑)을 세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륵사의 창건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신앙만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백제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마한 세력의 중심이었던 이 곳 금마에 미륵사를 세웠을 거라는 추측이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 공예 등 각종 문화수준이 최고도로 발휘됐을 것으로 짐작할 뿐만 아니라,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 도와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삼국의 기술이 집결되었을 것이다. 미륵사가 백제불교에서 미륵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은 분명하며, 신라 최대의 가람인 황룡사가 화엄사상의 구심점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황룡사가 1탑 3금당식인 것과 달리 미륵사는 3탑 3금당식 가람배치이다. 황룡사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화엄사상, 미륵사는 미륵사상을 가람에 구현하고 있다. 미륵사는 일반 평민 대중까지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미륵신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 11호로 현재 높이 14.24m이고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거의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 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 탑은 1975-1976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에 의하여 동쪽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임이 밝혀져 이른바 동서 쌍탑의 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탑은 그 뒤 발굴조사에 의해서 9층으로 확인 되어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이 석탑을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이 탑의 양식이 그 이전에 성행하였던 목탑의 각부 양식을 나무 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이다. * 미륵사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란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 우에 세운 기둥, 즉 지주를 말한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 236호로, 높이 395cm 이며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 보고 있다. *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http://www.mireuksaji.org/) 미륵사지는 백제의 문화를 구명하기 위한 학술 자료를 얻고 유적을 보존 정비하고자 수립된 정부의 중서부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80년도에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미륵사지가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음을 각 유구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으며 1996년까지 19,000여 점에 이르는 귀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에 따라 현장전시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공개,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국민의 사회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을 1992년 착공, 1997년 5월 9일 개관하였다. 전시관은 미륵사지의 경관을 고려하여 중심지역보다 낮은 위치에 세워 지형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고 모양은 미륵사지 석탑의 이미지를 살린 것으로 지붕 처마선의 날렵함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본 전시관은 12,400평의 대지에 연건평 594평 규모로 전시실, 세미나실, 수장고, 사무실 등을 갖추고 미륵사지 출토유물 및 자체소장 유물자료 19,000여 점을 보관하고 유물과 자료 중 4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중앙홀, 개요실, 유물실, 불교미술실 4개의 상설전시실로 되어 있고 전시유물 및 자료는 400여 점에 이른다. 중앙홀은 미륵사 및 미륵사 석탑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미륵사 축소 모형과 미륵사지를 배경으로 한 미륵산 전경 사진, 1910년대 미륵사지 및 석탑 사진 판넬이 설치되어 있다. 개요실은 미륵사지 발굴 성과를 중심으로 미륵사의 창건과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미륵사지 기복지형 모형, 설명판과 17분짜리 영상을 설치 방영하고 있다. 유물실은 8장의 벽진열장과 중앙 공개 전시대를 갖추어 미륵사 가람 활동이 유치된 1천년간의 신앙, 생활문화를 볼 수 있는 유물을 종류, 기능, 시대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37 방화동가족휴양림 전북 장수군 번암면 사암리 625 063-350-2562 방화동가족휴가촌은 전국 최초 가족단위 국민휴양지로서 오토캠핑장 시설을 갖추었으며 여름철 가족단위 물놀이, 캠프장으로 최적지이며, 관광진흥 10개년 사업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관광 숙박시설 확충 및 관광에 대한 민간인 투자에 장애가 되는 행정규제 완화등 동부산악권에 잠재되어 있는 천혜의 자연관광자원을 개발, 지역발전과 주민소득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인접시 장안산 군립공원과 탐방로를 개설 관광루트를 조성하여 국민적 여가 선용증대와 지역관광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관광산업의 진흥과 촉진을 위한 토산품 등으로 주민소득을 향상 시킴과 동시 군민의 사기와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지리적으로 남원관광단지와 지리산, 덕유산, 무주리조트 등을 연결하는 경유지 관광루트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 임, 관내 관광자원으로 논개사당, 동화댐, 장안산 군립공원, 와룡자연휴양림, 지지계곡 등 청정 자연자원과 장수향교, 타루비, 논개사당, 백용성 조사 생가, 논개생가 등 관광문화재가 풍부한 곳이다. 주요 시설로는 관리사무소 1동, 공중화장실 5동, 자동차야영장 2개소, 모험놀이장 1개소, 가족놀이장 1개소, 수변피크닉장 1개소, 토산품전시장 1동, 전망대1동, 취사장 3동, 야영장 3개소, 체육광장 1개, 수도시설 1동 1식, 전기시설 1식 등이 구비 되어 있다.
38 백정기의사기념관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605-4   백정기의사가 1934년 6월 5일 39세의 나이로 서거한지 62년 후인 1996부터 성역화사업이 시작되어 2004년 6월 5일 70주년을 맞아기념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총 부지면적은 6,6307평으로 기념관에는 백정기의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의열사, 백정기의사의 유출 밑 활동상을 전시설명하는 구파기념관, 역사의 산교육장인 청의당 강당, 백정기의사의 민족의식과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고귀한 뜻을 새기기 위한 의열문, 백정기의사의 애국정신과 독립정산을 기리기 위한 승의문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의외에도 독립정산을 기리기 위한 숭의문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백정기의사를 형상화 한 동상, 어록비, 순국비,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본 기념관 입구부에는 음수대 및 파고라 등 관람객을 위한 휴식공간과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명실공히 성역화의 장으로서 준비가 마련되어 있다.
39 벽골제 전북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119   김제 벽골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저수지의 하나로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저수지는 흘해왕(訖解王) 21년에 쌓은 것으로 되어 있는, 이는 백제 비류왕(比流王) 27년(330)에 해당한다. 통일신라 원성왕(元聖王) 6년(790)에 이르러 증축되었다. 그후 고려 현종(顯宗)때와 인종(仁宗) 21년(1143)에도 수축(修築)되었으며, 조선 태종(太宗) 15년(1415)에 다시 수리(修理)되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서 폐기되고 말았다. 제방(堤防)의 시설은 남북 양끝에 가까운 2개소와 중앙의 1개소에 수문지(水門址)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석주(石柱)가 각각 1쌍씩 남아 있다. 이 제방은 1925년에 동진농지개량조합(東津農地改良組合)에서 농지관개용의 간선수로로 이용하기 위한 공사로 인하여 폭이 종단(縱斷)되어 2개로 갈라졌으며, 양분(兩分)된 제방의 중앙을 수로로 만들어 농업용수를 흐르게 함으로써 그 원형이 몹시 손상되었다. 1975년 수문의 복원공사를 위한 부분적인 발굴조사 결과 제방의 높이는 북단(北端)쪽에서 4.3m, 남단(南端)쪽은 3.3m를 이루고 있었다. 수문의 구조는 높이 5.5m인 2개의 석주(石柱)를 4.2m 간격을 두고 세웠으며, 서로 대향(對向)한 안쪽 면에 폭 20㎝, 깊이 12㎝의 세로홈을 만들어 여기에 목제 둑판을 끼워 그것을 상하로 이동하여 방수량(放水量)을 조절케 하였다. 수문 석주로부터 전면(前面)에는 수로 양편의 호안(護岸)을 목적으로 하여 거대한 가공석재로 구축한 석축이 약 6m의 길이를 이룬 후 좌우로 꺽어져서 다시 7∼8m씩 연장되었다. 이 석축의 높이는 가장 낮은 곳이 1.1m이다. 한편 황갈색의 점토(粘土)를 주로 사용하여 축조된 제방의 최하부에서는 습지에 자생한 식물들이 밑바닥에 깔려 압축됨으로써 형성된 검은 탄화층(두께 2∼3m)이 발견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1998년 벽골제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건립 개관하여 관련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이 지역이 농경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려주고, 농경문화 생활상에 대한 산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40 변산비키니해수욕장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일대 063-580-4739 1933년 개장된 변산 비키니해수욕장은 매년 평균 피서객이 50만 명을 넘을 정도로 각광 받는 해수욕장으로 1964년에는 전국 관광지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그 이유는 변산해수욕장의 수온이 체온에 알맞고 수심의 차가 심하지 않은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으며 파도가 거세지 않아 위험요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특히 확 트인 부드러운 모래밭과 깨끗한 바닷물을 자랑으로 삼고 있으며 변산비키니해수욕장 주변에 인접한 명승지가 많아 해마다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41 보석박물관 전북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 575-1 063-850-4981 익산보석박물관은 미륵사지 석탑, 왕궁리 5층석탑 등 백제문화유적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관람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 뿐 아니라 보석에 대한 상징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총 부지면적 43,368평 규모의 왕궁보석테마관광지 내에 1996년부터 시작하여 2002년 5월에 완공 개관하였다. 주요시설로는 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1,879평 규모의 보석박물관 지하에는 수장고와 기계실이 있으며 1층에는 기획전시실과 보석판매코너, 2층 상설전시실에는 진귀한 보석과 원석을 전시하고 있으며, 연면적 282평 규모의 화석전시관은 화석 및 공룡모형 등을 전시하여 청소년들에게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그 밖에도 식당, 보석광장, 야외무대, 칠선녀상 등 조형물들을 설치하여 보석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편안한 휴게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규모 -부지면적 : 143,365㎟ (43.368평) *주요시설 -보석박물관 : (지하1층 지상2층) 6,214㎟ (1,879평) -화석전시관 : (지하1층 지상2층) 932㎟ (282평) -식 당 : (지하1층 지상1층) 412㎟ (125평) -조 형 물 : 화합상 -기타시설 : 야외공연장, 어린이 놀이시설, 식당, 보석광장, 칠선녀광장 등
42 부안영상테마파크 전북 부안군 일원   KBS종합촬영세트장은 KBS드라마 공급사인 KBS아트비전측과 공동으로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일대 4만5천 여평에 드라마촬영세트장을 조성하고 현대극은 물론 사극물도 촬영할 수 있는 종합촬영장을 건립할 계획입니다. 세트장에는 부대시설로 방송체험 학습장을 비롯 전시관, 휴게소 등이 설치됩니다.  
