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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기술

by 리치캣 2010.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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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이삼출 옮김

몰입의 기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이삼출 옮김

도서출판 더불어책/2003년 6월/368쪽/12,000원

▣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시카고 대학 심리학과 전임 학과장이자 교수였으며, 현재는 클레어먼트 대학원의〈삶의 질 연구센터〉소장이자 경영학과의 데이비슨 석좌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몰입: 최상 경험의 심리학』(1990),『창조성: 몰입, 발견과 발명의 심리학』(1996),『몰입의 즐거움』(1997) 등이 있다.

▣ 역자 이삼출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현재 뉴욕주립대학(버팔로 소재) 영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서는 리요타르의『포스트모던의 조건』(공역),『현대문학이론』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이 출간되면서 처음으로 다루었던 중심 개념인 몰입flow에 관해 사람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전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더욱 정밀하게 연구하여 발전시키고 있다. ‘몰입’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소개된 후 학교를 발전시키고, 자동차와 박물관을 디자인하고, 프로 축구팀을 코치하고, 조직을 다시 정비하는 등 다양하고도 구체적으로 실제에 적용되었다. 또한 이론에 대한 실천으로서의 “재미의 정치학”은 유럽 등지의 정치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서 최초로 소개되었던 아이디어는 다른 저서들을 통해 확장되어 곧 특수한 문제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친 몰입에 관한 책과 그 밖의 저서 또는 논문들은 모두 이 책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밝힌다. 우리는 일 중심 사회에서 생기기 마련인 권태와 불안과 소외에 저항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내게 된다. 하지만 돈과 명예와 쾌락 추구가 지배적인 문화에서도, 물질적인 보상을 포기하고 누리기 힘든 재미 그 자체를 경험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암벽등반가, 무용가, 체스 우승자들로, 그 외에도 놀이의 능력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에 속한다. 이들이야말로 ‘몰입의 상태’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강력한 동기화의 힘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적용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몰입의 기술』은 몰입의 기원에 대한 매력적인 책이며, 몰입 경험을 이용하여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멋진 책이다.

▣ 차례

<이 책의 기원>

1. 재미와 내적 동기화

2. 자기목적적인 활동의 보상

3. 자기목적적인 활동의 구조

4. 재미의 이론적 모델

5. 게임 즐기기―체스

6. 힘든 놀이와 암벽등반에서의 몰입 경험

7. 록 댄스에서의 몰입 경험 측정

8. 일을 즐기기―수술

9. 일상생활에서의 몰입 패턴들

10. 몰입 박탈의 효과

11. 재미의 정치학

몰입의 기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이삼출 옮김

도서출판 더불어책/2003년 6월/368쪽/12,000원

재미와 내적 동기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나 사무실, 공장 같은 직장은 지겹고 불쾌할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미enjoyment'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이런 나쁜 상황을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일 자체를 즐길 수 있는 행동에 관해 좀더 많이 알게 되면,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될 수도 있는 동기화 형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행동경영은 사람들이 오로지 외적인 보상이나 외적 처벌의 두려움에 의해서 동기화된다는 암묵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채찍과 당근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게 하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인센티브를 돈과 지위로 객관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사회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동기화 체계를 발전시켜왔다. 외적 보상의 표준화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 일반화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반응하는 경제적 인간형인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와, 사회적 통제의 그물망에 구속되는 사회적 동물homo sociologicus을 창조했다.

사실 물질적 혜택을 추구하는 것이 지배적인 동기가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틀에 박힌 물질적 보상이 아닌 것을 추구하는 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그들로부터 ’내적 동기화‘의 역학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적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역할에 순응할수록 스스로는 점점 더 즐기지 못하게 되며 점점 더 많은 외적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그런 역할을 보다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상에 대한 필요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사회체계가 오로지 외적인 보상에만 의존하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게 되고, 결국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게 될 때까지 물질적인 자원을 고갈시키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보다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갖춘 사회가 외관상으로는 물질적 목표의 독점을 감소시켰다. 이처럼 다른 보상체계가 작동할 때, 생태계에 압력이 덜해진다. 동기화에 있어서 내적 자원의 중요성은 실제 생활에서 충분히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외적인 사건에 반응하는 것으로만 행동하고 배운다고 믿는 것이 통념이다.

