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獨對 ] 한자는 우리 문명이 만든 뜻글자이다. 한글은 우리 문명이 발명한 소리글자이다.
獨對(독대)
| 獨 對 | 홀로 | 대답할 | 왕과 신하가 단둘이 만나던데서 유래 |
||
| 독 | 대 | ||||
| 犬이 들어있는 漢字는 모두 짐승이나 짐승의 性質과 關係가 있다. 狐(여우 호),狗(개 구),狂(미칠 광),猛(사나울 맹)등….독(獨)은「蜀(촉․해바라기 벌레)과 같은 개(犬),또는 동물」이라는 뜻이다.一種의 들개로 먹이를독차지한다.그래서 獨은 짐승 이름이자 「홀로」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對는 나무조각(業에서 木이 생략됨)을 쥐고 있는 손(寸),곧 臣下가 임금을 알현(謁見)하기 위해 홀(笏)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그래서 對는 「대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디 독대(獨對)라면 王이 臣下와「단둘이 만나는 것」을 말했다.물론 그리떳떳한 것은 아니었다.그래서 朝鮮時代에는 國法으로 禁하기도 했다.은밀히 만난다는 것 자체가 뭔가 구린 데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國家의 重要 大事라면 獨對를 못할 것도 없다. 효종(孝宗)이 북벌(北伐)을 論하기 위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과 獨對한 것은 有名하다.사관(史官)과 승지(承旨)까지도 내보낸 채 이뤄진 獨對는 制度的으로 禁止되어 있었던 것으로 매우 「異例的」인 것이었다.요즘 大統領과 野黨의 總務가 獨對했다하여 말이 많다.國政에 관해서 무슨 緊要한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異例的인 것만은 틀림없다. |
|||||
鼎革(정혁)
| 鼎 革 | 솥 | 가죽 | 새것을 취하기 위해 옛것을 과감히 도려냄 | ||
| 정 | 혁 | ||||
| 정(鼎)은 임금의 옥새(玉璽)처럼 王權의 象徵을 뜻한다. 鼎은 또 주역(周易)64괘중 하나이기도 하다.새로운 고기를 삶기 위해서는 솥에 남아있는 찌꺼기를 除去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솥을 뒤집는 수밖에 없다.그래서 정괘(鼎卦)는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면모(面貌)를 일신(一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편 혁(革)의 본디 뜻은 「가죽」이다.비슷한 뜻에 피(皮)도 있다.그런데 皮와 革은 性質이 다르다.짐승을 잡아 갓 벗겨낸 가죽이 皮라면 革은 그것을 삶고 무두질해 부드럽고 가볍게 만든 가죽이다.그러므로 皮에서 볼 수 있는 거칠고 딱딱한 感觸은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성질을 가진 가죽이되는 것이다.곧 革은 나쁜 점을 「과감하게 뜯어 고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혁신(革新)․혁명(革命)․혁파(革罷)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그런데 革역시 6괘중 하나다.그것은 연못의 바닥에 불이 있는 形象을 뜻한다.물과 불은 相剋이므로 무엇인가 果敢한 措置가 필요하다.그래서「옛 것을 없애 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상에서 鼎과 革은 각기 새 것을 취하고(鼎) 옛 것을 과감하게 도려낸다(革)는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그것은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뜻한다. |
|||||
鍛鍊(단연)
| 鍛 鍊 | 단련할 | 단련할 | 좋은 쇠를 얻기 위해 두드리고 녹이는 과정 |
||
| 단 | 련 | ||||
| 鍛은 金과 段의 合成字며, 段은 「돌을 쪼는 것」 또는 「쪼은 돌」을 뜻한다.계단(階段)의 段은「쪼은 돌」(섬돌)로 층계(階)를 만들었음을 뜻한다. 段은 또 「망치」「두드리다」는 뜻도 있다.옛날 땅을 다지거나 말뚝을 박을 때 섬돌을 이용했던 데에서 由來한다.따라서 鍛은 망치(段)로 쇠(金)를 두드린다는 뜻이 아닐까.그렇다.대장장이가 칼이나 農機具를 만들기 위해 쇠붙이를 불에 달궈 열심히 두드리는 것을 뜻한다. 한편 鍊은 金과 柬(간)의 結合인데 여기서 柬은 「선별하다」「고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손(手)으로 고르는 것이 揀(가릴 간),말(言)로 옳고 그른 것을 고르는 것이 諫(간언할 간)이다.간택(揀擇),간언(諫言)이라는 말이 있다.곧 鍊은 쇠(金)를 고르는(柬)것이 아닌가.鑛石에는 不純物이 많이 있다.쇠의 主成分만 골라 내기 위해서는 鎔鑛爐에 넣어 녹여야 한다.그래서 鍊은 쇠를 녹이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그것은 좋은 쇠를 얻기 위해서다. 이처럼 단련(鍛鍊)은 쇠를 두드리고 녹여 훌륭한 쇠붙이를 만들기 위한 過程이다.그렇다면 몸이나 精神을 가다듬는 것도 一種의 鍛鍊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
