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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일하기/intotheKOREA

경기도 안성시 탑(미륵) 목록

by 리치캣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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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탑(미륵) 목록

명칭 소재지 도로명주소 소재지 지번주소 교통편 주변 관광지 상세정보
국사암석조여래입상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텃골길 80-100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가솔리 8-1 안성종합버스터미널 (죽산방면 38-1번) 버스 → 기동 하차(도보 30분) 기솔리석불입상(쌍미륵), 이경순소리박물관, 안성허브마을, 풍산개마을 석불은 본존과 양협시보살을 배치한 삼존불로, 발목 이하는 땅에 매몰되어 있다. 지상에 노출된 본존의 높이는 320cm이고, 3단의 원형보개를 육계부분에 끼워 놓았다. 얼굴은 타원형으로 두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서 손가락을 안으로 모으고, 왼손은 배에 대고 손가락을 쫙 펴고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양팔에 도식적인 주름을 새기고 있다. 하반신에 U자형으로 주름이 있는 것으로 봐서 군의를 가슴부위에서 묶은 것으로 보는데, 허벅지 위에 커다란 연화문을 새겨놓았다. 우협시와 좌협시 역시 둥근 보개를 쓰고, 본존과 동일한 표현자세를 하고 있는데 크기가 약간 작고, 우협시는 석장을 들고, 좌협시는 약병을 들고 있다. 불상의 후면에는 아무런 조각을 가하지 않았다. 이 석조삼존 입상은 고려후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솔리석불입상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텃골길 105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가솔리 33-1 안성종합버스터미널에서 38-1번 버스 → 기동 하차(도보10분) 안성허브마을, 이경순소리박물관, 국사암석조여래입상(궁예미륵), 풍산개마을 쌍미륵사에 들어서면 절 입구에서부터 눈에 먼저 띄는 것은 머리에 갓을 쓴 미륵불 두 분이있다. 부처님 정수리에 솟은 상투모양의 혹에 넓고 둥근 자연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꾸민 관으로 씌워 놓은 것이다. 기솔리 석불입상은 쌍미륵불이라고도 불린다. 남자 미륵불이라 불리는 키 5.4m의 미륵과 여자 미륵불이라 불리는 5.0m높이의 미륵, 이렇게 두분이 함께 서 있기 때문이다. 기솔리 석불입상이 서 있는곳은 안성 보개면과 삼죽면에 걸쳐 있는 국사봉 산 중턱이다. 미륵불을 정면으로 보고 섰을 때, 왼쪽에 있는 남미륵불이 좀 더 크고 몸이 좋다. 커다랗고 갸름한 얼굴이 주는 편안함은 우리 가까이에서 쉽게 만나는 사람들 얼굴에서 느꼈던 낯익음일 것이다. 송편처럼 둥그런 눈썹이며 길쪽한 코, 두툼하게 복스럽게 생긴 입술이 그렇다. 목까지 늘어진 귓볼이 후덕함을 더해준다. 등에 거뭇거뭇하게 피어 있는 이끼들이 미륵이 세워진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얼굴 생김새에 비하면 미륵불의 손과 옷의 주름 등은 세밀하게 조각하지 않았다. 미륵불이 입고 있는 법의는 부드러운 주름을 여러번 지으면서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만들어져 있다. 미륵불 두 분 모두 손의 위치나 모양이 자연스럽게 보이지는 않는다. 미륵불을 만든 사람이 조각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왼편에 있는 미륵불은 목도 굵직하고, 어깨도 각이 진 모습이다. 이에 비해 오른편에 있는 미륵불은 옷 주름도 훨씬 둥글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목도 어깨 넓이에 비해 가는 편이다. 얼굴 생김새도 조금 더 또렷한 인상을 준다. 두 미륵불이 있는 자리에 서면, 기솔리의 전경이 그대로 한자락에 펼쳐진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미륵불 앞에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많은 소원을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대농리석불입상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대농리 91 대천공판장 버스정류장에서 50-9번 버스 → 대농리 하차 안성맞춤박물관, 안성맞춤가족공원, 안성팜랜드 안성시내에서 용인 방향으로 작은 고갯길을 넘으면 야트막한 산밑 동네 대농리로 들어선다. 