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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지났어도 친일반역행위에 대한 처벌이 명확하지 않은 휴유증이...지금도 다시 확산되고 있다.
어쨌든 해야 할일...서둘러야 한다.
[민국100년 특별기획] 족벌사학과 세습⑧ '민족교육자'로 변신한 친일파 87명...13개교는 세습 - 뉴스타파
https://www.youtube.com/watch?v=U6ZMgO7CZbw
이 영상은 친일파 후손들이 교육계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다룹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을 대물림하는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권력을 이어받아 국민대학교와 같은 역사적 교육기관을 장악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친일세력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이러한 역사적 부정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핵심주제
국민대학교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열망으로 설립되었다.
- 교육 기회 부족에 시달리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새로운 대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독자적으로 국민대학교를 설립하였다.
- 1946년에 문을 연 국민대학교는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으로, 독립운동의 정신을 담고 있다.
-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친일 세력이 득세하게 되어 국민대학교의 원래 목적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한국 역사에서 국민대학교의 변질은 친일 세력의 영향으로 인한 결과이다.
- 국민대학교를 포함한 많은 대학교들이 친일 세력의 영향력 아래 놓이면서 교육 본질이 훼손되었다.
-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 등 여러 시기에 친일 행위를 했던 인물들이 대학의 주요 직책을 차지했다.
- 이는 대한민국의 교육계를 통해 친일 세력과 독재자들의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이 여전히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해방 이후에도 친일 세력이 교육제도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의 후손들이 후속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 몇몇 대학은 친일파 후손들에 의해 여전히 통치되고 있으며, 이는 교육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 친일파의 영향력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나,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이 이러한 시도를 저지하고 있다.
역사적 왜곡은 한국 교육 문제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 친일 행위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으며, 이는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필요하며, 이는 역사의 정확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 학교와 교육기관에서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왜곡된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타임라인
완벽노트(GPT-4o) 적용됨GPT-3.51. 🎓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설립한 국민대학교00:00:00
- 친일파 후손들은 부와 권세를 누렸으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가난과 교육 기회 부족에 시달렸다.
-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교육을 못 받아 많은 원망과 아쉬움을 품었다.
-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인재를 키울 교육기관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학 설립이 절실했다.
- 김구 등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은 미 군정청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국민대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 1946년 9월 독립운동가들의 열망이 담긴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 국민대학교가 문을 열었고 신익희가 초대 학장과 이사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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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후손들이 대를 이어 부와 권세를 누릴 때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가난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야 했다. 배움의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다. 저는 독립운동가 후손 중에 좀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게 정부에서 교육이라도 좀 시켜줬으면 내가 한이 없겠는데 시골 가서 혼자 국립학교 6학년도 제대로 졸업 못하게 공부를 했고 밥 세 끼를 못 먹고 해방 조국.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인재를 키울 교육기관이 절실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필요한 사람을 만들어야 된다고 하는 절대절명의 사명이었겠죠. 그러기 위해서 대학을 설립을 해야 되겠고 김구 등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은 조국에 돌아오자마자 미 군정청의 도움 없이 독자적인 대학 설립에 나섰다. 국민대학교 설립 기성회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기성회에 당시에 임시정부 고문이었던 김구 그리고 부주석이었던 김규식을 고무를 하고 그리고 여교부장이었던 조수환 선생을 명예회장 신입계획 회장으로 해서 구성이 됩니다. 한국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대학입니다. 그 설립 주체자가 누구냐면 임정 요인들이에요. 이 국민원 이름 자체도 임시정부가 추진하다 보니까 국민의 의한대학이다. 국민을 위한 대학이고 그래서 국민자를 사용하게 됐던 것이고. 이렇게 1946년 9월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 국민대학교가 문을 열게 된다. 독립운동가들의 열망이 담긴 대학. 신익희가 초대학장과 이사장을 맡았다. 김상덕 반민투기 위원장의 장남도 국민대에 입학했다. 제가 대학 선택한 대학이 국민대학입니다.