우리가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이 연구의 가장 단순한 목적은 과거의 욕구에 대한 보상도, 미래의 욕구에 대한 준비도 아닌 보상경험을 제공하는 현재의 과정으로서 재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연구의 접근 방법은 각기 다른 ’자기목적적인autotelic 활동(혹은 몰입)‘을 하는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접촉하여 왜 그들이 그런 활동을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행동은 자기목적적인 활동(그리스어로 auto=자아이며 telos=목표, 목적이라는 의미다)으로, 행위자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하지만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보상은 거의 없는 것이라고 가정했다. 초보자뿐만 아니라 전문가를 포함하여 30명의 암벽등반가, 체스의 초보자에서부터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에 이르기까지 30명의 남자 체스선수들, 미국에서 상위에 드는 여자 체스선수 23명, 현대음악작곡가 22명, 초보자에서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여성 현대무용가 28명, 보스턴 근방의 챔피언십을 따낸 두 곳의 고등학교 야구선수 40명을 포함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응답자들은 설문지를 작성했고, 면담자들은 인터뷰의 개방질문에 답변했다. 이들의 대답은 자기목적적인 활동으로부터 사람들이 이끌어내는 보상의 종류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활동을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드는 특징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연구는 정확하게 재미의 구성요소를 기술하고 있지만, 교실, 직장, 짜임새 없는 일상생활과 같이 지루한 상황에 대한 내적 보상을 부여하기 위한 세부적인 지침을 제공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본 연구에 윤곽을 제시했던 몰입 모델이 암시하는 바는 이끌어낼 수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때 그들 모두 완벽함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자기목적적인 활동의 보상

분명히 사람들은 활동으로부터 만족을 느끼며, 만족 자체가 보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을 추구하도록 동기화 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외적으로 보상받지 않는 다양한 활동으로부터 사람들이 얻는 내적 보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구의 첫 번째 단계는 응답자들이 즐기는 특정한 활동을 즐기는 이유를 8등급으로 나누어 묻는 것이었다. 8가지 항목은 전적으로 내적인 것(재미와 기술의 이용; 활동 그 자체; 패턴, 행동, 그것이 제공하는 세계)에서부터 외적인 이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경쟁, 타인과 비교하여 자아를 측정하기, 위신, 보상, 영광 등).

8가지 전제는 통상적인 보상이 없는 활동에 참여하기 위한 철저하고 중복되지 않는 인센티브를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이 연구의 목적은 ‘내적 동기화의 원천은 무엇인가’라는 난제를 풀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외부적인 항목으로 간주했던 “위신, 보상, 매혹” 항목은 나머지 다른 7개 항목과 비교해볼 때 그 중요성이 가장 낮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경쟁”은 예상했던 7위가 아닌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활동에 있어서는 경쟁은 분명히 중요한 보상을 제공하지만, 다른 활동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특질로 인식되기도 한다. 두 가지 “내적”인 이유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은 “개인적인 기술의 향상”이라는 항목이었다. 이런 특질의 중요성은 그 결과물을 통해 거듭 강조하게 될 것이다. 보상의 원천 중에서 네 번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활동을 통해 경험하는 “우정”과 “동료의식”이었다. 다시 말해, 활동 사이에 큰 차이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공통적인 상황의 부수물이다.

어떤 활동으로부터 자기목적적인 보상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내적 동기화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능력과 관련된 특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전체 집단에 있어서 유효한 시험적인 결과는 나이 든 사람들, 여성들과 높은 수준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교육받은 사람들이 내적 보상을 중요한 것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 자기목적적인 이유는 나이가 들어가고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보다 강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시된 데이터는 내적 동기화를 이해하려면 명심해야만 할 여러 가지 핵심적인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자기목적적인 활동, 자기목적적인 개성, 자기목적적인 경험 이 세 가지 요소들은 서로 겹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분석의 차원에서는 분리되어야 한다. 자기목적적인 활동은 참여자에게 직접적이고 내적인 보상을 극대화하는 행동의 패턴이다. 자기목적적인 활동에 덧붙여 자기목적적인 사람들에 대해 말해 보자. 자기목적적인 사람은 활동을 통해 외적 보상을 얻어낼 수 있는지 없는지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하는 일로부터 내적인 재미를 이끌어내는 정도는 활동의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활동의 자기목적적인 구조와 자기목적적인 개성의 다양한 변수들이 직접적으로 호응한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 등이 활동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덧붙여 무수히 많은 다른 요소들이 개입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목적적인 인격을 창조할 수 있는 사회는 오로지 외부적인 동기에만 매달리는 사회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효율적인 곳이 될 것이다. 어떤 활동은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내적인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한 자기목적적인 것이 된다. 그 사람 자신이 그 활동을 즐기게 될 때라야만 그 사람은 자기목적적인 인격이라고 불릴 수 있다. 활동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경험적 데이터는 자기목적적인 경험이 된다. 자기목적적인 경험은 심리적인 위상이며 구체적인 피드백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피드백은 그 나름대로 보상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다른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지속적인 행동을 산출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의 실재는 자기목적적인 활동과 사람을 인지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자기목적적인 활동은 대체로 자기목적적인 경험과 그런 경험을 해왔던 자기목적적인 사람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적 보상이라는 첫 번째 단계는 현상의 차원에 윤곽을 제시해주기 시작했다.

