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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일하기/intotheKOREA

"K-팝 때문에 뜬 게 아닙니다" 유럽인들도 감탄한 한국인의 잘생긴 외모, 그 슬픈 사연

by 리치캣 2025.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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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스프가 프랑스인의 영혼을 달래주던, 앙리 4세 시절

한국도 쌀 외엔 고기가 귀했던 시절...

그리고 일제시대 일본의 쌀수탈로 한국인의 영양부족에 따른 체구 역전현상

그리고 1990년에 이르러...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작은 중국인, 왜소한 일본인과 다른 한국인의 제 모습이 나오기 시작.

"K-팝 때문에 뜬 게 아닙니다" 유럽인들도 감탄한 한국인의 잘생긴 외모, 그 슬픈 사연 / 홍대선 작가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xZk3Q7tdla8

 

홍대선 작가와 함께 한국인의 외모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눕니다. K팝 열풍으로 한국 남자에 대한 환상을 갖는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구한말 서양인들이 기록한 한국인의 뛰어난 외모에 대한 언급을 소개합니다. 조선시대 노비 제도에 대한 오해를 풀고, 당시 노비가 가질 수 있었던 권리와 경제적 활동에 대해 설명하며, 서양의 노예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조선 노비의 특징을 강조합니다. 이 방송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를 새롭게 조명하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핵심 용어
  • K팝: K팝은 한국 대중음악을 의미해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 🌟 한국인의 뛰어난 외모에 대한 인식과 오해

  • 서양에서는 일본인은 외소하고 중국인은 작지만 조선인은 건장하며, 유럽 여성들보다 더 예쁘다는 평가가 있었다.

  • K-팝 열풍 덕분에 외국, 특히 유럽 여성들이 한국 남자와 사귀고 싶다는 소원이 커지고 있다.

  • 한국인이 잘생겼다는 인식이 K-팝 스타들, 특히 BTS 덕분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 과거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미국인들은 모두 근육질이다'라는 환상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경험담이 있다.

  • 동아시아 내에서는 한국인의 외모가 뛰어나다고 인식되지만, 이를 스스로 말하기는 민망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2. 🌟 조선 시대 외국인들의 한국인 외모 평가

 
  • 구한말 조선 시대에 찾아온 서양인들은 중국인과 일본인보다 키가 크고 피부가 좋고 잘 생겼다고 기록했다.

  • 당대의 인종주의적 시각에 따라, 특정 민족의 외모를 비교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잘생긴 민족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 프랑스인 샤를르 르탱은 조선인을 건장하다고 평가하며, 조선 여성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적 차이는 작아서 한 민족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이다.

  • 오늘날 서양인들은 아시아인들을 키 등으로 구분하며, 한국인은 대체로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3. 😕 서양인들의 외모 칭찬과 그 이면의 문제

 
  • 서양인들이 한국인을 잘생겼다고 칭찬하는 것은 인종주의적 맥락이 반영되어 있어 기분이 나쁘다.

  • 역사적으로 "백인이 아니면 잘생길 수 없다"라는 사고방식이 유행했으며, 한국인이 잘생겼다는 것은 혼혈 가능성에 대한 편견으로 간주된다.

  • 조선인의 외모가 하락한 주요 시기는 일제 강점기로, 일본에 의해 신장이 추월당하고 영양 상태가 나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경제력을 회복하여 영양 개선과 함께 상대적 외모 우위를 다시 확보하게 되었다.

  • 역사적으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보다 영양 상태가 더 좋았음을 의미하는 과거의 외모 차이가 있었다.

 

4. 🍚 조선 시대의 식생활과 영양 상태

 
  • 조선 시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50kg에서 200kg로 현재의 약 75kg보다 현저히 많았다.

  • 조선은 농업 국가로서 곡물을 많이 섭취하여 단백질을 충당해야 했으나, 쌀은 밀가루보다 단백질 함량이 적고 대부분 탄수화물이다.

  • 최종적으로 몸에 남는 단백질 양은 쌀이 가장 높아, 과거 사람들에게 풍부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었다.

  • 일본의 육식 금지령으로 인해 조선인과 일본인의 신장 차이가 생겼으나, 서양인들은 조선인이 일본인이나 중국인보다 크다고 평가하였다.

  • 닭고기와 같은 육류는 그 당시 매우 귀한 식재료였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였다.