2. ️🇰🇷한국 역사와 국민대학교의 관계00:02:29
- 당시 신익희 국회의장이 학장이었고, 반민투기가 박해받을 때 여러 차례 우리 집을 방문하여 대책을 논의하였다.
- 그러나 신익희가 물러나고 반민투기가 좌절되면서 분위기가 변화하였고, 불행히도 신익희 선생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국민대학교는 방향을 잃었다.
- 국민대학교의 70년 역사 속에 한국 역사도 반영되어 있으며, 독립운동가들이 교육으로 국민대를 세웠으나, 이승만의 비호 아래 친일 세력이 득세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 이러한 가운데 충독부 관료들과 친일 인사들이 학장을 차지하였고, 박이순 학장은 일제 강점기 군수로 친일 행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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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익희 국회의장이 학장으로 있었어요. 반민투기가 박해를 받을 때 우리 집에 여러 차례 와서 아버지하고 대책을 하고 운접실에서 그리고 그 끝에 백알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면서 돌아가고 했어요. 그러나 신익희가 물러나고 반민투기가 좌절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불행하게도 신익희 선생이 1956년 5월에 갑자기 서거를 하신 바람에 국민대학은 그나마 방향을 잃었다고 할까요. 국민대학교가 걸어온 70년. 그 부침의 역사는 대한민국 대학 역사의 축소판이었다.. 지금 국민대의 역사 속에서 한국 역사를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왜냐하면 국민대의 부침이 대한민국 역사와 같이 간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교육 입국의 염원으로 세운 국민대. 그러나 이승만의 비호 속에 친일 세력이 득세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충독부 관료 등 친일 인사들이 잇따라 학장 자리를 차지했다. 이대학장 박이순. 일제강점기 군수로 친일 임명 사전에 올라있다. 박이순은 황국신민으로서 일제 침략전쟁에 협력할 것을 독려했다. 전쟁 중인 시국의 중대성을 인식해 대일본국 신민의 영광됨을 잊지 말고 각자의 업무에 정려할 것을 바란다.
3.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의 영향력을 받은 대학장들00:04:56
- 4대학장인 최문경은 일제강점기의 군수 출신으로, 친일 부역 행위로 아버지와 함께 친일 임명 사전에 올랐다.
-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도 외무부 차관과 대사 등 여러 직책을 맡으며 잘 나갔다.
- 독립운동가에게 중형을 내린 일제판사는 국민대학장과 이사장이 되었고, 국민대 3대 총장이었던 정희령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국보위 의원으로 활동한 정범석은 다음 해 국민대 초대 총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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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학장 최문경. 역시 일제강점기 군수 출신이다. 친일 부역 행위로 그의 아버지와 함께 친일 임명 사전에 올랐다. 최문경은 박정희 정권에서도 잘 나갔다. 외무부 차관과 대사 등 유직을 두루 맡았다. 독립운동가에게 중형을 내려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지정된 일제판사도 국민대학장과 이사장이 됐다. 국민대 3대 총장 정희령은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국보위 의원에 참여한 정범석은 그 이듬해 국민대 초대 총장에 올랐다.
4. 군사독재와 유신체제에 부역한 신현확00:05:49
- 신현확 씨는 박정희 정권에서 장관과 부총리를 거치고 전두환 정권에서는 국정자문위원회에 임명되는 등 줄곧 군사독재에 부역해왔다.
- 그는 4년 동안 국민대 이사장을 맡았으며, 유정혜 의원은 이를 독재자 박정희가 임명한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중요한 직책으로 언급했다.
- 전두환 집권 초기에도 국정자문회의 위원직을 맡으면서 교육자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를 한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 현재 국민대 이사장은 쌍용그룹 창업자 김성곤의 손자로, 이러한 경향이 이제 재벌 후손에게 이어지고 있다.