자기목적적인 활동의 구조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체스, 테니스, 노래 외에도 수백 가지 활동으로부터 즐거움을 발견했다. 모든 활동들은 “재미”라는 공통된 경험을 산출하는가? 아니면 모든 활동은 나름의 고유한 경험의 원천이며 다른 것과는 무관한 것인가? 가장 근본적인 것은, 어떻게 다양한 활동들이 즐거움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접근 방법들 중 어느 것도, 어떤 것은 즐거운데 다른 것은 왜 그렇지 못한가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자기목적적인 활동의 세분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프랑스 인류학자인 로제 카요아이다. 역사적이고 민족학적인 자료들의 심화된 독서를 기초로, 카요아는 내적인 보상을 주는 활동은 가장 중심적인 네 가지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Callois, 1958).

그 하나는 경쟁심으로, 사람들이 서로 맞붙어 싸우도록 만드는 모든 게임, 스포츠, 다양한 종교적, 정치적 제례의식의 인기는 이런 경쟁심에서 비롯된다. 두 번째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인데, 우연한 게임, 점성술, 확률을 맞추려는 여러 가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 차원은 환상, 핑계, 위장을 통해 한계를 초월하려는 욕망으로, 이런 노력을 카요아는 “모방”이라고 부른다. 모방은 소녀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이나 소년이 카우보이 흉내를 내는 것에서부터 춤, 극장, 예술 전반으로 구현된다. 마지막으로 “현기증”이라는 범주에서 위험 또는 의식의 상실과 관련된 활동으로 분류한다. 그런 종류의 활동(스키, 등산, 중독될 만한 다양한 형식)은 자신의 의식상태를 바꾸어 한계를 초월하도록 해준다.

자기목적적인 활동의 구조를 기술하려고 하는 시도는 카요아의 범주에 의해 상당히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스무 개의 항목을 개발했다. 각각의 항목은 공통된 활동으로 구성된다. 그런 다음 응답자들에게 자신들이 활동을 한차례 하는 동안 느끼는 감정이 우리가 열거한 스무 개의 경험과 비교해서 유사한지, 중립적인지, 다른지, 아니면 정말 다른지를 체크하게 했다.

첫 번째 단계는 응답자들이 스무 가지 항목을 의미가 있는 유형으로 식별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요소 분석을 하는 것이었다. 다섯 가지 요소들은 카요아의 유형에 도움을 받은 것이지만 그로부터 상당히 많이 변형된 것이다. 이 요소들은 “좋은 친구와 더불어 있기,” “영화 감상,” “독서”와 같은 항목을 중심으로 몰려 있었다. 우리는 이 첫 번째 요소를 우정과 휴식이라고 불렀다. 두 번째 요소들은 카요아가 현기증과 가능성의 항목 아래 분류했을 법한 것들을 혼합했다. “약물복용”은 “슬롯머신”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며,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방사능에 노출되기”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불타는 집에 뛰어들기”와 같은 것이다. 이 요소를 모험과 기회라고 이름 붙였다. 그 다음은 의도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라고 이름 붙인 네 가지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수학 문제 풀기”, “장비 조립하기”, “낯선 곳을 탐험하기”, “포커놀이 하기”와 같은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경주하기”, “경쟁적인 스포츠” 이 두 가지 항목은 다음 요소인 경쟁과 관련이 있다. 마지막 묶음은 오직 한 가지 항목만이 들어 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고안하기”인데, 이것은 고유한 경험이며 창조적인 차원을 나타낸다. 자기목적적인 활동들에 기반한 유사성으로 인해 이들 활동은 참여자들에게 일종의 발견과 탐험과 문제 해결의 감각을 제공하고 있다. 자기목적적인 활동의 특수한 구조가 무엇과 흡사한지는 모르지만, 가장 기본적인 요구가 명백히 도전의 형태를 제공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은 작곡, 춤, 등산, 체스와 같은 활동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장 구체적인 경쟁에 대한 도전으로, 야구와 같은 활동에서 중요한 요소다.