43 사선대국민관광지 전북 임실군 관촌면 덕천리 063-640-2575 관촌면에 있는 사선대는 임실군 내에서 손꼽히는 명승지로서 사시사철 상춘객과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사선대 밑으로는 진안에서 발원한 오원천(烏院川)이 흐르고 주변에 울창한 송림(松林)과 잡목이 들어차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봄철에는 벚꽃놀이, 여름철에는 물놀이와 피크닉을 즐길 수 있도록 위락시설도 갖춰 놓아 전주, 임실 등지에서 많은 시민들이 찾아 들고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오원천이 얼어붙어 천연 스케이트장을 이룸으로써 겨울 스포츠 장소로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전주∼임실간 국도변으로 교통이 편리하여 해마다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군당국에서는 오는 2002년까지 이 일대 9만 4천여 평을 위락시설 지구로 지정하여 관광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사선대의 유래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전 마이산(馬耳山)의 두 신선과 운수산(임실면)의 두신선이 하루는 이곳 관촌의 오원강 기슭에 모여 놀다가 병풍처럼 아름다운 주위의 풍경에 취하여 대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맑은 물에 목욕하고 즐기니,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리고 있을 때 홀연히 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사람의 학발신선(鶴髮神仙)들을 호위하여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로 해마다 이맘때면 그들 선남선녀들이 놀았다 하여 이곳을 사선대(四仙臺)라 하고 까마귀가 놀던 이 강을 오원강(烏院江)이라 불렀다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정조 때 관촌면(館村面) 주천리(舟川里)의 상산 이씨 이달효는 아호를 호산(湖山)이라 하고, 문장이 뛰어나 호산집일책(浩山集一冊)을 펴내기도 했는데 그는 호남의 명사들과 널리 사귀어 임실현감(任實縣監) 이도재(李道在)와도 막역한 사이었다. 이때 이도재 현감은 전주 판관과 남원부사 호산(浩山) 이도효(李道孝)등과 같이 넷이서 항상 오원강(烏院江) 위에 배를 띄워 놀았다. 이들 네 분들은 서로 나이가 비슷한 노년기에 이곳에 모일 때에는 언제나 관복을 벗고 평복을 하였으므로 마치 네 사람의 신선과도 같아 어느덧 그들이 놀던 데를 사선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담긴 명승지로 1985. 12. 28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들고 있다.
44 산림박물관 전북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 산 252 063-652-6792 전라북도 산림박물관은 호남의 관광 중심권인 내장산 지역에 산림 박물관을 건립하여 자연과 산림에 대한 역사보존 및 학습을 통한 산림 문화를 창출하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다. 부지 3만 2천 평에 전시관 1,620평(지상 2층, 지하 1층)의 규모로 사업비만도 148억원(국비 50%, 도비 50%)에 달하며, 건립기관은 1996년 6월~ 2001년 12월까지 6년에 걸쳐 건립되었다. 박물관 내 전시물로는 제1전시장인 주 전시관에는(8구역 59코너) 1.도입부, 2. 산림의 이해, 3. 산림과 생태계, 4. 우리의 종이 한지, 5. 임산물의 종류와 이용, 6. 산림의 오늘과 내일, 7. 영상관과 전망대, 8. 호남 정맥 등이며, 제2전시장은 환경체험관(2구역 5코너)으로 1. 환경체험교실, 2. 목재공작 체험교실과 제3전시장은 생태학습관(3구역 10코너)으로 1. 씨앗 미지 세계로의 탐험가, 2. 꽃 화려한 유혹과 사랑의 전령사, 3. 뿌리, 줄기, 잎! 위기 탈출의 전략가로 전시되어 있으며, 기타 전시물로는 로비홀 및 문구류전시장(2구역 4코너)으로 1. 로비홀:박제류, 뿌리공예품, 야생화사진, 인터넷카페, 2. 산림관련 민속생활용품과 야외 연못, 산림욕장, 사방댐등이 들어 있다.
45 새만금전시관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063-584-6822 우리나라 금세기 최대의 역사적인 간척공사로 새만금이라 명명하게 된 것은 전국 최대의 곡창지대로 알려져 있는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친 만큼의 면적이 새롭게 생긴다고 하여 만경평야의 만 자와 김제평야의 쇠 금 자를 따서 새만금이라 하였다.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가력도, 신시도, 야미도, 비응도까지를 잇는 세계 최장 33km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그 안의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 새로 생겨날 국토는 40,100ha, 여의도의 140배에 달한다. 1991년 11월에 착공하여 2011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진행 중이며 대규모 우량농지, 임해공단, 국제무역항 등을 조성, 다가오는 서해안의 전진기지를 구축하는 대역사로, 제2의 부안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규모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가력도, 신시도, 야미도, 비응도까지를 잇는 세계 최장 33km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그 안의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 새로 생겨날 국토는 40,100ha, 여의도의 140배에 달한다. *주요사업 대규모 우량농지, 임해공단, 국제무역항 등을 조성, 다가오는 서해안의 전진기지를 구축하는 대역사로, 제2의 부안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46 석정온천 전북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 063-564-4441 겨울철에도 개울물이 따뜻해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고창읍 석정리 일대에서 1987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석정온천」은 프랑스「루르드온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게르마늄 온천」이다. 또한 석정 온천수는 암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특효약인「인터페론」을 체내에 유발시켜 자연 치유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전 05:30 ~ 오후 20:30 까지 대인 4000원, 소인 3000원(평일 9시 이전 - 어른 3,000원 / 어린이 2,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47 선운사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 063-561-1422 선운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조계종의 전북도내 2대 본사로서 한국의 명승고찰로 유명하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하여는 577년(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774년 (정조 18년) 임우상이 기술한 선운사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이 곳에 와서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법명을 법운자로 한 진흥왕은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진흥굴 윗산에 중애암을, 만월대 아래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318년(충숙왕 5년)에 효정선사가 중수하였고 1354년(공민왕 3년)에 재중수하였으며 1474년(조선 성종 5년)에 행호선사가 중창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614년 (광해군 6년)에 무장태수 송석조가 원준대사를 통해 1619년까지 5년간에 걸쳐 재건하였다. 선운사는 한때 89암자 24굴 189요사를 갖춘 대찰로 억불숭유 정책을 내세운 조선시대에도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보존된 대찰이었다. 선운사에는 금동보살좌상 등 보물 5점, 동백나무숲 등 천연기념물 3점, 기타 지방 문화재 등 총 19점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48 성수산자연휴양림 전북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산 21 외 14필지 063-642-9456 성수산은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각각 100일 기도하여 개국 창세했다는 설화와 천혜의 자연경관을 휴양시설로 개발하여 주변의 사선대와 인접한 진안 마이산을 연계 관광 휴양지로 조성 되었다. 건 축 물 - 임업연수원: 2층 (슬라브 내외장 목재) - 학생의숙: 단층 (남, 여학생관, 강의실, 화장실) - 숲속의 집: 3동 (단층) 15 - 25평형 - 산장: 1동 (연립형) 호실 5개 - 연립형 숲속의 집: 3동 (12평형 호실 15개) - 정자: 2동 - 전망대: 1동 - 주차관리실: 1동 (57평형) 특수시설 및 기타 - 체력 단련장: 10,000㎡(3,000평) - 물 놀이터: 165㎡(50평) 자연수 및 지하수, (탈의장) 임업연수원 및 휴양림 조성 경과 - 1964. 임야 263정보 매입 처음으로 낙엽송 및 편백 등 5만 2천수 식재. 매년 년차적으로 조림 10년 동안 52만주 조림 30년간 육림선진임업에 못지 않는 임상을 보존하고 1,300여 정보 보유. - 1984. 10. 2. - 1985. 11. 21. 뜻한 바 있어 임업연수원을 단층 490㎡ (148평)완공. (임업 연구 교육장) 산림청인가 - 1991. 4. 11 -1992. 1. 19. 2층 증축허가 490㎡(148평) 완공 대강당, 화장실, 숙소, 욕실 난방시설 보일러 실 19㎡(5평) 건축 사계절 난방 가동 - 1992. 5. 15. 산림청 91호 휴양림 시설 고시 산림청 - 1992. 4. 13. 자연 휴양림 시설 조성사업 승인 기본시설 포함 33종 전북지사총 사업비 25억 7천 2백원 - 1999. 4. 5. 휴양림 시설의 불합리한 시설 및 보완 종합설계 변경 승인, 편익시설 포함 55종 전북지사 총 사업비 26억 9천 6백만원 현공정 90% 주요건축물 현황 및 시설물 - 편의시설: 주차장 및 가로등 29종 - 체육시설: 어린이 놀이터등 3종 - 위생시설: 화장실외 9종 - 교육시설: 학생강의실 3종 - 특수시설 및 기타: 낚시터외 11종 성수산 자연휴양림 눈썰매 축제 어린이를 위한 겨울방학 최고의 선물 국내 최대 길이의 눈썰매장 (성인용, 어린이용) 시설을 갖춘 성수산 자연휴양림 눈썰매장으로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셔틀버스 운행은 중단되었습니다.
