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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military. warfare.

북한군 관점으로 본 6.25전쟁

by 리치캣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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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관점으로 본 6.25전쟁

만화로 그려져서...장난같이 보이지만.

상세히 보면...

지휘관들이나 전략가들이 검토할 내용들이 많다.

특히 작전, 통신의 문제는 한국군의 현재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휘체계는 물론....가장 큰 문제인 장교들의 수준...

70년전 한국군의 장교의 수준이 처참했다고 말하는데...

2024년 현재 대한민국 장교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처참하지 않은가???

하긴 2024년 현재...

장교의 중요성조차 모르는 놈이 국군통수권자이니...(하긴 이놈은 가늠쇠, 가늠자도 모르는 국방의 의무를 회피한 범죄자놈이니...)

 

6.25전쟁 초기 북한군의 상황은 어땠을까?/한국전쟁17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남침하여 대한민국을 기습했습니다.
북한군은 미군 등의 참전 전에 빠른 전쟁 종결을 목표로 했고, 대한민국의 수원까지 빠르게 진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초기 목표를 이루지 못하며 전략적인 실수와 장비 부족으로 인해 전선이 꼬였고, 보급 부족과 훈련 부족으로 전투 능력이 약해졌습니다.
결국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는 지리멸렬하며 7월 말에 본격적인 병력 손실을 겪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EoXW5oqKuk

6.25전쟁 초기 북한군의 상황은 어땠을까?/한국전쟁17

1.한국전쟁 초반의 전략과 전투 계획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전면적인 기습 남침을 시작하며 대한민국군의 초동 대처가 실패한다.
   - 북한군의 목표는 미군 등이 참전하기 전 한반도를 완전 적화 전쟁으로 조기 종결하는 것이었고,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신속히 점령하려 했다.
   - 북한군은 구체적인 계획 수립하여 서울로 진군하며,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선물하려 했으며, 수원 방면으로 점령하여 국군을 포위하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했다.

2.북한군이 계획한 기동 작전 실패와 분석
   - 북한군은 전력을 증가시켜 전략적으로 서울 공격을 계획하였으나, 작전에서 실패하였다.
   - 다양한 사단이 서울을 점령하려 시도했지만, 국군의 항거로 인해 도화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손실을 입었다.
   - 수원 및 다른 도시 점령 또한 국군의 저항에 부딪혀 늦어졌고, 모터사이클 연대의 임무는 실패했다.
   - 북한군의 초기작전 실패에 대해 소련의 라주 바프가 후일 작성한 보고서에서 분석하였다.

3.️북한군의 불리했던 지휘 체계와 통신 문제
   - 북한군은 평양에서 직접 계획 및 실행하기 위한 비효율적인 지휘 구조를 가졌으며 통신 장비 부족으로 불리했다.
   - 상급 명령 부재로 창의성 부족과 통신 문제로 안하거나 엉망인 상황이 발생하였고, 전투 경험이 부족한 지휘부는 격차를 보였다.
   - 초반 전투에서 한강 도화 및 교량 파괴, 지휘 부대의 미비로 전방 상황 파악 및 수정이 불가능했다.
   - 전투 시작 첫날, 통신 부재로 총참모부와 부대 간 연락이 두절되고 상황 보고에서 계획 수정이 어려웠다.

4.️북한 군대의 부실한 전술과 조 진흥으로 전투의 실험이있었다.
   - 북한군은 7월 3일부터 군단 및 전선 사령부를 창설하여 효율적인 군단 주의 가능. 전투로 지위 체계와 장교들의 수준이 처참.
   - 북한군 2사단장 이송의 경력은 소련군 입대, 독수전 참전. 춘천 전투에 대한 기대와 실전 성과 대조. 고급 장교들의 소련 고문관 조언 부재 문제.
   - 전선 사령부 참모장 강건의 능력 결여로 부대 지휘 불가. 민족 고의상 최용건 후퇴 지시 대신 국군 추격 지연. 전차부대의 부적절한 운용으로 후퇴 지연.
   - 북한군의 전차 부대의 부적절한 운용으로 기동 제약, 공군 표적이 될 위험. 조치원에서도 전차 파괴 및 도화 훈련 부실 발생.

5.️북한군 2사단의 한강 도화 실패와 보급 문제
   - 북한군 2사단이 한강 도화를 시도했으나 미군 폭격으로 자주포 도화 실패.
   - 자동포와 연료 탄환 자주포의 부족으로 진격 중단 및 보급 어려움.
   - 도화 장비 부족으로 작전 진행이 지연되고 물자 파괴로 공급 어려움.
   - 휘발유 부족으로 작전 중단과 남은 자주포 및 보급 물자 부족 상황.