언급할 만한 결과는 첫 번째 요소에서 높게 책정된 대인관계 항목의 상대적인 중요성이다. 이런 결과는 자기목적적인 활동, 경험, 사람을 수렴시키는 지점을 보여준다. 보다 창조적이면서도 덜 경쟁적인 활동에 개입하고있는 사람은 내적 보상을 많이 누리고 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창조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경쟁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 비해 내적 보상에 의해 동기화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목적적인 활동을 창조적 발견과 탐구에 개입하는 것으로 기술한다. 발견과 탐구는 초월을 암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세계를 넘어서 나아가 자아를 새로운 기술과 능력의 차원을 향해 팽창시키는 것이다. 초월이 가능한 방식은 육체적인 기술을 포함한다. 자기목적적인 경험은 현실의 지배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해주는 활동에 기초하고 있다.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사실상 카요아의 유형론은 적어도 발견, 문제 풀기, 인간적인 경험 이 세 가지 차원을 놓치고 있다. 이것들은 자기목적적인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내적 보상경험에 대한 윤곽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재미의 이론적 모델

우리는 온 힘을 다 쏟은 행동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총체적인 감정 상태인 몰입(몰입이라는 용어는 인류학자들이 원주민적 범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단어는 정보제공자들이 경험을 기술하는데 사용되었다)이라는 특이한 역동적인 상태에 대해 언급하게 될 것이다. 몰입은 “자기목적적인 경험”이라고 부르는 상태,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몰입은 특정한 종류의 활동에서 특히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연구했던 등산, 체스, 야구 등의 활동은 몰입에 대응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몰입 경험이다. 거꾸로 몰입 경험은 게임보다 다른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런 활동 중 하나가 일반적으로 예술과 과학을 포함한 창조이다. 경기와 창조성 이외에도 몰입과 유사한 경험은 대체로 “초월적”이거나 “종교적”인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일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은 걱정과 권태라는 매개변수 바깥에서의 행위 경험이며, 그것이 몰입의 경험이다.

몰입 경험의 기본요소 : 몰입의 가장 선명한 신호는 행동과 인식의 통합에서 찾을 수 있다. 몰입 상태에서 사람들은 이분법적인 관점을 갖지 않는다.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은 의식하지만 의식한다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의식과 행동이 통합되려면, 활동이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몰입은 과제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발생하는 것 같다. 행동과 의식의 통합은 몰입 경험의 두 번째 특징으로, 한정된 자극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잠재적으로 개입하는 자극에는 주목하지 말아야 한다. 몰입 경험의 세 번째 특징은 “자아의 몰입”, “자아 망실”, “자의식의 상실” 심지어 “개별성의 초월”, "세계와의 융합“과 같은 개념으로 기술된다. 어떤 행위가 완전하게 몰입을 요구하면 ”자기중심적인“ 고려는 상관이 없게 된다. 자아(Mead, 1934)나 에고(freud, 1927)는 전통적으로 유기체의 요구와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사회적 요구 사이를 매개하는 정신적인 매커니즘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몰아의 경지는 몰입 상태에서 육체적 실현과의 접촉을 상실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몰입 상태에서 잊어버리는 것은 자신의 몸이나 몸의 기능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자아 구성, 즉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중재하는 매개요소일 뿐이다.

또 다른 특징은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환경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몰입하는 동안 그 사람의 기술은 환경적인 요구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성찰은 긍정적인 자아 개념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몰입 경험의 또 다른 특질은 행동하는 데 있어서 일관되고 모순이 없는 요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행동에 모호함이 없이 분명한 피드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기대되지 않으며, 다양하고 가능한 행동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몰입 경험의 마지막 특징은 ”자기목적적“인 성격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행위 그 자체 말고는 어떤 외부적인 보상이나 목표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몰입 경험의 다양한 요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다. 자극을 한정함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몰입하고 다른 자극을 무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잠재적인 자기 조절 능력을 느끼고 환경을 제어하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 몰입 활동은 분명하고 모순이 없는 규칙을 갖고 있으므로, 그런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문제점이나 정체성을 망각하는 몰아의 경지가 된다. 이 모든 조건들의 결과로 인해 사람들은 내적 보상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힘든 놀이와 암벽등반에서의 몰입 경험

암벽등반은 육체적으로 위험할뿐더러 외부로부터 오는 눈에 띠는 보답이 없기 때문에, 특정한 형태의 몰입 활동에 속하는 최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위험은 18세기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몰입 놀이”라고 부른 암벽등반에 정확하게 배치한다. 분명히 경제적 효용성과 기존의 문화적 가치의 차원에서 본다면, 힘든 놀이는 비상식적이며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암벽등반이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합리적 보답이 없는 활동에 매료되는가? 이 질문이 우리가 몰입 모델에 의해 답하려는 것이다.

