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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부터 풍습까지 똑같다? 중국 대륙에 건설된 '또 하나의 백제' 미스터리 | KBS 특집 20020704 방송

by 리치캣 2026.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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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영토의 동쪽 해안가는...

원래 우리 홍산문명, 우리 조상들의 땅이었고,

백제의 땅이었다니까...몇번을 말해도...한반도로 축소왜곡적 사고를 하는건지???

그리스가 바다를 끼고 국가를 형성했고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 전체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듯이...

백제가 그런 구조였고...당연히,,,2000년대 시점의 중국영토가 과거 3000-7000년 전에는

우리 영토였다는 것을 인지하기 바란다.

 

지명부터 풍습까지 똑같다? 중국 대륙에 건설된 '또 하나의 백제' 미스터리 | KBS 특집 20020704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IweVPTGWp8o

 

📌 중국 대륙에 '또 하나의 백제'가 존재한다는 미스터리의 결정적 근거는 무엇인가?

중국 광서 장족 자치구의 전주와 백제향에서 전라북도 전주와 유사한 지명, 생활 풍습, 미륵 신앙, 그리고 백제 진출 기록 등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흔적이 발견된 것이 핵심 근거입니다.

 

중국 대륙에 '또 하나의 백제'가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파헤칩니다. 지명, 풍습, 신앙까지 한국과 똑같은 흔적들을 따라가며 백제의 숨겨진 역사를 추적합니다. 한국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흥미로운 발견을 통해 우리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하세요.

 

1. 중국 대륙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백제' 미스터리

중국 대륙에서 발견되는 지명, 풍습, 신앙 등 한국과 동일한 흔적들을 통해 백제의 중국 진출 가능성을 추적하는 영상이다.

 

1.1. 한국과 동일한 지명 발견: 전주와 완산

  1. 중국 광서 장족 자치구에 위치한 전주

    • 한국 전라북도 전주와 한자까지 동일한 지명으로, 묘족, 요족 등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도시이다.

    • 풍부한 토지와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했으며,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2. 전주 고등학교의 존재

    • 중국 전주에도 한국 전라북도 전주와 마찬가지로 전주 고등학교가 있으며, 83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학교이다.

  3. 완산이라는 지명의 유사성

    • 한국 전라북도 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이 중국 전주에서도 발견된다.

    • 중국 전주의 완산은 세 강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에 솟아 있으며, 시민들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 한국 완산은 '완전한 땅'을 의미하며, 중국 완산의 지명 의미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도시를 내려다보는 산으로 묘사된다.

  4. 기린봉이라는 동일 지명

    • 서쪽의 완산과 더불어 동쪽에는 기린봉이 존재하며, 이 역시 두 나라에 함께 나타나는 동일 지명이다.

    • 중국 전주의 기린봉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령스러운 산으로 전해진다.

 

1.2. 한국과 유사한 농경 생활 흔적

  1. 동산향의 전통적인 농촌 풍경

    • 중국 전주에 위치한 동산향은 요족이 모여 사는 작은 농촌으로, 한국의 시골 풍경과 유사하다.

    • 물이 귀한 동산향에서는 빗물을 이용해 채소를 씻는 모습이 흔히 볼 수 있다.

  2. 전라도 지역의 독특한 농기구 발견

    • 동산향에서 잊혀져 가는 한국 생활의 옛 흔적들이 발견된다.

    • 곡식을 갈 때 사용하던 맷돌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맷돌 아래 홈이 파인 모양은 전라도 지역의 독특한 양식이다.

    • 한 사람이 사용하는 외다리 방아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전라도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양식이다.

    • 이러한 농기구들은 한국과 동일한 물건으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3. 연자방아의 발견과 의미

    • 동산향 한가운데에서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연자방아가 발견되었다.

    • 연자방아는 말이나 소의 힘을 이용해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빠는 집단 도구이다.

    • 연자방아의 등장은 맷돌에서 시작하여 규모가 커지면서 집단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4. 문화적 연관성 시사

    • 중국 전주에서 발견되는 지명뿐 아니라 농경 생활과 밀착된 생활 흔적들은 전라북도 전주와 중국 전주의 문화적 연관성을 시사한다.

 

1.3. 한국과 유사한 생활 방식과 민속 신앙

  1. 초가집과 이엉 엮기

    • 중국에서 발견된 초가집은 한국 조상의 서민적인 삶을 담고 있으며, 이엉을 엮어 지붕을 올리는 방식이 한국과 유사하다.

    •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중국에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2. 김치와 장아찌 등 발효 음식

    • 중국 전주에서 한국과 동일한 생활 방식뿐 아니라 민속 신앙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김치를 담그고 장아찌를 만드는 식생활 역시 한국과 유사하며, 이는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난 한국의 지혜로운 발효 음식이다.

  3. 요족의 전통 춤과 음악

    • 요족 마을의 축제에서 행해지는 음악과 춤은 한국의 전통 춤과 유사한 점이 많다.

    • 요족의 전통 춤은 결혼식 축하용으로 사용되거나 남녀를 연결하는 중매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 춤에 사용되는 악기 역시 한국의 전통 악기와 비슷하다.

    • 둥근 원을 그리며 손을 잡고 추는 춤은 한국의 강강술래와 비슷하며, 이는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마한 시대의 원무와 흡사하다.

    • 요족의 전통 춤은 대규모이며 형식의 유사성에서 강강술래의 시원으로 알려진 마한 시대 원무와 깊은 관련이 있다.

 

1.4. 미륵 신앙의 흔적: 금산사

  1. 한국 금산사의 미륵 신앙

    • 전라북도 모악산에 위치한 금산사는 한국 미륵 신앙의 근본 도량으로, 삼국 시대 말기부터 이어져 온 희망의 신앙이다.