- 이런 친일과 독재 세력이 대학을 지배하는 한 대한민국의 발전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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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때 장관과 부총리를 거쳐 전두환 정권에서는 국정참원위원회에 임명되는 등 줄곧 군사독재에 부역했던 신현확 씨. 박정희 정권때 장관과 부총리를 거쳐 전두환 정권에서는 국정참원위원회에 임명되는 등 줄곧 군사독재에 부역했던 신현확 씨. 4년 동안 국민대 이사장을 맡았다. 유정혜 의원은 대통령, 독재자 박정희 씨에 의해서 임명된 유신체제를 옹의하는 가장 중요한 직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또 한 가지는 전두환이 집권했을 때 국민대 이사장을 맡았다. 유정혜 의원은 대통령, 독재자 박정희 씨에 의해서 임명된 유신체제를 옹의하는 가장 중요한 직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또 한 가지는 전두환이 집권했을 때 집권 초기 국정자문회의 위원직을 한 것도 역시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교육자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민대 이사장은 쌍용그룹 창업자 김성곤의 손자다.. 이사장 자동가들이 만든 국민대학을 친일반민족 행위자와 독재 부역자들이 지배하다 이제 재벌 후손이 쥐고 있는 것이다. 그걸 풀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힘들다고 봐요. 친일과 독재 세력에 장악된 대학은 국민대뿐만이 아니다. 뉴스타파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다. 이곳에서 70여 년 전 신문기사를 확인했다. 해방 이후 미국 군정청이 임명한 한국인 교육위원회의 위원 명단이다. 희미하게 드러나는 이름. 해방된 나라에서 교육을 책임질 사람들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친일 행적으로 얼룩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
5. 친일반민족 행위의 역사와 대한민국 교육계의 반성00:08:46
- 친일반민족 행위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이었다.
- 이들은 일제 침략 전쟁을 찬동하고 일왕을 위해 전쟁에 나갈 것을 선동했으며, 여성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남성은 전쟁에 강제로 끌려갔다.
- 그러나 친일 부역 행위로 처벌받기는커녕, 교육위원으로 임명된 후에는 대한민국 교육계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 해방된 지 60년이 지나서야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을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결정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 늦었다.
- 친일반민족 행위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들은 이미 민족교육의 스승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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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친일반민족 행위는 적극적이었고 자발적이었다. 일제 침략 전쟁을 찬동했고 일왕을 위해 전쟁에 나가 죽을 것을 선동했다. 여자들은 일본군의 성노예로. 남자들은 일제의 전쟁에 강제로 끌려가야 했다. 그러나 친일 부역 행위로 처벌받기는 커녕 교육위원으로 임명된 이후 대한민국 교육계의 핵심 인물이 됐다. 이날 먼저 이번 대회의 의장인 한국의 백낙준 박사는 그 개회사에서 공산주의를 말살하기 위해서 전 아시아 민족은 단결하며 전 세계 민주방과의 결석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나서야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을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결정했다. 김성수의 경우 건국훈장 서훈도 취소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친일반민족 행위의 기억은 희미해져 버렸고 이미 민족교육의 스승이 돼 있었다.
6. 대학교 동상과 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00:10:37
- 대학마다 세워진 동상들은 뒤틀린 역사를 증명하며, 김성수의 후손들은 학교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공표했으며, 여기에는 김오 전 조선일보사장과 김성수 전 부통령이 포함되었다.
- 친일 청산 작업은 1949년 반민투기 해체 이후 처음으로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기득권 세력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 특히 친일파가 설립하거나 이사장으로 활동했던 대학교 총장들이 일제히 반발하며 청원을 제출했으며, 이는 한국 사회에서 친일 세력의 여전히 큰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 청원서를 낸 대학 총장들의 정체는 한국 사회의 성찰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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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기려 대학마다 세워져 있는 동상이 뒤틀린 역사를 증명한다. 김성수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학교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최종 공표한다. 김오 전 조선일보사장과 동아일보창업주 김성수 전 부통령, 유진호 고려대전 총장과 김환란 이대전 총장이 포함됐습니다. 1949년 반민투기 해체 이후 처음으로 국가기구 차원에서 이루어진 친일 청산작업의 마무리였다. 기득권 세력이 잇따라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친일파들이 설립하거나 이사장 등을 지낸 대학교의 총장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여섯 개 대학 총장 명의로 청원 서돈했다.. 일괄적 잣대로 무리하게 재단하고 폄하하여 한국사회에 미친 공원의 대선마저 부정적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본 총장들은 동위원회의 보고서가 해당 대학의 앞날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며 조사 결과에 대한 조속한 시정을 청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찰을 하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정도의 아직 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하고 판우서를 냈다는 자체가 우리 한국사회에서 친일 세력이 어떤 역량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리 한국사회에서 친일 세력이 어떤 영향력이 아직도 상당하구나 이런 것을 반증하는 그런 겁니다. 노골적으로 친일 청산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낸 대학 총장들은 대체 누굴까.