메타 사회적인 논평, 반(反)구조와 친(親)구조 : 유희의 형식들이 기존의 경제적, 생물학적 혹은 심리적 욕구의 측면에서는 아무런 효용이 없으나, 삶의 새로운 형식들을 실험해보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효용적이라는 점을 네덜란드의 역사가인 호이징가(Huizinga, 1939)가 처음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일부 등반가들은 삶의 다른 영역들에 있는 상황들을 언급할 때 등반을 명료성과 결단성의 패러다임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암벽등반이 수많은 개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몰입 경험이 광범위한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삶에 끼친 영향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몰입을 경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활동 영역에서 자주 간과되어 온 현상들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집합의 분석 도구들을 지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몰입 활동처럼 암벽등반에는 본질적으로 유쾌한 경험들을 만들어주는 구조적 요소들이 있다. 등반에서 위험은 행위자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집중하게 한다. 등반가에는 강화된 육체적 성취감,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 같이 등반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 분명한 목적 등이 존재 상태에 포함된다. 공리주의적인 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등반을 값진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암벽등반으로부터 오는 내적 보상으로 인해 초래되는 실용적인 결과들은 시사적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사회 변화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사는 반구조적인 것과 친구조적인 것 모두에 해당한다. 우리는 일상적인 활동의 무의미성과 그로 인한 소외를 우려하며, 경험의 불모성을 보상해줄 상징적인 대안 요소들이 작용하여 외부적인 보상을 얻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걱정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몰입 활동에 눈길을 돌려, 그것으로부터 일상생활을 좀더 유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배우려는 것이다. 이 분석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과업을 좀더 즐거운 것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타고난 능력에서부터 배워서 습득한 능력에 이르기까지 등급별로 다양하며 활용 가능한 활동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즐기기 - 수술

진짜 문제는 몰입 모델이 레저 영역이나 예술적 표현의 영역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활동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일이 몰입 활동의 구조적인 요소들을 일부 가질 수 있으며, 내적 보답을 안겨주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유희 세계와 노동의 세계 사이의 연속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수술이라는 전문 분야를 선택했다. 수술은 직업상 몰입 활동을 보여주는 이상적인 사례다. 수술은 분명히 매우 특별한 활동이다. 수술 시간들과 끊임없는 긴급상황 그리고 실패한 수술에 수반되는 위기들을 견뎌내는 일은 어떤 유형의 인간성을 요구한다. 수술로부터 내적인 보상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손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또한 즉각적인 결과나 전부를 책임져야 할 상황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엄청난 자신감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요점은, 이러한 특정한 활동에서 발견되는 구조가 내적인 보상을 안겨주는 다른 패턴의 자극에서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게임, 예술적․과학적 창조성, 종교적 제의와 황홀경 역시 조직된 행동기회, 제한된 자극 영역, 분명한 목적과 피드백, 활동을 조절할 기회, 그리고 자아 초월의 느낌을 제공한다. 유희와 노동의 가장 끈질긴 구분들 중 하나는 유희가 실생활에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즉, 놀이에서의 실수는 아무런 처벌이 없다. 만약 이러한 구분이 참된 것이라면, 몰입 모델은 수술에 적용될 수 없다. 수술이 삶과 죽음을 오가는 결과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희가 아무것도 잘못될 게 없는 고립된 영역이라는 점도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암벽등반가들이 항구적인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는 점을 알고 있다. 수술을 포함한 이런 경우, 위험은 활동에 집중케 하고 행위자의 숙련된 기술에 피드백을 제공해주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위험이 즐거움에 방해물이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몰입 경험을 생산해내는 도전인 것이다. 외과의사가 영구적으로 몰입 경험이 없다면, 수술이라는 몰입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실수를 한두 번 한 사람은 수술을 불안해할 수 있다. 혹은 극단적인 경우에, 수술은 다양한 이유로 따분한 일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수술은 더 이상 몰입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참여자가 몰입한 동안에라도, 작은 도전들에 의존적일 수 있으며, 그 밖에 다른 것은 유쾌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약간의 환경 변화도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양한 환경에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여러 영역에서 기술을 길러야 한다.

일상생활에서의 몰입 패턴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경험에 패턴을 부여하고, 정신을 집중시키고, 피드백을 얻기 위해서 다양한 장치들을 사용한다. 필연적인 기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하면서도 자동적인 행동 패턴에는 특이한 동작들, 공상, 흡연, 사람들에게 목적 없이 말을 거는 것, 음악 감상, 텔레비전 시청 혹은 독서처럼 좀더 분명하게 정의된 활동들이 포함된다. 이런 일상적 활동들에는 지금까지 논의한 몰입 활동처럼 몰두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시적인 몰입 활동들도 깊은 몰입 활동처럼 상황에 따라 내적인 보상이 될 수 있다. 미시적인 몰입이라는 개념은 존 듀이(1934)가 완성된 경험이라 부른 것과 유사하다. 듀이가 보기에, 비공식적인 대화처럼 가장 일상적인 경험에서부터 예술적 창조성이나 과학적 발견 같은 흔치 않은 경험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연속성이 있다. 이런 경험에 공통적인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조, 패턴, 목적, 난관, 피드백,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미시적인 몰입 패턴들은 깊은 몰입 활동들의 구조화된 난이도 낮은 대립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불필요하고 단순한 행동을 하지 않고 오로지 사회적인 역할이 요구하는 것만 한다면 어떻게 되며, 물리적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공해 준 몰입 박탈 실험을 다루고자 한다.

