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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military. warfare.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를 왜 지우려하나?_이건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내전이다

by 리치캣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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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또라이와 그 부역자들이 말하는 그런 이유대로 라면...

공산당 가입이유로 홍범도 장군을 비하하는 "왜나라당" "딴나라당"에 가입한 당원 가입자들도...

대한민국 사회반역죄로 모두 총살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한다.

죽은 자는 파묘 해야한다.

우선...뉴라이트에 관련된 모든 자들은 반역죄로 즉시 다스려져야한다.

이건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내전이다

[PD수첩 10분 컷]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를 왜 지우려하나?_MBC 2023년 10월 24일 방송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의 이전을 결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홍범도 장군의 역사와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부각되며 이에 대한 진실과 해석이 혼선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뉴라이트 계열과 연계로 지명 및 이동이 이뤄진 경우도 있고, 국민들은 이를 통한 이념적 분열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이념 중요성 강조와 함께 독립운동가들의 존엄과 국가 정신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tONNE7leMw

[PD수첩 10분 컷]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를 왜 지우려하나?_MBC 2023년 10월 24일 방송

이곳은 육군사관학교 앞입니다. 육사 교정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두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 강점기에 봉호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 밖으로 옮기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1868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일제가 명성 황우를 살해한 1895년 이후 일제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27살 때부터 의병대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1920년 홍범도 장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봉호동 전투를 지휘했는데, 골짜기 매복 작전을 통해 일본군 백신 7명을 사살하는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 역사상 최초의 승리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 역사상 가장 큰 전인 청산리 대처에도 제 1 연대장으로 참전했습니다. 김자진 장군과 함께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1922년 소련의 입국하면서 낸 서류에 직업은 의병으로 썼으며, 28년 입국 목적은 고려 독립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아내와 큰 아들을 잃고 일본군에 쫓겨 고국 당에서 멀어졌고, 1937년 소련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에서 병원 경비와 극장 수위로 근근히 살다 조국 독립 인연을 앞두고 눈을 감았습니다. 생전 그가 부하들에게 했던 말은 '우리 한민족 독립을 최후까지 힘을 다하여 외쳐 죽은 뒤에야 그쳐야 한다'였습니다.

그의 의견은 완전히 다릅니다.  나는 철저한 보세요. 뭐, 김정은이 만난다, 김 김정일이 만난다 하는 여기에 대해서 나는 용서할 수가 없어요. 내내 공산당고 싸웠기 때문에 그러. 한 가지, 우리가 이해해야 될 것은 그때 공산당 아고, 지금 공산당 아고 그 연결시켜서 나쁘다. 이건 아주 무식한 수치야. 예비역 육군 준장인 박경석 장군은 독립군 항쟁 4를 연구해 왔습니다. 역사적 배경을 알면 공산당 가입을 문제삼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에 지원을 받았다, 소련에 뭐, 공산당이다 하는 것은 그 당시 소련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은 바로 아군이, 일본 제국 지에 대한 아주 결정적인 토벌에 도움을 준 우방국이. 어제 적이 오늘에 우방이 되고, 오늘이 우방이 내일에 적이 된다는 것은 역사의 순환 과정에서 흔해요. 국방부가 5년 전 SNS에 올렸던 영상입니다. 자, 오늘 벌써 홍범도 장군을 소개할 시간이 됐네요. 일부 분들은 이제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라고 오해를 하신 분들도 있고, 오해지 그 소원의 상황을 잘 몰랐던 거야. 우리 강제 이주당 막 그런 눈물나는 걸 잘 몰랐던 건데. 이 영상은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이 만든 건데요. 최근 갑자기 비공개 처리됐습니다. 아 이미 공산당이 가입한 것은 1962년도에 장대 장을 수여할 때부터 이미. 그거는 다 기록적으로 나와 있었던 거예요. 그 문제가 된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고, 역사적으로도 그 문제를 삼은 사람 하도 없어요. 그 지금 같은 그런 공산주의가 대한민국에 우리나라에 존재할지 누가 그걸 알았겠습니까. 홍금 장이 어떻게 알겠습니다. 1943년도 돌아가셨는데, 국방부가 내놓은 입장문은 논란을 더 키웠습니다. 공산주의 이력이며 1919년부터 22년까지 빨치산으로 활동했다는 증명서를 근거로든 것입니다. 국방부 기자단에서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 빨치산 같은 경우도 파르티잔에 넘어온 말이잖아요. 이 비정 군이에요. 이 당시 우리나라 군제도 없고 국가도 없는데, 이 당시 독립운동 사 다 산 이잖아요. 그때 활동한 걸 산이라고 하면 이게 얼마나 참, 부끄럽고 이게 합니까..

