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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
프리챌.... 네이밍의 근원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챌이 무슨 뜻인가를 고민했던 적.... 좋은 단어였구나...나도 챌린지란 단어를 넣은 회사를 만든적이 있었는데....ㅎㅎ
"울분 속에 5년을 살았어요"…. 전제완 프리챌 전 대표 인터뷰 /소비더머니
https://www.youtube.com/watch?v=JOU4VtBMCUY
프리챌 전 대표 전제완의 인터뷰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IT 벤처의 흥망성쇠를 창업자의 시선에서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삼성맨에서 벤처 창업가로 변신하며 겪었던 인재 유치의 비결과 당시 IT 생태계의 한계, 그리고 유료화라는 피할 수 없었던 선택의 배경을 통해 기업 경영의 냉혹한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성공과 실패를 넘어 인생의 본질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그의 고백은 물질적 성공 너머의 가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1. 프리챌 전 대표 전제완의 충격적인 근황과 인터뷰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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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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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다음(Daum)과 경쟁하며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프리챌은 현재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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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의 창업자는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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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의 충격적인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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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전제완 전 대표를 수소문한 결과, 강원도 양양에서 펜션 청소를 하고 대리운전을 하며 몇 년간 생계를 이어왔다는 충격적인 근황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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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설득 끝에 강원도 양양에서 전제완 창업자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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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향 후 5년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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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회사를 정리한 후 2019년 말 고향인 양양으로 낙향하여 '울분' 때문에 산과 들을 다니며 시골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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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패의 후유증이 너무 커서 고통을 잊기 위해 풀을 베고, 나무를 자르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저녁에는 막걸리를 마시는 등 5년 동안 세월을 낚으며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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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의 모습은 수염이 덥수룩하고, 위아래 만 원도 안 되는 옷 다섯 벌을 요일별로 돌려 입는 등 과거 큰 기업을 경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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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성맨 전제완의 과거와 벤처 창업의 계기
2.1. 삼성 입사 및 인사 시스템 개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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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입사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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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장사를 배우기 위해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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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정보산업 부문에서 IT 제품 판매를 하고 싶었으나, 연수 후 인사팀으로 발령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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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팀 발령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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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건희 회장이 비서실에 삼성그룹의 인재 채용을 엄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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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술을 잘 마신다는 이유로 '사람 장사'를 위해 2년간 채용 업무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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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업무의 어려움과 시스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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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서울대 상경계 학생 2,000명을 혼자 매일 술을 마시며 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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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100명씩 되는 학생들의 정보를 정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당시 전산 시스템의 부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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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직접 PC 공부를 3~4년간 미친 듯이 하여 프로그래밍을 통해 인사 시스템을 직접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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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인사 시스템 개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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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그룹 인사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노가다가 너무 많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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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건희 회장이 비서실 인사팀장에게 컴퓨터를 통해 사람 정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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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인사팀장은 전제완 전 대표에게 2년간 제안했던 이 프로젝트를 맡겼고, 그는 구조조정본부 인사팀에 파견되어 삼성그룹 인사 시스템 전체 개편 작업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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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의 보상과 벤처에 대한 눈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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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큰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삼성그룹으로부터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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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미국에서 1년간 유학하며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큰 기업들을 방문하면서 '벤처'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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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IMF 구조조정과 벤처 창업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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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 위기와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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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으로 잘나가던 전제완 전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IMF 외환 위기 이후 구조조정 업무를 맡으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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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삼성그룹은 일괄적으로 30%의 인력을 감축해야 했고, 미래에 필요한 인재까지 잘라내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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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의 정규직 인력 17만 명 중 30%인 5만 명을 분사, 명예퇴직 등으로 정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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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인재들의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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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실무를 1년간 진행하면서, 제일 똑똑한 인재들이 명예퇴직을 받고 나가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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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김범수(카카오 전 의장)와 이해진(네이버 의장)도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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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는 유니텔에 있다가 나와 한게임을 만들었고, 전제완 전 대표는 프리챌 초기 6개월간 자신의 서버를 김범수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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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은 숭실대와 검색 엔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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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나와서 네이버와 카카오톡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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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의 창업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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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계속 있는 것이 리스크는 없지만, 직접 벤처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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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특진도 세 번이나 했지만, IMF 인력 조정이 끝난 후 사표를 내고 프리챌을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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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리챌의 인재 유치 비결과 성공 요인