미시적인 몰입 활동들의 패턴 : 응답자들이 기록한 활동들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 영역은 소위 “사교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농담 및 잡담, 파티나 저녁 식사 같은 사교적인 행사, 쇼핑 및 전시관에 가는 것, (아마도 실제보다 낮게 보고된 것이겠지만)성행위-포옹, 키스, 섹스 등이 포함된다.

“역동적”이라 이름 붙여진 두 번째로 큰 활동 영역은 일차적으로 몸 움직임과 관련된 모든 활동들을 포함한다. 즉, 만지기, 문지르기, 손장난과 사소한 근육 움직임, 걷기, 산책, 뛰기 및 응답자가 혼자 하는 게임이나 스포츠 등이 포함된다.

그 다음으로 큰 집단에는 백일몽,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없을 경우 큰 소리로 말하기, 콧노래, 노래, 휘파람, 머릿속으로 음악 연주하기와 같은 행동들이 포함된다. 이런 활동들은 성격상 내적 심리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영역을 “상상하기”라고 했다.

네 번째 영역은 “주목하기”로서, 책읽기에서부터 거리에 거니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 라디오 청취에서 텔레비전 시청에 이르는 수동적인 형태의 모든 시청 행위를 묶었다.

나머지 두 영역은 “구강적” 및 “창조적” 영역이다.

이 6개의 활동 영역과 각각의 활동들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하루 동안 자기도 모르게 하는 활동들을 포괄한다. 나타난 결과를 보면, 사람들마다 일상생활을 다르게 패턴화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발견해낸 최초의 것은 가장 큰 두 개의 영역인 사교적, 역동적 영역이 내적으로는 동질적이지만 상호 배타적이라는 점이다. 달리 말해서, 자주 산책하는 사람은 역동적인 범주에 속한 다른 행동은 하지만 사교적 상호작용은 거의 하지 않는다. 경험을 패턴화하는 이러한 두 개의 주요 형식들은 사람들 사이의 기본적인 차이에 상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활동 영역들은 확연하게 분리가 가능하지 않다. 어떤 경우든지 활동 영역들이 다소 모호하기 때문에, 18개의 분리된 변수들 사이의 상관적인 패턴은 더욱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같은 영역에 속한 활동들 사이의 상관관계들을 추적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경향들은 많다. 그러나 당분간 우리는 가장 큰 두 개의 영역, 즉 역동적, 사교적 영역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두 영역 중 하나와 긍정적으로 관련되는 경우에는, 나머지 다른 영역과는 부정적으로 관련된다.

자기인지 : 테스트 중에 응답자들에게 ‘적대적인-다정한, 창조적인-지겨운, 슬픈-행복한’과 같이 20개의 짝지어진 형용사가 있는 체크 목록에 자신들의 “현재 기분”을 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18개의 활동과 20개의 기분의 상관관계 발견 결과들은 앞의 것들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교적, 미시적인 몰입을 사용한 사람들은 덜 소외된 것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을 기술할 때는 좀더 부정적인 특성들을 일관되게 선택했다.

다른 한편, 역동적인 활동에 의존하는 이들이 더 많이 소외되었지만, 자신들의 기분을 설명하는 데는 한결같이 긍정적인 항목들을 선택했다. 소외가 자기인지와 비례적 관계를 갖는다면 이러한 결과를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그 반대 상황이다. 사교적 몰입은 다른 사람들을 요구하는 반면에, 역동적인 몰입은 스스로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경험될 수 있다. 아마도 이 점이 역동적 몰입의 빈도 수가 ‘행복한, 만족하는, 자유로운, 조절 가능한’ 등과 같은 특징들과 관련이 되고, 반면에 사교적 몰입의 빈도수가 정확하게 그 반대 특성들, 즉 ‘슬픈, 원망하는, 구속받는, 조절 불가능한’ 등과 관련되는 이유일 것이다. 사교적 상호작용과 반대되는 것인, 몸을 움직이는 것을 즐기는 것은 소외의 경향을 띠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이게 만들어준다. 반면 사교적 접촉을 즐기는 것은 소외와는 대립적이지만, 긍정적이지 않은 자기인지를 초래하는 의존성에 기초해 있다. 창조적 활동들의 빈도 수는 자기 인지와 강한 비례관계를 띤다. 이런 유형의 몰입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분을 ‘흥분된’, ‘신뢰하는’, ‘잘 믿는’, ‘빠른’, ‘창조적인’, ‘만족하는’으로 기술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조절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마도 사교적 몰입을 사용하는 사람들처럼 이들도 내적 보상을 경험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구조화된 활동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몰입 프로필”은 사람들의 특징을 알아내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경향이 있는가를 안다는 것은, 예컨대 그 사람의 병리학적 징후 혹은 전형적인 방어 전략을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정보일 수 있다.