|||||
咫尺(지척)
| 咫 尺 | 적을 | 자 | 짧은 길이 | ||
| 지 | 척 | ||||
| 시(尸)는 사람이 의자에 걸터 앉은 模襲에서 나온 글자다.尿(오줌 뇨)는앉아 있는데(尸) 물(水)이 나오는 模襲이며, 尾(꼬리 미)는 걸터 앉은 사람의 등 뒤로 털(毛)裝飾이 삐져나와 있는 模襲이다.더구나 손아랫 사람을 모셔와 의자에 앉히고 祭祀를 올렸던데서 由來한다.지(咫)는 척(尺)과 지(只)의 結合이며, 척(尺)은 의자에 앉은 채 팔을 등 뒤로 내리 뻗은 模襲이다.손목부터 팔뚝까지의 길이를 척(尺)이라고 했는데 대체로 손가락 열 마디(10寸)쯤 되었다.지(只)는 다시 구(口)와 팔(八)의 結合인데, 그것은 자의 눈금(口)8개(八)를 뜻한다. 古代 中國의 度量衡 制度에 의하면 8촌(寸)이 1지(咫)였다.그러니까 지척(咫尺)은 8촌 또는 10촌으로 20~25㎝쯤 되는 「짧은 길이」다.그래서 「咫尺도 分揀할 수 없다」는 짧은 거리조차 分揀할 수 없음을 말한다. 4世紀께 中國에 佛敎가 처음 들어왔을 때 印度의 高僧들과 함께 佛經을 飜譯했던 中國 僧侶들은 意思 疏通에 어려움이 많았다.그 결과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뜻이 엄청난 差異를 보이곤 했다.이처럼 뻔한 單語를 가지고도 뜻이 서로 통하지 않아 「지척이 천리」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
|||||
餓鬼(아귀)
| 餓 鬼 | 굶주릴 | 귀신 | 배는 크지만 목구멍이 작아 배고픈 귀신 |
||
| 아 | 귀 | ||||
| 佛敎에 육도(六道)라는 말이 있다.衆生이 生前의 업(業)에 따라 여섯가지중 하나로 태어나는데 여기에는 천상계(天上界),아수라(阿修羅),人間,짐승,아귀(餓鬼),地獄이 있다.生前에 貪慾많고 인색(吝嗇)하여 보시(布施)를 하지않았거나 남의 布施를 妨害했던 者가 餓鬼로 태어나는데, 이 餓鬼의 가장 큰 苦痛은 배고픔과 목마름이다.그래서 먹을 것을 두고 다툼이 많다.「아귀다툼」인 것이다.그런데 餓鬼는 배가 산만큼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같아 늘 배고픔의 苦痛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그래서 몸은 해골처럼 야위어 있으며 벌거벗은채로 뜨거운 苦痛을 받고 있기 때문에 늘 목이 말라 있다. 스님들이 바리공양을 하고 나서 그릇을 깨끗이 씻은 다음 그 물을 마당의 돌위에 버리는데 그들의 苦痛을 없애주기 위해서라고 한다.餓鬼들은 다른 물을보면 불을 보는 것과 같아 마시지 못하지만 이 물만은 마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 餓鬼의 목구멍이 너무 좁아 다른 음식을 못 먹기 때문이라고도한다.이처럼 餓鬼들이 飮食의 苦痛을 당하는 까닭은 生前에 飮食貪을 너무 부렸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그렇다면 食道樂가나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지키지않고 糧食만 찾는 사람들도 餓鬼로 태어날 可能性이 많지 않을까. |
|||||
尋常(심상)
| 尋 常 | 찿을 | 항상 |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음 | ||
| 심 | 상 | ||||
| 본디 심(尋)과 상(常)은 길이를 뜻하는 單位로 각기 8자,16자를 뜻했다.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옛날에는 그리 길지 않다는 뜻으로 認識했다.春秋戰國時代 諸侯들이 爭覇에 血眼이 된나머지 「심상(尋常)의 땅」을 다투었다고 한다. 한평 남짓 되는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웠다는 뜻으로 아주 작은 規模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장자(莊子)는 배를 물에 띄우면 잘 나가지만 땅에서 밀면 平生을 밀어도 尋常만큼도 나가기가 힘들다고 했다.얼마 안되는 거리임을 알수 있다.곧 尋常이라면 극히 미미해 보잘 것이 없다는 뜻이다.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되겠다.