2018년 3월 1일, 육군사관학교는 독립운동가 다섯명의 흉상을 세웠습니다.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광복군 초대사령관 지청천, 봉호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장군입니다. 그런데, 5년 만에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에 두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서 싸워야 될 간부를 장교로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 되냐 이 거기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1927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등의 이력을 문제삼은 겁니다. 사 출신으로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박경석 장군..
국방부 직속 군사편찬 연구소에서 홍도 장군에 대해 발간한 책입니다.  치사는 의용군을 뜻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국전쟁 전으로 북한 게릴라를 의미했던 빨치산과 다른데도 지으려 했다는 지적이 옵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이른바 자유시 참변 러시아 지역의 자유에서 1921년 공산세력이 치한 유지 등의 명목으로 독립군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는데요. 거부하는 독립군 일부를 무력 진압하면서 희생이 컸던 사건입니다. 국방부는 장군이 참변 가해자로 가담한 걸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아, 그 홍군이 자에 자신이 가했다는을 에 말을 했다. 이 자료를 확보했다. 이 말씀이신 거죠네. 그런 문서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학계에서도 확인된 게 없다며, 기자들이 다시 질문하자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제가 분명히 제차 질문한 게 자유시 변에 직접 가담을. 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그게 맞다 그랬다는 건은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배해 우리 독립군을 살해하는데 가담했다는 내용이 되는데요. 아,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게 말씀드렸다면 제가 잘못 드린 거고, 그렇게 얘기가 깜짝 놀랐어요.

아, 그러십니까? 올해 9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찬성하는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라를 키는 사 들한테 대한민국 건국 정신인 자유민주 유는 공산 활동한 사람을 갖다가 것고 국장을 주면은, 건국 정심이 위배되는 사람 국 준다는은, 이거 완 대한민국이 개 이게요. 윤성 대통령은 흉상 이전에 대해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의을 밝다고 합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한번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거꾸로 돌려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독립 영웅들에 대해서 그 이후의 시대의 잣대를 가지고 어 함부로 막 판단하고, 그것을 가지고 부관 참시 하듯이 다 합의해서 세운 흉상을 갖다가 철거하고, 이렇게 난리를 치는게 과연 옳은 것인지, 한번 생 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국방부의 흉상 이전 방침에 대해 보수 정치인들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국민 10명 중 여섯명 이상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반대하는 상황 하지만 국방부는 독립 기념관에 모시는게 더 적절하다면 이전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독립기념관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전시할 만한 장소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수장 자료는 그냥 수장고에 잘 보관돼 있을뿐입니다. 수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여기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없나요? 본위 기념관에 어 수장고 있는 자료가 너무 많아 가지고 전치를 할 수가... 없어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설치한 지 5년 만에 갑자기 철거를 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산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건 지난해 10월이었습니다. 자시거기에서 명대는 우리 독립군의 씨가 마르는데 주역이었습니다. 소련군이 된 이분은 굳이 흉상을 세우고 돌아 그 육사에 만들려고 했는지 국감 지적 후 한 달여만에 육군 참모 총장이 육사를 방문해 회의를 주관했습니다.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총장 방문 후속 조치 과제가 선정됐는데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하는 기념물 재배치 사업을 조기 시행하는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재배치 대상은 홍범도 장군 흉상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과 흉상 여섯 개였습니다. 올해 5월 위원회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독립운동가 흉상 여섯 개를 사내 공원에 두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7월 4일까지만 해도 육사의 실내에 흉상을 놓는 방안이 논의됐습니다.