대농리 마을회관을 끼고 오른쪽 농로로 진입하면 150m 지점에 작은 소나무 숲이 보인다. 그 옆에 오랜 세월 마을사람의 애환을 달래주는 미륵불 1기가 서 있다. 미륵불은 사시사철 풍화에도 잘 견뎌낸 듯 보존상태가 좋다. 사람의 손만 타지 않는다면 돌도 세월의 무게를 곱게 전할 수 있으련만. 대농리 석불입상은 한 마디로 둥그스런 외모에 후덕한 인상이 특징이다. 마치 달관한 노인처럼 푸근하고 넉넉하다. 벙거지형 모자에는 보개가 얹혀 있고, 귀가 어깨에 닿는다. 왼손으로 약병을 잡고 오른손을 아래서 받쳐 든 모습이 가지런하다. 아양동미륵과 태평미륵처럼 이곳 대농리 석불입상도 아랫부분이 완전히 땅속에 묻혀 있다. 그 옆에 문인석이 미륵불의 바지춤을 잡고 있는 것처럼 함께 놓여 있는 것이 익살스럽다
매산리석불입상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미륵당길 32-2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366 안성종합버스터미널 → 37, 370, 380번 버스 → 죽산터미널에서 3-5, 10-1, 26-1번 버스 → 미륵당 하차 칠장사, 서일농원, 죽주산성, 죽산성지, 흔들바위, 안성내츄럴리조트, 용설호수 일죽 IC에서 빠져나와 안성시내로 향하는 길의 오른쪽에 죽산면 매산리가 있다. 여기에 비봉산이 있고, 비봉산을 등지고 서 있는 미륵불이 있는데 이것이 태평미륵이다. 미륵은 미륵당이라고 불리는 누각에 모셔져 있다. 미륵의 키가 5.6m이므로, 그 미륵을 보호하는 누각의 높이도 만만치 않다. 미륵의 생김새는 그리 균형미 있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보석으로 장식한 관인 보관을 쓴 얼굴이 몸 전체의 1/3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갸름하고 길쭉한 얼굴에 이마까지 덮고 있는 꽃무늬가 부드럽게 보인다. 가로로 길쭉한 눈과 반달처럼 둥그런 눈썹이 시원스럽다. 둥근 귀가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긴데, 소원을 빌러 온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미륵의 마음이 담긴 듯하다. 얼굴의 생김새가 이성적인 것에 비해서, 몸집은 당당함마저 풍긴다. 살집 두툼한 손가락과 투박한 어깨선이 그러하다. 누각의 생김새 가운데 눈길이 가는것은 나무 기둥을 받치고 있는 돌인 주초석이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세개씩의 돌을 네모나게 깎아 세웠는데, 솜씨가 거칠고 투박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거칠거칠한 화강암 면을 만져보면 기둥을 다듬던 망치와 정소리가 돌에서 울려나오는 것 같다. 누각 지붕에는 참새가족이 둥지를 틀어 살며 미륵불의 은혜를 입고 있다. 수다스레 짹짹대는 참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미륵불이 언뜻 웃음 짓는것 같다. 미륵불이 있는 마당에는 5층석탑이 놓여 있다. 석탑의 외형이 많이 상해있긴 하지만, 미륵불과 그 모습이 서로 잘 어울린다. 나지막한 담 안에 마련되어 있는 미륵불과 석탑으로 주변 분위기가 고향처럼 편안하다
아양동석불입상 경기도 안성시 내혜홀 3길 7-1 경기도 안성시 아양동 366-2 안성종합버스터미널 → 1, 50, 70번 버스 → (구)안성터미널 하차 안성향교, 안성성당, 안성마춤유기공방, 안성시장, 중앙시장, 비봉산, 안성낙원역사공원 안성시 아양주공아파트 107동 바로 뒤에 미륵 두 기가 모셔져 있다. 본래 아양동은 아롱개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아양동으로 부른다. 왼쪽 불상은 상체만 보이고 오른쪽 불상은 전신에 가깝게 노출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하체는 땅속에 묻혀 있다. 왼쪽 불상은 상체의 키가 훌쩍 크고 꽃무늬가 선명한 보관을 썼으며, 어깨가 곧고 당당하다. 긴목에 윤곽이 뚜렷한데 마치 화장을 막 끝낸 도시 미인처럼 화려하다. 하얀 자갈로 눈동자를 삼은 것도 특이하다. 반면에 오른쪽 불상은 기다란 관모를 쓴 것처럼 장식없이 소박하고, 목이 짧아 어깨가 붙어버렸다. 옷도 법의가 아닌 관복처럼 주름이 적다. 얼굴의 윤곽도 생전 다듬어본 일 없는 시골 할아버지의 형상이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두기의 보살상을 두고 왼쪽 불상은 할머니, 오른쪽 불상을 할아버지 미륵으로 부른다. 안성 미륵에서 새로운 점은 미륵이 마을로 내려오고 민간신앙화 되면서 기존의 형식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의와 관복이 혼용된 모습이고 수인의 개념이 깨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보름이 되면 아양동 미륵님께 치성을 드린다고 하는데 남자들은 풍물을 치고 여자들이 제를 주관한다고 한다.