49 세심자연휴양림 전북 임실군 삼계면 죽계리 산 23외 4필지 063-644-4611 리기다소나무 30년생 내외의 조림지(약50ha)와 천연림인 침활 혼효림(混淆林)이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계곡부에는 수량이 풍부하고 기암괴석 등이 많아 경관이 수려한 작고 아담한 휴양림으로 야영장, 숲속의 집, 광장, 체력단련시설, 물놀이터 등 총 48종의 각종 편익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99년까지 보완사업을 완료하여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으며, 또한 휴양림 상류에 농촌용수 확보를 위한 댐이 2002년 완공되면 휴양림 기능이 향상되어 새로운 국민 휴식처로 각광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50 신광사 전북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 38   신라 경문왕 5년(865) 무량국사가 창건하였고, 1598년 정유재란때 전소되었었다. 그 후 1649년 전해선사에 의해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51 신재효생가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53 063-560-2227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선생(1812-1884)의 고택(古宅)은 1979년 1월 23일부로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된 것으로 고창읍성(高敞邑城)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1850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물을 멀리서 끌어들여 마루 밑을 통해서 서재 밖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꾸몄었으나 물길은 매몰되고 연못은 복원하였다. 동리 신재효 선생은 종래 계통 없이 불려 오던 광대소리를 통일하여 춘향가(春香歌), 심청가(沈淸歌),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토끼타령, 적벽가(赤壁歌) 등 여섯 마당으로 체계를 세우고 독특한 창으로 판소리 사설(辭說)문학을 집대성하였으며 특히 춘향가, 박타령, 토끼타령, 심청전 등을 창극화하여 판소리 사상 뛰어난 공적을 이룩한 분이다.
52 실상사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063-636-3031 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듯 평화롭고 풍요로운 고을 남원시 산내면에 천년 고찰 실상사(實相寺)가 있다. 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마천방면으로 가다 보면 만수천(萬壽川)변에 천 년의 세월을 버티고 지내온 천년고찰 실상사가 나타난다.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져 있다 한다. 이 절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 있는데 이는 천왕봉 아래 법계사에서도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열도를 두들겨 치고 있다. 일반인들도 이 곳을 찾으면 쉽게 범종의 일본을 두들겨 칠 수 있다. 스님들과 일반인들이 이 속설에 따라 범종의 일본지도를 많이 두드린 탓에 범종에 그려진 일본지도 중 훗카이도와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실상사에는 이렇듯 호국의 정신이 흐르며 찬란한 신라불교문화의 숱한 문화재가 잘 보존돼 있는 천년고찰이다.
53 심포항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심포항은 크고 작은 어선들이 오색 깃발을 펄럭이며 드나들던 아담한 어항으로 한 때는 짭조름한 갯내음을 맡으며 갈매기의 춤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지금은 횟집단지가 조성되어 싱싱하고 물 좋은 생선회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바다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휴일이면 차를 댈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심포항의 서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개펄에는 대나무처럼 생긴 죽합(竹蛤)과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되었다는 자연산 대합(大蛤)이 많이 자라고 있어 이 조개를 즐기려는 식도락가들이 많이 찾는다. 눈을 동쪽으로 돌리면 드넓은 벌판 가운데 점점이 막힌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었는데, 그 마을 가운데, 남상(南上), 남하(南下)마을과 석소(石所)마을이 있다. 남상과 남하마을은 매년 300여 필의 군마(軍馬)를 길러 조정에 헌납한 마을로, 석소는 칼과 창을 가는데 쓰이는 숫돌을 5,000편씩 만들어 나라에 헌납한 역사적인 유적지로 알려진 마을이다.
54 아리랑기념문학관 전북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식민지 역사 속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흘렸던 모든 사람들의 숨결을 뜨겁게 느끼고 지역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하여 정보기술을 이용 가상체험을 통한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민족적 역량을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는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하소설 『아리랑』은 김제를 주무대로 일제치하에 겪었던 나라 잃은 설움과 치욕, 민족의 고난과 애환 그리고 일제에 의연히 맞서 독립을 이루어낸 자랑스런 항일운동사를 그린 대서사시 이다.
55 안국사와 적상산성 전북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적상산 정상) 063-322-6162 본래 적상산 분지에 위치했던 이 사찰은 충열왕 3년(1277), 월인화상이 창건한 것이라고도 하고, 조선초 무학대사가 국가의 앞날을 위해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 5년(1613) 사찰을 중수하고 그 다음해에 창건된 적상산사고를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해 왔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보경사 또는 상원사 등으로 불렸으며, 더러는 산성 안에 있는 절이라하여 산성사라고도 불렀다. 현재의 안국사는 본래의 위치가 양수발전소 상부댐(적상호)에 잠기게 되어 1992년에 옮겨 세운 것이다.
56 영웅이순신촬영장 전북 부안군 일원 063-580-4191 * 위도 / 논금해수욕장 (조선군진지) 아름다운 논금해수욕장의 경관에 지휘소, 대장간, 탄약고, 망루, 선전관, 난민대피소, 식당 등이 지어져 있으며, 7년간 조선의 백성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도록 이순신장군이 가야할 길을 백성들에게 의지하던 이 곳에서는 이순신이 된장과 간장을 담은 항아리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전장터로 떠나는 장면 등이 촬영 되었으며 사계절 노을은 무엇과도 견줄수 없는 곳이다. * 성천 (왜군진지) 고사포송림해수욕장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하섬이 눈 앞에 잡힐 듯이 떠있어 더욱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는 고니시를 비롯한 왜군의 회의장면과 왜군들의 조선군에 대한 책략상 포로가된 조선군의 처절함과 조선백성이 끌려가는 장면의 촬영이 2004. 4월 첫 촬영된 곳이다. * 적벽강(명나라 진지) 변산면 격포리 적벽강이 자리한 수성당 아래 오붓한 경사지에 조성되어 있다. 적벽강과 후박나무군락 수성당이 한 눈에 보이는 장소로서 조선군과 명군이 협공을 하기 위한 명군의 진지로서 망루와 마굿간, 씨름 훈련장, 지휘대, 지휘소 등이 있으며 중국 소동파가 즐겨 찾은 적벽강 못지 않은 풍광으로 이름 그대로 붉은색 암반과 절벽으로 해안이 이루어져 오색찬란한 절경또한 장관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 격포항(거북선 및 판옥선등 군선 제작) 격포항(格浦港)쪽의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면 촬영용 ¨거북선과 왜선¨이 정박(碇泊)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상록해수욕장 노량해전의 주촬영장소이다. 상록해수욕장 모래사장에 나가 왼쪽의 솔나무 숲 뒤로 지금의 순천 왜교성이 자리하였던 곳이고, 촬영시 제작된 모든 군선들이 이 곳에 총 집합해서 촬영이 진행된 곳으로 조선군, 왜군, 명군 등이 사활을 걸고 난투극 해상전으로 쓰여진 곳이다. * 줄포 저류지 염전창고 세트 이 곳에는 하염없이 펼쳐진 갯벌을 배경으로 염전창고와 민가 그리고 돼지우리가 조성 되었던 곳으로, 저물어가는 붉은색의 노을이 당시 방황하던 이순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여 보게 하는 곳이며 바로 옆으로 아름다운 갈대숲과 천연식의 바람개비가 추억을 되돌아 보게 하는 줄포자연생태 공원이 함께 한다. * 내소사 첫촬영때 새벽 내소사 전나무 숲길에서 파발이 달리는 장면을 찍었다. * 부안석불산영상랜드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 경상 우수영, 왜관거리 및 조선거리 등 총 10,000여평이 조성될 이 곳은 임진왜란당시 선조를 등에 업고 강화로 피신시킨 무장 고희 장군의 업적을 모신 효충사가 인접해 있고, 주변경관이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다.
57 오수의견공원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332 063-640-2606 오수(獒樹)의 지명이 전해주듯 이 곳은 충심 있는 개의 이야기로 유명하고 이 이야기는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이다. 본래 오수 의견비(義犬碑) 이야기는 구전으로 내려와 심병국씨가 유래를 찾았다. 언론인 백남혁씨가 고려 악부의 견문곡과 보한비의 의견비에서 나타난 이야기가 바로 오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아내고 가람 이병기 박사로부터 고증을 받음으로써 이 마을이「보은(報恩)의 개」마을이었음이 밝혀졌다. 지금도 오수리 시장내 원동산 공원에는 의견비가 서 있어 주인을 위해 죽어간 개의 충절을 위로하고 있다. 지금부터 1천년전 신라시대 거령현, 오늘날의 지사면 영천리에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개를 몹시 사랑하였으며 어디를 다닐 때면 항상 데리고 다녔다. 먹을 때도 같이 먹고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면서 생활하였고 그 개 역시 그를 충성으로 따랐다. 그러던 어느 해 이른 봄 그는 개를 데리고 장이 선 오수로 놀러 나갔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술을 좋아하여 친구들과 한잔 두잔 기울이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버렸다. 그는 몹시 취한 채 집으로 가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여 그만 잔디밭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개는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기만 기다리며 쪼그리고 않아 주위를 살피면서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들에 불이 나 부근에 번지고 있었다. 개는 주인을 입으로 물고 밀면서 깨우려고 온갖 지혜를 다 짜냈다. 그러나 술에 골아 떨어진 주인은 주위의 불길도 아랑곳없이 깨어날 줄 모르고 있었다. 뜨거운 불길이 점점 주인의 옆에까지 번져오자 개는 불을 끌 수 없음을 깨닫고 가까운 냇물로 쏜살같이 달려가 온몸에 물을 흠뻑 묻혀와 잔디를 적시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번을 이렇게 왔다갔다하여 잔디는 물에 젖고 싸늘함을 느낀 주인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이 쑥 빠진 개는 주인의 옆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본 후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김개인은, 몸을 바쳐 자기를 구해준 개를 부여안고 크게 원통해 하였다. 주인은 개를 장사 지낸 뒤 이 곳을 잊지 않기 위해 개의 무덤 앞에 평소 자기가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 지팡이에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하늘을 찌를 듯한 느티나무가 됐고 그 때부터 그 나무를 오수(獒樹)라 하였고 그것이 이 고장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그 개의 충성심을 길이 기리기 위해 건립했던 의견비는 문자마저 마멸돼버려 1955년에 다시 세웠고 이 뜻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 면의 명칭도 둔남면에서 오수면으로 1992년 8월 10일 바뀌게 되었다. 1994년 4월 3일 춘향도로 국도변에 김개인과 의견상을 건립하였다.