7. 일제 침략 전쟁을 찬양한 성신여대 총장들00:13:10
- 일제 침략 전쟁을 선전하고 일왕을 찬양했던 성신여대 설립자 이숙족의 조카딸 심화진이 성신여대 총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 나머지 총장들도 뉴라이트와 관련이 있는 인물들로, 일제 침략 전쟁을 찬동한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환란이 있다.
- 김환란이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지정된 것을 반대한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은 5.16 민족상을 받은 후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프랜드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영전하였고,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로 분류된다.
- 2013년 역사교실의 첫 번째 강연을 맡았으며, 친일 독재 미화 논란이 일어난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모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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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략 전쟁을 선전하고 일왕을 찬양했던 성신여대 설립자 이숙족. 그의 조카 딸 심화진이 성신여대 총장 자격으로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총장들 어떤 생각으로 청원서에 이름을 올린 것일까. 사실 이분들이 대부분 또 뉴라이트나 이런 쪽으로 관열되고 그렇지 않습니까. 역시 일제 침략 전쟁을 앞장서서 찬동한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환란. 김환란이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지정된 것을 반대하고 나선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 5.16 민족상을 받은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프랜드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는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영전했다. 이배용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로 분류된다. 2013년 역사교실의 첫 번째 강연을 맡았고 그해 친일 독재 미화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모임에 자신의 이름도 올렸다.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기술해 국정감사장에서 호된 질타를 받기도 했다.
8. 친일 청산 반대자와 관련된 인물들00:15:00
- 주재진은 친일 청산에 반대했던 고황경을 찾았으나 그는 답변을 회피하였다.
- 고황경은 일제의 전쟁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비녀를 바치며 충성했고, 그가 설립한 대학의 총장인 이광자는 청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 또한, 보수단체인 대한민국사랑회의 이사를 맡고 있는 이광자는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숭배하고 있다.
- 그와 함께 친일단체에 가입해 수차례 친일 기고문을 썼던 김성수를 옹호한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이승만 기념사업회 회장직에 현재도 명예회장으로 있다.
- 이들의 관계와 친일파의 후손, 뉴라이트계열 학자들의 행위가 한국 근현대의 경제 성장과 방공에 있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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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진은 친일 청산에 반대했던 입장이 아직 그대로인지 묻기 위해 그를 찾았다. 어렵게 전화통화가 됐으나 그는 답변을 회피했다. 일제의 전쟁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비녀까지 바치며 일제에 충성했던 고황경. 그가 세운 대학의 총장도 청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이광자, 서울여대 총장이다.. 그런데 그는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승모하는 보수단체, 대한민국사랑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 친일단체에 가입하고 수차례 친일기고문을 썼던 김성수를 옹호한 이기수 고려대총장도 이승만 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았고 지금도 명예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친일단체에 가입하고 수차례 친일기고문을 썼던 김성수를 옹호한 이기수 고려대총장도 이승만 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았고 지금도 명예회장이다. 그에게 당시 청원서를 낸 이유를 다시 물었다. 납부끄러운 청원서에 이름을 올린 친일파의 후손,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 그리고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숭배하는 단체의 회장까지.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다음에 경제성장, 방공. 이것이 우리 한국 근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거죠.
9. 일제강점기 친일 세력의 교육계 지배00:18:36
-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세력들이 면접권을 부여받아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다.