안성봉업사지오층석탑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8-5 안성종합버스터미널 → 37,370,380번 버스 → 죽산터미널 하차 칠장사, 구메농사마을, 서일농원, 죽산성지, 흔들바위, 죽주산성, 안성내츄럴리조트 안성봉업사지 오층석탑은 고려중기 이전것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6m로 여러장의 크고 넓적한 돌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단층 기단을 두고 위에 5층 탑신을 올렸다. 안성시내에는 많은 석탑이 전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봉업사지 오층석탑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봉업사란 말 그대로 나라를 창업하면서 받들던 절이란 뜻이며, 고려 창업을 기념한 국사찰이었으며 왕건의 영정이 봉안되어 고려가 망하기전 475년동안 고려왕실에서 한해도 빠짐없이 선왕에 대한 예를 올렸던 기록이 있다. 지금은 황량한 빈터에 5층석탑과 당간지주만이 서 있지만 그 당당한 위용에서 한 시절의 영광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오층석탑은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늠름한 탑으로 고려 초기의 문화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구성한 일반형 석탑. 기단부 구성에서 둔중함을 볼 수 있고, 탑신의 양우주가 형식적으로 흐른다. 옥개석 받침이 층마다 정연하게 5단씩이며, 석재 결구에서 균형을 잃지 않은 거대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용화사석조여래입상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법전길 260-31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법전리 180 안성종합버스터미널에서 10-8번 버스 → 신법전 하차(도보 5분) 대안미술공간소나무, 이덕남장군묘, 홍계남장군고루비, 안성팜랜드 용화사(龍華寺)는 지소현 스님이 불교 포교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오던 중에 용이 하늘로 오르며 자신이 솟아난 땅을 내려다보는 꿈을 꾼 후 그 곳에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오며, 용화전(龍華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12평짜리 팔작지붕으로 법당 내 오른쪽에 석조여래입상과 작은 바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불상과 바위에 관해서는 남녀 미륵불이 땅 속에서 솟아날 때, 지나가는 행인이 여미륵 위에 소변을 누는 바람에 미륵불이 못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임신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처로 활용하고 있다.지상에 보이는 부분은 백색 수성페인트로 전체를 칠하고 이목구비는 흑색으로 칠해 있으며 지상에 보이는 석불의 총높이는 260㎝ 이고, 머리부분 높이는 70㎝ 이며, 머리부분 폭은 30㎝ 이고, 어께부분 폭은 90㎝ 이며, 석불의 형상은 머리에 높은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繫柱)와 이마에 타원형의 중앙계주(中央繫柱)를 가지고 두툼한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기다란 얼굴에 지그시 감은 눈, 이마 중앙에 백호(白蒿), 삼각형의 오똑한 코와 굳게 다문 입술은 긴 편이며, 입술과 턱 사이에 수염을 그려 놓았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통견의 법의는 양어깨와 팔에 감싸 있고, 가슴은 사선으로 속옷이 보이며 왼손은 옷자락을 살짝 잡고 오른손은 앞으로 내밀어 손바닥을 위로 한 자세를 하고 있어, 조선후기에 유행한 미륵불의 영향을 받아 용화사 창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무릅 이하가 땅에 매몰되어 있어 실제의 전체높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법당이 3단의 축대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대략 3m 이상의 크기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입상은 백색 수성페인트로 전체를 칠하고, 이목구비는 흑색으로 칠했던 것이나 최근 화재로 인해 전체적으로 덧칠해 있던 시멘트가 벗겨져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원래의 석조여래입상은 파손이 비교적 심한 편이나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았을 때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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