58 옥정호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063-640-6211 정읍, 임실에 걸쳐있는 옥정호는 섬진강 상류로부터 82.4km 지점인 전북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에 중력식 콘트리트댐을 축조하고, 이곳으로부터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위치한 섬진강수력발전소로 연결되는 약 6.2km 압력수로를 이용, 도수하여 발전을 한 후 물을 동진강으로 방류함으로써 약 4만 정보의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전라북도 서남지역 광역상수도 수원을 공급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댐 관리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위탁관리를 하고 있으며, 농업용수를 위하여 동진농조와 매년 3월 31일 댐 수위를 188.68m로 협약하여 운영하고 있다. 문화자원 칠보수력발전소, 섬진강댐 주변관광시설 옥정호수변 관광순환도로 및 황토마을조각공원 조성계획
59 와룡휴양림 전북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 063-353-1404 해발 650∼1,200m의 금강 발원지로서 휴양림의 구역이 다섯 개의 계곡 상봉(시루봉)인 오계치를 연계, 어채형(홍어) 형상을 이루고 있는 천혜의 청정지역으로 청강수로 불리는 맑은 계곡물과 야생화 및 야생동물 서식으로 사계절 산림욕 및 썰매장과 산행코스가 있으며, 휴양림 진입도로 옆에는 와룡호가 있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60 왕궁온천 전북 익산시 왕궁면 온수리 594-2 063-291-5000 옛부터 마을 앞 논 가운데 우물이 있었는데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와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해서 옛사람들이 이 일대를 온수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우물에는 나라의 큰일이 생길 때 이름 모를 빨간꽃이 피었고, 특히 8.15해방 수일 전에 매우 많은 꽃들이 피어 부근 지역 주민들이 구경 올 정도였는데 며칠 후 해방이 되어 지금도 지역주민들은 이 꽃을 해방꽃이라 부르고 있다. 온천수는 1980년부터 시추하여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하여 1994년 10월에 왕궁온천장을 준공하였다. 지하 620미터에서 끌어올리는 온천수는 수온 26.4도 PH9.5의 천연알칼리성 나트륨 온천수로 수질분석 결과 신경통, 관절염, 알레르기성 피부염, 만성습진, 만성 부인병, 화상치료, 피로회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특히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 부대시설 지하 2층, 지상 4층의 건물(연 면적 1,100평)로 600명을 동시 수용 할 수 있는 남.여 대중사우나 시설과 숙박시설, 커피숍, 스넥코너, 대형한식당, 노래연습장, 세미나시설, 매점 등이 있다.
61 용담댐물박물관 전북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 063-430-4221 용담댐은 금강본류, 전북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높이 70m, 길이 498m의 콘크리트 표면차수벽형 석괴댐으로 건설되었고, 저수용량은 815백만㎥이고, 저수지에 수몰되는 면적은 31,595,000㎡, 이설도로는 11개노선 64.4km 입니다. 전주권의 용수공급을 위한 도수터널(직경 3.2m, 길이 21.9km)은 1997년 12월에 굴착완료하였고, 터널 말단부에는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습니다. 홍수기 집중 호우로 인한 홍수를 조절 방류하기 위하여 5개 문비(폭 14m, 높이13.425m)를 갖춘 여수로가 댐 좌안에 계획되었고. 용담댐의 건설기간은 1990∼2001.12이고, 본 사업에 소요되는 총사업비는 1,496,853백만원입니다. 다목적댐의 규모를 비교함에 있어 통상 댐에 저류할 수 있는 총 저수용량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용담댐은 총 저수용량이 8억1천5백만㎥으로 소양강(29억㎥),충주댐(27억5천㎥),대청댐(14억9천만㎥),안동댐(12억5천만㎥)에 이어 5번째 규모입니다. 국내에 건설된 기존 다목적댐(소양강,안동,임하,주암 등)은 물을 차수하는 차수벽을 댐 중앙에 불투수층 심벽제를 설치하여 사력과 암괴를 물다짐공법으로 축조한 반면에 용담댐은 차수벽을 상류측 표면에 콘크리트를 설치하는 콘크리트 표면차수벽형 석괴댐으로 건설되며, 기존 중앙심벽형 댐에 비해 시공성이 뛰어나고, 공기를 단축시킬수 있으며, 공사비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이할 만한 신공법은 주요 구조물 시공시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을 제작함에 있어 목재거푸집에서 R.M.D거푸집으로 별도 제작,시행함으로써 구조물의 시공성,품질향상은 물론 구조물 미관을 크게 개선하였습니다 또한 현 수질은 COD 2.0~3.0ppm으로 2등급 수준이며, 상류 유역에 환경기초시설의 건설이 완료되는 ¨06년에는 COD2ppm이하로 호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62 운일암반일암 계곡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주양리 063-430-2611 천지 산수의 신묘한 조화 기암절벽에 옥수청산(玉水靑山) 천지산수가 신묘한 어우러짐으로 절경을 빚어낸 곳이 바로 운일암 반일암이다. 진안읍에서 북쪽으로 정천을 거쳐 24km를 달리면 주천면에 이르고, 운장산쪽 주자천 상류를 2km쯤 더 올라가면 운일암 반일암의 장관이 시작된다. 운장산 동북쪽 명덕봉(845.5m)과 명도봉(863m) 사이의 약 5km에 이르는 주자천계곡을 운일암?반일암이라 하는데, 70여년 전만 해도 깎아지른 절벽에 길이 없어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뿐이었다 한다. 그래서 운일암이라했고, 또한 깊은 계곡이라 햇빛을 하루에 반나절 밖에 볼 수 없어 반일암이라 불리워졌다 한다. 또 다른 전설들 이름에 얽힌 다른 전설도 있다. 시집가는 새색시가 수십 길 아래 새파란 물이 흐르는 깎아지른 절벽 위를 가자니 너무 겁이 나 울면서 기어갔다 하여 운일암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또 옛날에는 전라감영인 전주와 용담현과의 사이에 가장 가까운 통로는 이 길 뿐이었던지라 항시 이 길을 통과해 가야 했는데 길이 어찌나 험하던지 공물을 지고 가다 보면 불과 얼마 가지 못하고 해가 떨어진다 하여 떨어질 운(隕)자를 써 운일암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부여의 낙화암까지 뚫려 있다는 ¨용쏘¨의 전설도 있고, ¨쪽두리바위¨, ¨천렵바위¨, ¨대불바위¨ 등 집채만한 수많은 바위들이 꼭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어 계곡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있는 듯 하다. 손댈 수 없는 비경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표현하기 어려운 비경에 사람의 손을 이제는 그만 대야 한다. 기암괴석과 그를 감싸 안고 도는 벽계청수, 그리고 사계절 춘하추동의 색깔을 각기 뽐내는 초목들을 이제 더 이상 건들지 말아야 한다. 자연이 심혈을 기울여 꾸며 놓은 신묘한 작품들을 인간의 속된 잇속 때문에 엄청나게 어지럽히고 훼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절경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조물주는 오로지 ¨자연¨뿐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무릉 소공원¨ 진안군의 명소인 운일암 반일암 국민관광지 상류의 아늑한 산모퉁이에 3천 평의 소공원을 조성해 관광객과 주민들을 위한 휴식처 마련으로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운일암 반일암을 지난 1km정도 무릉천을 따라 올라가면 산모퉁이에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과 산을 배경으로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주천면 무릉리 입구인 이 곳에 지난 7월부터 공공근로 사업이 3개월에 걸쳐 연인원 9백67명, 4천3백만원을 투자해 3천 평의 소공원을 조성, 14일 개장식을 가진다. 주요시설은 무릉 소공원비와 2동의 정자를 설치했고 철쭉 등 7천여 주의 조경과 자동차 2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도 확보했다. 군은 IMF로 인한 실직자 및 저소득층 생활안정을 위해 추진중인 공공근로 사업을 활용해 평소에 운일암 반일암을 찾는 관광객들이 무릉리에서 흘러 내려오는 무릉천에 많이 와서 휴식을 취하는데 쉴 만한 곳이 없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휴식공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무릉 소공원은 운일암반일암을 찾는 관광객과 운장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아늑하고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63 원숭이학교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501번지 063-584-0708 일본 원숭이들의 단체 공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건너온 100여마리의 원숭이들과 색다른 만남, 조련사들의 숨막히고 아슬아슬한 악어들과 한판 승부, 태초의 신비와 끝없는 환상이 펼쳐진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자연 학습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멋진 체험의 장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원숭이 공연은 화려한 무대 경험으로 전 세계를 웃음의 장으로 만든 일본 닛꼬 원숭이군단이 총출동하여 1, 2부는 원숭이 학생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화려한 개인기를 선보이고 3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원숭이 학생들의 생생한 수업 현장이 펼쳐진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외국인 악어공연팀이 악어 입속에 머리 넣기 등 목숨을 건 아슬아슬한 공연을 연출하며 바다악어, 아메리카악어, 미시시피 엘리게이터, 안경카이만 등 무시무시한 악어들이 전시된다.