따라서「심상치 않다」면 대수롭게 보아 넘길일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大詩人 두보(杜甫)도 술을 좋아했다.亂世의 鬱憤을 달랜다거나 시흥(詩興)을돋우기 위해 退勤길이면 酒幕을 그냥 지나치는 境遇가 드물었다.돈이 없어 옷을 잡히고 술을 마셨는데 여기저기 빚진 술값이 널려 있게 되었다.그러나 그까짓 술값이 대수는 아니지 않은가.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술값은 가는 곳마다 널려있지만(酒債尋常行處有) 에라!人生 칠십이 예로부터드물었거늘(人生七十古來稀) 「古稀」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술값 정도는 尋常한 것으로 여겼던 杜甫였다. |
|||||
拍車(박차)
| 拍 車 | 칠 | 성 | 더욱 빨리 달리게 함 | ||
| 박 | 차 | ||||
| 拍은 손(手)을『뼉』(白)하는 소리가 나도록 치는 것을 말한다.즉 손바닥을 치는 것으로,본뜻은 「손뼉을 치다」인데 후에는 그냥「치다」「때리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박수(拍手),박자(拍子),박장대소(拍掌大笑)가 있다.기뻐서 손뼉을 치는 것이 박수라면, 입(口)으로 歡呼聲을 지르는 것은 갈채(喝采)다. 車는 수레의 模襲을 위에서 보고 만든 글자이므로, 車로 이루어진 글자는 모두 수레와 關係가 있다.輪(바퀴 륜),輕(가벼울 경),軌(굴대 궤),轉(구를 전)등….그런데 수레에서 가장 重要한 部分은 바퀴이므로, 車는 바퀴처럼 回轉하는 모든 것을 뜻하기도 했다.풍차(風車․바람개비),수차(水車․물레방아),치차(齒車․톱니바퀴)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박차(拍車)도 「치는 수레」라기 보다는 쳐서 回轉시키는 바퀴의 一種임을 알 수 있다.곧 말을 탈 때 기수(騎手)가 신는 구두의 뒤축에 달아놓은 톱니바퀴처럼 생긴 것으로 우리말로는 「도리개」라고 한다.騎手가 말을달리게 하는 方法에는 두 가지가 있다.채찍을 가하는 방법(加鞭․가편)과 拍車를 利用하는 方法이 그것이다.구두 뒤축으로 말의 배를 차면 拍車가 돌면서 자극(刺戟)을 주게 되므로 말은 더욱 빨리 달리게 된다.「박차를 가한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
|||||
關係(관계)
| 關 係 | 기관 | 이을 | 적을 막으려 성을 쌓고 관문을 연결한 데서 유래 |
||
| 관 | 계 | ||||
| 關은 大門의 「빗장」이며 後에 國境의 要塞로 轉用됐다고 했다.관중(關中)은 「關의 中央」이라는 뜻으로 東西南北에 각기 함곡관(函谷關),산관(散關),무관(武關),소관(蕭關)의 네 關으로 둘러싸여 있던 天然 要塞地로 지금의섬서성(陝西省)이다.그런데 歷史上 中國은 北方 異民族의 侵掠에 시달려야 했다.그래서 험한 地形에는 어김없이 關을 만들고, 그 關을 서로 連結하는 城을쌓아야 했다.이처럼 關을 서로 連結한 것이 관계(關係)다.그것의 代表가 萬里長城으로 東의 산해관(山海關)에서 西의 가욕관(嘉욕關)까지 장장 1만5천리나 이어져 있다.물론 그 사이에는 수많은 關이 있다.용관(龍關)․거용관(居庸關)․안문관(雁門關)등등. 그렇다면 關係의 目的은 異民族,즉 匈奴를 防禦하는 데에 있었음을 알 수있다.그것은 國防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그러던 것이 이제는 個人의 目的을위한 手段으로 바뀌고 말았다.私利私慾을 위해 關係를 動員하게 된 것이다.關係의 意味가 그만큼 縮小,世俗化됐다고나 할까. 물론 中國에서 「關係」가 무너진 적도 있었다.元나라와 淸나라가 그것이다.그들은 「關係」(萬里長城)를 무너뜨리고 中國을 차지했다.그런데 지금은 目前의 利益 때문에 좋은 「關係」가 무너지곤 한다.아쉬운 노릇이다. |
|||||
解語花(해어화)
| 解語花 | 풀 | 말씀 | 꽃 | 말을 알아듣는 꽃. 양귀비 같은 미인 | |
| 해 | 어 | 화 | |||
| 해어화(解語花)란 「말을 알아 듣는 꽃」으로 後에는 미인(美人)을 뜻하게되었다.때는 따뜻한 초여름의 어느날,唐나라 서울 장안(長安)태액지(太液池)의 연꽃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玄宗과 楊貴妃의 行列은 연꽃을 感想하기 위해태액지에 이르렀다.그러나 玄宗의 눈에는 그 어느 것도 옆에 앉아 있는 楊貴妃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그래서 周圍의 宮女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여기 있는 연꽃도 解語花보다는 아름답지 않구나.』 楊貴妃를 두고 한 말이었다.처음에는 다들 무슨 영문인가 하고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지당한 말씀』이라고 아뢰었다. 사실 玄宗은 할머니 측천무후(則天武后)에 의해 疲弊해질대로 疲弊해진 唐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 개원(開元)의 太平聖代를 이루었던 賢明한 君主였다.그러나 後에 楊貴妃를 알고부터 그만 政事에는 關心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그 결과 안녹산(安祿山)의 亂을 당하여 楊貴妃마저 목매어 죽이고 만다.그러고도그녀를 잊지 못해 자나 깨나 그리는 마음은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에 잘 나타나 있다.大唐帝國도 차츰 기울기 시작해 마침내 亡하고 만다.그러고 보면 解語花는 망국화(亡國花)이기도 했던 셈이다. |
