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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서의 ‘동이東夷’는 누구인가 — 왜 한민족을 동이라 불렀고, 왜 강단사학은 이를 부정하는가
중국 사서에서 말하는 ‘동이東夷’는 특정한 한 나라의 고유 국명이 아니라, 중국 동방에 존재했던 광범위한 문명권과 그 구성 국가들을 통칭한 역사적 개념이다. 후대 중화주의 관점에서는 이를 ‘동쪽 오랑캐’로 해석했지만, 고대 중국 문헌의 원래 맥락에서 동이는 야만 집단이 아니라 중국 문명의 형성과 발전에 깊이 관여한 선진 문화 세력이었다.
갑골문과 서주 이전 기록에 등장하는 ‘夷’자는 사람이 곧게 서 있는 형상으로 나타나며, 제사와 신성성과도 연결된다. 이는 동방의 이족이 단순한 변방 집단이 아니라 천문·제사·정치 질서를 공유한 문명 집단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사기』 「오제본기」에서 황제 헌원의 종족을 유웅씨라 기록한 점도, 중국 문명의 시조 자체가 동방 계통과 깊은 연관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한서』, 『후한서』 등 중국 정사에서는 동이를 예·맥·조선·부여·옥저 등 구체적인 국가명으로 서술한다. 이는 동이가 추상적 민족명이 아니라 국가 체계를 갖춘 정치 집단이었음을 뜻한다. 특히 『양서』에는 “동이의 나라는 조선이다(東夷國曰朝鮮)”라고 명시되어, 중국 사서 스스로 동이의 대표 국가를 조선으로 인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추가해설
(『양서』 권54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는
동이의 여러 나라를 열거하면서 조선을 동이 국가의 대표 격으로 서술합니다.
정확한 서술 방식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표현입니다.
“동이에는 조선·예·맥·부여 등의 나라가 있다”
“그중 조선은 가장 먼저 언급되는 국가”
즉,
‘동이 = 조선’이라는 등식 문장이 단독으로 선언된 것은 아니지만,
동이 문명권의 대표 국가로 조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를 동이족이라 불렀는가.
이는 멸칭이 아니라 지리적·문명사적 구분이었다. 중국에서 보아 동방에 위치했고, 활·제철·제사·역법·천자 사상 등 선진 문화를 지닌 집단이었기에 ‘동방의 이족’으로 불린 것이다. 실제로 하·상·주 초기 왕조의 핵심 세력 상당수가 동이 문화권과 연결되며, 황하 문명의 형성에도 동이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강단사학계가 이를 부정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확립된 식민사관의 잔재이다. 단군조선을 신화로 축소하고, 한반도 역사를 중국 문명의 주변부로 규정하는 틀이 여전히 작동한다.
둘째, 중화주의 사관의 영향으로 ‘동이=오랑캐’라는 후대적 의미를 원의미로 소급하는 오류가 반복된다.
셋째, 고대사 연구에서 문헌·고고학·비교문명 접근을 종합하지 않고, 일부 사료만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학문적 보수성이다.
결론적으로 중국 사서에서 말하는 동이는 중국에 지배당한 변방 민족이 아니라, 중국 문명과 병행하며 때로는 이를 주도했던 동방의 국가·문명권이다.
동이를 부정하는 것은 특정 용어 하나를 거부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민족 고대사의 공간과 위상을 스스로 축소하는 선택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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