64 월명공원 전북 군산시 신흥동 063-450-4554 4월의 월명공원(月明公園)은 분홍색 진달래와 노란색의 개나리, 눈꽃 같은 벚꽃 그리고 붉은 동백꽃이 다투어 피고 5월에는 분홍색 왕벚꽃과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며 6월에 아카시아 향이 온 산에 퍼지면 여름이 옵니다. 여름날 밤에 수시탑에 오르면 바닷바람은 시원하고 강줄기를 따라 오가는 각종 선박의 불빛이 물빛과 어울려 차분한 아름다움을 연출합니다. 비 오는 밤 일렁이는 불빛 속에 항구의 낭만이 익어갈 때 금강 건너로 바라다 보이는 장항(長項) 일대의 풍경은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가을 밤 옷깃을 여미며 오른 전망대 앞 굽은 소나무에 걸린 달이 뿌리는 빛의 명암은 한 폭의 한국화를 연상케 합니다.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가 보면 전망대, 수시탑, 바다조각공원을 만나고 삼일운동기념탑을 지나면 공원 기슭에 웅장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청소년의 전당 청소년회관이 자리하고 있고 봉수대(烽燧臺)터가 있는 점방산 정상에 오르면 금강과 서해바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월명공원의 품 속에는 1912년에 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제1수원지가 물 안개를 뿜어내는 산 속의 호수로 변하여 산새와 작은 동물들이 목을 축이는 곳이 되었고 설림산 아래 천년 고찰 은적사에서는 고목나무 몇 그루가 지나온 세월을 얘기합니다. 허위허위 산책로와 산길을 따라 걷고 오르다 보면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시가지와 넓은 평야 그리고 만경강(萬頃江)의 반짝이는 물빛은 월명공원에 들어와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의 기쁨이요 너른 마음을 제공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65 은파유원지 전북 군산시 나운동 063-450-4554 동국여지승람에 조선조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고산자 김정호선생의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역사 깊은 곳이다. 저수지를 중심으로 인근의 고만고만한 작은 산들을 포함하는 70여만 평이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시민과 주변 지역주민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봄에는 입구에서부터 집단시설지까지 1Km의 진입로가 벚꽃터널을 만들어 주고 여름에는 아카시아 향기와 느티나무의 짙은 녹음 속에서 윈드서핑, 보트놀이를 하고 가을에는 입구의 만남의 광장에서 시작되는 산책로를 따라 알밤을 주우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약 6킬로미터의 순환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충혼탑과 집단상가 시설과 바이킹 등 놀이시설이 있고 넓은 잔디밭에서는 소풍 나온 가족들의 모습과 비둘기들이 모이를 찾는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66 의암 논개사당 전북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 산3 063-351-4837 시도기념물 46호(지정일: 1981.04.01)인 논개 사당은 호남절의록, 호남삼강록, 의암 주논개사적비 등 사실에 근거하여 주논개 생장 고향인 장수 남산에 군민이 하나가 되어 사당을 건립하고, 1956년 함태영 부통령이 친히 쓴 의암사 액자를 걸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영정을 모시고 의암사라 했다. 1974년 현 위치로 정화 이건하고 1998년 확대 정화했다. 사당 주변에는 호수 및 조경 시설, 체육 공원이 잘 어우러져 있고 동절기에는 09시부터 18시까지 하절기에는 09시부터 19시까지 개관하며 휴무일은 없다. 편의 시설로는 화장실, 음수대, 공중 전화, 주차장 야외무대 등이 구비 되어 있다.
67 장수향교 전북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 하비 254-1 063-350-2224 보물 272호(지정일: 1963.01.21)인 이 장수향교 대성전은 정면3칸 측면4칸 맞배지붕으로 조선조 태종 7년(1407)에 세워진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의 하나이다. 대성전(大成殿)은 낮은 석축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주초석은 화강암을 다듬어 원형 2단두로 만들었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대성전의 좌우에는 양합각에 방풍판을 달았으며 처마는 정면을 겹처마로 후면을 홑처마로 처리하였다. 다포(多包)집 계통의 포작(包作)형식이며, 2출목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쇠서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그 상부는 봉두(鳳頭)로 처리하였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 2개씩을 올려 놓았다. 명륜당 향교는 지방 국립 학교로서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 우리나라와 중국의 성현을 모시고 그의 학덕을 숭모하였으며, 명륜당에서는 그의 학덕과 인격을 교학했다. 장수향교 명륜당은 대성전과 함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추가 설명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 7년 (1407년) 선창리에 건립되었던 것을 35년 후인 세종23년 (1441년) 현 위치로 옮겨 세워 현재까지 창건 당시의 건물 양식대로 보존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서 건물의 구조가 다포형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왜군이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침공하고 북상 중 장수향교를 불태우려 하자 향교 지기 정경손(丁敬孫)은「이 곳은 성전이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침범하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라」라고 목숨을 걸고 항거 하였다. 이 의기에 감복한 왜군이 오히려「이 곳은 성전이니 침범하지 말라」라는 신표를 써주어 장수향교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매년 음력 3월 15일 그의 얼을 기리는 제례를 지니고 있다.
68 장안산 군립공원 전북 장수군 장수읍 덕산리 063-350-2413 높이 1,237m의 군립공원 장안산(長安山)은 무룡궁이란 곳이 있어 금강과 섬진강의 가장 먼 분수지이다. 무룡이란 용이 춤을 춘다는 말로 이재에서 장안산으로 향하는 기세가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 기상이라서 지명이 지어졌다 한다. 이 곳 산마루 입수처에서는 샘이 있어 천지수라 하며 좌, 우편에는 옥지수라는 샘이 있다. 장안산 산봉을 일명 금봉이라고 하는데 장계면 무룡고개, 계남면 괴목, 번암면 지지, 덕산계곡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가을단풍과 억새밭 터널 자연의 신비가 아름다운 산이며 정상에서는 지리산, 마이산, 금강, 섬진강 줄기 등이 아름답게 펼쳐져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69 적상산 양수발전소 전북 무주군 적상면 063-320-2224 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여인의 붉은 치마폭과 같다는 적상산은 이름도 산의 모습에서 유래했다. 해발 1,034m의 적상산은 해발 1,029m의 향로봉을 비롯,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 안렴대 등의 빼어난 자연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발 850m 지점에 무주양수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인공호수를 조성해 자연미와 인공미를 적절히 조화시켰다. 특히 무주양수발전소의 건설과 함께 산정호수까지 오르는 도로가 개통되어 관광객들이 더욱 손쉽게 적상산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대규모의 양수발전소인 이곳은 시설용량 60만 KWH의 발전 시설을 위해 해발 850m인 안국사 터에 상부댐을 건설하고 포내리(250m)에 하부댐을 만들어 괴목천 물을 저수하였다가 전기수요가 적은 야간에 적상산 정상 가까운 분지에 막은 상부댐으로 끌어올리고 주간에 589m의 낙차폭을 이용하여 발전하는 시스템이다. 이 공사로 안국사가 있었던 분지는 마치 한라산 백록담과 같은 경관이 됐다. 이 공사로 말미암아 가파른 산길을 이제는 차를 타고 적상산을 오르게 됐다. 상부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는 안국사등 문화재를 그 윗쪽으로 이주하는 난공사를 마치고 사찰경내를 말끔히 단장하였다. 산정에 있는 사찰로서 동서남북을 조망할 수 있고 경계를 이루고 있는 적상산성과 하부댐, 그리고 구천동과 더불어 덕유산의 빼놓을 수 없는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70 전동성당 완산구 전동 200-1번지(태조로 119 )   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으로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신유박해(1801년) 때에는 이곳에서 유항검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헝,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전주 중앙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전주교구 주교좌 성당이었던 전동 성당은 초대 주임은 보두네(Francois Xavier Baudounet, 1859-1915년) 신부가 1907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완공한 성당이다.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고 벽돌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중국인 기술자들이 직접 구워 낸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국가 지정 기념물 제288호로 지정돼 있는 전동 성당은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순결을 상징하는 흰 대리석으로 조각된 유항검과 동정 부부 기념상 그리고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의 기념 동상도 볼 수 있다.