- 해방 이후 친일파와 그 후손이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며, 그들의 네트워크는 폭넓고 강력했다.
- 뉴스타파는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지정된 인물과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4,300여 명의 해방 이후 교육 분야 행적을 조사했다.
- 특히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설립하거나 대학에서 총장과 이사장을 지낸 인물들을 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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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일제강점기에 친일 세력들의 면접을 부여하는 것. 이것이 그대로 연결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해방 이후, 이들이 항상 내세우는 건 해방 이후에 공만을 내세우거든요.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지배 세력으로 군림한 친일파와 그 후손. 그들의 네트워크는 상상 이상으로 폭넓고 강력했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각급 학교를 설립하고 대학의 이사장과 총장을 지내며 대한민국 교육계를 지배해온 친일 인사들은 얼마나 될까. 뉴스타파는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지정된 인물과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친일파 4,300여 명을 대상으로 해방 이후 교육 분야 행적을 조사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설립했거나 대학에서 총장과 이사장을 지낸 사람들을 집계했다.
10. 친일 인사의 교육계 영향 및 정치적 이력00:19:32
- 87명의 친일 인사 명단이 작성되었으며, 문교부 장관과 차관 등 교육 소장을 지낸 이들이 6명으로 확인되었다.
- 각 대학에서 동국대 8명, 이화여대 6명, 숙명여대 6명 등 다양한 친일 인사가 총장이나 이사장 역할을 했다.
- 해방 이후에도 친일 인사들의 교육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아, 충성의 대상이 일본왕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바뀌었다.
- 전두환은 새 헌법에 따라 국회의 기능을 대행할 국가보위 입법회의 의원 81명을 임명하였고, 이호 의원이 의장으로 뽑혔다.
- 이호는 일제검사 출신으로, 각 정권에서 권력과 부를 누리며 1981년 전두환에게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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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87명의 명단이 작성됐다. 문교부 장관과 차관 등 교육 소장을 지낸 이들이 6명으로 확인됐다. 동국대에서 8명, 이화여대 6명, 숙명여대 6명, 상명여대에서 4명의 친일인사가 총장이나 이사장 등을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고려대, 연세대, 서울려대, 성균관대, 국민대가 3명, 홍익대, 성신려대, 명지대, 동덕여대, 영남대, 동아대, 부산대, 인천대가 2명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인사들의 교육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충성의 대상이 일본왕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들이 걸어온 이력과 권력자로부터 받은 훈장 내역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전두환 대통령은 새 헌법에 따라 국회의 기능을 대행할 국가보위 입법회의 의원 81명을 임명했으며 의장에는 태간적심자사 총재인 이호 의원이 뽑혔고 부의장에는 전공파당의... 일제검사 출신의 이호가 대표적이다. 이호는 간도특설대 출신의 친일파 백선엽과 동생 백인엽이 설립한 선인학원의 이사장을 맡았다. 이호는 이승만 정권 때 법무부 장관, 박정희 정권에선 내무부와 법무부 장관 자리를 꿰찼다. 전두환 군사반란 이후에는 국가보위 입법회의 의장이 올랐고 이후 국정자문위원을 지내며 독재에 부역했다. 이호는 1981년 전두환에게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일제검사였던 이호는 50년 가까이 각 정권을 거치며 부와 권세를 누렸다. 5.16 쿠테타 이후 박정희가 의장이 된 국가재건 최고회의와 재건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한 친일 인사들은 8명이었다. 유신 독재 시절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2명, 전두환이 만든 국보위와 국정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사람도 6명이었다.
11. 5.16 혁명과 관련된 훈장 수여 인물들00:22:26
- 5.16 혁명의 이념을 구현했다며 박정희에게 훈장을 받은 인물은 총 4명이다.
- 1968년 박정희가 직접 공표한 국민교육헌장을 일선 학교에서 잘 실행했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은 친일 인사도 많았다.
- 국민교육헌장 기초위원이었던 이인기를 포함해 총 15명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천왕 폐하 만세를 외치며 전쟁 선전에 앞장섰다.