|||||
蝴蝶夢(호접몽)
| 蝴蝶夢 | 들나비 | 들나비 | 꿈 | 상식을 벗어나 초월의 경지서 노니는 것 |
|
| 호 | 접 | 몽 | |||
| 莊子는 우리를 現實을 훌쩍 뛰어넘어 浪漫과 理想의 世界로 引導한다.그런데너무 程度가 심하다 보니 쉽게 理解가 가지 않는 점도 있다.그중 代表的인 것에 제물론(濟物論)이 있다.森羅萬象에 아무런 區別이 없다는 主張이다.그는남녀(男女),선악(善惡),장단(長短)등 一切의 區別을 否定했다.심지어 생사(生死)의 區別도 두지 않았다. 한번은 그가 나비가 되어 虛空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그는 모든 것을 超越해 宇宙를 나는 기쁨을 만끽(滿喫)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꿈에서 깨어난 그는 아리송했다.『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莊子가 된 것인가.』 그러나 그런 區別은 無意味할 뿐이었다.본디 아무런 區別도 없지 않은가.그의 눈에는 오직 몰아(沒我)의 境地만 있을 뿐이다.그래서 그의 哲學은 時空을 超越할 수가 있는 것이다. 호접몽(蝴蝶夢)은 觀念의 척도(尺度)를 排擊하고 모든 것을 超脫해 몰아일체(沒我一體)의 境地에서 노니는 것을 뜻한다.그러나 너무 超現實的이어서도 困難하겠지만 그렇다고 世俗에 너무 執着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중용(中庸)의 知慧가 必要하다. |
|||||
逐鹿(축녹)
| 逐 鹿 | 쫓을 | 사슴 | 왕권을 놓고 서로 다툼 | ||
| 축 | 록 | ||||
| 유방(劉邦)에게 背反당하자 한신(韓信)은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가 죽으면 사냥개가 삶김)이라는 말을 남겼다.화가 난 그는 진희(陳희)와 함께 謀反을 꾀하기로 했다.먼저 진희가 擧兵하면 劉邦이 그를 칠 것이고 그 틈을타 自身이 反旗를 든다는 計劃이었다.그러나 擧事는 水泡로 돌아가 진희는 劉邦에 의해 참살(斬殺)되고, 韓信은 여후(呂后)와 소하(蕭何)의 꾐에 빠져 사로 잡히게 되었다.韓信은 處刑당하면서 말했다. 『아,분하도다.내가 괴통(괴通)의 말을 들었던들….』 괴통은 그에게 수차례나 叛亂을 勸誘했던 자다.진희를 討伐하고 돌아온 劉邦이 이 事實을 알고 즉시 괴통을 잡아오게 해 삶아 죽이게 했다.그러자 괴통이 말했다.『저는 정말 억울합니다.진(秦)이 사슴(中原)을 잃게 되자 온 天下가 그것을 쫓게 되었습니다.저는 그 때 韓信만을 알았을 뿐입니다.도척(盜척)의 개가 堯임금을 보고 짖었다고 堯가 어질지 않은 것도 아니요,그 개가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마침내 劉邦은 그를 풀어주었다.이때부터 鹿(사슴)은 「天子의 자리」를 뜻하게 되었으며,「逐鹿」(축록)은 「天子의 地位를 다툰다」는 뜻으로 使用되었다. |
|||||
庭訓(정훈)
| 庭 訓 | 곧을 | 가르칠 | 뜰에서 가르치거나 가르침을 받음 | ||
| 정 | 훈 | ||||
| 정훈(庭訓)은 뜰에서 가르친다거나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다.그러니까 父母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경우가 되겠다.貴族의 專有物이었던 敎育을 平民에게까지擴大한 이는 공자(孔子)였다.그의 뜻을 繼承한 맹자(孟子)역시 敎育을 매우重視했으며 「敎育」이라는 말이 그로부터 나왔다.현재 韓․中․日 3국의 敎育熱이 높은 것도 다 孔子나 孟子와 관계가 있다. 孔子가 敎育에 임했던 原則이 하나 있었다.유교무류(有敎無類),즉 열심히 가르치되 差別을 두지 않는 것이었다.심지어 그는 自己의 아들조차 一般 弟子와 다름없이 가르쳤다.그의 弟子중에 진항(陳亢)이 있었다.그는 스승께서 當身의 아들인 백어(伯魚)만은 남다르게 가르쳤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그래서伯魚에게 물어 보았다. 『스승으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이라도 받은 게 있소?』 『아니오, 그저 뜰에 앉아 계실 때 그 앞을 지나가는데 불러 세우시고는 시(詩)와 예(禮)를 强調했을 뿐입니다.』 意外의 對答을 듣고 陳亢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공연히 疑心을 품었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孔子의 「有敎無類」精神은 아들이라고例外가 없었던 것이다. |