71 전봉준장군고택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458-1 063-530-7790 1981년 11월 28일 사적 제293호로 지정 된 이 건물은 일명 녹두장군(綠豆將軍)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운동(東學運動)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 전봉준 선생은 조선왕조(朝鮮王朝) 철종(哲宗) 5년(1854)에 이 지방의 양반 가문에서 출생, 고종(高宗) 27년(1890) 동학에 입도(立道) 하였으며, 서당(書堂) 훈장(訓長)으로 있었다. 당시 전국의 농촌은 일부 탐관오리(貪官汚吏)의 학정(虐政)으로 농민들의 원성(怨聲)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이 곳 고부현(古阜縣) 역시 군수(郡守) 조병갑(趙秉甲)이 만석보(萬石洑)를 설치하고 과중한 물세(水稅)를 거두는 등,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하고 원성이 높았다. 이 때 선생은 고부현의 동학 접주(接主)로 분노에 찬 농민들과 동학교도의 조직을 이용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保國安民)의 구호를 내세우고 동학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고종 31년(高宗 1894) 갑오 동학(甲午 東學) 혁명(革命) 당시 전봉준(全琫準 1854~1895)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이다. 그런데 서편으로 한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이 고댁(古宅)은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군에서 1974년에 국비(國費)와 군비(郡費)로 크게 수리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웃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 끝방은 방(房)으로 보다는 살림살이 등 속을 넣어두는 도장으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웃방은 장지(障紙)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공간으로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天障)은 두 가지 다 연동(連動) 천장이다. 두 개의 방 앞으로는 퇴(退)마루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 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 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草家)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다. 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村老)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陽橋里 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갑오년(甲午年 1894) 1월에 봉기(蜂起)한 후 안핵사(按衍使) 이용태(李容泰)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補修)를 하면서 해체(解體)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上樑文)에 무인(戊寅) 2월 26일(高宗 15年 1878) 세운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廢屋)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72 전주전통술박물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39-3 063-287-6305 술은 같은 재료를 가지고 빚어도 그 맛이 빚는 사람과 시간, 그리고 장소에 따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그 집안마다 각기 다른 술맛과 제조비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 이후 주세법 공포아래 소멸위기에 있던 ‘전통술’은 최근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어 전래주의 맥을 찾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즈음 전주에 ‘술’을 주제로하는 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은 집집마다 술을 빚던 가양주 전통을 오롯이 되살리고자 합니다. 화합으로 술을 빚는 양화당(釀和堂) : 양화당은 전통적인 술 빚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할수 있는 곳입니다. 전시실에는 술 도구와 술 만드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숙성실과 발효실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술 익는 소리를 듣고 술 익는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잔이 넘치는 걸 경계하라 계영원(誡盈院) : 계영원은 향음주례(嚮陰酒禮)를 치루는 제기들과 전통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이 지역 작가분들이 만든 예쁜 술잔과 기념품들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목어(木魚) : 목어는 물의 신(伸)인 용의 전신(前身)으로, 그 머리가 양화당으로 향하게 하여 좋은 기운이 들어오기를 바래고 또한 물이 화(化)하여 술이 되는 모습을 상징. 유상곡수(流橡曲水) :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워보세요. 물속에 불을 담아내던 전통 술빚기 및 시음회 : 수을관에서는 매달 우리 술을 두 번 담습니다. 매달 첫주와 셋째주가 그날입니다. 또한 매달 둘째주와 넷째주는 빚은 술로 시음회를 개최합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수을관에 오시면 누룩향 가득한 우리 가양주의 멋과 맛을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 술 빚기 : 매달 첫주, 셋째수 - 토요일 오후 3시 → 우리 술 시음회 : 매달 둘째주, 넷째주 - 토요일 오후 3시 전통 술 강좌 : 수을관에서는 잃어버린 우리 가양주와 술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술’ 강좌를 개설합니다. 총 12회에 걸쳐 열리는 이번 강좌는 이강주를 빚는 조정형 명인이 8회의 강의를 맡고 술도가 탐방과 특강으로 나머지는 이루어질 계획입니다. 조정형 명인은 대학에서 발효학을 전공하셨고, 큰 소주회사에서 오랫동안 책임자로 일해온 분으로 체계적인 교육과 풍부한 경험을 겸비한 전문가 입니다.
73 전주한옥마을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풍남동 일원 (구)한옥보존지구   전주시 완산구 교동, 풍남동 일원 (구)한옥보존지구 일대에 전주공예품전시관 및 명품관, 전통문화센터, 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을 만들어 지역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전통문화산업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국의 대표적인 전주한옥마을이조성되었다. <전주전통문화센터> ㅇ 건립 목적 - 전통소리의 고장답게 판소리공연 상설화 - 한국의 전통문화의 직접체험 할 수 있는 공간 마련 ㅇ 활용방안 - 한벽극장 : 판소리, 기악, 전통춤, 타악, 극 등 전통예술관련 공연 - 전통음식관(한벽루) : 전라도의 먹거리인 한정식, 비빔밥이 정성껏 준비 - 전통찻집(다향) : 우리차의 향기와 풍류을 음미 - 전통혼례식장(화명원) : 우리전통혼례의 뜻깊은 잔치마당 - 생생히 살아있는 전통요리체험, 전통놀이마당 등 <전주공예품 전시관 및 명품관> ㅇ 건립 목적 - 전통공예의 보존과 재창조의 중심지 - 전통공예품을 대표적인 전주의 전통문화 부존자원으로 집중 부각 - 전통 관광 문화 상품의 생산 및 판매 구축으로 지역 활성화 ㅇ 활용방안 - 한지공예, 부채공예, 전통악기공예, 자수공예 등 다양한 전통공예자원 가운데 특정 아이템을 특화함으로서 깊이 있는 전통공예 전문관 기능 -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전통 공예의 자료와 정보를 여러 형태의 기획전시 매체를 통해 연출함으로서 전통문화 도시 부각 - 관람객의 참여와 체험이 가능한 매체를 활용 관람 효율을 극대화 - 전통을 계승하고 생산하는 현장을 전시 아이템으로 하여 매장에서의 생산성 제고 <한옥생활체험관> ㅇ 건립목적 - 전통문화지구 내 도시한옥 및 전통한옥의 특성과 양반생활사를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 <전통술박물관> ㅇ 건립 목적 - 우리 조상의 전통향음주례에 의거 전통음주 예법을 재현하고 교육하여 새로운 세대에 대한 건전한 음주 문화 육성 - 전통적 술 담그기 도구인 주조 사료를 집적 전시하여 조상들의 주조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전문공간 조성 - 전통 민속주와 세계의 술을 비교 전시하여 전주의 문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 소개 및 터전 확보 ㅇ 활용방안 - 학생들을 위한 ‘향음주례’ 교육의 장 - 주조 관련 사료 전시로 현장학습 코스 마련 - 술의 기원과 역사 소개 및 전통민속주를 비롯한 우리나라 술과 세계의 술을 비교 전시하여 전주의 전통주를 관광문화 자원으로 활용 - 전주지역의 전통주를 계승하고 생산하는 현장을 전시 아이템으로 하여 매력 있는 전통문화 재현
74 전통고추장민속마을 전북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순창전통고추장은 고려말 이성계가 구림면 소재 만일사에 무학대사를 찾던 중 농가에서 고추장에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등극 후 진상케 한데서 유래하였다. 순창전통고추장의 특성은 찹쌀 함량이 월등히 많아 감칠맛이 뛰어나다. 햇볕에 잘말린 질 좋은 고추와 1년 이상 숙성하여 색과 맛이 뛰어나다. 방부제, 색소, 화학조미료 등이 전혀 들어 있지 않으며 항암효과가 뛰어나다. 순창읍은 삼한시대 마한의 목천으로 구분되었고, 삼국시대 때는 백제의 속령 중 하나인 도실로 명명되었다. 순창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이며, 이때는 면이었던 것이 1979년 5월 1일에 순창읍으로 승격되었다. 이곳 순창이 고추장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고려 말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고 있던 순창군 구림면 만일사를 찾아가는 도중, 어느 농가에 들러 고추장에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그 맛을 잊지 못하다가 조선을 창건, 등극한 후 진상토록 하여 천하일미의 전통식품으로 유명해졌다. 지금까지 그 명성과 비법이 이어져오고 있는데 그 끼니를 면하게 해준 농가가 현재의 순창부근이라는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순창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은 이러한 명성과 전통적 비법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순창군에서 지원하여 전통비법을 전수하고 있는 장인들을 모셔 한 마을을 형성하고 다음세대로 계속 전통비법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던 차 만들어진 신.구가 잘 조화된 마을이다. 현대의 과학이 입증하는 위생적 요구와 맛과 성분이 그대로 살아있는 장인들의 비법이 잘 어우러져 위생적이면서 전통적인 본래 고추장의 맛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또한 순창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은 마을 자체가 하나의 관광지라 할 수 있다. 집집마다 즐비한 커다란 항아리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넘어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마을모습 뿐만 아니라 맛에서도 그 전통을 잘 보전하고 있는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을 방문하면, 누구라도 앉은자리에서 다른 양념없이 양푼에 밥과 고추장만으로 밥을 비벼 먹고 싶은 기분이 절로 들 듯하다. 순창군 곳곳에 있던 전통고추장 장인을 한 곳에 모아 전통 고추장 제조법을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수 하고자 순창군에서 예산을 지원하여 새로이 형성된 마을이다. 명인인증을 받은 장인들과 그대로 전통 제조법을 전수 받을 자손들이 모여 오늘도 장류와 장아찌류의 제조는 계속 되고 있다.