3.1. 삼성 인력과 채용 경험의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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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인력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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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팀에 있었던 경험 덕분에 삼성그룹의 좋은 엔지니어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퇴직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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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을 개발한 인력 중 일부는 프리챌에 있던 인재들이 김범수와 함께 카카오로 가서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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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좋은 인력들이 프리챌에 모이면서 좋은 아이템과 함께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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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경험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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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나온 좋은 인력들과 본인의 채용 경험이 신생 기업 프리챌의 고급 인력을 유치하는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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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과 경험은 '핵심 인재를 유치해야만 회사가 산다'는 신념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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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조수용 대표와의 인연과 디자인 팀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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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인력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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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 창업 후 개발자와 비즈니스 인력은 충분했지만, 디자인 인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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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용 발굴과 병역 특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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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경험을 살려 서울대 산업디자인과를 찾아가 최고의 인재를 물었고, 조수용이라는 학생을 추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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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용은 군대에 가야 하는 현역이었는데, 당시 병역 특례는 공학 석사에 한해서만 가능했고 예술 석사는 해당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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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용은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으나 6개월 만에 그만두고 재수하여 6개월 만에 미술을 공부해 서울대 미대 산디과에 수석 입학 및 수석 졸업한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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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훗날 네이버와 카카오톡의 CEO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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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특례 제도 변경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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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조수용 같은 천재를 데려오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법률 검토를 의뢰하고, 청와대에 민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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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에서 연락이 와 병무청장과 동원국장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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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서울대, 홍대 등 예술 석사를 받는 산업디자인과 학생들도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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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강 디자인 팀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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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특례 혜택 소식에 서울대, 홍대 산디과 학생들이 구름같이 프리챌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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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국내 최강의 디자인 팀을 이루었고, 네이버 초기 배너 디자인 등 우리나라 디자인을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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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프리챌의 핵심 가치: 자유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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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첼 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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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미국에서 벤처의 핵심 가치가 '자유(Freedom)'와 '도전(Challenge)'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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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단어를 합쳐 '프리첼(Freechal)'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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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문화와 인재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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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에 온 직원들에게 자유롭고 도전적인 문화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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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성과 노력 덕분에 좋은 인재들이 많이 모여 프리챌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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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이후의 프리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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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가 구속된 후 300명에 달하던 프리챌 직원들은 대부분 네이버나 다음 등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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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프리챌의 '자유와 도전' 문화가 자신과 함께 끝났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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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리챌의 성공과 실패: 포털 경쟁과 유료화의 배경
4.1. 인터넷 초창기 시장과 포털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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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초창기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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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초창기에는 검색 엔진, 이메일, 커뮤니티(그룹웨어)가 주요 서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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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검색 엔진으로, 다음은 이메일로 시작하여 포털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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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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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시장의 경쟁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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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포털 시장은 네이버가 1위, 다음이 2위, 프리챌이 3위, 야후가 4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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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은 규모가 작아 4개의 포털 기업이 공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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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1위가 50%, 2위가 나머지 50%의 절반인 25%를 차지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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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로의 확장과 자금 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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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도 결국 커뮤니티를 넘어 포털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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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이 되려면 메일, 커뮤니티, 콘텐츠, 뉴스, 게임 등 5만 가지 콘텐츠를 붙여야 했고, 이는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돈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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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자금 조달의 어려움과 유료화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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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자금 조달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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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네이버, 다음은 자금력이 있었지만, 프리챌은 코스닥 진입 외에는 자금 조달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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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벤처 버블이 생기면서 코스닥 진입 규제가 강화되어 IPO(기업공개)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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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수익이 나기까지 5년 정도의 인큐베이팅 기간이 필요하며, 이 기간 동안 지속적인 자금 수혈(금융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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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시리즈 A, B, C 펀딩 등 단계별 투자 시스템과 5,000개의 벤처 캐피탈이 있었지만, 한국은 고작 120개에 불과했고 대부분 영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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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의 성장과 비용 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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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은 한 달에 100만 명씩 가입자가 폭증하는 등 엄청나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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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00만 명당 약 40억 원의 장비 구매 비용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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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1,200만 명의 가입자가 되면 인건비 외에 400억 원의 장비 비용이 필요했지만, 이 정도 규모의 펀딩을 해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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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같으면 시장 장악을 위해 수익보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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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규제 강화와 유료화의 불가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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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은 수익이 나지 않는 기업의 진입을 규제하기 시작했고, 프리챌처럼 수익이 나지 않는 기업은 코스닥 진입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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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성장했지만, 