|||||
連理枝(연리지)
| 連理枝 | 연결할 | 이치 | 가지 | 나란히 붙은 나뭇가지 … 다정한 연인 뜻함 |
|
| 연 | 리 | 지 | |||
| 연리지(連理枝)라면 「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뜻한다.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連理枝다.간혹 巨大한 古木에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多情한 느낌이 들어 보기에도 좋다. 본디 連理枝의 古事는 후한말(後漢末)의 大學者 채옹(蔡邕)에서 由來했다. 워낙 孝心이 極盡해 어머니가 죽고 뜰에 나무가 자랐는데 連理枝가 되었다고 했다.그래서 본디는 「효심(孝心)」의 象徵으로 사용되었다.그것이 多情한 연인(戀人)의 象徵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당(唐)의 詩人 백락천(白樂天)에 의해서다.그가 태어났을 때는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영화(榮華)가 차츰 기울기 시작했을 때였다.그것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 때문이었다.楊貴妃에 빠진 玄宗이 政治에 뜻을 잃었던 것이다.둘의 로맨스가 워낙 有名했으므로 그는 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장한가(長恨歌)』다.生前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言約했다고 한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在天願作比翼鳥)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在地願爲連理枝)…」 玄宗은 꽃다운 나이에,그것도 非命에간 楊貴妃를 잊지 못해 늘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
|||||
茶禮(다예)
| 茶 禮 | 차 | 예도 | 제사때 茶를 올이는 의식 | ||
| 다 | 례 | ||||
| 中國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에 개문칠건사(開門七件事)라는 것이 있다.아침에 일어나 大門만 열면 시작해야 하는 일곱가지의 重要한 일을 뜻한다.곧 茶(차 차),米(쌀 미),柴(땔감 시),油(기름 유),鹽(소금 염),醬(간장장),醋(식초 초)등이 그것으로 일곱가지의「生活必需品」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이처럼 中國에서 茶는 쌀과 함께 없어서는 안될 重要한 生必品이었다.그러다 보니 茶를 마시는 것은 우리가 숭늉을 마시는 것보다 더 生活化돼 있다. 예로부터 명차(名茶)는 黃金보다 더 비쌌다.그런 中國 사람들이 茶를 儀式에 사용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곧 차례(茶禮)가 그것인데 옛날高官들의 모임이나 結婚式,祭祀에서 차를 올렸던 데서 나온 말이다.그러나 우리의 경우 茶禮는 대체로 秋夕이나 설과 같은 名節에 올리는 祭祀를 意味하게되었다. 뿐만 아니라 차를 올리는 節次도 없으며, 場所도 집안의 대청마루에서만 행해졌을 뿐이다.그것은 우리가 中國과 달리 차를 日常的으로 마시지는 않았기 때문이다.비록 茶禮에서 茶는 올리지 않지만 祖上을 追慕하는 儀式이니 만큼 茶禮의 意味는 매우 깊다고 하겠다. |
|||||
換骨奪胎(환골탈태)
| 換骨奪胎 | 바꿀 | 뼈 | 빼앗을 | 애밸 | 뼈를 바꾸고 태를 벗겨 면모를 일신함 |
| 환 | 골 | 탈 | 태 | ||
|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뼈를 바꾸고 胎를 벗긴다는 뜻으로 본디 도가(道家)에서 나온 말이다.그들에 의하면 사람과 神仙이 外形上에서 다른 점은 뼈와 胎에 있다고 한다.따라서 神仙이 되기 위해선 人間이 가지고 있는 속된 뼈(俗骨)와 평범한 태(凡胎)를 일신(一新)하지 않으면 안된다.물론 그것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神仙術을 익히면서 神靈스런 단약(丹藥)을 먹어야 可能하다.또 이상한 술을 마셔도 되었다.왕자교(王子喬)는 본디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아들이었다.그러나 아버지에게 直諫을 서슴지 않아 平民으로 廢位되고 말았다. 