- 해방 이후에는 박정희 정권의 전체주의적 교육정책을 잘 따랐고, 재건국민운동본부 중앙위원회에서도 활동하며 박정희의 교육정책을 전파하였다.
- 이와 같은 인물들은 유신 독재 시절에 군사교육을 시키거나 독재자 전두환을 찬양하는 등 독재적인 경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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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이념을 구현했다며 박정희에게 훈장을 받은 이는 4명이다. 6.16 국민교육헌장 1968년 박정희가 직접 공표한 국민교육헌장. 이 헌장을 일선 학교에서 잘 구현했다며 훈장을 받은 친일 인사도 적지 않았다. 국민교육헌장 기초위원이었던 이인기를 포함해 모두 15명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른바 천왕 폐하 만세를 외치며 침략전쟁 선전에 앞장섰다가 해방 이후에는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전체주의적 교육정책을 충실하게 따른 것이다. 5.16 쿠데타 직후 재건국민운동본부 중앙위원회에 임명됐고, 박정희의 교육정책을 충실히 전파했다. 일왕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라고 주장했던 배상명은 유신 독재 시절 학생들에게 군사교육을 시켰다. 한국신민으로 학도병 지원을 독려했던 이숙종은 유신 독재 시절에는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고, 전두환 독재정권회사는 여성단체 대표로 국정자문위원회에 임명돼 독재자 전두환을 찬양했다. 일제 때 징병을 선전했던 김환란은 5.16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 지지를 호소하며 친 독재의 길을 걸었다..
12.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지배하는 교육기관00:25:02
- 뉴스타파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학교 13개를 확인했다.
- 고려대학교는 4대째 세습이 이루어졌고, 동덕여자대학교는 3대째 세습되고 있다.
- 성식여자대학교는 설립자 이숙종의 조카딸이 총장을 지냈으며, 덕성여자대학교에서는 친일파 송금선의 증손자가 이사로 재직 중이다.
- 추계예술대학교에서는 설립자 황신덕의 아들이 이사장을, 손자가 총장을 맡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주창했던 친일목사 김길창이 세운 경성대학교의 증손자가 이사장으로 있다.
- 계명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도 친일파의 후손들이 대학총장 및 이사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고등학교에서도 일본군 장교 출신 김석원이 설립한 성남고와 일제군수 출신 김영훈이 설립한 영훈중고등학교에서 후손들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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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학교도 확인했다. 모두 13개였다. 고려대학교 4대째 세습이 이루어졌다. 동덕여자대학교는 3대째 세습되고 있다. 성식여자대학교. 설립자 이숙종의 조카딸이 총장을 지냈다. 덕성여자대학교. 친일파 송금선의 증손자가 이사로 재직 중이다. 추계예술대학교. 현재 설립자 황신덕의 아들이 이사장을, 손자가 총장을 맡고 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을 주창했던 친일목사 김길창이 세운 경성대학교. 그의 증손자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4대째 세습이다. 일제목사 신후식과 동생 신태식이 세운 계명대학교. 후손이 대학총장을 맡고 있다. 일제검사 출신의 정재환이 설립한 동아대학교. 그의 막내 아들이 대학 이사장에 올랐다. 상명대학교. 설립자인 친일파 대상명의 외손자가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는 모두 4곳으로 확인됐다.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일제계의 우길중수훈장까지 받은 김석원이 설립한 성남고. 그의 손자가 이사장이다. 일제군수 출신의 김영훈이 세운 영훈중고등학교는 그의 아들이 이사장을 이어갔다. 매국수작 민영휘가 설립한 휘문고. 민영휘의 증손자가 이사장으로 있다가 비리 혐의로 법정 구속되면서 물러났다.
13. ️🇰🇷친일 반민족 행위를 사죄하며 회개하는 성신학원00:27:21
- 박흥식이 세운 광신고와 그의 가족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의 부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 이 학교 안에는 설립자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으나, 친일 행적을 기록한 곳은 없다.
- 독립운동 세력과 친일파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대립하고 있고, 이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성신여대 설립자 이숙종의 34주기 추도식에서 황상익 이사장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의 말을 전했다.