그런데 7월 21일, 육사 교장을 비롯한 육사 관계자 두 명이 신원식 의원실로 방문했습니다. 그들이 신원식 의원실을 방문한 후, 12월 일 뒤 육사 회의에서 처음으로 흉상을 육사 밖으로 옮기는 방안이 논의됩니다. 신원식 장관 만나기 전후가 달라졌습니다. 그럼 만났다는 것이 당연히 외압이라고, 어떤 지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결정적으로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당시 의원 신분으로 국방부 육군 육사에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흉상 이전은 전임 장관 시절 육사 자체 판단으로 결정됐다고 답했습니다.  8월 초부터 흉상 이전을 위한 조치가 일사 천리로 이루어졌습니다. 8월 23일, 육사는 흉상 이전 예산으로 1500만 원을 요청했고, 다음날 바로 독립기념관의 흉상 위탁 관리 요청도 했습니다. 흉상 관련쪽이 이 문의가 왔었죠, 가능하냐고 그래. 가능하다고 해서 계약을 한 저게 어떤 공사건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총상 그거 이전하는 거였어요? 갑자기 긴급으로 좀 해달라고 해서 그런데 흉상 이전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8월 28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육사가 검토하고 있는 것도 어떤 방안이 결정됐나 정해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이때는 이미 육사가 건설업체와 흉상 이전 계약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거기서 저기 뭐야 안 한다고 해서 최소해 달라고 그죠. 도 시끄러워서 그쪽 취소는 뭐 사관생도 종합교육 시설인 충무관 앞에 세워졌던 다섯명의 흉상, 국군과 육사의 뿌리가 독립군, 광복군, 신흥무관 학교라는 상징이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잠수함을 개명한 그런 사례가 있습니까? 글쎄요, 전 세계에 우리라 있습니까? 전 세계의 사례가 어떤지는 저희한테는 중요할 게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황기철 예비역 대장은 월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말하는 분들이 자기 한도 아닙니다. 이게 뭐 그렇 하면 압력 밖에 될 수가 없죠. 해군 총장의 한이고, 해군에서 검토해서 다 해야 되는 건데, 홍범도 한 명이 바뀌어야 된다. 그런 논리 맞지 않습니다. 그게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역사적 평가에서 없 한명이 회 바야 된다는 겁 그죠. 대전 유성구에 있는 홍범도 장군으로 2년 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것을 기념해 현충원로 중에서 약 2km 구간을 명예 도로로 정했는데, 이 도로 이름을 두고도 시끄럽습니다. 명예 도로명 폐지 권을 가진 유성구청장 명예도로명 절차도 지켰기 때문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까 그 시비 소리가 여기도 들렸나요? 그럼요, 제 방이 여기니까, 바로 참 약간 롭게 있거든. 저는 그럼 아주 크게 들립니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신가요? 홍범도 장군로 폐지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어, 제가 걱정스러운 거는 이런 잘못된, 이런 왜곡된 정보나 이런 역사 인식들이 시민들한테 이게 확산이 더 되고, 특히나 이제 후들 왜곡된 독립운동사 역사인식이런 게 전달이 될까 봐 이어질까 봐, 그게 제 걱정이에요. 갑작스럽게 홍범도 장군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이후,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딴 이 도로명을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피디수첩은 홍범도 장군로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취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홍범도 장군에 대해 하는 말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에서 자유에서 보를 했어요. 홍범도 장군이에요. 예, 앞장서 갖고 홍범도 장군 아니에요. 그냥 앞잡이, 소련 앞잡이 이런 잘못된 정보들을 어디에서 들은 걸까. 지금 이제 홍범도의 관해서는 그 김용삼 홍범도 이렇게 유튜브에 치면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분석을 아주 자세하게 해놨습니다..