6.️북한군의 낙동강 전투 과정과 전력 약화
   - 북한군은 미국의 공습과 반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대규모 병력 손실을 입는다.
   - 전쟁 초반에는 기존 병력을 넘어 남한에서 병력을 보충하며 상황을 맞추었으나, 훈련과 장비 부족으로 실력은 다소 메마르다.
   - 북한군은 장비 부족과 보급 문제로 탱크 등의 중요 장비를 보충하지 못하며, 상황은 악화되고 모든 공세용량을 고갈시킨다.
   - 이에 비해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침착하게 후퇴하며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펼치고, 북한군의 도달하는 것을 막아낸다.

북한군의 1950년 한국전쟁 초반 전장 전략은?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38선 전면으로 기습 남침하여 대한민국을 적화 전쟁으로 빠르게 끝내려 했어요.
서울과 수원을 빠르게 점령하려는 북한군 계획은 1사단, 3사단, 4사단, 6사단 등을 이용하여 진행되었고, 수원까지 우왕직항하여 국군을 포위하려 했어요.
북한군은 제 122 모터사이클 연대로 수원을 점령하고, 홍천, 횡성, 원주를 점령하여 국군을 다시 한번 포위해 전쟁의 굴활을 엄호했어요.
이 계획대로라면 북한군은 단 5일 만에 수원, 원주, 삼척선을 진격할 것으로 보였어요.

북한군의 서울 공격 계획 실패


북한군은 전력을 증가시켜 전투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 전투에서 실패했고, 국군에게 압도당했어요.
서울을 공격하려 했던 북한군 1사단, 3사단, 4사단은 국군에게 퇴각당하며, 서울 공략에 실패했죠.
다수 부상과 전사로 큰 손실을 입은 바퉁전, 여단은 도화를 완료하지 못했고, 다른 사단들도 도화 작전에서 실패했어요.
북한군의 기동 작전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고, 전투 계획 수행 중 대규모 손실을 입게 되었죠.

북한군 초기 작전 실패의 원인은?


소련의 라주 바프에 의하면 북한군은 전투 지위 계획에서 통신 장비 부족과 상급 지의 명령 부재로 초기 작전을 실패했어요.
준비 부족한 참모부로 각 부대 지휘관의 창의성 결핍 및 부대 간 협조 미흡으로 점령 실패 상황이 발생했고, 통신 문제로 총참모부와 부대 간 연락이 두절되며 철수 후 북한군의 운영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전방 수정이 불가능했어요.
북한군의 초기 작전 실패는 작전 이행을 방해한 통신 문제와 장교 부재로 인한 창의성 결핍 등의 원인들로 요약됩니다.

조치원 전투에서 북한군의 문제점은?


7월 3일부터 군단 및 전선 사령부를 설립하여 군사력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만 국군의 후퇴가 진행됐어요.
북한군 장교들의 미숙함과 지위 체계 문제로 후퇴하며 북한은 전략적 혼란을 겪었어요.
고급 장교는 소련 고문 없이 부대 운영 능력이 부족하여 전투 성과가 부실하고, 최용건의 무능이 김일성마저 실망시켰죠.
전차 부대의 부적절한 운용, 기동 미스매치로 진격 속도가 낮고 실수가 빈번하여 전투력이 떨어지고 연합군의 반격을 촉발했어요.

한강 도화 실패의 결과는?


소련군의 도화 지원 부족으로 계전 촉이 부화를 지연시키는 사건이 있었어요.
미국 여포에 자주포 도화 실패로, 보급 부족 상황이 심각해지며 작전 진행 중단했죠.
휘발유, 자주포 포탄 등 보급 부족으로 공격 중단과 후퇴 사단이 일어났어요.
전쟁 중 보급 물자 파괴로 부족한 현실이 반영된 상황이었고, 휘발유와 포탄 부족하여 전투 후 계속 공급받을 포탄이 없는 상태였어요.

북한군의 약화와 미국의 반격 결과는?


북한군은 미국의 공습과 반격에 대응하지 못하며 병력 58,000여 명을 잃은 뒤 총 병력이 6900여 명으로 급감했어요.
장비와 화력 부족으로 전투력이 망가지고, 병력은 남한 지역의 병력으로 채웠으며 훈련 상태는 열악했죠.
탱크 등의 보충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고, 국군과 미군은 성공적인 지연전을 전개하며 낙동강 방어라인을 유지했어요.
낙동강을 돌파하지 못한 북한군은 일련의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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