어느날 江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는데 화려한 꽃으로 裝飾된 배가 두둥실 떠내려오고 있었다.배 위에는 모두 일곱명의 道士가 타고 있었다.그중 한 道士가 그를 끌어올려 배에 태우더니 이상한 술병을 가져왔다.둘은 실컷 술을 마셨는데 王子喬가 따르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술이 道士가 따르면 끝없이 흘러 나왔다.換骨奪胎되는 술이었던 것이다.물론 後에 그는 神仙이 됐다고 한다.여기서 換骨奪胎는 「面貌를 一新하다」는 뜻을 가지게 됐다.즉 從前의 낡고 平凡한 틀을 모조리 갈아치움으로써 보다 새롭게 再誕生한다는 뜻을 가지고있다. |
|||||
千里馬(천리마)
| 千里馬 | 일천 | 마을 | 말 |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 | |
| 천 | 리 | 마 | |||
| 옛날 주나라 목왕(穆王)의 신하에 조보(造父)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훌륭한 말을 골라 訓練시켜 名馬로 만드는데 뛰어난 資質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니까 말의 名調練師였던 셈이다.그는 먼저 쓸만한 말을 골라 열심히 기르고訓練시켰다.그래서 그가 穆王에게 바친 말엔 도려(盜驪)․화류(靴旒)․녹이(綠耳) 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駿馬였다.穆王은 그가 바친 駿馬를 타고 머나 먼서쪽의 山에 산다는 신녀(神女) 서왕모를 만나러 갔다.서왕모에게 빠진 그는歸國하는 것도 잊은 채 놀기만 하다 서언왕(徐偃王)이 叛亂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歸國하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탔던 말이 앞서 造父가 바친 名馬로 하루에 千里나 달렸다고 하여 천리마(千里馬)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그러니까 千里馬는 준마(駿馬)중의 駿馬라 할 수 있다.그 反對가 노마(駑馬)또는 둔마(鈍馬)가 되겠다.中國 사람들은 千里馬의 發源地를 흉노(匈奴)라고 여겼다.지금의 蒙古다. 그러고 보면 蒙古族이 世界를 制覇했던 것도 까닭이 있었던 것 같다.그러나 歷史上 登場하는 千里馬는 이 외에도 많다.옛날 항우(項羽)가 탔다는 오추마(烏추馬)나 三國時代 여포(呂布)가 탔던 적토마(赤兎馬)도 여기에 千里馬에 該當한다. |
|||||
從容有常(종용유상)
| 從容有常 | 쫓을 | 얼굴 | 있을 | 항상 | 안색, 행동을 바꾸지 않고 소신대로 행함 |
| 종 | 용 | 유 | 상 | ||
| 순수 우리말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漢字語에서 由來한 것이 많다.「흐지부지」(諱之非之․휘지비지),장난(作亂),야단법석(惹端法席),우악(愚惡)등이 그렇다.떠들지 않고 소리없이 얌전한 것을 「조용」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한자 「종용」(從容)에서 나왔다.直譯하면 「얼굴에 따른다 」는 뜻이다. 예로부터 君子가 喜怒哀樂의 感情을 얼굴에 나타내는 것은 禁物이었다.얼굴은人格을 나타낸다고 보았으므로 늘 변치 않는 顔色을 지녀야 했다.그러기 위해서 顔色은 늘 움직임이 없는 「조용한 狀態」를 維持해야 한다.유상(有常)은무상(無常)의 反對로 늘 변치 않는 상도(常道)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그러니까 종용유상(從容有常)이란 外部의 어떠한 狀況에도 顔色과 行動을 바꾸지않고 平素의 所信에 따라 정도(正道)를 걷는다는 것을 意味한다.『예기(禮記)』에 나오는 孔子의 말이다. 그는 指導者의 態度가 그래야 한다고 보았다.行動擧止가 항상 조용하고(從容)法度에 벗어나서는 안되며(有常), 심지어는 옷도 자주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했다.그래야만 百姓을 다스릴 수 있고 百姓 또한 그의 德에 感化받아 不變의忠誠心을 보인다는 것이다.그러고 보면 종용유상(從容有常)은 우리 모두의 德目이 아닐까 싶다. |
|||||
千里眼(천리안)
| 千里眼 | 일천 | 마을 | 눈 | 미래나 앞응 꿰뚫어 보는 능력 | |
| 천 | 리 | 마 | |||