 

5. 📜 조선 시대 경제 구조와 노비 제도

  • 조선 왕조는 경제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진 사대부의 주도로 새로운 체제를 출범시켰으며, 고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 고려 시대의 대토지 소유는 권문세가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일반 농민들은 거의 노예와 같은 상태에 처해 있었다.

  • 라티푼디움과 같은 집단 대농장 시스템이 존재했으며, 이는 고대 로마시대의 농업 구조와 유사하게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구조로 작용했다.

  • 조선 시대의 노비 제도는 서양의 노예제와는 다르게, 노비도 법적 보호를 받으며 재산권과 상속권이 있었고, 일정 조건 하에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 후반에는 외거 노비가 경제적 자립을 이루며 부자가 되었고, 왕에게 기부를 통해 면천과 명예를 받을 수 있었다.

5.1. 고려 사회와 라티푼디움 경제 구조 분석
  • 고려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으며, 그로 인해 조선 왕조가 출범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 당시 권문세가들은 산맥과 강을 경계로 대토지를 소유하였고, 이는 극소수에게 쏠려 있었음을 나타낸다.

  • 일반 농민들은 노예 상태나 다름없이 굶주림에 시달렸으며, 이러한 조건에서 문명이 지속 가능한지가 의문시된다.

  • 역사적으로 라티푼디움은 대농장의 경제 구조를 가리키며, 이를 통해 부자들은 농민들을 노예처럼 다루고 대량 생산을 이루었다.

  • 고려는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에서 겨우一年에 한 번의 쌀 생산을 하는 데, 라티푼디움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경제적 모순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5.2.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이행과 이념적 변화
  •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고려의 모든 토지 문서를 보관했던 권문세가들이 이를 삭제하고, 초기 농민에게 땅 소유권을 부여하는 경자유전 제도를 도입하였다.

  • 조선으로의 국명 변경은 급진적인 부의 재분배와 관련하여 정권 교체가 필요했던 사회적 변화를 나타낸다.

  • 이 과정은 공산주의적인 혁명으로 볼 수 있으며, 소비에트 연방과 유사한 이념 국가로 이해될 수 있다.

  • 이러한 이념적 배경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지향하며,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체제를 규명하려는 노력이었다.

  • 한편, 그러한 체제를 이끌어낸 배경에는 한계에 다다른 경제 구조가 존재하였다.

5.3. 조선 후기 노비 제도의 이해
  • 조선 후기의 노비 제도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으며, 일부 집안에서 많은 수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 조선 후기 인구의 60%가 노비였다는 주장은 특정 시기에 전쟁이나 기근 이후 스스로 노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생긴 통계로 보인다.

  • 조선의 기록 양식은 정확성을 중시하였으며, 조사 시 개인의 판단을 배제하고 단순히 주장된 내용을 기록하였다.

  • 조선의 노비 비율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구의 10~20%였으며, 노비 비율이 일시적으로 증가한 것은 실제 노비의 수가 아니라 노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 따라서 조선은 노비 제도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사회였으나, 대규모 노예제 사회였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5.4. 조선의 노비와 서양의 노예: 법적 관계의 차이
  • 조선시대의 노비는 서양의 노예와 완전히 다르며, 노예는 인권이 없는 매매의 대상인 반면, 조선의 노비는 법적 보호를 받는다.

  • 조선의 노비는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재산의 상속이 가능하고 공증도 받을 수 있다.

  • 인신매매가 활성화된 일본 및 중국과 달리, 조선에는 매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조선의 노비는 계약 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

  • 조선의 노비는 법적 보호 안에 있지만, 일본의 개인 하인은 보호를 받지 못하며 주인에 의해 목숨이 끊길 수도 있다.

  • 조선시대 노비에게도 법적 보호가 있었으나, 학대나 억울 처형을 당한 사례는 존재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5.5. 조선시대의 노비 제도와 인권 이해
  • 조선시대의 노비 제도는 인권을 무시하거나 매매하는 제도가 아니었으며, 노비 또한 법적 보호를 받았다.

  • 이숙번 사건에서 노비는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를 통해 조선은 노비에 대한 법적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현대와는 다르게 조선시대 사람들은 노비도 국민으로 대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노비의 인권도 일정 부분 보장되었다고 여겨졌다.

  •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비의 모습과 달리 외거 노비는 주인과 드물게 만나며, 계약 조건에 따라 주인에게 세금 대신 일정 비율의 이득을 바치는 구조였다.

  • 외거 노비는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었으며, 부를 축적해 기부 활동을 하는 사례도 있었고, 이로 인해 왕으로부터 면천이나 명예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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