최근 국방부 최고 부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의 정은 625 전쟁이라고 하는 공산주의자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정사의 정신적 뿌리는 신흥무관 학교인가요? 아니면 국방 경비 사관 학교인가요? 육사에 대한 것은 어? 국방 경비 사관학교로 보고 있습니다. 아 참, 그러면 우리 헌법을 개하고 있는데, 우리는 헌법을 개하고 있는데, 광목과 신흥무관 학교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반헌법 반 국가지 원성 아닙니까? 대한민국 헌법은 3일 운동으로 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헌법을 따른다면 시정부의 군사조직인 광복군을 계승해야 합니다. 논란은 홍범도함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홍범도함에 이름 변경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겁니다. 저는 그 군함에 홍범도. 그 전 그 소련에 공산당원의 자격을 가진 사람을 그거는 수정을 검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정을 검토해야 된다..
예, 김용삼 김용삼 김용 용상 용상 김자 용자 3자 역사 난타 돌아보기 도를 말한다.  김용삼 씨는 월간조선 편집장을 지낸 인터넷 언론사 기자입니다. 그는 영상에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싸웠던 분들의 역사를 깎아 내렸습니다. 이 보니까 뭐 일본군은 봉동에서 전사 한 명이고 뭐 뭐 독립군 뭐 수십명을 사살했다고 돼 있는데, 당신들 그 거 있 가져와 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책을 보면, 예 솔직히 얘기하면은 뭐 그 청사리 전투는 잘해야 무승부다. 청산리 대첩은 이제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될 거 같아요. 잘해야 무승부 정도, 그 동동은 일본이 승리한 게 거의 뭐 확실하고 김기자는 권위 있는 연구자의 책을 근거로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인터뷰했던 장세윤 연구원 이번 무승부 조장을 했어요. 그 제가 올 때는 무승부는 아니고네. 그럼 혹시 여기 무승부로 봐야 된다라고 했는데 그렇게도 쓰셨나요. 무승부라는 말 쓴 적이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군의 그 승 분명하다 이렇게 이 분명히 정리를 했습니다. 김용삼 기자가 인용했던 무승부라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김용삼 기자는 재 이당의 교입니다 교장은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인데 두 사람은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일본의 식민지배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를 이뤘다는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3년간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칼럼들을 수차에 써왔습니다. 동시에 관련 영상들도 올리며 일종의 담론을 만들어 왔습니다. 김용삼 기자는 한국자유회의라는 단체에 참여해 왔습니다. 한국자유회의는 박근혜 탄핵 집회 한창이던 2017년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만든 단체입니다. 창립때부터 김용삼 기자가 함께했던 한국자유회의는 최근 국회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장관님, 2017년 출범한 한국자유회의라는 단체를 알고 계십니까? 네, 장관께서 주도해서 만든 단체입니다. 이 단체 출신 인사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요. 201년이 단체가 만들어 때 함께했던 주요 인사들이 지금 정부 주직 한 자리씩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통일부 장관님을 비롯해서 김태 안보실 1차장,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한국총 부총재, 박문진 이사, 대통령실 비서관 등, 어림잡아 대충 본 것만 해도 11명 이상이 윤성일 정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서 이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윤성일 정부 곳곳에 포진하면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상당히 지는 것으로 그 보입니다. 어, 그러면서 어, 지금 이제 자연스럽게 윤성열 대통령의 여러 가지 메시지라 그런 것에도 지금 이제 그 뉴라이트 사관이 이제 담기는 그런 이제 상황으로까지 좀 연결이 되고 있는 이제 그런 그 국면인데, 경축사에서 건국 운동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1948년에 건국했다는 건국절 주장과 괴를 같이 한다는 지적입니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은. 삼일운동과 이후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아닌 해방 후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48년 건국 설은 헌법 정신과는 거리가 멉니다. 2005년 뉴라이트 출연하고 이명박 정부 때 뉴라이트들이 집권을 했잖아요. 한 축으로 뉴라이트가 소멸됐다 이런 평가를 받을 정도로 한번 쫙 몰락한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지금 윤석열 정부 딱 대고 이 라이트 비맨 쫙 기한 거거든요.

4년 전 한 유튜브 채널에서 했던 발언이 알려지며 논란을 빚었던 인사가 있습니다. 대한제국에 속했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까? 국민들이 그의 말은 무슨 말이냐 그러면 이제 우리를 점령한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동안 미워하고 다 했고 사과받고 돈 받았잖아요. 이제 잊어버리고 대한제국에 속했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느냐라고 후보자가 발언을 했답니다. 근데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들이 뉴라이트 저 관련된 그런 관점이나 사과하고 비슷하다 그러는데, 혹시 뉴라이트 그 뉴라이트 하고는 제가 전혀 저도 이번에 그 용어 자체도 이번에 알았을 정도로 잘 모르고요. 이거는 그의 역사관은 뉴라이트와 유사해 보입니다..
다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광복군과 독립군에서 이념적으로 좀 다른 부분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적어도 군대 육군 학교에서 그거를 선하는 건 아니다. 우리 독립운동을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독립운동이었다. 10월 7일 그는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했습니다. 우리 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지금 역사 순정을 버리려고 하는 거. 같아요. 어, 이걸 세삼스럽게 문제로 삼아서 다시 공산주의 빨갱기로 해서 다시 한국 사회를 이념적으로 분열시키려고 하는 움직임과 뉴라이트의 오랜 욕구가 결합해 가지고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고 이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두 달 전 국민의 힘 연찬회에서 이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던 윤성열 대통령, 강서구청장 선거 후 소모적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대통령 말처럼 소모적 이념 논쟁이 멈추려면 독립운동가들의 흉상 이전 계획부터 멈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 또한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이 논란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국민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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