| 북위(北魏)의 양일(楊逸)은 有能하고 覇氣 만만한 젊은이였다.29세가 되던 해 황천(潢川․河南省)의 郡守로 赴任하게 되었는 데 훌륭하게 다스려 보겠다는 抱負 뿐이었다.과연 그는 赴任하자 마자 前任者와는 전혀 다른 方法으로 일을 했다.住民들을 상전 대하듯 했으며, 그들의 苦痛을 解決하기 위해 不撤晝夜 노력했다.그는 또한 赴任式의 酒宴조차 마다했으며 一切의 請託이나 不正을 根絶시켰다. 당시 一部 토족들은 모리(謀利)에 血眼이 돼 있었으며, 못된 官吏들은 百姓의 고혈(膏血)을 짜내 사복(私腹)을 채우기에 바쁘던 때였다.그러기 위해서는 法을 嚴格하게 執行하여 是非를 分明히 가려야 함은 물론 百姓들의 사소한分爭도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꿰뚫고 있어야 했다.워낙 사정에 밝았으므로 사람들은 다들 수군거렸다.『楊郡守는 천리안(千里眼)을 가졌다.좀처럼 속일 수가 없으니.』 사실 그는 많은 정탐(偵探)꾼을 運用했던 것이다.천리안(千里眼)은 본디 千里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눈을 말했는데, 後에는 未來의 일이나 남을 꿰뚫어 볼 수 있는 能力도 뜻했다.이와는 달리 멀리 있는 것도 잘 알아 들을 수 있는 귀 를 순풍이(順風耳)라고 한다.소식통인 셈이다. |
|||||
狼藉(낭자)
| 狼 藉 | 이리 | 깔 | 이리가 자고난 자리처럼 흩어진 자리 |
||
| 낭 | 자 | ||||
| 낭(狼)은「이리」,자(藉)는 본디 풀(艸)로 짠「자리」를 뜻했는데, 여기서 「기대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빙자(憑藉),위자료(慰藉料)가 있다.낭자(狼藉)는 이리가 깔고 누웠거나 기댔다는 뜻이다.集團生活을 하므로 이리 떼가 자고난 자리는 풀이 온통 뒤죽박죽되고 만다.그래서 狼藉는 「흩어져 어지러운 모양」이다. 제(齊)의 순우곤(淳于昆)은 골계(滑稽․才致와 諧謔으로 잘못을 諫함)로 有名했다.당시 위왕(威王)은 酒宴과 사치(奢侈)로 一貫했는데 한번은 威王이 주량(酒量)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한 되에 취할 수도 있고,한 섬에 취할 수도 있습니다.』 奇異하게 생각한 威王이 다시 묻자 이렇게 말했다.『禦前에서는 한 되만 마셔도 취하지만 男女老少가 어우러지면 여덟 말쯤 마셔도 醉氣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게다가 해가 저물어 젊은 男女만 남아 한데 어울려 놀다보면 술판도 어지럽게(狼藉)되고 興은 極에 달하게 되지요.이때면 臣의 酒量은 한섬도 족히 됩니다.問題는 酒量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에 있는것입니다.술이 極에 달하면 混亂이 오게 되지요.』 그의 말에 威王은 크게 깨닫고 술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政治에 專念해 다시금 齊나라의 威勢를 크게떨쳤다고 한다. |
|||||
登龍門(등룡문)
| 登龍門 | 오를 | 용 | 문 | 잉어가 용이되는 험한 협곡 | |
| 등 | 용 | 문 | |||
| 龍은 중국에서 麒麟․鳳凰․거북이와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推仰받으며 특히 그중에서도 龍은 最高의 영물(靈物)로 꼽힌다.그래서인지 스스로를 龍의後孫이라고 하며 天子를 龍에 比喩하기도 한다.용안(龍顔․천자의 얼굴),용포(龍袍․천자가 입는 옷),용가(龍駕․천자가 타는 수레),용덕(龍德․천자의 덕)등…. 中國 산서성(山西省)하진(河津)과 섬서성(陝西省)한성(韓城)은 황하(黃河)의 上流에 속하는 地域이다.이곳은 峽谷이어서 급한 물살을 이룬다.그래서 이곳을 오르기란 거의 不可能하다.中國 사람들은 이곳을 용문(龍門)이라고 불렀다.下流의 무수한 잉어들이 上流로 올라가 알을 낳기 위해 이곳에 모이게 된다.그러나 다들 急流와 瀑布를 오르지 못하고 그만 떼밀려 오고 마는데 間或 通過하는 놈도 나온다.천신(天神)이 불을 내려 꼬리를 태우면 뜨거워 오르게 된다.그런데 이곳을 通過하는 잉어는 龍이 되어 昇天한다고 한다. 龍門에 오르는 것이 등용문(登龍門)이다.그것은 잉어가 龍이 되는 것을 意味한다.우리말에도 「개천에서 용났다」는 표현이 있다.대단한 출세다.그래서 後에는 科擧에 及第하는 것을 登龍門이라고 했다.지금은 1류대학에 合格하는 것도 그렇게 말하는 時代가 되었다.入試가 出世의 代名詞로 轉落된 셈이다. |
|||||
遼東豕(요동시)
| 遼東豕 | 멀 | 동녘 | 돼지 | 하찮은 잔재주를 믿고 잘난체함 | |
| 요 | 동 | 시 | |||