- 특히 심용현 전 이사장이 한국전쟁 당시의 학살 행위에 대해 70년 만에 사죄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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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1호로 체포된 박흥식이 세운 광신고.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박흥식 이사장의 부친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박흥식 이사장의 부친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일본군수타판은 이번 취재과정에서 학교 안에 설치된 설립자의 동상을 수없이 확인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설립자의 친일행적을 기록해놓은 곳은 없다. 박흥식 이사장의 부친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여기 위대한 사람의 좌표가 있다. 실로 만 사람이 숭왕하는 스승의 자세다. 친일 사학 설립자들과 그 후손들로부터 사과와 참회. 이를 통한 진정한 친일 청사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그동안의 고통받고 했던 모든 사람들이 같이 나라 건설에 나서야 하는 건데 조그마한 과거의 그 잘못을 말이지 침소봉대해가지고 그거를 처벌하고 오늘날 말이야 70년, 80년이 지나서 그분들이 다 죽고 없는데도 무슨 친일파, 친일파 하는 건 그건 납득이 안 갑니다. 다 죽고 없잖아요.. 나라가 없기 때문에 생겨난 비극 아니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정의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이 우리를 한 번 단죄를 한 적이 없다 보니까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것이고요. 그러다 보니 맺은 것도 아니고 안 맺은 것도 아니고 어정쩡한 상황이다 보니까 국가가 진행해드릴 이상의 가치를 설정하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그 두 가지 힘 가운데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거죠. 우리 사회가 독립운동 세력들의 생각과 친일파의 생각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거고 지난 6월 18일 성신여대 설립자 이숙종의 34주기 추도식 황상익 이사장이 추도사를 읽어나갔다. 학원이 제 구시를 하려면 모름지기 지난 시대의 잘못과 과오들에 대해 안성하고 참회하고 사죄해야만 합니다. 역사와 진실을 외면한 채 미래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립자 이숙종과 초대 총장 조기홍이 민족 앞에 저지른 친일 반민족 행위를 그리고 이숙종의 조카 심용현 전 이사장이 한국전쟁 당시 저지른 집단 학살 행위를 70년 만에 대신 사죄한 것이다. 성신학원 이사장 자격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았을 모든 분들과 국민 그리고 성신학원 구성원들께 깊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산내 권령폴 민간인 학살 사건의 현장 책임자인 심용현 전 이사장은 결코 성신학원에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심용현 전 이사장과 관련해서 발생한 성신학원의 모든 과오에 대해 학살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처음이죠.
14. 역사를 왜곡하는 교육문제, 사죄의 필요성 강조00:32:40
- 이사장님께 감사드리며, 과거의 왜곡된 역사를 밝히고 사과한 점에 대해 무한히 감사를 드린다.
- 이사장은 사죄 없이 역사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것은 교육 분야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 성신학원의 공식 사죄가 다른 사학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는 우리 사회 전체와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 그리고 역사적 진실을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진실을 지키는 것이 애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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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님이 너무 감사드리고 과거 왜곡된 역사를 밝히려고 사과를 하신 데 대해서는 내가 무한한 감사를 드려요. 그분한테 요족 없었잖아요. 자기들이 별죄를 짓고서도 뻔뻔하게 살지 사과 한마디가 없었거든요. 황상익 이사장은 이날 추도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죄는 전혀 없이 본인도 그렇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 이어받은 사람이 역시 사과나 사죄 없이 거꾸로 미화를 하고 찬양을 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는 모르겠습니다만 교육 분야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신학원의 공식 사죄인 건데요. 이게 좀 방향을 일으킬까요? 다른 사학의 움직임을 밟아낼 수 있을까요? 실조로서는 성신학원 한 학교에 한 학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사회적 관심이 아직은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민국 100년 뉴스타파가 친일파가 설립한 사학과 족벌 세승 문제를 다시 꺼내 퇴묻는 이유는 뭘까? 바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민족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역사를 잊지 못할 것이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야. 분명히 소위 애국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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