결론 : 사회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환경에 선별적으로 주목하며 구조화된 행동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본능적 혹은 사회적 압력들이 우리로 하여금 전체 환경에 주목하거나 그에 반응하도록 강요하지 않는 때가 하루 중 한번쯤은 있는 법이다. 이런 시간 동안 우리는 “자유롭다”. 바로 이때 몰입이 작동한다. 몰입 활동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려고 사용하는 임의적인 패턴들이다. 몰입은 잠재적으로는 경험에 있어서 가장 창조적이고 만족스런 종류이다. 몰입이 계통 발생적이며 사회적인 제약에서 자유롭고, 그리하여 새로운 행동과 도전을 실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역동적, 미시적인 몰입을 보고한 사람들이 좀더 긍정적인 자기인지를 지니고 있으며, 사회적 몰입에 의존하는 사람들보다 지적으로 더 유연하다. 일상적 경험에 구조를 부여할 수 있는 두 가지 기본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환경에 작용하면서 반응을 보이는 도구로서 자신의 몸 혹은 그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패턴화된 상호작용이며, 이것은 다시 행동에 제약을 가하고 피드백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몸에 의존하는 것은 소외, 독립, 유연성을 초래한다. 타인들에 대한 의존은 소속, 의존, 상대적 엄격성을 초래한다. 나머지 미시적인 몰입 패턴들은 심리 경제에서 양적으로 많이 차지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 패턴에는 다양한 형태의 환상, 상상 대화, 수동적인 형태의 오락, 수많은 구강 활동들, 생산적, “창조적” 활동들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믿음에 기초해서 미시적인 몰입의 중요성을 부여했다.

몰입 박탈의 효과

놀이는 정신적, 육체적 자극을 주고, 유능하다는 감정을 유발하며, 노동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심리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새로운 역할을 배우게 한다. 그러나 놀이의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놀지 않는 것만 제외하고는 완전히 평범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에 동물은 연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하면 재미있는 행동을 그만두는 것 말고는 모든 면에서 정상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놀이 박탈의 효과를 관찰할 수는 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것들, 진지한 도구적 행위들과 함께 뒤섞여 있어서 외관상 쓸데없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들은 실제로는 유용한 것들이며, 정상적인 기능들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불완전하게 감독된 짧은 기간의 박탈조차도 육체적 느낌, 인지 기능, 자아인지에서 부정적인 변화들을 유발하며, 일반적인 행동 균열을 야기한다.

“지나친 포섭” 혹은 정신분열과 관련된 무질서한 주목 현상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게 보이는 변화가 응답자들의 행동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쓸데없는 행동을 그만하게 되면, 피곤하고 졸리며, 건강하지 못하고, 느긋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들은 자신을 보다 부정적인 용어들로 판단하며, 특히 창조적이지 않고 분별력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정상적인 일상적 활동들은 점점 허드렛일처럼 되어버리고 신경질, 집중력 상실, 우울증, 기계적인 느낌이 수반된다. 이것은 입원할 만큼 심각한 사고 분열과 몰입 박탈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의심케 한다. 분명히 어떤 이유로든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주목하는 과정은 방해받고 받아들이는 자극에 대한 통제도 무너지게 되며 심각한 결과들이 초래될 수 있다. 몰입 모델의 측면에서 보자면,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주변 환경에 있는 행동 기회와 연결되는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분주하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구조화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패턴들을 만들어낸다.