|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에게는 주부(朱浮)와 팽총(彭寵)이라는 臣下가 있었다.朱浮가 愼重하고 思慮가 깊었다면 彭寵은 남을 업신여기기를 즐 겨했다.무공(武功)을 세워 光武帝의 寵愛가 있게 되자 彭寵은 더욱 우쭐대면서 사병(私兵)을 養成하여 獨立하려고 했다.이를 報告한 것은 朱浮였다.화가치민 彭寵이 軍士를 일으켜 朱浮를 치려고 하자, 朱浮는 오히려 彭寵의 불충(不忠)을 꾸짖는 글을 써 보냈다. 『옛날 遼東 땅에서 머리가 흰 돼지새끼를 낳았다.어떤 者가 天下의 기물(奇物)로 여겨 王에게 獻上하여 寵愛를 받으려고 했다.그가 돼지 새끼를 안고강동(江東)까지 왔는데, 알고 보니 그곳의 돼지는 모두 머리가 희었다.그는 부끄러워 되돌아가야 했다.지금 그대는 얼마 안 되는 재주만 믿고 감히 反逆을 꾀하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遼東의 돼지처럼 보잘 것 없는 잔재주에 不過할 뿐이다.警告하건대 反逆을 거두어라.』 그러나 彭寵은 듣지 않고 마침내연왕(燕王)이라 自稱하고 叛亂을 일으켰다가 討伐되어 죽고 말았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사람이다.그러나 무턱대고 우쭐대다가는 敗家亡身하는 境遇도 있다.사람은 좀더 謙遜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
|||||
三寸舌(삼촌설)
| 三寸舌 | 석 | 마디 | 혀 | 역사를 바꾸고 생사를 좌우하는 세치혀 |
|
| 삼 | 촌 | 설 | |||
| 「세치 혀」를 움직여 歷史를 바꾼 예는 많다.戰國時代의 장의(張儀)는 그代表的인 사람이다.그가 아직 有名하기전 한번은 초(楚)나라 宰相과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宰相의 벽옥(璧玉)이 없어졌다.다들 張儀를 疑心하고는 초주검이 되도록 매질을 했다.氣絶해 있는데 아내가 屍體를 치우러 왔다. 張儀가 깨어나자 아내는 기쁘면서도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그러기에 내가뭐라고 했어요.그놈의 讀書․遊說를 익히지 않았더라면 이런 慘變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그러자 張儀는 泰然하게 말했다. 『내 혀가 있는지 보시오.』 하면서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아내가『있다』고하자『그러면 안심이오』라고 하면서 다시 氣絶해 버렸다. 後에 그는 진(秦)혜문왕(惠文王)의 객경(客卿)이 되어 有名한 연횡책(連衡策․6국이 秦을 섬김)을 폄으로써 秦始皇이 天下를 統一하는데 基礎를 닦았다.반면 한비자(韓非子)는 혀가 둔해 사약(死藥)을 받고 죽어야 했으며 사마천(司馬遷)은 세치 혀를 잘못 놀려 궁형(宮刑)의 恥辱을 맛보아야 했다. 말이란 듣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重要함을 일깨워 준다. |
|||||
月旦評(월단평)
| 月旦評 | 달 | 아침 | 평론할 | 매달 초하루에 하는 주위인물에 대한 평 |
|
| 월 | 단 | 평 | |||
| 조조(曹操)는 一世의 英雄이다.性品이 호탕(豪宕)했던만큼 어려서부터 兵書를 耽讀하는가 하면 周圍의 豪傑들과 자주 어울렸다.우리가 지금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읽을 수 있는 것도 그의 德分이다.그는 이 책에 最初로 주석(註釋)을 달았다.그가 한창 豪傑들과 어울리고 있을 때 하남성(河南省)여남(汝 南)땅에 허정(許靖)․허소(許沼)라는 두 兄弟가 살고 있었다.두 사람은 매달초하루만 되면 周圍의 人物을 골라 評價하곤 했는데, 어찌나 正確했던지 「汝南의 월단평(月旦評)」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所聞을 들은 曹操도 好奇心이 發動했다.하루는 두 사람을 찾아가 自身에대한 評을 付託했다.하지만 許沼는 그의 偉人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曹操가 다그치자 그제서야 못이기는척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太平聖代에서는 有能한 政治家지만 亂世에는 天下를 뒤흔들 수 있는 英雄입니다.』 曹操는 그의 評에 크게 洽足한듯 껄껄 웃었다.마침내 그의 말을 믿고 황건적의 討伐에 나서 큰 功을 세우고 英雄이 될 수 있었다고한다.만일 許沼의 月旦評이 없었더라면 아마 中國의 歷史는 다시 쓰여졌을지도모를 일이다. |
|||||
반응형
'공부하기 > ★[모모쌤] KOREA languag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復古 ] 한자는 우리 문명이 만든 뜻글자이다. 한글은 우리 문명이 발명한 소리글자이다. (0) | 2026.10.16 |
|---|---|
| [ 面目 ] 한자는 우리 문명이 만든 뜻글자이다. 한글은 우리 문명이 발명한 소리글자이다. (0) | 2026.10.16 |
| [ 鼓舞 ] 한자는 우리 문명이 만든 뜻글자이다. 한글은 우리 문명이 발명한 소리글자이다. (0) | 2026.10.16 |
| [ 浩然之氣 ] 한자는 우리 문명이 만든 뜻글자이다. 한글은 우리 문명이 발명한 소리글자이다. (0) | 2026.10.16 |
| [ 裁判 ] 한자는 우리 문명이 만든 뜻글자이다. 한글은 우리 문명이 발명한 소리글자이다. (0) | 2026.10.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