회사는 내부적으로 돈이 없어 골병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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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시장도 규모를 감당할 만큼 수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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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제완 전 대표는 유료화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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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화 전략과 SNS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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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와 다음처럼 돈 싸움으로 포털 경쟁을 하는 것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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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안 되는 광고 기반의 SNS(커뮤니티)를 없애고, 사용자 중 500원~1,000원을 낼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질 좋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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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소규모 그룹 관리, 개인 홍보 등 콤팩트한 구조의 SNS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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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화는 전제완 전 대표가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밀려서 할 수밖에 없었던 '외길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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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죽는 상황에서 유료화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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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리챌 매각 시도와 구속, 그리고 그 후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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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 시도와 대선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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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버티다 못해 프리챌 매각을 결심하고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대기업들을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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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검토하는 데 3~6개월이 걸렸고, 2002년 12월 대선이 다가오면서 투자가 올스톱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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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은 돈이 급했지만, 매각 작업은 지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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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체포와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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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화 시행 두 달 만인 2002년 12월 3일, 전제완 전 대표는 긴급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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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구속되면서 벤처 기업인 프리챌은 버틸 수 없었고, 직원들은 모두 떠나고 시스템은 망가져 회사는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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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기업은 CEO가 '인큐베이터 관'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CEO를 잡아가는 것은 그 관을 자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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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사유와 한동훈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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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사유는 '회사 돈 횡령'이었으나, 전제완 전 대표는 횡령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돈을 회사에 넣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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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서 처벌을 받았으므로 법률적 판단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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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를 구속한 사람은 서울중앙지검의 초임 검사였던 한동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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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중앙지검에서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채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되어 2년간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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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매각 무산과 동료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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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때 SK텔레콤으로 매각이 성사되었다면 사이월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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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이 천만 명일 때 사이월드는 200만 명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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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은 전제완 전 대표가 구속된 후에도 프리챌 인수를 결정했으나, 함께 일했던 CEO가 감옥에 있는 그를 속여 SK와의 딜을 무산시키고 '새로운 기술'이라는 회사에 프리챌을 팔아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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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완 전 대표는 속아서 사인했으며, 만약 SK와의 딜 사실을 알았다면 감옥에서 나와 프리챌 경영을 계속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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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업 실패 후의 삶과 인생의 본질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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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후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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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나온 후 동영상 포털 사업, 사이월드 재건 사업 등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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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지나간 일에 연연하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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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털고 몸뚱이 하나로 새로 시작하는 각오로 사업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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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의 본질과 실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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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아름다운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니며, 90%가 망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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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 기업 중 3~4개만 성공하는 것이 벤처의 본질이며, 95%는 원래 안 되는 구조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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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극복하고 경험을 쌓으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CEO가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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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전제완의 성공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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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보면 사업가로서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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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다닐 때까지는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고 인정도 받았지만, 20년간 두 번의 사업 모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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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20년 동안은 돈을 많이 버는 사업보다는 '행복하게 살아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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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를 하면서 목표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며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 있었기에 행복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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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연 속에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며 작게 먹고 작게 쓰고 건강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 인간 전제완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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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과정은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이므로, 지금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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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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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벤처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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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면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고, 학교 졸업 후 가락시장에서 경매인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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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살면서 생선을 좋아했고, 오징어 등 해산물 유통을 조절하는 경매인의 역할이 재미있고 자산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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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반대로 삼성에 입사했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바닥부터 기어보고 싶은 꿈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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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다시 삼성으로 돌아갔어도 결국 퇴직하고 벤처를 해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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