    • 금산사는 불교 신앙 중 민중적인 요소가 강한 미륵 신앙의 터전이다.

  2. 중국 전주 금산사의 발견

    • 중국 고지도에서 금산의 검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잊혀진 금산사를 찾아 나선다.

    • 검산 일대에 도착하니 사찰의 경계와 입구를 표시하는 석장승이 발견되며, 이는 한국 사찰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이다.

    • 넓은 터는 금산사가 소유했던 농장으로 추정되며, 이곳이 중국 전주 금산사임을 알 수 있다.

    • 고지도에 나타난 지명 외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입구 포장석에서 당시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훼손된 금산사의 현황

    • 본전 자리에는 비석 하나만이 남아 금당터를 지키고 있으며, 이는 사원 전장 기록석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 최근까지 마을의 학교와 병원으로 사용되면서 금산사는 많은 훼손을 겪었다.

    • 절의 비석들을 쪼개 건물을 짓는 데 사용했으며, 깨어진 비석 조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 이러한 비석 조각들의 양으로 보아 당시 금산사의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4. 비문 분석을 통한 역사 추적

    • 검산사의 중건을 알리는 표양 공덕비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비석이다.

    • 비석 조각들을 이용해 만든 식탁에서 비문을 확인한 결과, 아래쪽 비석의 비문은 판독이 가능했다.

    • 비석에는 검산에 시주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내역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금산사가 대규모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비문에서 '천재 후지(千年後之)'라는 문구를 발견했는데, 이는 금산사가 부당 시대 이전에 지어졌음을 시사한다.

    • 두 개의 부도탑 뒤에서 발견된 비석에는 금산사 37대 주지였던 금산귀일 화상에 대한 기록이 있다.

    • 비문에는 금산 총림과 법문의 맥을 잇는 사조들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으며, 이는 금산사가 100년 또는 200년 이상 소급될 수 있는 연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중국 전주 금산사는 최근에 형성된 사찰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 동안 임재종 중심의 정통 법맥을 이은 사찰로 추정된다.

  5. 신앙적 지형의 유사성

    • 중국 전주 금산사는 전라북도 금산사의 신앙인 미륵 신앙에서 나타나는 지형, 즉 금산, 용산, 사자도암 등이 유사한 형태를 이룬다.

 

1.5. 백제향: '또 하나의 백제'

  1. 백제향이라는 지명

    • 중국 광서 장족 자치구 남령시에 위치한 백제향은 여전히 '백제'라는 옛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향(鄕)은 한국의 읍이나 면과 같은 지역 단위 명칭이며, 백제향은 궁벽한 시골 마을이다.

  2. 백제허(百濟墟)라는 지명과 의미

    • 중국 고금지명 대사전에는 백제향을 백제허(百濟墟)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오래된 성이나 유적지를 뜻한다.

    • 백제허라는 지역에는 실제로 백제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마을 자체가 백제의 유적지가 된다.

  3. 백제 문화와 풍습의 계승

    • 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백제향은 백제라는 지명을 사용하며, 백제의 문화와 풍습이 면면히 살아 있다.

    • 특히 전라도 일대에서 전승되는 외다리 방아는 백제허 사람들이 백제 생활 문화의 흔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백제향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대백제'라고도 부른다.

  4. 백제의 중국 진출 가능성

    • 백제는 항해술이 발달했으며 남해 지역에서 패권을 잡았던 나라로, 중국 황해를 지나 남해 지역까지 진출했을 가능성이 있다.

    • 당시 중국 남부 지역은 미개발 지역으로, 중국인들과 마찰 없이 백제인들이 지역을 개발하기에 적합했을 수 있다.

    • 중국 정사인 송서에는 백제가 중국 대륙에 진평군 진평현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백제의 중국 영토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 송나라가 설치한 진평현은 현재의 광서 지역을 말하며, 백제는 혼란한 시기에 진평의 두 땅을 차지하여 백제군을 설치했다.

    • 백제의 영토로 알려진 진평군은 현재의 백제향 일대가 된다.

  5. 물길로 이어진 백제향과 전주

    • 이강, 주강, 용성강은 전주와 백제향을 잇는 물길로, 두 도시의 왕래를 가능하게 한다.

    • 백제향은 백제가 진출했던 흔적이 지명, 풍습, 문헌으로 남아 있으며, 중국 전주는 후백제와 유사한 점이 많아 백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1.6. 후백제와의 연관성 및 해상 활동

  1. 후백제 붕괴 후 전주 지명의 시작

    • 후백제가 붕괴된 3년 후인 939년에 중국 전주는 그 이름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는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후백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2. 후백제의 해상 교통을 이용한 국제 활동

    • 후백제의 왕도 전주에서 중국 전주까지 집단적인 이동이 가능했으며, 만경강과 금강 하구를 통과하여 황해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전주까지 물길로 연결될 수 있다.

    • 중국은 배를 통해 먼 거리도 쉽게 연결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후백제는 해상 교통을 이용한 국제 대륙 활동이 활발했으며, 중국 당과 후당으로 사신을 보내 교류하며 거점 지역을 마련하려 했을 것이다.

  3. 역사 재구성과 백제 진출 가능성

    • 중국 전주에 금산사, 완산, 전주 등 한국에서 옮겨온 듯한 이름들이 많다는 점은 한국 전주와 깊은 연관성을 시사한다.

    • 역사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확장되고 재구성될 수 있으며,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중국 대륙의 백제 진출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 중국 광서 자치구의 전주와 백제향 주민들의 삶과 풍습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만이 거대한 세계로 들어가는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다.

★★★★★★★
아이디어링 : First Mover. 퍼스트무버의 시대. 원격근무시대. 아이디어 회의 방법론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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