이 패턴들 중 일부는 정교하고 복잡한 것들로 깊은 몰입을 제공한다. 발견 결과들은 또한 일반적 효과를 강화하는 것들도 있고 예외 사항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들은, 생산적이고 도구적인 활동에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직장이나 사회적 역할에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쓸데없는 미시적인 몰입 활동들에 덜 의존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소외된 사람들, 여성, 나이가 어린 응답자들이 박탈에 의해 더 많이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이와 동일한 결론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우리 문화가 낭비적인 것으로 정의한 활동들(수동적인 여흥이나 임시방편적인 사교)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구조화하도록 배우게 되면, 박탈의 영향을 덜 받게 된다. 이는 죄의식을 낳는 습관을 잠시 하지 않음으로써 편안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편안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은 의심스럽다. 이 지점에서, 발견 결과들이 지닌 강점과 상대적인 명확성이 특히 수많은 정신병리 현상들에서 나타나는 지나친 포섭과 관련된다면 이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시사한다. 이 결과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일상적 행동을 예전과 똑같이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쓸데없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던 행동들이 정신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재미의 정치학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한 것을 고찰해보면 인간의 행동이 이해되는 방식에서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음을 시사한다. 첫 번째 재평가는 일과 놀이 사이에 깊게 놓인 이분법과 관련된다. 본질적인 차이가 문화적으로 정의된 활동으로서의 “놀이”와 “일”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몰입” 경험(전형적으로 놀이 활동에서 일어나지만 또한 일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과 불안이나 권태 경험(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행동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거나 너무 많이 제공하는 활동들에서 발생하기 쉬운) 사이에 존재한다. 놀이와 일의 구분을 제거하는 것의 중요성은 복잡한 역사적 문제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적용할 때 분명해진다. 서구 역사에도 노동이 다양한 형태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사회적, 정치적 착취 하에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고된 일을 의미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원래는 수많은 “놀이꾼들의”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이었던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이 베버(weber, 1930)의 말에 의하면 극소수의 특권적 행위자들만이 즐거울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강철 울타리”가 되어버렸다. 노동과 놀이의 경계들이 인위적이라는 점을 일단 깨달으면, 문제가 되는 중요한 일들을 장악하고서 삶을 좀더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어려운 과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마르쿠제(Marcuse, 1967)가 의미하려 했던 것이다.

“자유로운 사회와 부자유한 사회의 질적인 차이를 증명하는 새로운 가능성 중 하나는 노동 속에, 또는 단순히 노동을 넘어서가 아니라 자유의 영역을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 속에 있다.”

이 연구의 두 번째 이론적 공헌은 재미난 행동의 기능과 관련된다. 이 점에 대해서 주관적이고 특징적이며 즉각적인 활동의 경험 보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본 연구는 놀이의 기능이 우리가 “몰입”이라 부르는 경험의 특정 상태를 제공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몰입은 자기목적적이거나 내적인 보상을 주는 경험 상태라고 말 할 수 있다. 몰입 상태의 가장 현저한 요소는 아마도 환경에 대한 통제일 것이다. 우리가 관찰한 것으로 보건대, 사람들은 어느 정도 환경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때에만 조화로운 참여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다. 마르크스가 오래전에 지적한 바 있듯이, 소외란 사람이 노동에 투여되는 자기 삶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정치 제도로부터 혹은 삶 그 자체로부터, 이러한 경험 영역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만큼 소외되는 것 같다. 몰입 활동들은 현실의 제한된 영역을 지배하는 수단을 제거함으로써 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소외를 제거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고립된 활동들 속에서만 통제력과 참여를 경험하는 한 “일”과 “놀이”의 분열은 실질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재미는 생산, 합리화, 행동 통제 방정식에서 누락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재미가 오랫동안 모호한 개념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삶의 기계화가 증가되는 추세가 역전될 수 있다면, 그럼으로써 사회적 소외와 개인적 무의미성이 축소될 수 있다면, 그 첫 단계는 긍정적인 즐거움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재미가 다른 변수들과 어떤 관련을 지니며, 그것이 사회 계급들에 어떻게 분배되고, 환경상의 선별적인 변화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아는 것이 가능해진다. 재미는 쾌락과 동의어가 아니다. 능력을 방해받거나 행동 기회가 축소될 때 사람들은 쾌락을 유일하게 접근 가능한 유의미한 경험으로 보게 된다.

“놀이”와 “노동”의 이분법이 확립되고, 다른 재미의 가능성을 억압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분열을 화해시키는 한 가지 방식은 노동이 놀이보다 반드시 더 중요할 필요는 없으며 놀이가 노동보다 반드시 더 즐거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을 경험하게 만든다면 둘 다 똑같이 생산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몰입을 경험할 수 없는 직장이라면, 능력의 성장을 둔화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용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몰아와 고도로 개발된 개인적인 기술의 맞물림은 좀더 나은 사회적인 진화를 가능하도록 해주는 조화와 초월을 창조한다. 자신감과 더불어 몰입을 배운 사람은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진정으로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외적인 보상보다는 실존의 곤경을 극복하는 것에서 훨씬 더 많은 자극을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고안하거나 발견할 수 있는” 지속적인 능력과, “낯선 장소를 탐험할 수 있는 능력”(깊은 몰입 상태에서 경험하는 보상)은 행동을 유발하는 충분한 동기가 될 것이다. 그와 같은 관점이 같이 이동할 때라야만 비로소 우리는 “세계를 고갈시키는” 짓을 삼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소모적인 생활보다는 행동하는 생활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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