75 전통문화센타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063-280-7077 판소리 계승, 발전의 장 판소리 전용극장. 전통음식센터, 토산품전시판매장, 전통혼례식장을 갖춘 전통문화체험의 핵심관광시설이다. 전주팔경의 하나인 한벽청연이라 일컫는 한벽당의 청아한 풍경과 사시사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이 곳은 떠나온 고향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이 곳 천변에 위치한 전통문화센터는 소리와 맛의 고장답게 판소리 공연이 상설화 되고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전통혼례를 치를 수 있게 하며 전통음식관에서 전주의 고유 음식을 조리해 볼 수 있으며 먹어볼 수 있는 곳이다. *주요시설 판소리 전용극장, 전통 음식센터, 토산품 전시 판매장, 전통 혼례식장 *주요사업 전통문화체험의 핵심관광시설
76 정읍사공원 전북 정읍시 시기3동 81-7 063-530-7413 정읍사의 발원현장에 6만7천 여평의 규모로 공원을 조성하고 시의 상징인 백제의 여인상 망부상과 정읍사 사우 정읍사 노래비를 건립하였다. 망부상 망부상은 1986. 12월 2.5m 화강암으로 건립하였는데 약간 긴 저고리에 옷깃을 따라서 저고리 아래쪽까지 단이 있으며 머리는 양쪽으로 쪽을 짓고서 두 손을 마주잡은 서있는 모습이다. 반코트식에 아래까지 단이 있는 것은 고구려벽화에 흔히 나타나고 있는 고구려 복식이다. 학계에서는 백제시대 의복에 대해서 옛 문헌에 기록이 보이지 않는바 고구려 벽화에 나와 있는 복식을 연구하여 추정하고 있다. 그것은 고구려 유민이 백제를 건국했기 때문이다. 정읍사 사우 정읍사 사우는 1994년 7월 규모는 11.5평,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건립하였으며 행상 나간 남편을 오직 사랑하나로 기다리고 기다리다 망부상이 되어버린 백제여인의 부덕을 기리는 제례를 올린다. 정읍사 노래비 지금의 정읍사는 우리의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이 개사되어 우리 고장 출신 KBS관현악 단장 김강섭선생의 작곡으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수제천은 가장 오래된 곡으로 전통 음악 중 으뜸으로 연주되고 있다. 늦게나마 기다림의 정서가 적절한 백제노래 정읍사와 궁중가악곡을 가진 우리 정읍의 향토문화예술을 자랑하여 후손에 길이 전승키 위해 시민의 뜻을 모아 1996. 12월 노래비를 건립하였다. 정읍사 공원지구 정읍사예술회관, 정읍사국악원, 시립도서관, 야외공연장, 체육 시설 등이 들어서 있어 향토색 짙은 수준 높은 지방문화를 창출하고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자원 정읍사 망부상, 정읍사사우, 정읍사노래비
77 죽도 전북 진안군 상전면 수동리 063-430-2605 진안에서 무주를 향해 약 8km를 달리면 상전면 수동리 내동 마을이 죽도에 이른다. 깎아 세운 듯한 바위산 절벽을 맑디 맑은 물이 한 바퀴 휘돌아 흐르고 있기에 마치 섬과 같은 곳이다. 남쪽의 장수에서 흘러오는 연평천과 동쪽 무주 덕유산에서 시작되는 구량천이 파자형(巴字形)으로 굽이굽이 굽이쳐 합류하면서 이룬 장관이다. 산죽(山竹)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죽도… 그러나 이름처럼 섬이 되고 마는, 또 하나의 전설이 현실로 맞춰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죽도를 빼어난 경관의 장소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이곳은 정여립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589년 기축년 선조(宣祖) 때이다. 무려 천여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는 옥사(獄事)인 기축옥사(己丑獄事)¨의 주인공이며 그 후, 우리의 호남 땅을 반역향(叛逆鄕)으로 전락시켜 차등의 한 획을 더했던 일대 사건의 마지막을 기록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여립은 역적이 아니었다. 한창 재조명되고 있는 학계와 일부 향토사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점차 그 진실을 위한 재조명이 진행되고 있듯이 정여립은 결코, 죽도로 도망 했던 게 아니었다. 평소 죽도를 자주 찾아 ¨죽도 선생¨이라고도 불렸던 그가 왜 피신처로 죽도를 택했을까? 아니다. 정여립은 역적이 아니었고 또 도망칠 이유도 없었으며 평소처럼 죽도에 놀러 왔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역모를 인정했던 것처럼 꾸며 결국은 자살을 한 것으로 위장되었던 조작극이었다는 ¨동서만록¨의 기록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죽도엔 정여립과 관련된 전설이 하나 있다. 천반산 정상에 있다는 거대한 돌 솥 이야기이다. 정여립이 많은 부하들과 이용했으며 그 크기가 어찌나 크던지 솥전 난간으로 젊은 장정들이 뛰어다녔다는 전설이다. 하지만 전설로만 치부하여 무관심 해서는 안 된다. 언제고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천반산의 정여립 성터를 찾아야 한다. 우리들의 무관심으로 행여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를 돌솥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 곳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나 그것을 가지고 이 천혜의 피서지를 숙연하게만 지나칠 수는 없다. 하늘과 물과 노래와 바위산과 나무가 조화의 극치를 이루는 절경. 보는 이 마다 넋을 잃게 만드는 천혜의 관광지이다. 정여립이 칩거했다는 찬바람 나오는 송판서굴, 전설의 형제바위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연기념물이었던 쏘가리가 넉넉히 잡힌 곳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이젠 진짜 섬이 된 죽도를 찾으며 옛날, 섬이 아닌 죽도를 더 그리워할 지도 모를 일이다. 섬이 아니었던 옛날 이야기를 때를 잘못 만난 정여립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귀한 전설처럼 이야기하며 말이다.
78 죽림온천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776-55 063-232-8832 1993년 10월 개장한 죽림온천은 용출수의 수질이 PH 9.43의 알칼리성 중탄산 나트륨형 유황온천(유황 함유 2.85ppm)인 것이 특징이며, 2003년 12월에 1년 6개월의 걸친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금 문을 열었다. 다량의 유황성분이 물에 용해되어 있어 일본의 뱃부온천보다도 수질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한, 마실수 있어 위장병, 당뇨병에 좋고, 아토피성 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피부미용, 류마티스 관절염, 고혈압 등에 효과가 아주 좋다고 한다. (내무부 발간 -¨온천지¨ 인용)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뤘던 호남의 서예가 창암 이삼만선생이 쓴 일기 창암일기에 ¨죽림리 일대 하천변에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샘에서 부녀자들이 겨울에도 머리를 감았다고 구전으로 전해진다¨고 적혀있어 이 온천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덕산 자락에 위치한 죽림온천은 120개 객실을 갖춘 호텔급 모텔 3동을 비롯, 수영장, 사우나, 음식점 등 총 6개 건물이 13,000평의 단지를 이루고 있어 부대시설이 있어 이용에 불편이 없으며, 전주-남원간 제17번 국도의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특히, 유황온천은 동의보감에 유일하게 나와있는 온천으로 만병통치일 정도로 몸에 좋다고 한다. 그것뿐아니라, 우리의 몸이 산성화(노령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알카리성 수질이다. (인터넷 온천길라잡이-¨온천클리닉¨ 발취) <<객실요금>> *일반실(온돌, 침대, 트윈침실) : 30,000 ~ 50,000 원 *VIP실(황옥방) : 50,000 ~ 90,000 원 - 상기요금은 10% 세금과 10% 봉사료가 포함된 금액입니다.(1인 초과시 ₩5.000 추가요금 <<온천요금>> *대온천탕(06:00-21:00) : 대인 5,000원 / 소인 3,000원 / 단체할인 *대쿠어방(사우나겸 찜질방, 24시간) : 대인 7,000원 / 소인 4,000원 *가족탕 : 2인 2시간 기준 20,000원 *흑진주 검정모래찜(09:00 - 18:00) : 6,000원 / 여성전용 - 휴(관)일 없이 연중무휴 - <<편의시설>> 수영장(준비중), 한식당, 중식당, 노래방, 나이트클럽, 커피숍(준비중), 24시간 편의점등
79 지리산 국립공원 전북 남원시 산내면 주천면, 운봉읍, 전남구례군,경남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일원 063-625-8911 1967년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져 왔으며, 신라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려졌다고 한다. 또한 백두산이 반도를 타고 내려와 이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에서 두류산 (頭流山),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높은 스님의 처소를 일컫는 뜻의 방장을 따서 방장산이라고도 불린다.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등 3개도 5개 시.군에 걸쳐있다. 이곳은 남한 제2의 고봉인 천왕봉(1,915m)을 비롯하여 제석봉(1,806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등 10여 개의 고산준봉이 줄지어 있고 뱀사골계곡, 칠선계곡 등 6개의 계곡과 구룡폭포, 불일폭포, 용추폭포, 등선폭포 등 10여 개의 폭포 등 뛰어난 명승지를 자랑한다 또한 화엄사, 연곡사, 쌍계사, 대원사, 실상사 등의 대사찰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예로부터 지리산 10경이 유명하다. 지리산10경: 노고단 운해, 피아골 단풍, 반야봉 낙조, 섬진청류, 벽소령 명월, 불일폭포, 세석 철쭉, 연하선경, 천왕봉 일출, 칠선계곡.
80 채만식문학관 전북 군산시 내흥동 063-450-4467 ㅇ 1층 로 비 - 채만식 선생의 인물사진, 작품속에 군산의 이미지가 잘 묘사되어 있음 전시실 - 채만식 선생의 치열한 삶의 여정을 시대적 상황과 연계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노라마식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6m의 원형공간 속에서 영상, 그래픽, 음향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마치 선생의 삶속에 들어가 있는것과 같은 공간을 느낄수 있음 자료보관실 - 채만식 선생에 관한 각종 자료 및 정보가 보관되어 있음 ㅇ2층 영상세미나실 - 50명 정도의 문학 강좌 및 세미나, 영상물 관람 가능 *규모 지상 2층 160평(부지 2,991평) *소장품 ㅇ집필활동(작동 모형디오라마) - 실제로 재현된 채만식 선생의 행동과 목소리를 경험하게 되며, 정확한 고증과 검증을 통해 보다 사실감 있게 연출하여 60여년전의 작가의 삶의 현장을 느낄 수 있다. ㅇ채만식의 작품세계 - 개방형 전시연출로 사실감을 줄수 있게 연출하였으며, 소설속 인물이나 작품속 배경 코너에서는 입체 그래픽을 이용하여 관람객이 호기심을 느낄수 있게 하였다. *주요사업 채만식 선생의 삶을 체험한 관람객들은 선생의 치열한 삶의 여정과 고뇌속에서 태어난 작품들을 접하게 되며, 소설속의 배경과 인물들을 통해 채만식 선생의 삶과 함께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81 철새조망대 전북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 063-450-6587 철새조망대는 지하1층에 학습.자료.강의실(288평),지상1층에 상설조류전시실(31평)과 영상관(66평),2층에 기획전시실(79평),9-11층에는 휴게실(31평)과 회전레스토랑(52평),조망대(71평)등의 시설을 갖춤. 부대시설로는 인공폭포와 연못,정자,야외의자,주차장등 여러가지 휴식시설을 설치.철새조망대 주변에는 금강하구둑,채만식문학관,군산온천과 오성산,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해양관광단지등이 있어 연계관광코스로 관광객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금강호는 갈대밭과 먹이가 풍부해 매년 여름과 겨울철이면 가창오리등 30만마리 이상 각종 철새가 날아오고 국제보호 희귀조들도 정기적으로 찾고 있음.
82 추령장승촌 전북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 063-652-5596 호남평야와 동부산악지대를 가로지른 노령산맥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 장승촌은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과 백양사가 인접한 해발 320m의 고원지대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설경이 유명하다. 행정구역상 복흥면 서마리 추령마을에 있으며, 남으로는 강천산(20km), 서로는 백양산(35km), 북으로는 내장산(3km)이 있는 관광의 요충지이다. 자포마을의 입석 줄다리기 · 당산제, 석보마을의 솟대장승제, 덕흥마을의 당산제, 대각마을의 솟대당산제, 동산마을 · 어은마을의 당산제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민속의 고장으로 서편제를 일으킨 강산 박유진이 이 마을에서 출생하여 14세까지 성장한 판소리 서편제의 본 고장으로 전남 보성으로 내려가 서편제를 완성하였다.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 국회부의장 홍영기 선생 등 걸출한 인물의 출생지이며 인근에는 성리학의 대가인 하서 김인후가 후학을 가르친 낙덕정이 있고, 세조를 뿌리치고 은둔한 신말주 선생의 귀래정이 읍에 있으며, 중종 때 순창 · 담양 · 무안 세명의 군수가 모여 신비복위를 상소하였던 삼인대가 강천산에 위치하고 있다. 장승촌이 소재한 마을은 내장산과 백양사간 관광도로가 개설되면서 국립산림박물관과 더불어 새로운 관광 명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6개의 숙박시설과 10여개의 식당 등이 있고, 오리 · 꿩 · 닭 등의 요리가 유명하다. 또한 보리밥과 된장국 등 우리의 요리도 맛볼 수 있다.
83 춘향테마파크 전북 남원시 천거동 063-620-6833 1992년 완성했으며, 박남재 화백이 그린 유화 9폭의 춘향 일대기와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서화류, 장신구, 서책 등이 전시되어 있다.  
84 판소리박물관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241-1 063-560-2761 고창 판소리박물관은 동리 신재효와 여류명창 진채선, 김소희등이 고창 출신의 명창들을 기념하고 동리국악당 및 판소리 전수관과 연계된 판소리 타운의 조성을 통한 판소리 성지로서의 위상과 지역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2001년 6월에 개관하였다. 고창읍성, 동리고택, 동리국악당과 이웃하여 위치한 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형성과 발달과정의 설명판 판소리 관련 유물전시실, 따라 배우는 구전심수교실, 판소리의 이해를 돕는 영상자료실, 동리유품 전시실,소리굴에서의 자기 목소리 측정실등 다양하고 유익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는 도자기 및 한국화와 서예작품들이 전시된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휴게시설로는 화단등의 조경야외 공연장, 연못과 분수, 정자, 벤치등이 준비되어 있어 가족단위 휴게공간으로도 훌륭한 곳이다.
85 팬아시아종이박물관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2가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 063-210-8103 종이와 출판문화의 본고장인 전주에 건립된 팬아시아종이박물관은 재미있는 종이나라로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테마형 박물관이다. 종이와 종이문화의 모든 것을 선보여줄 종이박물관이 국내 최초로 97.10.21일에 건립되었다. 이 박물관은 인류의 종이발달사와 관련 유물 등을 체계적으로 소개, 전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직접 우리나라 전통한지를 만들어 보거나, 컴퓨터 검색시스템을 통해 종이공예품 유물들을 만져보고 자세한 정보도 알아볼 수 있다. 또한, 종이접기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참여형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다. *규모 620평 (1층: 212평, 2층: 340평, 지하: 68평) *주요시설 ▶ 1전시실 : 종이의 과거 ▶ 2전시실 : 종이의 현재, 미래 ▶ 기획전시실, 한지소개실, 한지재현관, 수장고, Museum Shop *소장품 1. 지공예 690종 2. 고문서, 고서적 231종 (국보 1점, 보물 7점 포함) 3. 종이류 91종 4. 종이제작 도구류 16종 5. 기타 169종 *주요사업 인류의 종이발달사와 관련 유물 등을 체계적으로 소개, 전시할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형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다.
86 한옥생활체험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33-4 063-287-6300 사랑채 사랑채는 바깥양반이 주로 기거하며 손님을 맞아 대접하고 집안 자녀들의 학문과 교양을 가르치는 장소입니다. 사랑채 가운데 사랑방은 사랑채의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사대부 양반들은 사랑방에 모여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짓는 등 수준 높은 사랑방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세화관의 7개의 객실 가운데 사랑방으로 선비방을 두어 옛 선비들의 생활양식을 체험 할 수 있도록 가구와 문방소품을 두었습니다. 안채 안채는 주인 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이 주가 되는 곳으로 보통 안방, 안대청, 건넌방, 부엌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채와는 다르게 가족들의 의식주를 담당하며 가구는 주로 의복과 침구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단영원은 3개의 방과 부엌, 안대청으로 이루어지며 안방을 규수방이라 하여 양반가옥의 안방을 재현하였습니다. 대청 여름철 분합문을 들쇠에 걸면 앞뒤가 환희 틔이고 겨울이 오면 문을 닫아 한기를 막을 수 있는 대청은 열린 공간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경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 정담을 나누며 한 잔의 차와 함께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경루는 빔 프로젝트와 음향시설을 갖추어 회의장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87 혼불문학관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노봉리 522번지 063-620-6788 □ 전시목적 전시실의 성격은 작고한 작가 최명희 선생이 살아 생전 아끼며 사용했던 만년필, 커피잔, 혼불 원고 등을 비롯한 소장품류를 복제하여 전시하고 매안 이씨 가문 종부 3대의 삶을 통해 나타난 당시의 사회적 기품과 평민, 천민들의 민족혼 회복을 위한 노력 등을 디오라마로 전시하는 디오라마 전시실이다. 이를 통해, 순결한 모국어와 세시풍속, 관혼상제 등 전통생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했으며 주요장면을 작가가 작품속에서 섬세하게 표현했던 것처럼 혼불 문학 주제를 각각의 디오라마로 전시 연출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갈수록 소멸되어 가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신인 혼불문학을 느껴보고, 근원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를 구하는데 본 전시의 목적이 있다. □ 전시기능 : ○ 혼불문학마을의 상징성 기능 혼불 문학의 주제전시를 디오라마 기법을 사용한 디오라마 전시실로 전시 연출함으로써 전통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전달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것, 우리전통문화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과 복원을 찾아볼 수 있도록 문학마을의 상징성 부여 ○ 여가 선용 및 전통계승의 기능 혼불 문학마을은 남원 지역주민들의 건전한 여가 활용을 위한 기능과 내일의 주역인 젊은 세대들이 혼불 문학에서 나타난 다양한 한국인의 정서와 우리말 사투리, 전통 생활습관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계승의 장으로 활용
88 황토현전적지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063-530-7578 전북 정읍시 덕천면(德川面) 하학리(下鶴里)에 있는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관군과 처음으로 싸워 대승을 거둔 자리. 사적 제295호. 해발고도는 70 m이며, 당시 태인(泰仁)과 고부(古阜)를 연결하는 요지였다. 1894년 봄 고부군수의 학정에 대항하여 봉기한 농민군은 고부를 점령하고, 1만에 가까운 군세로 백산(白山)에 집결하였다. 급보를 접한 전라감사 김문현(金文鉉)은 영장(營將) 이광양(李光陽) 등에게 영병(領兵) 250명과 보부상대 수천명을 주어 농민군을 소탕하게 하였다. 농민군이 관군을 맞아 황토현 서쪽에 있는 도교산(道橋山)에 진을 치자, 관군은 황토현에서 대치하였다. 4월 6일 밤 농민군이 기습공격을 하여, 이광양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병이 전사하였는데, 농민군은 이를 계기로 1개월만에 호남지방을 석권하였다. 이 일대에는(약 10만평)동학농민혁명기념탑을 비롯하여 전봉준장군의 동상과 사당, 유픔을 전시한 기념관, 기타 녹두광장과 주차장 시설들을 갖추고있다. 현재 진행중인 기념관 건립(2003년 완공)이 완공되면 많은 유품 및 시설들이 보강되여 문화유적지를 찾을 외래탐방객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를 재조명 하는 산교육장 역할을 충분히 할것이다.
89 회문산자연휴양림 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산3-1번지 063-653-4779 회문산은 전주에서 국도 27호선을 따라 1시간 정도 거리에 광주에서 88고속도로와 국도 27호선을 따라 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하며, 특산물로 전통고추장과 한봉이 유명한 곳으로 주변의 옥정호와 어우러져 낚시를 겸한 등산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 <strong>개 요</strong> 6·25 전후에 지리산과 더불어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구림면 안정리 뒷산인 장군봉 아래 87만 평에 조성된 자연 휴양림은 빼어난 절경과 역사의 현장으로 주목되어 주말이면 전국적으로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회문산 주봉으로 가장 오르기 쉬운 안정리로부터 3시간 걸리는 5.5km의 험한 바위길과 울창 한 숲속을, 도로를 개설 휴양림으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경내 울창한 숲이 우거져 6·25때 빨치산 간부 정치 훈련장이었던 ¨노령학원¨이 있었던 중턱은 이제는 최적의 삼림욕장으로 조성되어 지난 날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성벽처럼 쌓아올린 ¨노령문¨옆에 폭포가 있고 그 위에는 길이 30여 m의 구름다리가 가로 지르고 그 위에 6각 전망대가 있어 여기 올라 바라보는 경치는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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